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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73화 (73/210)

73화

‘저게 대체 뭐지?’

이 의문은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황제가 모두의 질문을 대변하듯 물었다.

“저 물건은 대체 무엇이고, 왜 지금 가지고 오게 한 것이지?”

힐리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제 결백을 밝혀 줄 증거품입니다.”

“저 수정 장식이?”

겉보기에 저것은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수정 장식품에 불과했다.

저것이 어떻게 증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다들 의심했다.

그리고 그건, 힐리아가 장식품에 달린 동그란 황동 부품을 누른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

달칵.

가벼운 소리와 함께 장식품에서 기이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지?”

“마도구인가?”

“지금 황제 폐하 앞에서 정체불명의 마도구를 발동시킨 거야?”

이건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기사들이 우르르 황제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과잉 방어였다는 것은 곧 밝혀졌다.

마도구에서는 어떤 위협적인 반응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한 가지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정 기둥 모양의 마도구에서 빛만이 아니라,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부 부인이 케멀 의상실을 소개해 준 덕분이에요. 잘못하면 최신 유행 새 드레스도 못 맞추고, 선황후 폐하의 유품을 입고 나갈 뻔했어요.

-별말씀을요. 친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곧 사람들은 눈치챘다.

“잠깐, 이건 황태자비 전하의 목소리잖아?”

“필레른 부인의 목소리도 들려. 두 사람의 대화인 건가?”

“하지만 지금은 대화하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다들 의문 가득한 시선을 보냈지만, 힐리아는 입을 다물고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사이, 마도구에서는 대화 내용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필레른 부인. 꼭 이 디자인으로 해야 하는 건가요? 이렇게 짙은 녹색은 저랑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어차피 이제 연회도 얼마 안 남아서 수정할 수도 없어요. 그리고 제 눈 못 믿으세요? 제가 보기엔 전하껜 이 드레스가 딱 맞아요. 녹색도 생각보다 잘 받으시고요.

-으음…….

-에이, 저 못 믿으세요? 전하의 유일한 친구가 하는 말을?

-필레른 부인…….

-자꾸 그렇게 저를 못 믿으시는 것 같이 구시면 서운해요. 일부러 의상실도 소개해 드리고, 드레스 가봉도 지켜봐 드렸는데…….

대화 내용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필레른 부인이 조금 전 에반젤린을 위해 한 증언과는 반대되는 내용.

“잠깐, 저 말대로면 루스 후작 영애 드레스 디자인을 필레른 부인이 빼 와서 황태자비 전하께 드린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반대네요. 분명히 필레른 부인이 의상실도 소개하고 디자인도 추천해 준 거잖아요!”

“세상에, 그럼 아까 한 증언은 새빨간 거짓말인 거 아니에요?”

“뻔뻔해라…….”

“두 드레스가 같은 디자인인 건 사실이잖아요. 그렇다면, 오히려 순서가 반대 아니에요?”

“그렇죠! 루스 후작 영애의 드레스 디자인에 맞춰서 일부러 비슷하게 만든 드레스를 황태자비 전하에게 드렸단 소리네요!”

사방에서 에반젤린과 필레른 부인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왜 굳이 그런 짓을……?”

“왜겠어요? 지금처럼 우기려고 한 거죠.”

“맞아. 황태자비 전하께서 루스 후작 영애의 드레스를 따라 했다고 말이야.”

“함정을 파 놓고 오히려 반대로 누명을 뒤집어씌우려고 한 거네?”

에반젤린이 내민 증거는 사실상 필레른 부인의 증언뿐이었다.

그런데 누가 들어도 똑같은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는 증거품이 등장한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신빙성 있는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에 부가적인 효과도 있었다.

“게다가, 필레른 부인의 말투 너무… 그렇지 않아요?”

“맞아요. 황태자비 전하에게 너무 무례해요.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꼭 자기가 은혜를 베푼다는 것처럼…….”

“저렇게 굴어 놓고, 도리어 거짓 증언을 했단 말이야? 얼굴 가죽도 두꺼워라.”

마도구에서 힐리아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이미 필레른 부인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뒤늦은 저항을 시도했다.

“조, 조작이에요! 이거 마도구잖아요? 마법으로 조작해서 만들어 낸 대화가 틀림없어요!”

잠시 넋 놓을 뻔했던 에반젤린도 곧 정신을 차렸다.

“마, 맞아요. 폐하. 이걸 그대로 믿을 수는 없…….”

그때, 힐리아가 에반젤린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이건 제가 얼마 전에 우연히 손에 넣은 최신형 마도구랍니다. 사람들의 대화를 녹음해서 다시 들려줄 수 있는 물건이죠. 대화를 조작하는 기능은 없어요.”

필레른 자작 부인은 버럭 외쳤다.

“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이미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

여기서 힐리아에게 타격을 전혀 입히지 못하면, 자신은 파멸이나 다름없었다.

발악하려던 필레른 자작 부인, 이디스 필레른은 자신을 차분하게 내려다보는 힐리아의 보라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흠칫했다.

온몸이 얼어붙은 듯 오싹해진다.

그저 시선이 마주친 것뿐인데.

그녀는 마치 맹수 앞에 선 생쥐가 된 듯한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말도, 말도 안 돼! 그 멍청하고 말 잘 듣던 여자가, 어떻게 이렇게 아예 사람이 변한 것처럼……!’

정말로 사람이 바뀌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힐리아가 보인 태도와 말투가 전부 거짓이었다면?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연기한 거였다면?

‘정말 그런 거면 대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한 거지? 언제부터 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거야?’

등줄기가 공포심으로 오싹해질 정도였다.

* * *

필레른 부인이 얼어붙어 있는 사이.

힐리아는 ‘마도구의 음성 녹음이 조작된 것이다’ 라는 주장을 그 자리에서 부정해 보였다.

마도구 장치를 이리저리 조작한 다음 황제에게 말했다.

“아무 말이나 좋으니, 부디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바마마?”

일부러 아바마마라는 단어를 아주 다정하고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주변에 황제와의 친분을 실제보다 더 강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힐리아는 여유 넘쳐 보이지만 나름대로 긴장 중이었다.

‘이것까지 제대로 끝내야 연회를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거야.’

끝까지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황제와 마도구, 그리고 에반젤린과 필레른 부인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관심에서 밀려난 한 남자가 불만스러운 표정인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다들 힐리아가 보이는 증명에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진진한 광경이니 당연했다.

“저런 마도구는 처음 봐요. 소리를 저장할 수 있다니, 그럼 노래 같은 것도 저장해 뒀다가 들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그것보다 비 전하께서 저 마도구의 성능을 증명하는 게 더 중요하죠. 조용히 해요.”

“맞아요. 소리가 저장되는 게 증명되면 상황이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요.”

사방에서 소곤거림이 오고 갔다.

황제가 신기한 표정으로 마도구를 뜯어보다가 곧 몇 마디를 건넸다.

“이게 정말 사람의 대화를 저장할 수 있다는 건가? 신기하군. 어떻게 생각하나, 두린?”

황제의 곁에는 궁정 마법사가 다가와 있었다.

그는 외눈이었는데, 시력을 잃은 눈에 보석 의안을 끼워 넣은 것이 아주 특이한 외모였다.

보석 의안이 번쩍거리며 빛나기 시작했다.

“호오. 이런 마력 회로 발동 방식은 정말로 특이한 발상이군요…….”

한참 처음 보는 마도구를 분석하던 궁정 마법사가 번쩍거리는 눈빛으로 힐리아에게 물었다.

“비 전하, 이걸 대체 어떻게 손에 넣으셨습니까?”

“우연히 아주 창의적이고 실력이 뛰어난 마도 공학자를 후원하게 되었거든요.”

“세상에! 이런 발상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런 인재가 비 전하의 곁에 있다니… 음음, 이 부분은 또…….”

그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힐리아의 얼굴에 금칠해 준 다음, 이렇게 묻기까지 했다.

“혹시 그 인재를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단한 천재인 듯한데, 직접 대화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

덕분에 주변의 경탄이 더해졌다.

궁정 마법사마저 감탄할 정도의 마도구를 발명해 낸 인재를 힐리아가 찾았다는 소리였으니까.

궁정 마법사가 그 인재를 소개해 달라며, 힐리아에게 간절히 매달리는 광경은 꽤 상징적이었다.

“직접 만나서 논의해 보면 엄청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잠시만요. 일단 이 일부터 끝내도록 하죠.”

더 있다간 말이 끝나지 않을 듯해서 힐리아는 녹음 마도구를 조작했다.

녹음을 끝내고, 바로 재생시킨 것이다.

황제와 궁정 마법사의 대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사람의 대화를 저장할 수 있다는 건가? 신기하군. 어떻게 생각하나, 두린?

-호오. 이런 마력 회로 발동 방식은 정말로 특이한 발상이군요…….

조금 전 귀가 있는 이들은 모두 들은 대화가 똑같이 반복된다.

약간의 음질 차이가 있긴 했으나, 누구 목소리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도구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정직하게 그대로 들려주는 건 틀림없었다.

-…이 부분은 술직의 마무리가 좀 엉성하군. 케날 학파인가? 반면에 마력의 저장은 또 제법…….

아무도 관심 없고 기억도 못 하는 궁정 마법사의 분석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힐리아는 증명이 충분히 되었다 싶은 시점에 마도구를 멈췄다.

그리고 빙글 뒤돌면서 방청객들을 향해 물었다.

“이제 모두 확인하셨겠죠? 저는 루스 후작 영애의 주장과 달리 드레스 디자인을 훔친 적도, 따라 한 적도 없다는 걸요.”

자신만만한, 그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승리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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