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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24화 (24/210)

24화

아까 내가 아르파드와 함께 입궁할 때.

에반젤린은 분명히 저런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 감정이 뭔지 이젠 잘 알겠다.

‘질투.’

분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에반젤린은 늘 루드비히와 불륜했었는데?’

이번 생에도 둘이 애인인 건 이미 확인했다.

저 둘이 비밀리에 벌이는 애정 행각과 대화를 이미 보고 들었으니.

그런데 지금 에반젤린의 표정은 남편이 애인을 데려온 걸 노려보는 듯했다.

새삼스레 깨달았다.

‘지난 세 번의 삶에서는 에반젤린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저런 눈으로 본 적 없었어.’

매번 나는 루드비히의 아내였다.

그때 에반젤린은 날 비웃거나 견제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성을 잃고 오직 질투 한 가지 감정에 휩싸인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다.

네 번째 생인 지금에 와서야,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에반젤린이 진짜 좋아한 게… 아르파드인 건가?’

이성으로는 말도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묘한 확신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까 기둥 뒤에 숨어 나를 노려보던 시선과 지금 나를 향한 시선.

그리고 아르파드를 흘끔흘끔 바라보는 간절하고 수줍은 눈빛.

‘같은 사람 맞나 싶게 다른 표정이네. 지킬과 하이드인 줄…….’

너무나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으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곧 나는 인정할 수 있었다.

‘루드비히와 불륜한 것과는 별개로 진짜 마음에 둔 사람은 다를 수 있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다다익선. 남자는 많으면 많은 수록 좋다, 뭐, 그런 걸 수도 있고…….

‘…는 개뿔!’

새삼스레 활화산처럼 분노가 터져 올라 머리가 뜨거워졌다.

‘그럼 루드비히와 천년의 사랑인 척 염병 떤 것도 진짜가 아니라고?’

‘어쩔 수 없잖아요. 진정한 사랑을 숨길 순 없으니까요.’

‘남자는 진짜 사랑하는 여자를 헷갈리게 하지 않아. 그는 날 한 번도 헷갈리게 한 적 없어.’

매번 조금씩 달랐지만, 에반젤린은 늘 나를 그 대단하신 사랑을 가진 우월감에 차서 내려보곤 했다.

그런데 그 대단하신 진정한 사랑이 가짜라고?

그냥 권력과 부귀영화에 대한 욕심과 열망일 뿐이었다고?

‘그럼 난 뭘 위해 희생된 거지?’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분노는 겨울 바다에 내던져진 것처럼 차갑게 식었다.

머릿속이 얼얼하게 느껴질 정도로 서늘했다.

그럼에도 감정은 전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겪어 온 수많은 고생과 세 번의 죽음, 그리고 새파란 복수심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아르파드의 목에 매달렸다.

그리고 아까 입궁 직후에는 그저 노려보기만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가 하는 말이, 대답이, 에반젤린에게 진짜 타격과 상처가 될 거라는 사실이… 날 흥분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아르파드 대신 에반젤린의 질문에 대답했다.

황제가 정말로 나와 아르파드 사이를 인정해 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네, 루스 후작 영애. 다행히도 폐하께서 축복해 주시면서 아르타누스 홀의 사용을 허락해 주셨답니다.”

일부러 이름이 아니라 ‘루스 후작 영애’라는 호칭을 강조해 줬다.

에반젤린에게 꽤 큰 콤플렉스였으니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 신부처럼 웃었다.

바로 눈앞에 아주 좋은 모델이 있었다.

회귀 전, 나를 비웃던 에반젤린과 최대한 비슷하게 웃으려고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역시 황제께서도 우리의 사랑을 인정해 주신 거겠죠. 정말 기뻐요. 이 기쁜 소식을 에바 당신에게 가장 먼저 전해 줄 수 있어서 기뻐요.”

먼저 들은 건 루드비히지만 내가 말한 적은 없으니, 그런 걸로 치자.

지금 내가 한 번도 부른 적 없는 에반젤린의 애칭을 입에 담은 건, 더 열 받으라는 거였다.

그리고.

효과는 굉장했다!

“그…렇다고요?”

에반젤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당장에라도 터져 버릴 듯한 강렬한 분노를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나는 보란 듯 아르파드의 품에 파고들며 속삭였다.

“너무 피곤해요, 여보.”

가까이 서 있었기에 에반젤린의 귀에는 아주 잘 들린 모양이다.

어깨가 잠시지만 아주 크게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잠시 나와 에반젤린을 관찰하듯 보고 있던 아르파드는 다행히 보조를 맞춰 주었다.

“그러지. 나의 힐리아.”

나의?

예상 못 하게 급발진한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조금 전에 ‘여보’ 어쩌고 하면서 안긴 입장에서 놀라기엔 정도가 약한 말이긴 했다.

하지만 내 귀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라는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렸다.

꼭 진짜 연인이나 아내에게나 할 법한 그런 말투… 일 리가 없지!

이 인간도 한 연기하네.

그리고 내가 더 놀라거나 감탄할 틈이 없었다.

에반젤린이 아까 내 ‘여보’라는 말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은 티를 팍팍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안색은 흙빛에, 치마를 잡은 두 손이 미미하게 떨린다.

아르파드는 놀라울 정도로 그런 에반젤린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내뱉는 말도 차라리 시종이나 시녀에게 더 성의가 있겠다 싶다.

“내 아내가 피로하다니 알현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지.”

“아, 알현이요?”

“그래. 후작 영애인 네 입장에서 황태자비에게 인사하는 건 알현이지.”

“그, 그렇, 지요.”

목소리도, 어깨도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나는 조금도! 전혀! 안쓰럽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지!

‘아! 속 시원해!’

조금 전 루드비히는 물리적인 타격을, 에반젤린은 정신적으로 귀싸대기를 맞은 듯한 반응이라 시원했다.

그렇게 황제 알현에서 나는 꽤 괜찮은 성과를 얻은 뒤, 두 불륜 남녀에게 타격을 주고 황태자궁으로 돌아왔다.

참고로 오는 내내 아르파드는 계속 나를 안은 채였다.

‘진짜 체력 쩐다.’

이 일 덕분에 황궁 전체에 괴소문이 도는 걸 알게 된 건 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르파드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발이 땅에 닿게 하지 않으려 한다든가.

나중에 알고 어이가 없어서 폭소를 터뜨리지만, 지금은 먼일이었다.

* * *

황태자궁, 상아의 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덕분에 이 질문부터 나왔다.

“팔 안 아파요?”

그러자 아르파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뜯어보는 것 같은 눈빛을 했다.

“제일 먼저 하는 질문이 그건가?”

“그야… 아까 입궁 때도 그렇고, 그렇게 먼 거리를 계속 안고 왔으니까 팔 안 아픈가 걱정될 수밖에 없잖아요.”

나는 아르파드의 두꺼운 팔뚝을 흘금거리며 대답했다.

아르파드는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질문도, 할 말도 그게 다인 건가?”

“뭐가 더 있어요? …안고 와 줘서 고마워요?”

어째서인지 모르겠는데, 아르파드의 한숨이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크고 길게 들렸다.

내가 거기에 뭐라고 하기 전에 기습적으로 아르파드의 말이 먼저 이어졌다.

“에반젤린에게 꽤 큰 악감정이 있는 듯하던 건 그렇다 치고…….”

“뭐, 그거야…….”

하긴 아까 대놓고 비꼬고 타격 주려고 했으니 티가 안 날 수 없다.

내가 따로 언질 안 줬는데도 서포트해 준 건 좀 고맙긴 했으니.

그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아르파드는 에반젤린의 감정을 알까?’

거기에 한 가지 더 심화된 의문도 떠오른다.

‘아르파드는… 에반젤린에게 어떤 마음인 걸까?’

일단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건 확실했다.

게다가 나와 에반젤린이 말싸움하는데 내 편을 들어준 걸 보면…….

내가 꽤 긍정적으로 분석하느라 방심하고 있는 사이.

아르파드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까 황제의 앞에서, 그대가 아르타누스의 축복을 받았다고 했지?”

“……!”

에반젤린에 대한 증오나 복수심.

그리고 아르파드가 에반젤린을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 한가한 상념은 싹 얼어붙었다.

등줄기를 얼음으로 된 혀가 핥아 올리는 듯 소름이 돋았다.

파충류를 닮은 비인간적인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똬리 속에 갇힌 새를 보는 뱀처럼.

“카타콤에서 나에게 한 말, 내가 미치지 않고 황제가 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은 그 때문에 나온 건가?”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얼어붙게 한 긴장감을 애써 숨겼다.

그리고 태연한 척 대꾸했다.

“당연히 거짓말이죠! 아르타누스 님께서 왜 저 같은 것에게 축복을 주시겠어요?”

이건 사실이다.

황제도 완전히 믿는 느낌은 아니었다. 누가 들어도 허황된 말이었으니까.

“황제 폐하를 설득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거짓말로 둘러댄 거예요.”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내 말이 꽤 그럴듯했나 봐요?”

여전히 아르파드의 시선은 날카롭게 나를 옥죄고 있었다.

“아,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게 전하를 미치지 않게 해 드릴 방법이 있다는 건 진짜니까요. 신성언으로 맹세까지 해서 증명했잖아요?”

아르파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희고 모양 좋은 남자의 손가락이 제 턱을 톡톡 두드린다.

그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더니, 얼굴을 나에게 바짝 들이댔다.

“……!”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얼굴에 열이 확 오를 정도였다.

‘키스하려는 줄 알았네!’

다행히 그의 입술이 내 입술과 부딪치는 불상사는 없었다.

하지만 아르파드는 아주 천천히, 마치 사냥감의 체취를 음미하는 맹수처럼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목덜미, 쇄골 부근, 어깨.

곳곳을 살피듯 숨을 깊이 들이쉰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그대에게서 왜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지? 한입에 꿀꺽 삼켜 버리고 싶을 정도로.”

소름이 쭉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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