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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55화 (55/210)

55화

“…….”

“…….”

그리고 대만찬은 아주 어색하고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체하기 딱 좋은 상황.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선빵도 훌륭하게 방어했고, 황후에 대한 대책은 미리 세워 뒀다.

‘게다가, 먹는 게 남는 거라고! 복수도 밥심이란 말이지!’

요즘 나는 열심히 잘 먹는 중이었다.

아직도 회귀 초반에 고생했던 기억이 선명해서였다.

‘식이 조절은 갖다 버리라지!’

결혼식 준비를 한다며 새 모이보다 적게 먹다가 체력이 바닥을 보였다.

덕분에 말 타고 사흘 내내 달리는 동안 죽는 줄 알았다.

이게 전부 에반젤린과 루드비히의 가스라이팅 덕분이다.

“설마 뚱뚱한 신부가 되어 날 망신 주려는 건 아니겠지?”

“어머. 새언니. 그렇게 많이 드시게요? 드레스가 터지지 않을까요?”

떠오르자, 새삼 전투적으로 먹게 된다.

‘체력은 국력!’

일단 급한 일들 처리하면 운동도 좀 해서 체력을 더 길러야지.

나는 다짐하며 야무지게 먹었다.

‘게다가 맛있어! 과연 본궁의 셰프야. 실력 좋은데?’

덕분에 그릇을 아주 깨끗하게 싹싹 비울 수 있었다.

그러자 내게서 아르파드의 손을 못 뺏고, 황제에게마저 외면당한 충격에서 천천히 벗어난 황후가 시비를 걸어 왔다.

“델핀가의 가풍은 아주 자유로운 모양이야. 아주 복스럽게 먹네.”

음, 황실풍 돌려 까기 말투 번역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렇게 돼지처럼 먹는 거니?’

이런 느낌이군.

나는 웃음과 함께 입 안에 남아 있던 혀 가자미 소테 조각을 삼켰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돌아가신 부친께서도 늘 저와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셨거든요. 그래서 식사는 잘 챙겨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황후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대충 내가 이렇게 대답한 셈이니 당연했다.

‘우리 집안은 당신이랑 달라서 부모님 금슬이 아주 좋았거든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의 건강부터 챙겼어요.’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와 황후의 공방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이 만찬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

황제는 표정 변화 없이 그저 조용히 그릇을 비웠고.

아르파드는…….

터지려는 웃음기를 억누르더니, 나에게 직접 가니시인 송로버섯과 에샬롯, 아스파라거스를 덜어 주었다.

“아내의 말이 옳습니다. 저는 우리 아기 다람쥐가 너무 가볍고 말라서 늘 걱정이거든요. 여기 더 먹도록 해.”

움찔.

나도 모르게 어깨가 떨렸다.

‘다른 데도 아니고 여기서 아기 다람쥐가 나와?’

무려 황제마저도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와 아르파드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당연히 황후는… 눈으로 우리를 씹어 먹을 기세였고.

‘아기 다람쥐라는 말이 아르파드가 야채를 싫어하면서 나한테 양보하는 척하는 것보다 더 열 받아!’

그렇다.

그간 부부 관계인 만큼, 나는 아르파드에 대해 꽤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지독한 편식 인간이라는 것도 있었다.

“야채 다 남기는 거예요?”

“드래곤의 혈통이라 풀떼기가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아서.”

당연히 개, 아니 헛소리였다.

일단 같은 드래곤 혈통인 황제부터가 야채를 잘 먹고 있지 않은가.

아마 황제에게 물어보면 선황후도 잘 먹었다고 대답할 게 뻔했다.

하지만 황후가 보는 앞에서 ‘먹기 싫은 거 떠넘긴 거잖아, 이 편식쟁이야!’ 라고 말할 순 없었다.

황제 앞에서 그러기도 좀 모양 빠지고.

그렇다고 안 먹고 넘기는 건… 불가능했는데 아르파드가 포크로 커다란 쥬키니 호박을 직접 내 입 앞에 가져다 댄 것이다.

결국 나는 ‘아~’ 하고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맛있어서 더 짜증 나!’

왜 황실 셰프는 이렇게 다 맛있게 만들어서는……!

“역시 황궁 요리장다워요. 정말 맛있어요.”

“이런, 내가 질투하고 싶어지는걸.”

뭘?

나는 짜게 식은 표정을 할 뻔했다가 간신히 참았다.

자기가 먹기 싫은 야채를 내 입에 버린 건 짜증 나지만, 어쨌건 닭살 짓 커플 연기는 의미가 있긴 했다.

“내가 먹여 줘서 더 맛있다고 해 주지 않을 건가, 나의 아기 다람쥐?”

다행히 이번에는 ‘아기 다람쥐’ 소리를 듣고도 어깨를 떨지 않았다. 슬슬 익숙해지려는 것 같아 좀 무섭지만.

질 수 없다!

“그야 너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나는 뺨을 붉힌 채, 황제와 황후를 보고 말했다.

“두 분께서 보고 계시는데 부끄러워요.”

사실 아르파드에게 내 손발이 오그라들어 사라질 것 같은 ‘아기 다람쥐’ 소리를 들었을 때 결심한 게 있다.

‘그대로 갚아 줄 거야!’

반드시 저 인간도 질색하는 애칭을 지어서 남들 앞에서 불러주겠다고 말이다.

그 절묘한 기회가 지금 왔다.

나는 아르파드가 특히 싫어하는 게 분명한 초록 초록한 껍질 콩을 포크로 들어 그의 입가에 댔다.

“자, 리파. 당신도 ‘아’ 하세요.”

‘리파’는 내가 만들어 낸 회심의 애칭이다.

아르파드의 애칭.

절대로 아르파드에게는 붙일 리 없는 귀여운 애칭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황후는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고, 황제마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 리파……?”

내가 약탈혼 의뢰를 하러 카타콤으로 찾아간 이후, 처음으로 아르파드의 붉은 눈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걸 봤다.

나는 작게 속삭였다.

“여기서 안 먹으면, 우리 금슬이 나쁘다고 소문날 거예요.”

거기에 한 마디 도발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게다가 황태자씩이나 되어서 설마, 야채가 맛없어서 안 먹는 건 아니죠?”

“…….”

아르파드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그는 굳게 결심한 듯 입을 꾹 닫더니, 곧 고개를 숙여 내가 내민 껍질 콩을 받아 삼켰다.

콱, 일부러 포크를 세게 문 것 같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꼭꼭 씹어 먹어야 해요, 리파? 혹시라도 체하면 안 되니까요.”

미간이 미세하게 경련하는 아르파드가 웃었다. 천천히 씹는 기세가 콩을 아예 갈아 버릴 것 같다.

“…걱정 마. 나의 작은 다람쥐. 그대가 걱정할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황후가 한 소리 하고 말았다.

“둘 사이가 좋은 것이야 다행이지만. 너무… 과한 것 같구나? 마치 보여 주려고 애쓰는 것처럼?”

그러자 아르파드는 더욱 염병 첨병을 시전했다.

“부부가 사이좋은 건 좋은 일이니, 굳이 감출 것도 없죠. 부황께서 그러셨던 것처럼요.”

아르파드는 닭살 짓 와중에도 황후에게 공격 넣는 걸 잊지 않았다.

황제와 당신과는 다르게, 라는 말이 생략된 걸 이 자리에 못 알아들은 사람은 없다.

‘우와, 뼛속까지 아프겠다.’

아르파드는 거의 원수처럼 이를 갈다가 껍질 콩을 어쩔 수 없이 삼켰고.

그사이 나는 아르파드가 떠넘긴 가니시까지 다 먹었다. 맛은 있으니까.

어쨌건 나와 아르파드는 그릇을 깨끗이 비웠고, 황제도 대충 다 먹었다.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못한 건 황후뿐이었다.

아마도 나와 아르파드의 열렬한 염병 첨병이 입맛 뚝 떨어지게 한 모양이다.

‘덕분에 딸이 나한테 한 짓을 어머니에게 돌려줬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황후 폐하. 거의 안 드셨네요. 혹여 입맛에 안 맞으셨나요? 건강이 상하시지 않을까 걱정돼요.”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황실 요리장은 황후 폐하를 오래 모셨을 텐데… 제가 한마디 해 둘까요?”

“…!”

황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내가 한 말은 이런 의미였으니까.

‘님, 황궁 살림 관리가 힘에 부친 거 같은데, 좀 도와드릴까?’

황후는 미간에 경련이 일 정도로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원래 소식하는 습관이 있을 뿐이란다. 불쌍한 요리장을 괴롭히지 마렴.”

“다행이에요. 황후 폐하.”

당연히 황후가 오케이 할 리 없으니 나는 적당히 물러났다.

마침 다 먹은 그릇이 치워지고 디저트가 나와서는 아니다.

“아몬드 크림과 체리를 넣은 블랑망제입니다.”

핑크색 푸딩의 위에는 진분홍색의 시럽과 꿀, 금가루, 벚꽃잎이 장식되어 아주 귀여웠다.

내가 기대감 가득한 상태로 디저트에 은수저를 꽂으려는데, 아르파드가 그걸 빼앗았다.

그리고 직접 떠서 내 입에 넣어 주기 시작했다.

“그대를 닮은 색깔이 귀여운 디저트를 꼭 내가 직접 먹여 주고 싶군.”

“어머, 리파. 당신은 역시 너무 다정하다니까요.”

나는 다시 아르파드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강력한 마법의 애칭, 리파를 불렀고.

아르파드의 너무나도 평온한 반응에 놀랐다.

입 안으로 쏙, 하고 말캉말캉하고 달콤한 디저트가 들어왔다.

혀를 살짝 찌르더니,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달콤함이 황홀했다.

‘아. 맛있…….’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놀랐다.

아르파드는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타격을 받은 낌새가 아니었다.

오히려.

‘재밌어하고 있어?’

리파라고 불렀는데도?

그리고 그는 내 입 안에 들어갔던 스푼으로 디저트를 떠서 한 입 먹으면서 속삭였다.

“내 벚꽃색 카나리아가 불러 주는 나의 애칭은 마치 노래처럼 감미롭고, 이 디저트보다 달콤하군.”

“…….”

나는 깨끗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졌다.’

그 어떤 애칭으로도 그가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러워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다음 순간 깨달았다.

‘잠깐, 그럼 아까 얼굴 구긴 건 진짜 야채 때문이었어?’

어이가 없어서 노려보는 사이, 그는 다시 디저트 스푼을 내 입에 집어넣었다.

냠냠.

디저트는 죄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덕분에 디저트 타임에 아르파드와 내가 스푼을 하나만 썼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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