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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53화 (53/210)

53화

황실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모든 직계 황족이 참여하는 대만찬이 열렸다.

현재 직계 황족은 황제와 황태자뿐. 그 외에는 그들의 배우자뿐이다.

‘그러니까 황제와 황후, 나와 아르파드 4자 대면이라는 체하기 딱 좋은 상황이 이루어진 거로군.’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아르파드는 나에게 물었다.

“참석할 건가?”

“당연하죠. 내가 빠지면 지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아르파드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어머니의 유품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지금 황후가 황후궁에 들어갈 때, 외조모께서 펄펄 뛰면서 어머니의 개인적인 물건들을 전부 황후궁에서 끄집어내셨지.”

이건 나도 들은 적 있었다.

“말만 들어도 엄청나게 살벌했겠어요.”

“실제로 그때 쫓겨나거나 매장당한 사교계 인원이 꽤 됐지.”

“그리고 대공비께서 칩거하시면서 사교계가 동서로 쪼개진 것도 그때겠죠.”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가 선황후의 유품을 화려하게 걸치고 대만찬에 나가는 건 아주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었다.

‘황후의 속을 뒤집어 놓는 건 기본이고…….’

사실 얼마 전에 아르파드가 과하게 긁어놔서 굳이 그럴 필요 없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적에 대한 도발과 과시는 클수록 좋았다.

‘게다가 일종의 사인도 될 거고 말이야.’

바로 딸의 유품들을 악착같이 지키려 한 악시온 대공비 마르티네에게 말이다.

얼마 전, 나는 솔레누 영애를 통해 대공비에게 ‘내 의사’를 표명한 상태였다.

‘이건 그걸 뒷받침할 아주 좋은 퍼포먼스가 될 수 있겠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이건 좀… 과한 것 아닌가?’

누가 보면 내가 대관식에라도 참석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려했다.

그것에 놀랐는지 만찬장 앞에서 대기 중이던 시종이 날 보고 흠칫 굳을 정도였다.

“…….”

호명은 필요 없었지만, 적어도 인사와 함께 예를 표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못 볼 걸 보기라도 한 것처럼 굳어 있는 건 좀 과하지 않나?

내가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는 찰나였다.

아르파드가 먼저 나섰다.

“안구가 거기 박혀 있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군. 뽑아 내줘야 머릿속까지 바람이 통해서 정신을 차릴 건가?”

“히익!”

…좀 적당히 해 주면 안 될까?

* * *

아르파드는 인정했다.

요즘 그는 한 가지 일이 꽤 기분 좋고 즐겁게 느껴졌다.

바로 최근에 약탈해 온 아내를 꾸미는 일 말이다.

‘그럴 만한 미모긴 해.’

어쨌건 심미안은 드래곤의 혈통이든 거지든 똑같은 법이다.

아름다운 이를 더욱 예쁘게 꾸미는 건 순수하게 즐거운 일이었다.

어머니의 유품으로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명분을 걸고, 그는 내키는 대로 힐리아를 꾸몄다.

성장(盛裝)한 힐리아의 손을 당당하게 잡고 에스코트할 수 있다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호위하기 위해 뒤따르는 기사 놈이나, 대공저에서 네발로 기고 있을 루드비히 놈은 절대 못 하지.’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뿌듯했다.

그렇게 아르파드는 과시하듯 그녀의 손을 잡고 대만찬에 참여하기 위해 황태자궁에서 본궁까지 왔다.

이 과정 자체가 최근 아르파드에게 생긴 취미의 일환이었다.

‘내 심미안으로 꾸몄으니 자랑해야지.’

스스로 절대 인정하지 않을 터였으나, 아르파드는 충분히 팔불출 짓 중이었다.

그런데 만찬장 입구에서 그의 심기를 긁는 일이 벌어졌다.

아르파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들어선 힐리아를 보더니, 만찬장 앞에서 대기 중이던 시종들이 넋을 놓아 버린 거다.

다들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표정으로 해야 할 일도 잊고 멍하니 서 있었다.

오는 도중에 비슷하게 시선을 빼앗기는 이들은 많이 봤다.

하지만 정면에서 맞닥뜨린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광증의 전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진짜 파내 버릴까?’

멍하고 황홀한 눈이 힐리아를 향하고 있는 걸 보기가 아니꼬웠다.

생각을 그대로 실행할 정도로 미치진 않았으므로, 그는 적당히 경고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안구가 거기 박혀 있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군. 뽑아 내줘야 머릿속까지 바람이 통해서 정신을 차릴 건가?”

그러자 사방에서 공포심 어린 침음이 울렸고, 힐리아가 경악했다.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진짜 광증이 도진 거냐고 생각하고 있겠군.’

아르파드의 예상은 정확했다.

시종들은 덜덜 떨면서 최선을 다해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저희가 실수를……!”

“부디 용서를……!”

아르파드가 그들을 빤히 보고 있자, 힐리아는 가냘픈 팔로 그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작게 속삭였다.

“허튼짓 그만하고 어서 들어가자고요!”

“허튼짓 아닌데…….”

어쨌든 힐리아가 미약한 힘으로 필사적으로 이끄는 게 꽤 기분 좋았다.

작고 가녀린 날갯짓 같은 속삭임도.

그래서 아르파드는 순순히 끌려가 주었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자마자, 시종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닐 거다.

만찬장 안에 들어섰을 때, 힐리아는 물론이고 아르파드조차 조금 놀랐다.

안에 이미 앉아 있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짙은 보라색의 화려하고 무거운 드레스를 입은, 검은 머리의 중년 여인이 거기 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늦었구나. 아르파드.”

‘황후가 먼저 와 있어?’

이런 만찬은 보통 신분 낮은 사람이 먼저 와서 기다리기 마련이다.

당연히 황태자 부부가 먼저 와서 황제와 황후를 기다리는 게 예법.

그런데 황후가 먼저 와 있는 것도 놀라운데, 던지는 말도 뼈가 느껴졌다.

‘자기가 먼저 와 놓고, 우리가 늦었다고 우길 셈이야?’

말도 안 되는 트집이다.

황후는 천천히 다가오더니 아르파드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나와 아르파드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는 황후가 뭘 요구한 건지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를 에스코트하라고 하잖아?’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아들이 어머니를 에스코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며느리가 있는 자리에서는 아니거든!’

그것도 일부러 먼저 입장해 놓고는 에스코트를 강요하고 있었다.

지독한 불쾌감이 치밀었다.

이 행위 하나로 나를 깨끗하게 무시한 셈이다.

‘나를 황태자비로 인정 안 하는 걸 넘어서, 아예 없는 존재 취급하려는 거야!’

이건 내가 아직 정식으로 황태자비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조롱하면서, 모욕 주는 걸 겸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황후는 손을 까딱하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손이 아프구나?”

이건 며칠 전, 내 부탁으로 아르파드가 황후의 파티에서 주의를 끈 것에 대한 보복이기도 했다.

황제가 없는 자리에서 황태자가 황후의 에스코트를 하는 건 상식이다.

이걸 거부하는 건 예법상 있을 수 없는 일.

아무리 가족 만찬이라 해도 황족의 대만찬이면 이건 공무다.

당연히 여기서 있었던 일은 전부 소문나게 되어 있다.

황후는 지금 아르파드에게 강요하고 있는 거다.

‘나를 놔두고 자신을 에스코트하라고.’

그게 실현되면 당연히 사방으로 소문이 뻗어 갈 거다.

몇 배의 살을 덧붙여서 말이다.

‘대충… 공식 석상에서 아르파드가 날 내팽개쳤다는 식으로 왜곡해서 소문내겠지.’

황후와 에반젤린의 측근들은 신나서 그걸 퍼 나를 거고 말이다.

‘내가 웃음거리가 될 거야.’

그렇다고 아르파드가 황후를 무시하는 것도 부담이 컸다.

‘황실 예법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가 될 텐데.’

황후가 강요하는 양자택일은 어느 쪽이든 짜증 났다.

‘황실에선 그냥 밥 한 끼 먹는 것도 난리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아르파드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내 길은 내가 개척한다!’

황후가 내민 손은 아르파드를 공격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입지가 불안정한 나를 노리는 것이다.

선빵을 맞았다면, 되돌려 주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환하게 웃으며 아르파드의 손을 놓았다.

“!”

그러자 아르파드의 붉은 눈이 커다래지는 게 보였다.

나는 그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 다음, 해사하게 웃으면서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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