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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46화 (46/210)

46화

나는 수줍은 표정으로, 벨테인 경이 아니라 아르파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늘 나를 신경 쓰고 배려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전하.”

벨테인 경은 내가 진짜 약탈혼 당한 거라면, 어떻게든 날 데리고 도망칠 기세였다.

‘그렇다고 가짜 약탈혼이었다고 벨테인 경에게 사실대로 말할 순 없어!’

벨테인 경의 성격을 생각하면, 티 내지 않고 연기할 수 있을 리 없다.

‘저번 결혼식 때도 진짜 약탈혼이라고 생각해서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거고.’

덕분에 아주 리얼한 약탈혼 현장이 되었고 말이다.

벨테인 경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본인을 위해서라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다.

내가 함구하라면 함구하겠지만, 이 사람은 절대 거짓말을 못 하니까.

눈치 빠른 사람은 바로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뿐.

‘약탈혼은 맞지만, 내가 아르파드와 사랑에 빠져 행복한 걸로 간다!’

일단 이게 공식적인(?) 우리 설정이기도 했다.

벨테인 경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나는 아르파드에게 찰싹 달라붙으면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새 신부를 연기했다.

그리고 회심의 결정타를 날렸다.

“아, 전하가 아니지. 여, 보.”

말하는 내 혀가 오그라들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아야 해!

이건 모두를 위한 일이야!

나도 살고 벨테인 경도 살리기 위한 일이라고!

다행히 효과는 굉장했다!

등 뒤에서 시녀들이 꺄악 꺄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꺄, 너무 로맨틱해!”

“진짜 사랑하시나 봐!”

흘긋 바라본 벨테인 경은 진심으로 당황한 듯 보였다.

내가 정말 아르파드와 사랑에 빠졌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모양이다.

그때, 아르파드가 내 예측을 벗어나 돌발 행동을 했다.

바짝 붙어 있던 아르파드가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그러자 누가 봐도 이제 키스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구도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 인간, 일부러 날 곤란하게 만들려고!’

아르파드의 인격 파탄이야 익숙하지만, 이렇게 계속 시비를 거니까 조금 짜증이 났다.

그래서였다. 내가 먼저 다가간 건.

쪽,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겹치고 부러 활짝 웃었다.

‘어때? 당신이 그런다고 내가 물러날 줄 알아?’

말로 표현하면 대략 이런 느낌일 거다.

아르파드는 당연히 전부 알아들은 듯했다. 이 인간 눈치가 얼만데.

그런데, 한 가지 예상 못 한 점이 있었다.

아르파드가 진심으로 웃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

내 착각인가?

아닌데?

내가 잠시 혼란에 빠진 사이, 아르파드가 내 뺨을 감싸 안은 다음 각도를 바꾸어 입술이 다시 맞물리게 키스해 왔다.

내 어설픈 도발이었던 가벼운 입맞춤과는 달리, 아주 깊고… 또 정열적인 키스가 이어졌다.

“…!”

어느 정도로 농밀한 키스였냐면 ‘꺄아 꺄아’ 하던 시녀들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놀라긴 했지만,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질 수(?) 없어!’

나중에 제정신일 때 다시 생각해 봤지만, 내가 뭐에 질 수 없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진지했다.

두 팔로 아르파드의 어깨를 열렬히 끌어안은 채, 격렬하게 맞서 키스를 이어갔다.

절대 아르파드가 키스를 너무 잘해서 홀랑 넘어간 게 아니다.

‘그나저나, 저번에도 느꼈는데 왜 이렇게 잘해? 역시 애인 있는 거 아냐?’

덕분에 꽤 오랫동안 황태자궁 입구 주변은 아주 조용했다.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는데 말이다.

드디어 우리가 떨어지고 나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느껴졌다.

조금 전의 민망한 일들은 못 봤다는 듯 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아르파드의 명연기 대결(?)의 목표였던 벨테인 경은… 넋이 나가 있었다.

‘아, 벨테인 경처럼 순수한 사람에겐 너무 과한 자극이었나?’

저 사람은 기사도가 지나쳐, 전생에 나와 도망칠 때도 손도 함부로 못 잡았었는데.

나와 아르파드가 벌인 짓이 너무 과했던 모양이다.

나는 영혼이 제대로 돌아와 있나 확인할 겸 그를 불렀다.

“벨테인 경?”

괜찮아요? 영혼 돌아왔어요?

그러자 벨테인 경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 미묘한 표정을 했다. 아주 잠시.

그러더니 나에게 물었다.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겁니까?”

“네.”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지만, 입에 침도 잔뜩 발랐으니 상관없을 거다.

그리고 이게 모두가 무사히 잘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벨테인 경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작게 속삭인다.

“다행입니다. 비 전하.”

벨테인 경의 입에서 ‘비 전하’라는 호칭이 나오자, 나도 기분이 잠시 복잡 미묘해질 뻔했다.

하지만 눈치 없이, 오늘따라 왜 저러는지 모르겠는 아르파드가 주책맞게 끼어들었다.

“드디어 내 비(妃)의 기사가 호칭을 바로 했군. 다행이야.”

주변을 모두 속이는 데 성공한 계략가의 승리 표현이라기보단, 골목대장 싸움에서 승리한 꼬맹이처럼 기세등등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아주 큰 은혜를 내린다는 듯 선언했다.

“황태자비의 기사 레누스 벨테인에게 황실 기사단의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성심을 다해 비(妃)를 모시도록.”

“…예, 황태자 전하.”

벨테인 경은 나에게 기사의 맹세를 바치던 중이라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였다.

그리고 아르파드는 나를 끌어안은 채, 꼭 자기가 이겼다는 것처럼 벨테인 경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나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갑자기 회춘한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유치하게 구는 거야? 별꼴이네.’

어쨌건 큰 문제 없이 벨테인 경은 황태자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 * *

율켄은 과연 아주 유능했다.

내가 부탁한 지 사흘도 안 되어, 부탁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가져와 줬다.

그런데 보고서를 들고 온 율켄의 얼굴이 반쪽이었다.

안색도 흙빛이다.

“며칠 사이에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요?”

그러자 율켄은 아주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그만 실수로 말 벌집을 건드려 버렸거든요.”

“네?”

황궁에 말 벌집 같은 게 있을 리 없고, 말 벌집을 건드려서 쏘였다기엔 또 지나치게 멀쩡한 상태다.

그러니까 저건 비유라는 소린데.

나는 우선 시녀들을 시켜 공수한 차와 디저트를 잔뜩 먹이면서 물었다.

율켄은 얼떨떨하면서도 감사하게 차와 간식을 해치운다.

허겁지겁 먹는 게… 설마, 이 인간 부하 밥도 안 주고 일 시켜 먹나?

“아르파드에게 뭐 잘못 보였어요?”

주변에 율켄을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르파드밖에 없으니까.

그러자 율켄은 한숨을 포옥, 쉬었다.

“뭐, 비슷하죠. 하하.”

“어쩌겠어요. 그 사람 은근히, 가 아니라 대놓고 속 좁고 심술궂잖아요.”

그러자 율켄이 화색을 띠더니 대꾸했다. 좀 먹였더니 바로 혈색이 도는 것 같다.

“그렇죠? 역시 제 편을 들어주시는 건 비 전하밖에 없으십니다.”

율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넘쳐흐르시는 능력에 이렇게까지 착하고 친절하시다니, 비 전하는 정말 황태자 전하에게 너무 아깝다니까요.”

왠지 저런 말 하다가 아르파드에게 된통 혼난 게 아닐까,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율켄은 조잘조잘 절대 중간에 말을 끊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께서 하신 일 중에 제일 잘하신 게 있다면, 바로 우리 비 전하를 모셔 온 거라니까요. 안 그랬으면 이틀 전에 벌써 사표 냈어요.”

“혹시 이미 냈는데 아르파드가 안 받아 준 건 아니에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우리 비 전하! 앉아서 사방을 꿰뚫어 보시는군요!”

그거야 황태자궁 사람이면 다들 알고 있으니까.

율켄이 뭐만 마음에 안 들면 아르파드에게 사표 냈다가 반려당하는 게 일상이라고.

애니가 내게 전해 줬다.

잡담이라 읽고, 아르파드에 대한 험담이라고 쓰는 대화를 잠시 나누고.

율켄이 나에게 물었다.

“다른 쪽인 마도구 제작자도 그렇지만, 특히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왜 원하신 겁니까? 악시온 대공비 전하의 조카 손녀긴 하지만, 서부 출신들은 중앙 사교계에는 잘 데뷔하지 않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서류의 가장 위쪽에는 내가 율켄에게 알아봐 달라고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세핀 솔레누.

서부의 대가문, 솔레누 후작가의 영애.

스물다섯이 넘은 나이에 아직 결혼은커녕 약혼도 하지 않은 이른바 혼기를 놓친 영애다.

게다가 서부 사교계에서 활동도 거의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내고 있는 사람.

집안이 대단하긴 하지만 본인이 저러고 있으면 흥미를 느끼는 이는 별로 없다.

‘딱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이세핀 솔레누는 나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패였다.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 준비에는 물론이었고.

그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슬슬 여러 가지 준비를 해 둬야 하니까.’

에반젤린은 단순히 사교계의 꽃 자리에만 고고하게 앉아 있는 게 아니었다.

빙의자로서의 특기를 활용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손에 넣고 휘두르며 세력을 이끌고 있다.

그녀와 맞서 싸우려면 당연히 나 역시 여러 사람이 필요했다.

솔레누 영애는 인맥 면에서, 그리고 자금과 사교계에서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그거다.

‘당첨될 게 확실한 로또. 혹은 오를 게 확실한 코인이나 주식.’

그러니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어느 세상에서든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오늘도 내 티타임에 오른 샤링가 꽃잎차를 바라보다가, 한입에 꿀꺽 다 마셔 버렸다.

아주 달고 새콤하니 딱 내 입맛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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