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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92화 (92/210)

92화

잠시 당황한 눈빛으로 힐리아를 바라보던 율켄이 도리어 물었다.

“애인이라니요?”

곧 율켄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파바박 떠올랐다.

그는 안색이 하얘진 채 물었다.

“설마… 황태자 전하께서 바람을 피우시는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내가 너한테 물어봤는데.’

잠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을 반복하다가 보라색이 된 율켄이 외쳤다.

“이, 이 나쁜!”

“…?”

“우리 비 전하와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바람을! 제가 가만히 안 두겠습니다!”

펄펄 날뛰는 율켄을 힐리아가 도리어 말려야 했다.

율켄이 10년 넘게 섬긴 건 아르파드였다.

힐리아와는 얼굴 본 지 겨우 한 달 된 사이.

그런데도 율켄이 자신의 편을 들다니. 힐리아는 감동하기 전에 당황했다.

“바람이라니, 불륜이라니. 저는 그것만은 절대 용납 못 합니다!”

그녀는 뒤늦게 기억해 냈다.

‘아, 율켄은 유달리 불륜을 혐오했지.’

루드비히와 에반젤린을 욕할 때도 그걸 가지고 인신공격을 했었다.

힐리아는 율켄이 아르파드의 인성을 최악으로 평가하는 걸 열심히 막았다.

“아니, 아니. 아르파드가 바람피웠다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뭡니까?”

“…아르파드 나이도 있고, 그동안 사귄 여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잖아?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러자 율켄은 고개를 갸웃했다.

“황태자 전하께 직접 물어보시지요?”

“이런 걸 어떻게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

그러자 커다란 의문이 떠올라 있던 율켄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아하.”

힐리아는 찔끔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웃어?”

하지만 율켄은 히죽거리면서도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나저나… 황태자 전하께 애인이라…….”

율켄은 골똘히 생각해 보는 듯했다.

힐리아는 조금 전의 의문도 잊고 율켄에게 집중했다.

조금 전 업무 보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집중력이었다.

“황태자 전하의 연인이라… 아마 그런 불쌍한 분이 있다면 제가 알지 않았을까요?”

“불쌍……?”

‘황태자의 애인이 들을 말은 아니지 않나?’라는 의문이 힐리아의 표정에 떠올랐다.

율켄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야 황태자 전하께서는 그다지 인성이 좋지 못하시니까요. 게다가 단단히 꼬여 계신 분이라…….”

‘아, 인정.’

힐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율켄은 사실만을 설명하고 있었으니까.

“황태자 전하라면 애정도 이리저리 비틀고 꼬이게 표현하시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불쌍한 분이라고 한 겁니다.”

“…….”

힐리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율켄이 알기론 없다는 소리지?”

“…네.”

율켄은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힐리아는 어쩐지 조금 껄끄러운 미소라는 생각을 했다.

율켄도 그걸 알았는지 곧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러더니 물었다.

어쩐지 율켄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처럼 길어지려는 것 같은데 착각일까?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하십니까? 혹시 신경 쓰이시나요?”

“으, 응? 아… 아니?”

힐리아는 짐짓 태평한 척 변명했다. 하지만 당황한 티가 다 났다.

“아르파드에 관한 정보는 중요하니까. 변수를 미리 확인해 두려는 것뿐이야.”

“아, 네. 변수. 그렇군요.”

손으로 가렸는데도 율켄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위로 올라가 있었다.

율켄은 히죽거리며 떠올렸다.

어제 본 희극을.

벨테인 경을 불러서 겨우 ‘힐리아의 남편은 나다’ 이 한마디만 한 그 일을.

그런데 이번엔 힐리아가 이러고 있었다.

‘이건 거꾸로 바로 똑바로 봐도 질투구나!’

남편의 옛날 애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아내라…….

지금 이 두 사람은 아닌 척 서로 질투하고 있었다.

구경꾼으로서는 아주 달달한 재미가 있었다.

퍼뜩 머리를 스쳐 가는 깨달음이 있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이번 일을 아시면 아주 좋아하시겠군.’

힐리아가 질투해서 자신에게 옛 애인에 대해 물어봤다는 소리를 들으면 말이다.

하지만 율켄은 이걸 친절하게 아르파드에게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이건 절대 서류 일로 쌓인 원한 때문이 아니야, 절대!’

연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완벽한 서류를 트집 잡으며 ‘반려, 반려’를 외쳐 댄 아르파드가 얄미워서는 아니었다.

절대!

100만 카스텔을 뜯겼지만, 안절부절못하는 힐리아는 안쓰러웠다.

그래서 그녀에게 힌트를 하나 주었다.

“크흠. 그나저나… 비 전하께서 쓰러지신 동안 황태자 전하께서 내내 간병하셨죠.”

“아, 맞아. 그랬지.”

“궁의도 놀라더군요. 주변 시중도 다 물리시고, 어찌나 세심하게 직접 다 챙기셨는지… 저도, 궁의도 황태자 전하께서 그러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 안심하라, 율켄은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다.

하지만 힐리아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닷새 내내 아르파드가 일일이?”

“예.”

“사람을 전부 물렸다고?”

“네!”

“…….”

힐리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잠깐. 그러고 보면… 막 깼을 때, 나 옷이 바뀌어 있지 않았나?’

그랬다. 속옷까지 깔끔하게 갈아입혀 있었다.

열이 났으니 땀으로 젖었을 테고, 당연히 애니나 시녀들이 한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르파드가 시중을 전부 물리고 있었다면…….

‘설마, 설마… 아르파드가 한 거야?!’

하얗게 질렸던 힐리아의 얼굴이 곧 새빨갛게 물들었다.

* * *

이 놀라운 정보에 나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업무는 지장 없이 처리했지만,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너무 신경 쓰였다.

그래서였다.

단장 시중을 들어주는 애니에게 은근슬쩍 물어본 것은.

“내가 앓는 동안 시중은 애니가 들어준 거지?”

제발 그렇다고 대답해 주기를 빌면서 말이다.

애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방 밖에서 씻을 물과 수건, 옷, 식사를 챙겨서 가져간 게 전부예요. 비 전하를 직접 돌보신 건 황태자 전하세요.”

“…!”

경악한 내 심정을 모르는 애니는 그저 후후 웃을 뿐이었다.

“다들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고 감탄했다니까요.”

“뭐, 뭐에?”

“두 분의 금실이 좋다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황태자 전하께서 정말 진심으로 비 전하를 아끼시는구나 하고 감동했어요.”

그런 걸로 감동하지 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율켄에 이어 애니까지 확인해 줬다.

두 사람이 나에게 거짓말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르파드에게 볼꼴 못 볼 꼴을 전부 보여 버렸다는 것을.

‘나 어떡해. 시집 못… 아니, 이미 시집왔으니까 상관없나…….’

어쨌건 이번에도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종일.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잠깐! 오늘 밤도 아르파드가 내 방으로 올 거잖아!’

우리는 현재 금실 좋은 신혼부부를 연기하고 있었으니까.

어젯밤에 아르파드는 침대 밖으로 도망치려는 나를 잡기까지 했다.

그러니 틀림없이 오늘 밤에도 올 거다.

‘아르파드 얼굴을 어떻게 보지?’

저녁 내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 * *

종일 아르파드는 심란했다.

지난밤의 꿈 때문이다.

그건 분명히 힐리아였다.

하지만 그들이 있던 곳은 처음 보는 장소였고, 힐리아의 상태도 이상했다.

‘델핀 공녀든 황태자비든 그런 꼴을 하고 있는 건 말이 안 돼.’

꼭, 무슨 죄인이나 떠돌이가 할 법한 차림새였다.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분노가 차올랐다.

‘누가 감히……!’

그리고 안타깝고 또 가여워서 직접 일으켜 주고 싶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고 싶고, 또 안심하라고 지켜 주고 싶었다.

‘나한테 무슨 억눌린 욕망이라도 있는 건가?’

여러모로 자신에게 의심이 드는 꿈이었다.

가장 경악스러운 건 힐리아의 상태가 아니었다.

꿈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었지.

그때 ‘자신’은 힐리아를 잡아먹고 싶어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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