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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61화 (61/210)

61화

Chapter 8.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떨어뜨리려면

사흘 뒤,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 당일.

그날 예정대로 퀴니벨 부인은 황후의 비호를 받아 황후궁 내에서 무도회를 여는 영광을 누렸다.

퀴니벨 부인의 연회는 모두의 예상대로 북적거렸다.

황후에게 찍히고 싶지 않은 중앙의 귀부인들과 영애들, 그들을 따라온 파트너와 가족들로 떠들썩했다.

“어머, 축하드려요. 후작 부인. 이렇게 훌륭한 무도회는 오랜만에 봐요.”

“이런 영광을 허락해 주신 황후 폐하께 감사할 뿐이죠.”

“그게 전부 부인께서 평소에 황후께 충정을 바친 덕분 아니겠어요.”

그리고 용감한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오늘 열리는 다른 무도회를 저격했다.

“이곳이 이렇게 북적거리니 다른 곳은 텅텅 비었겠어요. 안 그래도 넓은 곳 아닌가요.”

이 말을 한 이는 바로 필레른 자작 부인이었다.

그녀가 황후궁에서 쫓겨나는 걸 봤던 귀부인들이 의아한 표정을 했지만.

곧 황후의 측근이자 오늘 무도회의 여주인인 퀴니벨 후작 부인이 필레른 자작 부인에게 호응하자, 다들 이유를 알아챘다.

“맞아요. 필레른 자작 부인. 다 부인이 무도회 준비를 도와준 덕이죠.”

귀부인들 사이에 시선으로 대화가 오고 갔다.

‘필레른 자작 부인이 쫓겨났던 건 뭔가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어쩌면 그것도 황후 폐하나 에반젤린 양의 명령이었을지도…….’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용서받았음은 분명하죠.’

눈치 빠른 귀부인들은 재빠르게 필레른 자작 부인을 칭찬해 주었다.

“역시 필레른 부인의 안목은 높아요.”

“맞아요. 감탄스러울 지경이죠.”

“별말씀을요. 그저 황후 폐하와 에반젤린 양에게 많이 배운 대로 했을 뿐이랍니다.”

이 말로 대부분의 귀부인들은 알아들었다.

약 한 달 전 필레른 자작 부인이 모욕당하고 쫓겨난 것도, 그리고 그 뒤로 황태자궁을 기웃거린 것도 연기였다는 걸.

그들은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델핀 공녀가 알면 속 꽤나 쓰리겠네요.’

‘어쩌겠어요. 본인이 멍청해서 당한걸요.’

그들은 패자를 비웃을 준비가 이미 끝나 있었다.

곧 필레른 자작 부인은 이 자리에서 이인자로 인정받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좋아. 그 모욕을 감내하고 한 달이나 멍청한 여자 뒤를 닦아 준 보람이 있어.’

그녀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무도회장을 2층에서 오만하게 내려 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바로 에반젤린 루스.

그녀는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미천한 인간들을 굽어보듯 아래를 훑어보았다.

사실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보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납작한 종이로 만들어진 인형 같았으니까.

‘진짜 인간은 나뿐이지.’

그러니 이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당연했다.

에반젤린은 곱게 미소 지었다.

무도회장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자주 얼굴을 본 귀부인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

모든 고위 귀족이 온 건 아니지만, 여기에 오지 않은 이들은 아예 사교 활동을 하지 않는 자들뿐이다.

‘그 넓은 아르타누스 홀이 아주 텅텅 비었겠네.’

에반젤린은 더없이 통쾌함을 느끼다가 곧 한 가지 충동에 사로잡혔다.

‘가서 직접 확인해 볼까? 텅 빈 홀에 혼자 있는 그 여자를 놀려 주고 오는 거야.’

에반젤린의 얼굴에 악의 어린 미소가 걸렸다.

* * *

에반젤린은 무도회장으로 내려가 늘 자신을 시녀처럼 따르는 귀부인과 영애들에게 걱정하는 척 운을 뗐다.

비웃음을 옅게 깔고서, 천사처럼 웃으며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였는데, 걱정되네요. 애써 준비했을 텐데 홀로 빈 홀을 지킬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에반젤린 님은 너무 착하셔서 큰일이라니까요.”

“맞아요. 그렇게 심한 일을 당하셨는데 말이에요.”

“사과도 없었잖아요!”

“저는 괜찮아요.”

가련하게 웃는 에반젤린을 주변 모든 이가 한목소리로 위로했다.

수도 사교계에서는 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들 일행에는 당연히 필레른 자작 부인이 끼어 있었다.

필레른 부인은 악의적인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에반젤린 때문에 그 멍청한 여자 비위를 맞추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꼭 결과를 눈으로 봐야 해.’

지금 에반젤린은 그야말로 한 송이 장미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에반젤린에게 시달리느라 원망이 가득한 필레른 부인조차 저 미모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꿀빛 금발과 녹색 눈동자를 돋보이게 해 주는 청록색 드레스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드레스 전체에 빼곡하게 매달린 비즈가 마치 별처럼 빛났다.

‘바로 옆에 놓으면 진짜 비교되겠네.’

필레른 부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설프게 베낀 드레스를 오늘 힐리아가 입고 있으리라는 걸.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

지금 필레른 부인은 그간 에반젤린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힐리아 때문이라는 것처럼 악의에 차 있었다.

‘꼭 그 여자가 망신당하는 걸 직접 확인하고, 비웃어 줘야 지난 한 달간의 고생이 보답받는 기분일 것 같아.’

사흘 전 바보 같은 힐리아가 가련하게 눈썹을 늘어뜨린 채 한 말이 떠올랐다.

“꼭, 잊지 말고 와 줘야 해요, 필레른 부인?”

“어머, 걱정 마세요. 제가 설마 안 올까요. 비 전하의 하나뿐인 친구인데.”

“그래도 걱정이에요. 요즘 악몽을 꾸거든요. 한 명도 오지 않아 텅 빈 홀에 혼자 서 있는 꿈을요…….”

“저런,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셨나 봐요.”

“게다가 에반젤린이 와서 저를 비웃는데… 너무… 너무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어요.”

아직도 불안과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던 힐리아의 말과 표정이 선했다.

‘그렇게 말하면, 꼭 그 악몽을 실현시켜 주고 싶어지잖아.’

필레른 부인은 에반젤린에게 제안했다.

“걱정되시면 직접 가서 위로해 주는 건 어떠신가요, 에반젤린 양?”

“직접요?”

“네. 에반젤린 양의 자비로움과 배려를 보면, 그분도 기뻐할 거예요. 감사하면서 늦게라도 사죄할지도 모르죠.”

“저는 굳이 사과까진 원하지 않아요.”

에반젤린은 긴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가증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필레른 부인이 운을 뗀 떡밥을 놓치지 않았다.

이게 그녀가 바라는 바였기 때문이다.

연회장으로 내려오기 전, 2층으로 필레른 부인을 따로 불러 명령했었다.

“이따가 아르타누스 홀로 가 보자고 운을 떼세요.”

“네? 직접 가 보시게요?”

“궁금하잖아요. 얼마나 초라하게 있을지. 그리고… 눈앞에서 직접 비교해 주는 것도 좋을 거고요.”

“어쩜, 이렇게 마음이 통했을까요! 안 그래도 저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거든요.”

“무슨 소리죠?”

“그게 말이죠. 그 여자가 에반젤린 님이 와서 자기를 비웃는 걸 제일 두려워하고 있더라고요.”

“흐응. 그렇게 기대하고 있으면 제가 배반할 수 없겠군요.”

에반젤린은 부채 아래로 심술궂은 미소를 감추었다.

‘어차피 오늘 힐리아가 망신당하는 건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에반젤린이 직접 간다면 더더욱 모욕적이고 비교될 거다.

두 사람의 옷차림은 누가 봐도 힐리아가 에반젤린을 따라 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보일 테니까.

에반젤린의 마음속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아르파드도 똑똑히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누가 더 아름답고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여자인지.’

거기에 나중에 그녀가 준비해 둔 ‘계획’까지 성공하고 나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다.

아르파드가 자신을 배신한 여자를 계속 옆에 둘 리는 없으니까.

에반젤린은 부채를 펼쳐 사악한 미소를 가렸다.

그렇게 누군가의 실패를 간절히 원하고, 비웃길 바라는 이들이 비구름처럼 모여 한곳으로 향했다.

바로, 아르타누스 홀로.

* * *

아르타누스 홀은 대관식이 열리는 곳답게 황궁에서 가장 큰 홀이었다.

거대한 돔 지붕을 가진 황궁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 통째로 아르타누스 홀을 이룬다.

그 주변을 둘러싼 정원과 홀로 향할 수 있도록 지어진 흰 대리석 회랑도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비나 눈이 와도 사람들이 오가는 데에 문제가 없도록 흰 지붕이 얹어져 있었다.

물론 옆은 전부 트여 정원의 아름다운 조경과 아르타누스 홀의 건물 외부를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들이 아르타누스 홀로 이어지는 회랑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연회가 벌어지는 장소의 앞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그들은 회랑을 지나면서 벌써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아무도 안 온 게 분명해요. 연회가 제대로 열리고 있으면 여기부터 사람이 북적여야죠.”

“맞아요. 퀴니벨 부인의 연회도 그랬잖아요.”

“앞이 이렇게 텅텅 빈 걸 보면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아도 알겠어요.”

조롱과 비웃음이 쏟아졌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너무 아무도 없지 않나?’

‘적어도 연회의 시중을 들 황태자궁의 궁인들이 여기서 대기 중이어야 할 텐데?’

필레른 부인은 지난 한 달간 황태자궁을 드나들며 궁인들이 연회 준비에 한창인 걸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연회가 열리는 중이라면 당연히 연회장만이 아니라, 입구와 주변에도 시중인들이 쫙 깔리기 마련이다.

이렇게까지 아무도 없을 수는 없었다.

‘설마 아무도 안 오니 벌써 연회를 취소하고 철수라도 한 건가?’

그러면 일이 조금 난감해진다.

대놓고 눈앞에서 힐리아를 비웃어 주려던 계획이 어긋나는 셈이니까.

몰려온 이들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아르타누스 홀 2층의 테라스 한곳을 발견하고 손가락질했다.

“저기!”

이곳에서는 꽤 멀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어떤 여자가 서 있는 건 알 수 있었다.

청보라색 드레스 자락이 마치 파도처럼 물결친다.

파도치는 옷감 위로 흩날리는 것은 분명히 옅은 분홍빛 곱슬머리.

저렇게 특이한 머리 색은 달리 없었다.

에반젤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힐리아?”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저 여자는 아예 다른 색 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필레른 부인에 따르면, 그리고 에반젤린이 매수한 의상실이 주었다는 옷은 분명 칙칙한 녹색 드레스였다.

지금 에반젤린이 입은 것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못하고, 힐리아에게 어울리지 않는.

꽤 멀었지만 지금 힐리아가 입은 옷이 에반젤린의 것을 질 나쁘게 흉내 낸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이를 깨닫고 필레른 부인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아니, 아니, 그럴 리가……!”

그때였다.

테라스 끝에 서 있던 힐리아가 손을 뻗었다.

허공을 향해.

마치, 누군가를 부르거나 신호를 주는 것처럼.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는 광경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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