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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56화 (56/210)

56화

근래에 에반젤린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계집애 말고 대체 무슨 이유가 또 있겠어!’

뻔뻔하게 황태자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멍청한 힐리아를 떠올릴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다.

물론 힐리아가 황태자비로 인정받을 일은 없다.

‘연회가 제대로 될 리 없으니!’

얼마 전에 그 계집이 자신을 망신 주려던 것도 잘 피해 나갔다.

사교계의 여론은 초반에 조금 흔들리다가 곧 평온을 되찾았다.

전부 그녀가 그동안 공들여 온 덕분이었다.

하지만 전에 없던 불안이 치밀어 올랐다.

아름답게 단장한 채, 당당하게 아르파드의 옆에 붙어 있던 힐리아가 떠오를 때마다…….

에반젤린은 불안감의 원인을 다른 쪽에서 찾았다.

‘필레른 자작 부인이고, 황후고, 나 말고는 일을 제대로 하는 인간이 없어서 문제야!’

그렇다. 제대로 하는 것이 자신밖에 없어서 이렇게 힘들고 불안한 게 틀림없었다.

‘절대 그따위 계집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을 느껴서는 아니야! 절대로!’

그럴 리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녀는 힐리아 같은 멍청이를 제치고 ‘진짜 주인공’이 될 사람이니까.

그렇게 스스로 용기를 북돋으며 루스 후작저로 들어선 에반젤린은 불쾌한 이와 마주쳤다.

“에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바로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 루드비히였다.

‘술 냄새!’

가까이 다가오자 역한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게다가 그동안 술판에만 빠진 게 아니라, 제대로 씻고 꾸밀 정신마저 없는 듯했다.

구겨진 셔츠와 떡 지고 헝클어진 머리.

그야말로 폐인 꼴이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하던 꼴인데.’

그때의 루드비히는 당당하고 매력이 넘쳤다.

비록 아르파드에게 매혹되긴 했어도, 에반젤린은 나름대로 루드비히를 손에 넣은 데 만족하고 있었다.

그때의 그는 적어도 남자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는 있었으니까.

‘물론 그때도 왜 아르파드가 아니라 루드비히가 남주인지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하지만 지금 루드비히의 꼬락서니는 끔찍했다.

대공이라는 고귀한 지위에 어울리지 않았다.

하물며 ‘남자 주인공’에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았다.

덕분에 말 한마디라도 좋게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하지만 루드비히는 에반젤린의 차가운 분위기를 읽을 정신도 없는 듯했다.

그는 구겨진 서류를 들어 보이며 외쳤다.

“날 좀 도와줘, 에바!”

“정확히 말해. 뭘 어떻게 도와 달라는 건지.”

에반젤린은 짜증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당신에 대한 평판을 수습해 달라고 해도 불가능해. 당신이 워낙 난리를 쳐서.”

물론 루드비히가 만인이 보는 앞에서 추태를 부린 탓이 크긴 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에반젤린이 자신만 쏙 빠져나가기 위해 루드비히를 제물로 쓴 것이었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이를 숨겼고, 루드비히는 알지 못했다.

루드비히는 절박하게 외쳤다.

“델핀 공작가에서 정식으로 나를 고발했어!”

“그거야 이미 알고 있던 사실…….”

힐리아는 델핀저를 하룻밤 만에 정리하면서, 약삭빠르게 그간의 횡령과 동의 없는 영지의 명의 변경을 고소했다.

게다가 증거와 증인도 확보했다. 델핀저에 있던 대공가의 고용인과 가신들이 우르르 끌려갔던 것이다.

어떻게 손을 쓴 건지 그들이 이미 증언까지 마쳤다 했다.

누가 승소할지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이건 에반젤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진 루드비히의 말은 에반젤린도 미처 예상 못 한 것이었다.

“그 미친 여자가! 내 영지와 저택에 대한 몰수를 신청했어!”

“…뭐라고?”

루드비히의 설명은 간단했다.

힐리아가 루드비히가 델핀 공작가에 입힌 손해에 대한 보상으로, 키엘른 대공저와 그의 영지를 빼앗겠다고 나섰다는 거다.

“내 전 재산을 빼앗겠다는 셈이잖아!”

그 소리를 듣고 술독에 빠져 있다가 겨우 기어 나온 모양이다.

“피해자는 난데! 어째서?”

그것도 에반젤린에게 달려와 매달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

루드비히는 절박하게 외쳤다.

“날 좀 도와줘, 에바. 당신은 날 사랑하잖아. 그 미친 여자와는 다르게 진짜 날 사랑하잖아, 응?”

이제 그는 비굴한 표정으로 에반젤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보는 이의 경멸과 혐오를 더욱 짙어지게 할 뿐인 표정이지만, 루드비히는 이를 몰랐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 에반젤린이었으니까.

에반젤린은 구역질이 치미는 걸 참으며 루드비히를 내려 보았다.

새삼스레 더욱 비교되었다.

아르파드의 아름답고 늠름하던 모습과 지금의 벌레 같은 루드비히가.

‘아무리 사생아 출신이라지만 그래도 사촌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르지?’

새삼 자신이 이 남자와 결혼할 뻔했다는 게 말도 안 되게 느껴졌다.

힐리아가 루드비히와 순조롭게 결혼했다면 자신은 결국…….

그때,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잠깐, 원래 루드비히는 힐리아와 이어질 거였잖아?’

원작에서도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가 남자 주인공이었던 거고.

남자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루드비히를 원했다.

물론 지금 이 추레한 꼴의 루드비히는 절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 바닥에 떨어진 이런 남자에겐 힐리아 같은 게 어울려.’

지금 그 여자가 분에 넘치게 차지하고 있는 아르파드의 옆자리는 당연히 자신에게 훨씬 잘 어울렸다.

어쩌면 이제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루드비히에게도 아직은 쓸모가 남아 있는 걸지도 몰랐다.

‘전 약혼자와의 더러운 스캔들이 번지면, 안 그래도 위태로운 입지가 더 흔들리겠지?’

무엇보다 아르파드가 그걸 알면 어떨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래. 아르파드는 그 여자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속은 거야. 진실을 알게 되면…….’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 여자 따위 버릴 게 틀림없었다.

“걱정하지 마. 루드비히. 내가 도와줄게.”

“정말? 정말이야, 에바?”

“전 재산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 정도가 아니라… 네 것이었던 걸 전부 되찾게 해 줄게.”

에반젤린의 입꼬리가 히죽 끌려 올라갔다.

* * *

하급 귀족들과 부귀한 평민들의 타운 하우스가 모인 델베 거리.

그 구석의 한 낡은 저택은 아르파드의 안가 중 하나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변장한 후 낡은 마차를 타고 그곳에 도착한 힐리아는 용병을 만났다.

“쓰레기장에서 온 소식입니다.”

힐리아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쓰레기장은 검은 용병단과 그녀가 정한 암호 중 하나였다.

‘루드비히의 저택에 남겨 둔 간자들이?’

그렇다. 쓰레기장은 루드비히의 저택, 키엘른 대공저를 말하는 것이었다.

힐리아는 지난번 델핀저를 정리할 때, 함께 있던 루드비히의 수하들을 치안대로 보내거나 쫓아냈다.

쫓겨나서 대공저로 돌아간 무리 중에는 힐리아에게 매수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루드비히의 정보를 힐리아에게 전했고.

그 중간 다리 역할이 바로 검은 용병단이었다.

‘물론 임시이긴 하지만.’

아직 자신만의 사람이 부족한 힐리아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건 효과는 확실했다. 루드비히와 덤으로 에반젤린에 대한 정보까지 들어왔으니까.

이 정보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간단했다.

“아직도 루드비히가 멍청한 희망을 못 버린 모양이네.”

아마도 그걸 부추긴 건 에반젤린이겠지.

대응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까, 집중하자.’

힐리아가 쪽지를 갈무리한 다음, 몇 걸음 더 걸어 들어가자 변복을 하고 기다리던 이가 마중 나왔다.

“이세핀.”

“어서 오세요.”

이세핀 솔레누.

솔레누 후작 영애는 실내에 있으면서도 주변 시선을 신경 썼다.

“걱정 말아요. 뒤를 밟히진 않았으니까요.”

그녀의 장담에도 이세핀은 여전히 긴장을 버리지 못했다.

“아시겠지만… 정말로 어려운 발걸음 해 주신 분이에요.”

“알아요.”

힐리아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당신이 노력해 준 것도 잘 알아요. 호의가 배신당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힐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세핀은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듯 망설였다.

하지만 더는 힐리아의 시간을 빼앗지는 못하고 문을 열었다.

안쪽에는 비슷한 나이대의 시녀 서넛을 뒤에 세운 한 노년의 귀부인이 앉아 있었다.

방에 있는 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꼼꼼히 뜯어본 힐리아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아?’

그때 이세핀이 소개했다.

“제 고모할머님, 아니, 악시온 대공비 전하이십니다.”

힐리아의 부탁을 받아, 이세핀이 서부 전체나 다름없는 거물을 움직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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