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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30화 (30/210)

30화

Chapter 5. 내부 단속부터

사교계에서 라이벌이 주최하는 무도회에서 사람을 빼앗아 오는 건 유구한 전통이다.

그게 이번엔 좀 스케일 크게 벌어진 상황.

이제 수도 사교계의 귀부인들은 양자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내궁의 주인인 황후와 이미 사교계의 꽃으로 군림하고 있는 에반젤린의 눈 밖에 나면서까지 내 파티에 참여할 것이냐.’

아니면.

‘아직 정식 황태자비 인정도 못 받은 나는 무시하고, 기득권을 가진 황후와 에반젤린을 따를 것인가.’

아마 다들 좀 고민을 하겠지만.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황후랑 에반젤린 편을 들겠지.’

그동안 내가 사교계에서 입지를 좀 세워 놨다면 또 모르겠는데.

나는 그냥 델핀저에만 처박혀 지냈다.

황제로부터 아르타누스 홀을 받아 낸 것을 빼면 내 능력을 보여 준 적도 없다.

그러니 누가 날 믿고 모험을 하겠는가 말이다.

‘…라고, 저쪽에서 믿게 만들어야지!’

이렇게 믿게 할 방법은 간단했다.

“…해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친한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황후께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요.”

걱정 가득한 한숨을 후, 내쉬며 불안감을 토로하자, 필레른 자작 부인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어쩜! 가여우셔라, 비 전하. 결혼식도 사실상 제대로 못 치르셨는데, 피로연 연회는 꼭 성공하셔야 할 텐데.”

그녀는 짐짓 나를 위하는 척 말했다.

“최대한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참석하도록 독려해 볼게요. 초대장을 주시면 열심히 돌려 보겠어요!”

“어머, 고마워요. 부인! 역시 부인은 내 진정한 친구예요.”

나는 역겨움을 참고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사실 이건 에두른 조롱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결혼식 피로연이다. 그것도 대관식이 열리는 가장 격 높은 아르타누스 홀에서 열리는.

그런 자리에 필레른 자작 부인 정도로 한미한 귀족이 주변에 참여를 구걸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연회의 격이 떨어지겠지. 참여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사방에 떠벌리는 격이기도 하고.’

지금 필레른 자작 부인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 연회의 격을 떨어뜨리고, 참여할 사람이 없다는 걸 홍보하려고.

그리고 이 소식은 그대로 황후와 에반젤린의 귀에 들어가겠지.

‘오히려 좋아.’

나는 하녀에게 시켜서 황태자비의 인장이 찍힌 초대장을 가져오게 했다.

“부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돌려 주세요.”

초대장을 받아들고 반색을 하던 필레른 자작 부인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황태자비의 인장을 사용하도록 황제 폐하께서 허락하셨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하지만 황태자 전하께서 사용해도 된다고 저에게 주셨어요.”

뺨을 살짝 붉혀서 남편의 애정에 기뻐하는 새색시 흉내를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필레른 자작 부인이 내가 던져 주는 떡밥을 아주 잘 무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 나는 아주 결정적인 미끼를 뿌렸다.

“그리고, 내가 묘안을 떠올린 것 있죠? 부인이 듣고 어떨지 얘기해 주지 않을래요?”

필레른 부인이 눈을 빛냈다.

“어떤 묘안이신데요?”

* * *

비밀리에 옷까지 갈아입고 에반젤린을 찾아간 필레른 자작 부인은 하루 만에 수확해 온 정보들을 주르르 일러바쳤다.

황태자비의 인장이 찍힌 초대장을 들고 에반젤린은 코웃음을 쳤다.

“잘도 황태자비의 인장을 멋대로 썼군. 이것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말이야.”

“그것도 모르는 것 같더군요. 뭐, 황태자께서 허락하셨다고 하긴 하던데…….”

그러자 에반젤린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그러면 뭐 해! 황족의 인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하시는 건 황제 폐하뿐인데!”

“맞아요! 그렇죠! 그 바보 같은 여자는 그것도 모르나 봐요!”

괜히 버럭 화를 내는 에반젤린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필레른 부인은 자신이 가져온 가장 큰 정보를 속살거렸다.

“한 달 뒤쯤에 연회에 참석할 사람들이 없을까 봐 엄청나게 겁을 내다가, 무리수까지 두려는 모양이에요.”

“무리수? 어떤 무리수?”

에반젤린의 초록색 눈이 빛났다.

“글쎄. 황제 폐하께서 그날 연회에 참석하실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퍼트릴 계획이라던걸요!”

“뭐?”

에반젤린의 눈이 커졌다.

이건 확실히 큰 정보였다.

“진짜야? 그 멍청이가 거짓 소문을 퍼뜨리겠다고 했다고?”

“예,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가 망하면 사실상 황태자비로 인정받기 힘든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억지로라도 사람을 모으려는 모양이에요.”

“그렇긴 하지.”

게다가 황후와 에반젤린이 이미 그날 연회에 참석하면 사교계 추방령을 내릴 것이라, 이미 천명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배짱 좋게 그날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에 참석할 귀부인은 없다.

그리고 귀부인들이 빠진 연회에 남자들만 득실거릴 리 없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사교 활동은 귀부인들을 위주로 벌어지는 것이니까.

그래서 살롱 역시 여주인이 개최하는 것이고 말이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거짓으로 황제 폐하를 팔아서 사람을 모으려 하다니.”

“그 여자 말이, 황제께서 특별히 아르타누스 홀을 허락해 주셨으니 연회에 참석하실 거라 소문을 내도, 다들 믿을 거라고 하더군요.”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그 정도로 황제가 아르타누스 홀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니까.

“나름대로 머리를 쓰긴 한 거네.”

그래 봤자 자신의 손바닥 안이지만 말이다.

에반젤린의 입가에 심술궂은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황태자비의 인장이 찍힌 초대장을 갈가리 찢으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곧 이 꼴이 될 테지만.”

그래도 신중을 기하기 위해 에반젤린은 모친을 통해 확인했다.

정말로 그날 황제가 아르타누스 홀에 발걸음을 할지 아닐지.

그리고 황후는 황제에게 직접 참석할 생각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했다.

“그날 연회를 성공시키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두고 그 계집을 황태자비로 인정할지 결정하실 모양이더구나.”

그렇다면,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곧 정반대 내용의 소문이 사교계에 함께 돌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께서 며칠 뒤 아르타누스 홀의 연회에 참석하셔서 아들 부부를 인정해 주실 예정이라던데요?”

“저는 아니라고 들었어요. 델핀 공녀가 참석자를 모으려고 거짓 소문을 낸 거라고요.”

“설마 황제 폐하의 일로 거짓 소문을 낼까요?”

“누구에게도 인정을 못 받을 것 같으니까 안달이 난 거죠.”

“하긴. 그 이름 높은 아르타누스 홀이 텅텅 비면 얼마나 큰 망신이겠어요?”

황제가 약탈혼으로 갑자기 굴러들어 온 며느리를 위해 직접 발걸음 할 것이라는 말보다는, 힐리아의 거짓말이라는 게 더 그럴듯했다.

황제가 얼마나 냉혹한 사람인지 모르는 귀부인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쪽이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개중에는 이 사실을 두고 내기까지 벌어졌다.

“정말 그날 아르타누스 홀에 황제 폐하께서 참석하실까? 난 안 하신다에 새로 산 명마를 걸지!”

“나도 안 오신다에 이번에 새로 맞춘 예복을 걸겠어!”

“잠깐, 그러면 내기가 안 되잖아. 아무도 황제께서 오신다에 걸지를 않으니!”

사방에서 이 화제를 두고 조롱 섞인 대화가 오고 갔다.

그 와중에 안 그래도 이미 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분위기인 힐리아에게 치명적인 소식이 도착했다.

“퀴니벨 후작 부인이 그날 갑자기 무도회를 열겠다고 선언했다고요?”

힐리아는 그 소식을 필레른 자작 부인을 통해서 들었다.

“예, 전하! 퀴니벨 후작 부인은 황후 폐하의 가장 친한 벗 중 하나예요. 게다가 이번에는 황후궁의 두 번째로 큰 홀을 연회장으로 허락받는 영광을 누렸다는군요!”

힐리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는 황후가 사실상 퀴니벨 부인을 내세워 힐리아의 연회를 망치겠다 선언한 것이다.

“말도 안 돼요! 그랬다가… 연회가 퀴니벨 후작 부인에게조차 뒤처지는 게 되어 버리면……!”

그러면 누구도 힐리아를 진정한 황태자비로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다.

황제조차도.

* * *

필레른 자작 부인이 정원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모습을 유리창으로 보면서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아, 생각보다 미끼가 더 열심히 움직여 줬네.”

덕분에 판이 더 커졌다.

내게는 당연히 더 좋은 일이다.

“아, 기대된다.”

나는 필요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 중이었고, 필레른 자작 부인은 역할을 아주 잘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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