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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91화 (91/210)

91화

Chapter 10. 암약하는 그림자

“…?”

아르파드와 나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나는 할 일이 많았고, 아르파드는 잠이 많지 않았으니까.

일반적으로 귀족들이 느지막이 일어나는 것에 비하면, 우리는 아침부터 부지런한 편이었다.

그 때문에 막 해가 뜰 무렵 이른 아침 식사를 함께하면서 나는 의아했다.

‘뭐지? 왜 이렇게 어색해?’

아르파드는 묵묵히 접시 위에 잔뜩 쌓인 스테이크를 해치우고 있었다.

평소라면 온갖 얄미운 말들을 늘어놓을 입이 고기만 먹어 치우느라 바쁘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 볼 겸, 너스레를 떨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어쩐지 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르파드는 어쩐지 축 늘어진 어투로 대꾸했다.

“꿈이 뒤숭숭해서.”

“꿈이요? 무슨 꿈인데요?”

내 질문에 그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더욱 이상야릇해졌다.

그는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어느 쪽이든 아르파드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뭐지?’

내 의문은 아르파드의 질문에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꿈에 아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건 어떤 의미일까?”

“아는 사람이요?”

“그래. 그것도… 내가 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꿈이라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꿈에서 누군가를 해친 일을 이렇게 껄끄러워하는 건 예상외였다.

나는 절로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누가 나왔는데요?”

어쩌면 그 상대가 미래에 아르파드의 애인이 아닐까?

이제 네 번째 삶이지만, 한 번도 아르파드가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본 적 없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미약한 호기심 뒤에는 영문 모를 감정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하고, 불안한 감정의 찌꺼기.

“…혹시 여자예요?”

질문하는 동시에 놀랐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이러면 꼭, 꼭… 내가 아르파드의 상대를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은가.

아르파드는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자야.”

“…….”

어젯밤 아르파드의 답지 않은 말투가 떠올랐다.

“다른 건 나를 믿나?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그렇게 말해 놓고는, 나와 같은 침대에서 다른 사람 꿈을 꿨다는 거야?

어쩐지 조금 심술이 났다.

‘꿈에 나온다는 건 그만큼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 아닌가?’

속설로 꿈은 보통 반대로 해석했다.

나는 생각과는 다른 말을 했다.

“그 사람이 아주 싫은 모양이네요. 굳이 꿈에서까지 해치려는 걸 보면.”

“아니야.”

즉답.

게다가 확신에 차 있었다. 아르파드는 재차 반복했다.

“절대 아니야.”

…아닌 거면 아닌 거지 뭘 또 저렇게 격렬하게 부정하고 그런데.

‘근데 보통 과한 부정은 긍정 아닌가?’

이 생각이 떠오르자 기분이 더욱 저조해졌다.

나는 포크로 에그 베니딕트를 쿡 찌르며 대꾸했다.

“그러면 당신이 그 사람을 아주 좋아하나 보죠. 꿈에서도 생각날 정도로.”

“…그런가?”

어쩐지 아르파드의 목소리는 조금 상기된 것처럼 들렸다.

너무 거슬렸다.

포크에 무심코 힘을 줘서, 빵 위에 올려진 탐스러운 수란의 노른자가 퍽 하고 터져 버렸다.

* * *

황후궁은 아침을 맞았음에도 조용했다.

원래 이 시간이면 궁인들이 시끌시끌하며 돌아다녀야 정상이다.

하지만 주인이 금족령을 받은 데다, 어제 시녀장이 황태자비에게 불려가 백금 열쇠를 빼앗겼다.

당연히 궁인들은 상전의 기분을 살피며 숨소리마저 조용히 할 수밖에 없었다.

황후의 침실.

그곳에서 이자벨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지난밤, 어둠을 틈타 한 남자가 침입했었다.

그녀는 남자와의 대화를 회상했다.

“오랜만이야, 이자벨. 아니, 이젠 황후 폐하라 불러 드려야 하나?”

마탑주 가스팔.

드래곤 레어를 찾아 다른 대륙까지 갔었다고 들었는데, 돌아와 있었던 모양이다.

엿새 전 연회 날 일어난 용의 일식.

그 소식이 가스팔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다.

가스팔은 비웃음 가득한 어조로 속삭이듯 물었다.

“소문이 자자하던데? 새 황태자비가 드래곤에게 축복받았다고. 혹시 그게 사실인가?”

드래곤에 미친 마법사다웠다.

이자벨은 어린 시절 마탑에 들어가기는커녕 정식 마법사가 되기 전부터 드래곤에게 집착하던 가스팔을 기억했다.

‘그래. 가스팔이 용의 일식을 듣고 무시할 리 없지.’

이자벨과 가스팔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원작’에서 두 사람의 행보는 지금과 달랐다.

일단 가스팔이 돌아오는 것 자체가 원작과 시기가 달랐다.

용의 일식 때문에 빨라진 것이다.

원작에서는 가스팔이 귀환했을 때쯤이면, 이자벨은 순조롭게 아르파드를 밀어내고 루드비히를 내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후 황후는 딸에게 가스팔에게 접근하여 도움을 얻는 방법을 조언해 주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용의 일식으로 가스팔이 일찍 귀환했고, 무엇보다 힐리아가 등장하여 황후의 입지를 뒤흔들어 놨으므로.

게다가 이자벨이 딸에게 약간이지만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도 있었다.

“어머니는 황족의 광증을 조절하는 법을 알고 계시죠?”

한 번도 알려 준 적 없는 내용을 언급하는 에반젤린의 표정은 섬뜩할 정도였다.

이자벨은 동요를 능숙하게 감춘 뒤 가스팔을 꼬드기려 했다.

“드래곤의 축복이니 뭐니 하는 건 전부 헛소리야. 여론을 끌어오기 위한 공작이지.”

“글쎄. 하지만 적어도 얼마 전 용의 일식이라는 현상이 벌어졌을 때 강력한 마력 반응이 있었던 건 사실이야.”

“마력 반응? 설마 진짜 드래곤이 나타나기라도 한 건가?”

“그건 나도 모르지.”

가스팔은 능글거리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이자벨을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축복은 몰라도, 어쨌건 새 황태자비가 능력 있는 건 맞아 보이는군. 널 뒷방으로 몰아내다니.”

“…내 속을 긁으러 왔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를 보자니 심술이 나서 말이야.”

“…일부러 어긴 게 아니야. 불가능했던 것뿐이지.”

“그래. 그렇긴 했지. 황족의 아이가 생기면 내게 주기로 했는데… 설마하니 황제가 한 번도 너를 찾지 않을 줄은 너도, 나도 몰랐으니까.”

“…!”

이자벨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조롱하는 것에 대한 분노보다 그의 도움을 얻는 게 먼저였다.

“날 도와줘, 가스팔.”

“이제 와서 정에 호소하려는 건 아닐 테고.”

“…당연하지. 난 거래를 말하는 거야.”

“내가 원하는 걸 대가로 줄 수는 있고?”

황후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심을 굳힌 듯 입술을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

이자벨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보석함을 열었다.

거기엔 얼마 전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에 쓰고 나갔던 황후의 대관식 티아라가 있었다.

이를 보고 가스팔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정확히는 티아라가 아니라, 중앙에 박힌 붉은 보석을 보고.

“호오? 그걸 주겠다고? 전에는 절대 내놓을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몰리긴 했나 보군.”

“닥쳐. 닥치고 내가 시킨 거나 가져와. 그럼 이 티아라의 드래곤 하트를 주지.”

황후의 대관식 티아라에 박힌 보석은 아르타누스의 드래곤 하트 파편이었다.

가스팔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에 비해 아주 손쉬운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회상을 끝낸 황후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녀는 침착함을 되찾으려 애썼다.

이걸로 된 것이다. 큰 희생이지만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괜찮았다.

‘그 어린것의 힘은 결국 아르파드의 존재에서 나오는 거야.’

황태자를 잃은 황태자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 * *

“…전하?”

“…….”

“비 전하?”

“아! 미안. 율켄.”

잠시 정신이 흐트러져 있어서 율켄이 나를 부르는 걸 미처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아침부터 내내 이 상태였다.

계속 일에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율켄을 불러 놓고는 딴생각만 하고 있다니.

율켄은 처음의 까칠함 따윈 없었다는 것처럼 나에게 매우 친절했다.

“그럼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찾아오라 명하신 정보는…….”

그의 말을 집중해서 들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정신이 산란해서 여전히 집중이 힘들었다.

계속해서 아침에 아르파드와의 대화가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혹시 여자예요?”

“그래. 여자야.”

“그 사람이 아주 싫은 모양이네요. 굳이 꿈에서까지 해치려는 걸 보면.”

“아니야.”

그래서 대체 뭔데?!

그 여자가 누군데?

누구기에 그렇게 신경 쓰는 건데?!

이렇게 외치며 아르파드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넘어가자니… 너무 신경 쓰여서 죽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욕망에 졌다.

한창 보고 중인 율켄을 잡고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혹시, 율켄. 아르파드에게 좋아하는 여자라던가, 애인…이 있는지 아는 거 있어?”

율켄의 눈이 당혹감으로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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