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공주에게 한눈에 반하여 결혼식 행렬을 습격하여, 약탈혼한 드래곤.’
이건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내가 아르파드와의 결혼에 이용했고.
또 회귀 전에는 에반젤린과 루드비히가 이용한 설화, 드래곤 아르타누스와 공주 이스트리드의 이야기는 사실이고 역사였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르파드의 존재가 그 증거였다.
드래곤의 혈통을 짙게 물려받은 그 후손.
하지만 이스트리드 황실의 시조 이야기 외에도 드래곤이 공주를 납치하고, 이를 구하려는 기사의 이야기는 흔했다.
지구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도.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이런 의문을 잘 가지지 않는다.
‘왜 드래곤은 늘 공주를 약탈할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아내로 삼기 위해.
두 번째, 잡아먹기 위해.
하지만 나는 이 두 가지 이유가 사실은 같은 이유에서 파생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바로 ‘용의 신부’라는 존재 때문에.
용의 신부는 드래곤의 힘과 육체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존재였다.
“마치 원래 하나여야 했던 드래곤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기에 드래곤은 각기 제 신부를 다른 방식으로 취하려 들었다.
반려로 삼아 일생을 함께하기도 했고.
일부는 잡아먹기도 했다.
방법은 극과 극이지만, 드래곤이 신부를 원한다는 건 동일하다.
더없이 간절히.
이성을 놓을 정도로.
나라 하나를 적으로 돌리고 몇 년간을 전쟁을 벌이면서도, 아르타누스는 이스트리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이스트리드 공주가 아르타누스에게 그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인 거지.’
드래곤마저 이성을 잃고 그저 짐승이 되게 만드는 것이 ‘신부’가 가진 힘의 부작용이다.
그렇다면 드래곤의 피를 이기지 못하는 혼혈들에게 ‘신부’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그것도 언제 미쳐서 죽을지 모르는 이에게는?
나는 이미 그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광증으로 완전히 미쳐 버린 아르파드를 본 적 있으니까.
첫 번째 삶에서, 그가 나를 죽이기 전 황제의 검에 목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르파드는 나를 죽였을 것이다.
광증에 지배당해 그저 짐승이 된 본능대로 ‘신부’를 먹어 치우기 위해.
긴장감과 불안감이 끝까지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해졌다.
* * *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첫 번째 삶에서 아르파드를 만나고, 그가 죽는 걸 본 한참 후였다.
바로 이전의 삶, 3회차에서였다.
세 번 경험한 나에게도 죽음의 순간은 매번 끔찍하고 지독한 기억이다.
그런 내게 죽음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끔찍하게 기억되는 순간들이 몇 있었는데.
‘그 남자’와 함께 있었던 순간들이 그랬다.
‘마탑주 가스팔.’
그는 에반젤린을 따르는 이들 중에서도 특이한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처럼 에반젤린의 능력이나 사랑스러움, 특별함에 넘어간 게 아니었다.
‘개인적인 이득만을 이유로 에반젤린과 손잡았었지.’
그자는 한 마디로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인간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인간을 가지고 온갖 미친 실험을 하는 과학자.
그런 인물을 마법사로 바꾸고, 과학 실험에 미친 부분을 마법 실험으로 바꿔 두면 그게 가스팔이다.
그리고 그가 가장 미쳐 있었던 분야는 바로, 드래곤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는 드래곤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창조하고 싶어 했고, 드래곤의 혈통을 이어받은 황족은 그가 간절히 원하는 실험체였다.
‘그래서 가스팔은 에반젤린에게 아르파드의 시체를 받는 대가로 협력했지.’
이 때문에 내가 에반젤린이 아르파드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못 한 거다.
에반젤린은 매번 마탑주의 협력을 얻기 위해 아르파드의 시체를 넘겨줬으니까.
그리고 마탑주가 에반젤린에게 제공받은 건 아르파드의 시체만이 아니었다.
마법 실험에 마음껏 쓸 수 있는 인간들도 포함이었다.
에반젤린이 마탑주에게 제공한 실험체는 대부분 사형수였고.
그중에 나 역시 끼어 있었다.
에반젤린은 불륜과 반역 혐의로 감옥에 갇힌 나를, 비밀리에 잠시 빼돌려 마탑주에게 실험체로 줬다.
가스팔은 낄낄대며 나를 실험체 중에서도 특별하게 다루었다.
“제발, 제발 그만! 너무 아파요!”
“어쩔 수 없어. 에바가 너는 특별히 예뻐해 주라고 신신당부했는걸.”
온갖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실험이 계속되던 나날에 변화가 생긴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고통을 피해 도망치던 내가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오히려 더 위험한 곳에 들어갔던 그때.
나는 그곳에서 아르파드를 만났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르파드‘였던’ 존재를 만났다.
여러 번의 생에서 아르파드를 만난 적은 몇 번 있었다. 황태자 아르파드로서, 혹은 용병왕 제랄드로서.
하지만 죽은 뒤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괴물이 된 시체 상태의 그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아르파드의 얼굴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때는 그 존재가 아르파드의 시체로 만들어졌다는 걸 몰랐다.
몸이 기괴하게 변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온몸이 검은 비늘에 뒤덮여 있었고, 등에는 불완전한 날개 하나가 돋아 있었다. 손톱과 발톱은 갈고리처럼 자라 벽돌을 짓이겼다.
드래곤과 인간을 섞어 놓은 듯한 괴물의 모습은 소름 끼칠 뿐이었다.
이성도 뭣도 없는 사슬에 매인 괴물, 그것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꼼짝없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
“크아악!!”
“꺄아아악!!!”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살아 있었고, 아르파드의 시체로 만들어진 괴물은 나를 부여잡은 채로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성이 남아 있지 않은 동물이나 다름없는 괴물이.
“…?”
“그르륵…….”
그리고 다음 순간.
괴물은 내가 넘어져서 생긴 무릎의 상처를 핥기 시작했다.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내 피를, 먹고 있어?”
괴물은 마치 감로수라도 되는 것처럼 내 피를 핥았다.
그러다가 더는 핥을 피가 없는 것을 깨닫자, 내 목을 물어뜯어 피를 마시려 들었다.
그걸 막은 건 마탑주였다.
“이런! 안 될 말이지! 에바가 이 실험체는 꼭 살려서 돌려 달라고 했었다고!”
마탑주의 마법에 아르파드의 시체로 만들어진 괴물이 날아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마탑주 가스팔은 고개를 갸웃했다.
“흠? 그런데 왜 이 실험체를 죽이지 않은 거지? 가까이 온 것들은 매번 갈가리 찢어 죽였는데.”
그리고 여러 끔찍한 실험의 결과, 가스팔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래. 네 특이한 체질 때문인 거였어! 네 피와 살이 드래곤의 힘을 강하게 하고 불완전함을 보완해.”
“그러니 불안정성이 큰 혼혈들은 너를 먹어 치워서라도 네 능력을 얻길 바랄 수밖에.”
“아아. 내 예상이 맞았어. 이스트리드 공주는 특별한 존재였던 거야. 너처럼! 그러니까 드래곤 같은 거대한 존재가 그녀를 필요했던 거지.”
그는 환호하며 반년간 나를 온갖 실험에 이용했다.
그가 내게 지어 준 별명이 바로 이것이다.
“용의 신부. 너에게 그것보다 어울리는 별명은 없어.”
드래곤에 미친 마탑주에게 나는 최고의 실험체였다.
늘 그는 아쉬워했다.
“아아. 살아 있을 때의 아르파드 황태자와 너를 만나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고 싶은데, 정말 아쉬워.”
그리고 에반젤린이 나를 공개적으로 처형해야 하니 돌려 달라고 말했을 때는 저항하기까지 했다.
“아직 실험을 다 못 끝냈단 말이야! 조금만 더 시간을 줘!”
그러면서도 실험 결과를 독점하고 싶어 했기에, 에반젤린에게 내 체질에 대해 발설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마탑에서 다시 황궁 감옥으로 돌아오기까지 반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아마도 내가 죽은 뒤에는 시체를 받기로 하지 않았을까.
에반젤린은 나를 되찾은 다음 바로 처형해 버렸기에 그 뒤는 알지 못한다.
내 세 번째 생은 정말 여러모로 끔찍한 삶이었다.
그중에서도 마탑에서의 반년은 특히 끔찍했다.
그나마 내가 ‘용의 신부’로서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고, 그걸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를 알게 된 건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아니, 다시 생각해 보면 역시 장점이 아닌 것 같다.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용의 신부’인 내가 살아 있는 아르파드에게 아주 유용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한 가지 사실도 알 수밖에 없었다.
“용은 신부를 만나면 자신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신부를 취하려 해.”
“방법은 여러 가지야. 가장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라면, 역시… 잡아먹는 거겠지.”
가스팔은 내가 듣기 싫어해도 주절주절 계속 중얼거리곤 했다.
자신이 알아낸 용의 생태에 대해.
그리고 용의 신부인 내 능력에 대해.
나를 두고 용의 혈통을 가진 자들이 어찌 행동할지에 대한 가설까지.
그때마다 나는 끔찍해 하면서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대화하는 동안은 정신이 팔려서 실험이 멈추곤 했으니까.
“그럼 용은 모두 나를 보면 잡아먹고 싶어 하는 건가요?”
“다 그렇진 않을 거야. 이스트리드 공주를 봐도 알잖아? 그녀는 죽지 않았어. 후손도 봤지.”
가스팔의 말에, 나는 벽에 나비 표본처럼 매달린 아르파드의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황족.”
“그래. 그렇지. 황족들. 위대한 드래곤의 혈통을 물려받은 고귀한 핏줄들.”
“그럼 그들도 나를 보면 먹으려 들까요?”
“그럴 수도 있고. 하지만 전부 신부를 먹으려 들진 않을 거라니까?”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혹은 몸을 섞으려 들 수도 있겠지.”
* * *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는 제국 300년 역사에서 초대 황제 다음으로 드래곤의 피를 진하게 타고난 남자가 서 있었다.
살아 있는 아르파드가.
붉은 파충류의 눈을 번들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