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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4화 (14/210)

14화

아르파드의 나이가 벌써 스물셋이다.

사실 결혼하기엔 좀 늦은 편이다.

‘귀족들은 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에 성혼하니까.’

황제는 아들을 후계자로서 믿지 못하기에 결혼을 추진하지 않았다.

도리어 조카에게 델핀 공작가라는 배경을 가진 나를 붙여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혼과 연애는 별개 문제지.’

아르파드 황태자에게 숨겨진 연인이 있다는 소문은 회귀 전 지난 세 번의 삶에서 모두 들었다.

구체적으로 상대가 누구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금단의 상대다. 그녀를 빼앗기고, 혹은 잃고 나서, 황태자가 미쳤다. 등등…….

이게 내가 아는 정보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던 모양이야. 나는 그것조차 아들이 죽은 뒤에야, 지켜 주지 못하고서야 알았지.”

그 말을 한 당사자는 바로 눈앞에 있는 아르파드의 부친, 현 황제 발터 이스트리드였다.

내 두 번째 삶에서였나.

그때 미친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이고 외딴 신전에서 유폐 생활을 자처한 황제와 가까이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황제는 빈껍데기만 남은 사람 같았다.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어 버린 상태였다.

시기적으로 지금으로부터 겨우 2년밖에 안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정보의 제공자가 제공자다보니, 이건 신빙성이 꽤 있었다.

그래서 내 배려로 ‘자유 이혼권’을 추가해 준 건데!

왜 화를 내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아직 없는 거면 나중에 생길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눈을 껌뻑거리고 있자 아르파드는 다시 물었다.

“왜 굳이 이런 조항을 넣은 거지?”

“전하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 아니,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러자 아르파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더니 기절초풍할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게 아니라 그대가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해 두려는 것 아닌가?”

“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아르파드는 언제든 돈을 들고 나를 준비가 된 보험 사기꾼을 보는 깐깐한 고객처럼 굴었다.

거기에 한 술을 더 떴다.

“내게서 원하는 것만 취한 다음 언제든 도망치려는 것 아닌가 말이야. 가녀린 처녀를 버리는 불한당처럼!”

“아까부터 표현이 왜 그런 건데요?!”

아르파드의 눈빛이 빛났다.

“역시 단물만 빨아먹고 언제든 날 버릴 작정이었……!”

나는 참지 못하고 두 손을 뻗어서 아까부터 헛소리만 해 대는 남자의 입을 막았다.

“……!”

“…….”

내가 먼저 몸을 뻗어 그에게 지나치게 밀착했다는 걸 깨달은 건 좀 늦었다.

숨결이 닿자 손아귀 안쪽이 간지러웠다.

생각보다 아르파드의 입술이 뜨거웠고, 촉촉했다.

또 부드러운 것이 아까 맹세의 키스를 할 때가…….

아니, 이게 아니지!

나는 겨우 정신 줄을 잡고 외쳤다. 누가 미남계에 넘어갈 줄 알아?

“…그래도 안 돼요!”

“뭐가 안 된다는 거지?”

내가 여전히 손을 뻗고 있는 데에 대고, 아르파드가 물었다.

덕분에 그의 숨결이 내 손바닥을 강하게 간질였다.

“힉!”

쭈뼛.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결국 손을 떼고 말았다.

왠지 진 것 같아서 부아가 치밀었다.

억울했다. 이 조항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아르파드를 위한 건데 말이다.

‘그때쯤이면 이미 애인을 만났을 테니까.’

그래서였다. 도발하듯 웃으면서 단언한 것은.

“나중에 내게 계약서에 이 조항을 넣어 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나 하지 말라고요.”

그땐 고맙다고 절하면서 이혼해달라고 할걸?

그러자 아르파드는 못마땅하다는 듯 팔짱을 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네?”

“그때 가서 내가 저 조항에 감사하기는커녕, 불만이 있다면?”

나도 아르파드도 본인이 손해 보는 건 절대 못 견디는 성격 같긴 했다.

하지만 미래를 모르는 황태자께서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계신다.

“그럴 리 없어요.”

“왜 그렇게 단언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

자유 이혼권 조항에 불만이 있다는 건, 이혼하기 싫다는 소린데.

아르파드가 그럴 리 없었다. 이건 미래를 아는 사람의 자신감이다.

잠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아르파드가 갑작스레 제안했다.

“그러면 조항을 조금 수정하는 건 어때?”

“어떻게요?”

“나중에 내가 자유 이혼 조항에 불만이 있다면, 조항의 내용은 삭제되는 거지. 하지만 그대 말대로 내가 기뻐하고 감사할 경우에는…….”

뭔가 약간 말이 이상한 건 기분 탓인가?

아르파드는 본인이 나중에 이혼하기 싫다고 말할 거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럴 리 없는데 말이다.

나는 아리송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이 자유 이혼에 감사하고 기뻐할 경우에는?”

“위자료로 이 별궁을 주지.”

“좋아요!”

콜!

나는 희희낙락하며 계약서의 조항을 약간 수정했다.

‘좋아! 재산이 늘어나는 건 언제나 환영이지!’

이 내기는 미래를 아는 내가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꽤 긴 입씨름 끝에 의뢰 계약서 작성을 마치고, 서명까지 끝냈다.

나는 그것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마음에 드나?”

“당연하죠!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그러자 아르파드는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역시 자각이 없는 거군.”

“무슨 날이긴! 계약이 확정된 중요한 날이죠!”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아르파드라는 강력한 조력자를 손에 넣었고.

그것도 결혼이라는 방식으로 끈끈하게 나에게 묶어 놓았다.

‘이전의 생에서는 없던 일이라고!’

이것만으로도 커다란 진일보였다.

“…….”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아르파드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문지르고 있었다.

“좋아. 그 중요한 계약 기념일이니, 한 가지만 묻지.”

“물어보세요.”

계약서까지 받아 챙긴 상황이니 나는 꽤 마음이 푸근해져 있었다.

“어떻게 용병왕에 대해 알았는지, 그리고 내가 미치지 않고 황위에 오르게 해 주겠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고, 정말로 가능한 일인지…….”

그는 내 표정을 보더니 스스로 말을 바꿨다.

“…는 절대 순순히 말해 주지 않을 것 같고.”

“맞아요. 아무리 계약 기념일이라도 지금 말해 줄 순 없어요.”

아직 그와 나 사이에는 신뢰보다 의심과 경계가 컸다.

그런데 회귀 같은 소리를 해 봐라.

나에 대한 아르파드의 의심만 더 키우는 결과가 될 거다.

‘성과와 증거를 보여 주면서 나를 완전히 믿고 난 뒤에… 사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그때쯤이면 아르파드도 연인을 만났을 거고.

나는 이혼한 뒤 자유의 몸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전에 빙의자랑 루드비히만 잘 처리한 뒤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아르파드는 잘생긴 눈꼬리를 몇 번 다시 찡그렸다가 펴더니 마침내 질문을 고른 듯했다.

“그자와 정확한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지?”

“네? 그자? 누구요?”

내가 맹하니 바라보자, 아르파드는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사흘 전, 결혼 행렬에서 유일하게 내 앞에서 검을 뽑았던 자 말이다.”

“아, 벨테인 경!”

“그래. 그자. 그대와 정확히 무슨 관계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기사와 레이디죠.”

아, 어쩌면 이번에는 조금 다를 수도 있으려나.

회귀 첫날 그에게 마음이 담긴 충성 맹세를 받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스스로 정정했다.

“아, 주군과 기사? 뭐, 사실상 나의 유일한 기사이긴 하죠. 당신도 지적했다시피.”

아직도 그때의 상황은 좀 부끄러웠다.

결혼식 행렬에 끼어든 적 앞에서 제대로 칼을 뽑아 신부를 지키려 한 게 한 명뿐이라니.

행렬에 참여한 델핀의 기사는 벨테인 경 한 명이 아니었다.

결국 그 상황 자체가 내 가문에 대한 장악력이 보잘것없다는 증거나 다름없으니.

하지만 아르파드는 만족한 느낌이 아니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나는 아주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

“음. 매우 고마운 사람? 그래서 지켜 주고 싶은 사람?”

“그건 이미 들은 내용인데.”

“그야 그것뿐이니까요?”

나는 뺨을 긁었다. 대체 아르파드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르파드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노골적으로 물었다.

“솔직히 묻지. 그자가 혹시 그대의 연인인가?”

“…네?!”

나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하지만 아르파드의 괴상한 억측은 멈추지 않았다.

“굳이 아까 이혼 조항을 넣으려 한 것도 그렇고. 나를 내세워 루드비히를 막아 낸 다음, 그자와 재혼하려는 게 아닌가 말이다.”

너무 어이가 없다고 하려다가 세 번째 삶에서 벨테인 경이 나를 데리고 도망쳤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그는 결혼식 전날 신부와 도망친 명예를 저버린 기사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슬픈 얼굴 하지 마십시오. 조금이라도… 당신께 도움이 될 수 있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의 끔찍한 결말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덕분에 아르파드가 한 질문에 대답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다.

그러자, 아르파드는 날카롭게 웃었다.

“…됐어. 굳이 대답할 필요 없어. 표정이나 침묵이 충분한 답이 되었으니.”

“…….”

뭔가 오해를 한 것 같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니까.

그리고 먼저 아르파드가 말문을 연 김에 계속 걱정되던 걸 말했다.

“미리 별궁을 준비해 둔 걸 보면 황도 쪽의 상황도 확인하고 있는 거죠?”

“그 정도로 내 능력을 신뢰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대놓고 빈정대는 아르파드는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예, 그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능력으로 벨테인 경과 하녀 애니의 안부에 대해 확인해 주세요.”

“…정부의 안부를 묻는 데에 굳이 하녀의 안부 하나를 끼워 넣는 건 너무 얄팍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벨테인 경을 정부로 오해하는 건 명예로운 기사에 대한 모독이에요. 그리고 이건 변명이 아니라, 두 사람은 델핀 가문 안에서 나를 위해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

“부탁할게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건 우리 계약과는 상관없는 부탁이에요.”

잠시 아르파드는 입가를 매만지며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다.

“…알아보도록 하지.”

“고마워요.”

이번만은 사심 없이 감사의 인사를 그대로 할 수 있었다.

한편 아르파드는 좀 어이가 없었다.

‘정부의 안부를 남편에게 알아봐 달라고 하다니, 너무 뻔뻔한 것 아닌가?’

그는 힐리아의 항변을 전혀 믿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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