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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21화 (21/210)

21화

모두가 예측함에도 누구도 차마 직접 하지 못하는 질문.

아르파드조차 부황에게 이 일을 직접 질문한 적 없을 정도다.

하지만 힐리아는 황제에게 직접 물었다.

정말로 아들을 제쳐 두고 루드비히를 다음 황제로 만들 셈이냐고.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녀에게 되묻는다.

“내가 왜 그럴 거라 생각하지?”

“다들 아는 일인걸요. 애초에 저와 대공의 결혼을 주선하신 분이 폐하이시니까요.”

황제는 아들을 앞에 두고,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르파드의 옆에 선 힐리아는 그런 황제의 앞에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그를 황태자 전하의 대항마로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면, 델핀 공작가를 주실 리 없죠.”

“…혹시 공녀는 델핀 공작가를 그에게 내주는 것이 싫어서 이번 일을 벌인 건가?”

힐리아는 큰 눈을 깜빡거리면서 험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X싫지! 솔직히는 그 결혼 주선한 것 때문에라도 황제 턱에 한번은 죽빵 날리고 싶었다고!’

하지만 입은 웃으며 다른 말을 했다.

“어찌 그런 사적인 감정으로 이렇게 중요한 일을 결정했겠습니까.”

“하면?”

계속 아르파드의 옆에 얌전히 서 있던 힐리아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황제의 옥좌 앞으로.

그리고 더없이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었다.

“폐하께선 조카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지금 짐에게 사람을 보는 눈이 없다고 말한 건가?”

힐리아는 웃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침묵은 곧 긍정의 대답이었다.

‘나는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는 걸.’

그것도 본인에게 말이다.

“여러모로 내 아들이 나보다 나았지. 사람을 보는 눈도 그러하고. 광증만 아니었다면…….”

“풉!”

옆에서 아르파드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소리가 들렸다.

낮추었지만 키득거리는 소리가 깨진 유리 조각처럼 알현실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르파드에게 휩쓸리지 않고, 힐리아는 침착하게 할 말을 다했다.

“저는 폐하를 가까이서 뵌 적이 별로 없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루드비히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씀 올릴 수 있겠군요.”

무례한 말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다리를 모로 꼬며, 손으로 턱을 받친다.

흥미가 더 인다는 표정이다.

“공녀는 루드비히에 대해 잘 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3년간 약혼자로서 가까이 지냈으니까요.”

실제로 델핀 공작저는 반쯤 루드비히와 에반젤린의 신혼집 수준이었다.

‘나만 그걸 몰랐지.’

“그대가 본 루드비히는 황제가 될 재목이 아니라는 소리겠군.”

“예, 그는 속이 좁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능력이 따라 주지 않는 데 비해 야심만 큰 사람입니다.”

옆에서 아르파드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아주 신랄해. 정말이지 외모와 안 어울리는 말투 아닙니까?”

그는 아주 즐거워 보였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적어도 한 가지만은 아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확실히 공녀는 외모와 달리 아주 과격한 혀를 가지고 있군.”

‘누구 덕분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요.’

…라는 대답을, 힐리아는 애써 삼켰다.

솔직히 자신의 고생에 황제 지분도 꽤 있는 것 같다는 게 그녀의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힐리아는 거기에 본인이 아는 일화를 덧붙였다.

“제가 소견이 좁아 아는 것은 적지만, 델핀 공작가의 영지 내정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 델핀 공작령의 내정 역시 루드비히가 맡고 있었다.

“관리관이 일부 자금을 착복하여 보와 저수지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루드비히는 이듬해에 그 관리관을 다시 썼습니다.”

“어째서?”

“신임 관리관 후보자는 다음 해 지세를 올리는 것에 비판적이었거든요. 흉작이었으니까요. 반면 횡령을 저지른 관리관은 약점이 잡혀 있으니 지세를 올리는 데에 동의했고요.”

“…….”

“작은 일이지만, 작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보면 큰일을 어찌 처리할지도 알 수 있지요.”

힐리아는 곧은 눈빛으로 황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그것이 제국 전체의 일을 결정할 황제가 된다면 어찌 될지, 폐하께서도 잘 아시겠지요.”

황제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서 손끝으로 턱의 수염을 쓸었다.

잠시 침묵 끝에 나온 대답은 힐리아를 긍정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대의 지적은 옳다.”

“그러하면…….”

“그렇다 해도 짐의 판단은 바뀌지 않는다.”

“사적인 욕심으로 공적인 일을 결정하는 이가 황제에 어울린단 말씀이십니까?”

황제는 팔걸이를 톡톡 치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미쳐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자보다 낫겠지.”

“……!”

이 냉정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대답에 아르파드는 웃음을 거두었다.

그의 세로로 긴 홍채가 가늘어지며, 살기가 짙어졌다.

“전하!”

힐리아의 질책 섞인 부름에도 아르파드는 멈추지 않았고.

황제 역시 지지 않았다.

용의 혈통을 타고난 부자의 짙은 살기가 알현실 안에서 맞부딪쳤다.

일반인이라면 이 자리에 끼어 있는 것만으로도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힐리아는 그대로 벌떡 일어나더니 아르파드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전하! 그만하세요!”

그걸 보고 황제의 표정에 이채가 어렸다.

‘뭐지? 두 황족의 살기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다니? 그 정도로 단련한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데.’

이건 힐리아가 실제 죽음의 경험을 세 번이나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황제도 황태자도 이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힐리아가 간곡히 말린 끝에 아르파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살기를 거두자, 다시 상황의 주도권은 황제와 힐리아에게로 넘어갔다.

아르파드는 한발 물러서 있었다.

그녀가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하는지 보길 원했기 때문이다.

“역시 폐하께서 그런 생각을 하신 건, 황태자 전하의 광증을 염려하셔서겠군요.”

“그렇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 번도 공론화된 적 없는 내용이 처음으로 황제의 입 밖으로 나와 구체화되었다.

아르파드는 불쾌함에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굳이 그 부당함을 지적하지 않았다.

본인부터가 자신이 미치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힐리아는 웃으며 태평하게 말했다.

“그러면 이제 폐하께서는 황태자 전하를 걱정하실 이유가 없네요. 광증 문제는 해결되었으니까요.”

“…뭐?!”

* * *

황제는 경악하여 저도 모르게 옥좌에서 엉덩이를 뗐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아르파드조차 경악하여 굳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힐리아는 이를 무시한 채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이제 아르파드 전하의 곁에 있으니까요.”

“…….”

잠시 할 말을 찾던 황제는 겨우 물을 수 있었다.

“네가 곁에 있는 걸로 아르파드의 광증이 해결되었다고?”

“예, 폐하.”

순진한 표정과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을 해 댄다.

황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지? 사람이 용의 혈통에 내려오는 광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나조차 들어 보지 못했다만.”

아르파드는 여전히 굳어 버린 소금 기둥처럼 힐리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힐리아는 아르파드의 강렬한 눈빛을 잠시 무시한 채 황제에게만 집중했다.

어차피 지금 설득해야 할 대상은 황제니까.

“이런 말을 폐하께서 믿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식 전날 밤 저는 꿈을 꾸었답니다.”

힐리아는 두 손을 가슴 위로 모아 쥐고, 고개를 다시 들어 올렸다.

조금 전에는 황제를 정면으로 바라본 것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 위쪽을 향한다. 황제의 옥좌보다 높은 곳에는 한 가지밖에 없다.

‘드래곤 아르타누스 조각상.’

황금과 상아로 만들어지고, 눈에는 레드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예술품 같은 조각.

이 제국의 시작이 바로 드래곤임을 온 힘을 다해 주장하는 상징이다.

힐리아는 그것을 경건하게 우러르면서 선언했다.

“바로 아르타누스 님께서 꿈속에 나타나 말씀을 해 주셨으니까요.”

“…!”

“저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니, 제 곁에 있는 한 어떤 용의 후손도 광증으로 고통받지 않으리라고 말이지요.”

* * *

드래곤 아르타누스의 축복.

나는 그것을 받았다고 황제 앞에서 주장한 것이다.

‘우리의 결혼이 인정받을 명분은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황제가 직접 결정한 혼인을 박살 내고 이루어지는 혼인이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당연히 그 이상의 권위가 필요했다.

황제보다 더 강한 권위라는 건 둘 중 하나다.

‘신 혹은 드래곤.’

특히나 이스트리드 제국은 황금의 드래곤 아르타누스의 후손임을 자랑하는 나라.

게다가 아르타누스는 천명한 바 있었다.

─아르타누아 평원의 풍요로움은 나와 이스트리드의 후손이 황위에 앉아 있는 한 이어질 것이다.

대륙 중앙에 위치한 곡창 아르타누아 평원은 전 대륙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풍요로움을 가졌다.

그러니 제국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를 뒤져도, 아르타누스를 뒷배 삼으면 누구도 태클을 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게 정말일까?

꿈속에 아르타누스가 나타나 나에게 축복을 내려줬다는 게?

‘당연히 X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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