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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50화 (50/210)

50화

“어, 어떻게… 아니, 말도 안 돼요!”

솔레누 영애는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하긴, 지금 그녀는 평생 가장 큰 좌절을 경험한 직후일 것이다.

쉽게 내 말을 믿기도 힘들 것이고, 그리고 본가가 걱정도 되겠지.

이 사실을 알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나는 그녀를 한 번 더 흔들어 놓았다.

“리타 모건 말고 다른 이름을 쓰면 돼요.”

“…네?”

“그 이름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면야 다르겠지만, 아니라면 새로운 이름을 만들면 그만이죠.”

“하지만 이미 가게와 도구, 재료들은 전부……!”

아마 솔레누 가문에서 가만히 안 놔뒀겠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제가 바로 마련해 드릴 수 있어요. 황도 번화가에 번듯하게요.”

다행히 델핀 공작가에는 그만한 여력이 있었다.

‘의상점 하나 내주는 건 일도 아니지.’

그리고 내 큰 그림에 의하면, 이건 성공 확률 100%의 투자다.

회귀 전에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천재로 이름을 남겼는데, 확실하게 도와주면 당연히 그 이상의 결과물을 내는 건 이미 따 놓은 당상이다.

그럼에도 솔레누 영애는 혼란스러운 듯했다.

“아니, 하지만… 왜 굳이 나에게 그렇게까지 해 주는 거죠?”

여기에는 한마디밖에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작게는 가장 중요한 날에 최고의 드레스를 입고 싶은 거고, 크게는 당신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려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솔레누 영애, 아니, 이세핀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결정타 겸 영감을 주기로 했다.

애니에게 시켜서 아까 얼룩진 드레스를 챙겨 오게 한 것이다.

“자세한 건 댁으로 돌아가서 고민해 보세요. 그리고, 여기 아까 젖은 옷을…….”

연노랑색 드레스에는 청보라색 얼룩이 곳곳에 져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들으란 듯 감탄했다.

“아까 루스 후작 영애가 한 짓은 정말 모욕적이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어요.”

손끝으로 청보라색으로 물든 옷감을 매만졌다. 자연스럽게 이세핀의 시선이 따라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물든 색이 참 예쁘네요. 이 얼룩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면서요?”

“아, 네. 거의 염색한 것처럼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샤링가 차를 마실 때 연한 색 옷은 입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에반젤린은 이세핀이 연한 색 옷을 입은 걸 보고, 일부러 샤링가 꽃차를 뿌린 거다.

얼룩이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그렇게 더럽혀진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며 모욕감을 곱씹도록.

이를 떠올리고 굳은 이세핀에게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차를 뿌린 당사자의 악의와 상관없이 이 색은 아주 고와요. 그렇지 않나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우아하고, 투명한, 청보랏빛이었으니까.

“비단을 보라색으로 염색하려면 엄청난 숫자의 별깍지 벌레를 죽여 그 즙으로 염색을 해야 한다고 하죠.”

유명한 이야기였다. 보라색은 만들기 어려운 색이었으므로 가격 역시 비쌌다.

“물론 샤링가 꽃잎차는 비싸지만, 꽃잎으로 물들인 드레스라니… 낭만적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리타 모건은 악의로 당한 일마저 최고의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천재의 눈 속에서 영감과 아이디어가 마치 불꽃처럼 튀는 걸 볼 수 있었다.

오늘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그녀가 내 손을 잡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건 분명했다.

샤링가 꽃잎 염색에 대한 아이디어 역시 지금 내가 온전히 떠올린 건 아니다.

‘회귀 전에 리타 모건이 가장 크게 유행시킨 게 바로 샤링가 꽃잎 드레스였으니까.’

그리고 그 염색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에반젤린에게 모욕당했을 때의 일이라고 들었다.

그걸 나는 당사자에게 그대로 들려준 것뿐이다.

아마 그냥 놔뒀어도 한 5년쯤 뒤에 리타 모건은 샤링가 꽃잎 드레스를 들고 나타났을 거다.

하지만 2년간 불꽃처럼 타오르고 사라졌겠지.

이번엔 훨씬 일찍, 그것도 더욱 크게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에서 나는 압도적인 드레스가 필요하니까.’

그러니 천재 리타 모건을 몇 년 일찍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솔레누 영애에게 접근했으니, 곧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오겠지.’

솔레누 영애에게 나는 디자이너로서의 당신만 원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솔레누 후작가, 그리고 그 뒤에 선 악시온 대공비.

당연히 그쪽 역시 내가 노리고 있는 대상이었다.

애니가 간식으로 내준 캐슈넛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 사이에서 열매가 부서지며 고소한 맛이 혀를 휘감았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늘 내 계획을 박살 내는 인간이 등장했다.

“내 아기 다람쥐가 여기 숨어 있었네? 볼이 터지도록 오물오물 견과류를 먹으면서 말이야.”

“푸흡!”

나는 먹던 견과류를 그대로 뿜었다.

드디어 아르파드가 돌아온 것이다.

내가 솔레누 영애를 방으로 데려와 씻기고 새 옷을 입힌 다음, 설득까지 해서 돌려보낸 뒤에야 말이다.

설마 그동안 계속 주의를 끌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지금까지 어디서 뭐 하고 있었어요?!”

“그대가 시킨 일을 충실히 했지.”

진짜 지금까지 그 짓을 했다고?

“미, 미쳤어요?!”

그러자 아르파드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잖아.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주의가 가지 않도록 노력했지.”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계속 아기 다람쥐… 얘기했어요?”

아르파드는 말없이 곱게 웃었다.

“…!”

나는 깊이 좌절했다.

하필이면 왜 약탈혼을 이 미친 인간에게 의뢰한 걸까.

아, 미칠 인간이라 내 능력이 효과가 있을 거라 그랬지.

새삼스레 내 인생이 슬퍼졌다.

‘루드비히라는 쓰레기에서 탈출했더니 미친놈이…….’

그래도 쓰레기보다는 미친놈이 낫긴 했다.

Chapter 7. 찻잎, 그리고 보리와 순무

황후궁은 난장판이었다.

와장창―!

귀한 도자기나 유리가 박살 났다.

촤악―!

가윗날이 비단 휘장과 레이스, 테피스트리를 찢어발겼다.

에반젤린은 조금만 화가 나도 사방에 화풀이했지만, 황후는 달랐다.

평소 그녀는 오히려 고요하고 아랫사람들을 과하게 괴롭히지 않는 사람이다.

격정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경우에 있어서만은 예외였다.

머리가 산발이 된 채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던 황후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벽에 서서 두려움을 애써 감추고 있던 에반젤린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

미친 사람처럼 보이던 이자벨은 겨우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그녀는 휘청거리며 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에반젤린의 두 팔을 잡고 외쳤다.

“너는 진짜 황후가 되어야 해. 알지, 에바? 내가 너만은 진짜 황후로 만들어 주겠어!”

에반젤린은 질린 표정을 애써 숨겼다.

‘황제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미쳐 버리다니. 진짜 이해가 안 돼.’

에반젤린을 진짜 황후로 만들어 주겠다는 건 이자벨의 입버릇이었다.

그건 결국 지금의 이자벨은 진짜 황후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황제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이름뿐인 황후. 그 사실이 이자벨을 미치게 했다.

이자벨은 에반젤린에게는 친어머니였지만, 빙의자에게는 아니다.

그녀는 이자벨을 자신의 어머니로 여기지 않았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인물을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캐릭터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니 공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진정하세요, 어머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진정? 무슨 진정? 그놈이! 록셀린의 아들이 날 모욕했는데! 제 어미만이 진짜 황후라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누가 봐도 오늘 아르파드가 벌인 기행은 황후를 모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자벨의 결혼기념일에 황제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다.

그런데 그날, 아르파드가 제 아내를 찾으며 나타나서는 선황후와의 추억이 어린 장소 운운을 한 것이다.

결국 황후궁도, 거기에 딸린 모든 장소도, 그녀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셈이다.

‘진짜 황후는 죽은 록셀린 뿐이라고.’

에반젤린은 낮에 아르파드가 보인 기행을 떠올렸다.

그녀는 황후의 치욕과 모욕감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가 그 순간에도 너무 아름답고 빛났다는 것만을 기억했다.

탐이나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런 남자가 그녀에겐 한 번의 눈빛도 주지 않은 채, 그 여자만을 찾아다녔다.

“나의 사랑하는 아기 다람쥐!”

정작 힐리아는 수치심은 왜 자신의 몫이냐며 괴로워한 애칭이었으나, 에반젤린은 사무치도록 부러웠다.

질투가 났다.

그 모든 게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진짜 여주인공은 나니까. 그딴 캐릭터 따위가 아니라, 유일한 인간인 나여야 한단 말이야!’

에반젤린은 절망감에 허우적거리는 이자벨의 팔을 잡았다.

“어머니.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그래. 에바. 내 딸.”

이자벨은 딸에게 무너지듯 매달렸다.

그때 에반젤린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알고 계시죠?”

“뭘? …아가?”

“어떻게 하면 황족의 광증을 일으킬 수 있는지요.”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선황후 록셀린의 죽음에 이자벨이 연관되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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