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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81화 (81/210)

81화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 성공으로 인해 기쁨이 흘러넘쳐야 할 황태자궁은 벌써 사흘째 걱정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황태자궁에서도 측근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황태자비가 앓아누워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작위를 받고 정식 시녀가 된 애니는 사흘 내내 밤을 설친 까칠한 얼굴로 수건과 대야, 얼음을 가지고 상아의 침실 문 앞에 섰다.

그러자 문의 일부인 조각상처럼 흔들림 없이 서 있던 기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데임(Dame) 로렌.”

사흘 내내 문 앞을 철통처럼 지키고 서 있느라, 기사의 턱선에는 수염이 뒤덮여 있었다.

익숙지 않은 경칭에 애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벨테인 경. 늘 하시던 대로 애니라고 불러 주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이제 당당하게 작위를 받은 분이니까요. 그게 비 전하의 뜻 아니십니까.”

“그건, 연회를 위해…….”

“이유가 뭐였든, 우리의 주인께서 결정하고 실행하신 일입니다.”

“…이런 건 너무 과분하다고, 그러니 다시 가져가 주시라고, 비 전하께 빨리 말씀 올리고 싶어요.”

지금 힐리아는 사흘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애니의 푸념도, 벨테인 경의 원칙주의적인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저도 비 전하께서 하루빨리 일어나시길 빌지만, 아마 데임에 대한 명령은 철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저는 가슴이 떨려서 데임 소리는 못 듣겠어요. 진짜 어서, 빨리 일어나셔서 가져가 주시라는 제 말 좀 들어주셨으면…….”

결국 애니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벨테인 경은 손을 뻗어 대야를 대신 잡아 주었다.

애니가 소매로 눈물을 닦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

애니는 놀라서 기절할 뻔했으나, 벨테인 경은 전혀 흔들림 없었다.

문 안에서 나올 사람이라고는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애니는 놀람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저, 전하! 비 전하께서는 어떠신가요?”

“…….”

아르파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벨테인 경이 들고 있는 대야와 애니가 가지고 있던 수건을 빼앗아 들었다.

지난 사흘간 그랬던 것처럼, 아르파드 혼자 다시 상아의 침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애니가 없는 용기를 다 긁어모아 외쳤다.

“제, 제발 저희도 비 전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릴 때부터 모셔 온 제가 곁에서 간병할 수 있도록……!”

하지만 아르파드는 애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쾅 닫았다.

“…아.”

애니는 안타까이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사흘 전처럼 전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벨테인 경은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 앞을 다시 지키고 섰다.

어떤 위험도 침실의 주인에게 닿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그는 사흘 전 이 문 앞에서 벌어진 갈등을 회상했다.

힐리아는 침실로 들어서기 직전에 쓰러졌다.

그간 무리한 힐리아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곁에는 다행히 믿을 만한 최측근들이 있었다.

애니와 벨테인 경, 그들을 위시한 측근 시녀와 기사 몇이었다.

쓰러진 힐리아를 가장 먼저 보고, 또 안아 든 이는 아르파드였다.

아르파드는 어울리지 않게 창백해진 얼굴로 외쳤다.

“어서 궁의를 불러와!”

“예, 예!”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소문이 나지 않게 데려와라.”

명령을 받고, 황태자의 시종장이 직접 움직였다.

힐리아를 침대로 옮긴 건 아르파드였다.

벨테인 경은 아르파드의 조급한 듯한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충동적으로 말했다.

“어째서 의사를 비밀리에 부르신 겁니까.”

힐리아가 의식이 없는 지금, 두 남자의 대화가 처음 이루어졌다.

그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둘의 시선은 한 여자에게만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아르파드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되물었다.

“그건 왜 묻지?”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적인 계산이 먼저이신 게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그제야 아르파드가 눈을 들었다.

그리고 벨테인 경은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

얼음, 아니, 날을 세운 칼끝이 목덜미를 가르는 느낌.

아르파드의 살기가 형태를 보이고 그를 노리는 것 같았다.

“…일어났을 때 자기가 어렵게 이룬 것들이 흔들렸다고 화를 낼 게 뻔하니까.”

벨테인 경은 아르파드의 말에 놀랐다.

그로서는 배려하지 못한 깊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말을 끝낸 아르파드는 평소와 달리 눈에 띄게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데에 무딘 편인 벨테인 경마저 아르파드가 참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건… 당연한 일인데.’

아르파드는 힐리아에게 반해서 약탈혼을 했을 정도니까.

그런데도… 이게 왜 이렇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걸까.

벨테인 경은 제 마음임에도 제대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그것이 질투심에 가깝다는 걸 그가 깨달을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바로 다음 순간, 아르파드가 주변 모든 이를 침실에서 내쫓았기 때문이다.

“꺼져.”

“저는 비 전하의 기사입니다. 그분의 명령만을 따릅니다!”

벨테인 경이 만용에 가까운 말을 하자 아르파드는 차갑게 비웃었다.

“옆을 지키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해. 아내가 깨어나서 화낼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한마디로, 죽기 싫으면 나가라는 소리다.

그리고 벨테인 경은 깨달았다.

지금 아르파드는 역린을 침범당한 용과 같았다.

드래곤의 피부는 강철과 같은 비늘로 빈틈없이 덮여 있지만 단 한 곳, 심장 앞에는 거꾸로 난 부드러운 비늘이 있다고 한다.

그 비늘을 찌르면 어떤 드래곤도 단번에 쓰러진다는 절대적인 약점.

여기서 한 번만 더 반항할 경우, 아르파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걸 그는 직감했다.

결국 한발 물러서며,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물리려는 입술을 억지로 비틀어 열어서였다.

“하면, 문 앞을 지키고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그분의 기사이니.”

“알아서 해.”

관심 없다는 듯 아르파드는 고개를 휘저으며 문을 닫았다.

쿵!

그리고 궁의 외에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는 나날이 사흘째 이어졌다.

* * *

궁의의 진단은 간단했다.

“과로로 실신하신 겁니다. 체력이 약해지셨으니, 보호할 약을 드리겠습니다. 푹 쉬시면 쾌차하실 겁니다.”

하루 내내 열이 내리지 않자, 아르파드는 시종장을 통해 궁정 마법사까지 불러오게 했다.

힐리아가 연회에서 선보인 녹음 마도구에 큰 흥미를 지닌 궁정 마법사는 그 무거운 발걸음을 흔쾌히 떼었다.

하지만 힐리아가 의식이 없어 마도구에 관해 묻지 못하자, 눈에 띄게 실망하며 돌아갔다.

진단은 궁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크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마력의 흐름은 이상이 없으시니까요.”

하지만 사흘째, 힐리아는 깨어나지 않았다.

아르파드는 손을 뻗어 침대에 누운 아내의 분홍색 뺨을 건드렸다.

뜨겁고 습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불쾌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그 돌팔이들을 죽일까.’

아르파드는 궁의를 믿지 않았다. 궁정 마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놈이고 그의 어머니도, 그도 못 고치지 않았나.

황족에게 대대로 내려오며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광증.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황실은 비밀리에 노력해 왔다.

특히 아르파드의 경우 모친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광증의 기미를 보였기 때문에 황제의 걱정이 컸다.

그는 아들을 위해 대륙을 뒤져 뛰어난 의사와 마법사를 모아들였다.

현재 궁의와 궁정 마법사는 그중 가장 뛰어난 이들이었다.

‘하지만 광증은 전혀 어쩌지 못했지.’

제국의 긴 역사 동안 누구도 어쩌지 못했던 광증이다.

하지만 이 여자만은 달랐다.

“저는 전하가 미치지 않은 채 무사히 황위에 오르게 해 드릴 수 있어요.”

그 말은 사실일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 같기도 했다.

광증 이전에 이 여자 때문에 돌아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흘 내내 열에 들떠 앓으며 눈을 뜨지 않는 이 작은 여자 하나 때문에.

아르파드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지독한 갈증을 느꼈다.

평소 힐리아가 그의 옆에서 불만을 늘어놓을 때는 느낄 수 없던 감각이다.

목을 조르는 듯한 불안감과 불쾌감이 더 증폭되며 등줄기를 타고 기어올랐다.

정말이지 익숙하지 않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감각이었다.

그가 주변의 사람을 모두 물린 건 이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쓰러진 힐리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경 줄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힐리아를 걱정한답시고 시녀가 시끄럽게 굴거나, 그 기사 놈이 주변에 있었다면 희박해진 인내심이 언제 휘발되어 버릴지 알 수 없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죽이지 않기 위해 물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때였다.

힐리아의 마른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어.”

“…힐리아?”

아르파드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주 이상하다고 느꼈다.

날카로운 것으로 잔뜩 긁힌 듯한 목소리.

힐리아가 들으면 바보 같다고 웃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열에 들뜬 힐리아가 외친 비명 때문이었다.

“…싫어! 아르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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