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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60화 (60/210)

60화

힐리아가 벌이는 일에 대한 정보는 대다수 에반젤린의 손에 들어갔다.

물론 그 정보들은 힐리아가 에반젤린의 손에 들어가도 된다고 판단한 것들이었지만 말이다.

정보를 모아 확인하며 에반젤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연회를 위해 물자를 꽤 많이 사들이고 있는 건 예상한 대로긴 해.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꽤 잘생긴 남자가 야비하게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다갈색 단발머리가 찰랑거리고, 모노클 안쪽에서 청회색 눈동자가 반짝인다.

“제대로 된 연회를 주최해 본 적 없으니 당연한 일 아닙니까. 에반젤린 님과는 전혀 다르지요.”

그는 수도 사교계 살롱을 휩쓰는 중인 소식지 「에스피톨라 Epistola」의 발간자, 빌헬름 필레르모였다.

살롱의 소식지로 시작해, 나중에는 언론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 남자다.

당연히 에반젤린은 미래를 아는 빙의자로서 빚쟁이였던 그를 거두어, 1년 만에 이렇게 성공시켰다.

그 결과, 지금 중앙 사교계의 살롱들은 앞다투어 그의 소식지를 받아 보고, 또 기사를 기고하고 있었다.

‘물론 나와 빌의 관계는 비밀이지만.’

에반젤린의 수도 사교계에 대한 장악력은 빌헬름의 소식지를 통한 것도 컸다.

게다가 빌헬름의 소식지는 귀족들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었다.

귀족들을 선망하는 부유한 평민들도 소식지를 구해 보았고, 이 정보들은 며칠 사이를 두고 시장통의 평민들에게까지 퍼졌다.

그야말로 언론을 장악한 상태인 것이다.

에반젤린은 뿌듯한 얼굴로 빌헬름을 보았다.

그는 에반젤린이 ‘원작’을 바꾸어 손에 넣은 인물 중 하나였다.

말하자면, 전리품인 셈이다.

얼마 전까지는 최고의 전리품은 남주인공인 루드비히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알콜 중독자 쓰레기는 원작 남주인공이고 뭐고, 쓸모가 전혀 없어졌으니까. …한 가지만 빼면.’

반면에 빌헬름은 여전히 만족스러웠다.

외모도 그럴듯했고, 능력도 마찬가지.

게다가 그는 에반젤린을 여신처럼 숭배하고 있었다.

원작에서와 달리.

원작에서 우연 혹은 필연으로 여주인공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인재가 지금은 그녀의 것이었다.

빌헬름은 그 대표 격인 것이다.

에반젤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당신만 의지하고 있어요, 빌헬름.”

빌헬름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의 레이디.”

그는 에반젤린의 손등에 몇 번이고 키스했다. 더없이 정열적으로.

루드비히가 몰락한 후, 에반젤린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에반젤린이 그전보다 훨씬 더 여지를 주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봉사하다 보면, 언젠가 그녀의 유일한 남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유혹하는 듯.

그의 기색을 느끼고 에반젤린은 설핏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도 의문을 아예 놓지는 않았다.

“각지에서 온갖 특산물들을 다 사들이고 있네. 동부의 암염과 자염(煮鹽), 남부에서는 대량의 밀과 버터, 라드 등의 동물성 기름과 설탕. 지역 불문하고 술에 각종 가축, 가금류와 해산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부에서는 보리와 순무…….”

원래 이 정도 대연회를 열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자가 필요한 것이 맞긴 했다.

“그래선지 운송선이 대량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평상시보다 거의 두 배가량이죠. 그 대부분 물자가 황태자궁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빌헬름은 부러 트집을 잡아 힐리아를 비웃었다.

“대체 무슨 연회이기에 보리나 순무 따위를 쓰려는 걸까요? 기름이나 밀, 설탕이야 이해는 한다 해도…….”

“글쎄…….”

“어쨌든 덕분에 수도 전체가 북적이긴 합니다. 황태자궁에서 돈을 꽤 풀었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게다가 같은 날 황후궁에서 퀴니벨 부인의 무도회도 열릴 예정이니까.”

“그래서 의외로 수도 상인들을 비롯한 평민들 사이에서는 의외로 델핀 공녀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 돈을 풀고 있으니까요.”

“원래 보는 눈이 없는 개돼지들은 어쩔 수 없는 법이지. 하지만 짜증은 나는걸.”

당연한 일이긴 했다. 힐리아 덕분에 수도의 상인들이 노난 상황이니.

에반젤린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보고, 빌헬름은 바로 비위를 맞췄다.

“그래 봤자 아르타누스 홀은 텅텅 빌 텐데 말입니다. 사들인 물자들도 전부 쓰는 사람 없이 버려지겠죠.”

“맞아. 그렇게 될 거야.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지.”

잠시 고민에 빠졌던 에반젤린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 이런 소문이 돌면 어떨까? 죽어 가는 거지 앞에서 ‘배고프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텐데’ 라고 말하는 힐리아 델핀.”

빌헬름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빌헬름의 소식지에는 여러 종류의 기사와 삽화가 함께 실린다.

글을 읽지 못하는 평민들조차 소식지의 그림이나 풍자화는 구해 보곤 했다.

빌헬름은 직접 삽화를 어떻게 그리게 할지 적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거만한 표정으로 사치스러운 파티 음식을 모두 버리면서, 거지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 장면을 그리면 되겠군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멋 모르는 자들은 힐리아가 실제로 말했는지보다, 소식지에 그려진 그림 하나를 보고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역시 에반젤린 님입니다. 당신의 발상은 천재적이에요.”

에반젤린은 음흉하게 웃었다.

‘지구에서의 기억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뿐이지만, 어쨌든 여기선 내가 처음으로 떠올린 거잖아? 상관없어.’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를 망치고, 드레스로 망신을 주는 걸로는 부족했다.

‘평민들마저 침을 뱉고 경멸하게 만들어야 해.’

빌헬름이 품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면서 말했다.

“거기에 연회 당일에 발간될 소식지의 1면 기사를 생각하면 델핀 영애의 몰락은 예정된 일이군요!”

이건 사흘 뒤 발간 예정인 소식지의 샘플이었다.

거기엔 두 사람의 숙녀가 그려져 있었다.

아름다운 누군가를 따라 하다 망신을 당한 힐리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그 앞에서도 의연하게 빛나는 에반젤린의 모습이.

에반젤린은 그걸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꼭 그렇게 될 거야.”

이 그림에서처럼.

그녀는 자신 있었다. 모든 준비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 * *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며, 내내 긴장하느라 지친 몸을 장의자 위에 늘였다.

“아,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 척하는 것도 진짜 힘드네.”

내 앞에는 아까 필레른 부인과 케멀 의상실 직원들이 입혀 주었던 드레스가 토르소에 전시되어 있었다.

아까 가봉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애니는 그 드레스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진짜 너무 별로예요. 비 전하의 피부나 머리 색에도 너무 안 어울리는 걸요.”

그리고 그 드레스를 필레른 부인과 의상실 직원들은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내가 반드시 그걸 선택하고 입게 만들기 위해.

나는 쓰게 웃었다.

“그야 에반젤린에게 어울리는 걸로 맞췄을 테니까.”

그것도 에반젤린을 위한 드레스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고, 덜 화려하게 일부러 만든 게 분명했다.

에반젤린의 계획은 불 보듯 뻔했다.

‘연회 날 비슷한 드레스를 훨씬 예쁘고 호화롭게 차려입고 날 망신 주려는 거지.’

이미 비슷한 짓을 내 결혼식에도 하려고 하지 않았나.

웨딩드레스를 에반젤린이 골라 줬었지.

그리고 회귀 전에도 몇 번이나 중요한 자리에서 거의 똑같은 옷을 입고 와서 나를 망신 줬었다.

“어머, 아무리 사교계의 꽃 자리를 질투해도 그렇지, 따라 하려면 좀 제대로 하지 그랬어요?”

애니는 에반젤린의 공들인 음모로 만들어진 드레스를 보며 혀를 찼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비교가 안 되긴 하네요.”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애니가 무슨 드레스와 저걸 비교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과연 이세핀 솔레누 영애, 아니, 리타 모건…….

‘아니, 아니지, 이젠 프리다 웨스지. 그녀는 진짜 천재야.’

프리다 웨스는 내가 새로 지어 준 이세핀의 가명이다.

그리고 얼마 전 고급 의상실들이 모인 곳에 화려하게 가게를 냈다.

물론 아직 손님은 받지 않았고, 샘플 드레스도 전혀 전시되지 않은 상태긴 했다.

디자이너 프리다 웨스의 데뷔이자 의상실의 첫 작품이 선보이는 자리는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가 될 테니까.

“내가 입을 드레스가 비교도 안 되게 아름답지.”

애니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꿈결처럼 아름다운 드레스인걸요. 연회 때 모두가 비 전하의 아름다움에 놀랄 거예요!”

나는 마주 웃었다.

오늘은 연회 전 드레스 가봉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연회 당일엔 황태자궁에 소속된 이들과 이세핀이 직접 입혀 줄 거다.

연회 날에는 필레른 부인이나 케멀 의상실의 인간들은 들여보내지 않을 예정이었다.

‘아마 필레른 부인은 에반젤린 옆에 가서 아첨하느라 오지도 않을 테지만…….’

어쨌든, 그 말인즉슨…….

“이제 저 구질구질한 드레스를 모셔 둘 필요가 없어.”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애니가 눈을 반짝거렸다.

“그럼 이거 어떻게 할까요?”

사실 마음 같아서는 확 불태워 버리거나, 웨딩드레스처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자원 낭비인 것 같았다.

드레스는 죄가 없고 말이지.

내가 고민하던 차였다.

애니가 먼저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

“…이런 건 어떠신가요?”

나는 놀랐다. 애니가 이런 계략을 짜내다니?

“그동안 비 전하 옆에서 루스 후작 영애 일파가 하는 짓을 보는 게 얼마나 화났는지 아세요?”

애니의 조그만 어깨가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틀림없어요. 그러면 그 여자는 몇 배로 더 치욕스러워 할 거예요. 허락해 주세요, 비 전하!”

“애니… 하지만 그랬다가 에반젤린의 분노가 너에게까지…….”

그러자 애니는 환하게 웃었다. 굳은 믿음이 걸린 미소.

“전 전혀 걱정되지 않아요. 비 전하께서 절 지켜 주실 거잖아요?”

“…….”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애니의 분노와 용기는 내 마음도 움직였다.

회귀 전과는 달랐다. 그때처럼 애니가 허무하게 희생당할 일은 이제 없었다.

어떻게든 반드시 지켜 낼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몇 마디를 더하자 애니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래도 될까요?”

“그래. 그리고 걱정 마. 이대로는 안 쓸 거야. 훨씬 더 예쁘게 만들어 줄게.”

오늘 저녁에 비밀리에 이세핀이 들어올 예정이었다.

내가 수배해 준 최고의 재봉사들과 함께.

때를 맞춘 것처럼 시종이 검은 용병단에서 보내온 정보가 담긴 쪽지를 건넸다.

내용은 간단했다.

「보리와 순무의 수송이 끝났습니다.」

아주 좋은 소식이다. 이걸로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이제 연회 날도 얼마 안 남았네. 사흘 뒤라…….’

그때면 내가 그동안 준비한 많은 것이 드러날 거다.

그리고 다들 알게 되겠지.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 말이야.’

여러모로 연회 당일이 너무나도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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