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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3화 (13/210)

13화

아주 위험한 말이 수상쩍은 어조로, 그것도 진짜 해로운 인간에 의해 나온 것 같은데?

나는 살짝 말을 더듬으며 뒤로 물러났다.

“왜, 말을 그렇게 해요?”

“그게 사실이니까?”

퇴로는 막혀 있었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지나치게 푹신한 침대가 걸려 턱 막혔다.

내가 그대로 뒤로 발라당 넘어져 버리자.

“꺅!”

어이가 없는지 아르파드가 웃는 소리가 수정알 깨지는 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 진짜 재수 없는 남자다. 왜 사람 비웃는 웃음까지 저렇게 멋지고 분위기 있고 난리야.’

그리고 내가 잠시 방심한 대가는 컸다.

성큼성큼 침대로 다가온 아르파드가 내 위로 엎어졌던 것이다!

“끼약!”

아, 엎어졌다는 건 정정.

아르파드의 얼굴이 너무 갑자기 가까이 와서 오해했다.

침대에 누운 내 위로 겹쳐진 게 아니라, 그냥 침대 맡에 서서 나를 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아주 흥미진진한 물건을 관찰하는 것처럼.

붉고 섬세한 홍채가 조여들어 파충류를 닮은 이질적인 동공을 가늘게 만든다.

그가 아주… 흥미롭고, 재밌어하고, 또 의심하고 있다는 건 아주 잘 알겠다.

위험한 남자가 해로운 소리를 또 지껄였다.

“이건 어설프게 유혹하는 건가, 아니면 날 방심하게 하려는 수작인 건가?”

“유혹이라니! 그 무슨 흉한 말씀을!”

나는 그대로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났고.

또 갑작스러운 움직임은 내게 현기증을 선사해 줬다.

‘아, 빌어먹을 다이어트!’

결혼식을 위한 식이 조절로 약해진 몸을 이끌고 사흘간 승마를 했더니 컨디션이 완전히 최악이 되었다.

쓰러지려는 걸 아르파드의 단단한 팔이 허리를 휘감아 막는다.

덕분에 아르파드의 잘생긴 이마에 내 이마를 박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위험한 자세가 됐는데?’

나는 지금 얇은 슈미즈만 걸치고 있었고.

아르파드는 아예 붉은 가운뿐이다.

그리고 방 안에는 희한하게 달달한 향기가 가득했으며…….

우리 등 뒤에는 장미 꽃잎이 흩뿌려진 침대가 있었다.

아르파드가 낮게 속삭이자, 어쩐지 농도 짙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귓가를 적셨다.

“그대도 알겠지? 혼인의 완성이 뭔지 말이야.”

“……!”

너무너무 위험하고 해로운 말이었다!

온몸에 피가 빠르게 돌았다. 심장이 손끝까지 두드리는 것 같았다.

눈앞이 하얗게 물들고, 온몸이 뜨거워지려는 찰나.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압니다! 우리 의뢰랑 계약 조항을 확실하게 조율하죠!”

불끈.

주먹을 쥐어 아르파드의 앞에 보여 주며 필사적으로 외쳤고.

“흥이 다 깨져 버렸군.”

다행히 아르파드는 조금 전의 야릇하면서 위험한 분위기를 벗었다.

하지만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리는 말이 조금 이상했다.

“이건 나중에 그대가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할 거야.”

‘무슨 헛소리를……!’

덕분에 나는 겨우 아르파드의 위험한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아르파드는 장미 꽃잎이 흩뿌려진 이상한 침대가 아니라, 깨끗한 테이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다사다난한 과정이었다.

* * *

아르파드는 아주 방만한 자세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날카로운 턱을 받친 우아한 손끝이 열없이 건들거린다.

그 성의 없는 태도에 뽀송뽀송한 벚꽃 송이 같은 여자가 발칵 화를 냈다.

“…집중하시라고요!”

“그 재미없는 설명에 더 집중하라는 건가? 내 관심이 얼마나 비싼지 그대는 아나?”

“자꾸 그렇게 굴면 내 멋대로 계약서 써 버릴 거예요!”

그렇다. 지금 힐리아는 아주 뒤늦은 <약탈혼 의뢰서>를 작성 중이었다.

그러자 황태자 아르파드가 아니라, 용병왕 제랄드가 튀어나왔다.

“일방적인 의견만으로 작성된 의뢰서는 파기할 권리가 용병 쪽에도 있습니다. 손님.”

“이이익!”

너무나 맞는 말이라 힐리아는 앞으로 나가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얄미워! 재수 없어!’

재수 털리기로는 전남편이자 전 약혼자 루드비히는 감히 댈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내가 이 인간을 잡은 거긴 하지.’

아르파드 정도로 미친놈이 아니면 결혼을 깨 줄 수 없었다.

힐리아는 심호흡을 해서 평정을 되찾으려 애썼다.

‘안 돼. 자꾸 말리면 나만 손해라고. 상대방은 미친놈이다. 미친놈을 진지하게 상대하면 안 돼.’

자꾸 힘이 풀리려는 손에 억지로 힘을 줘 가며 펜을 움직였다.

“그러니까… 이제 결혼식을 올렸으니 전하께선 제 의뢰 중 가장 중요한 걸 이행해 주신 거고요.”

“가장 중요한 것? 전부가 아니라?”

힐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제가 필요할 때까지 결혼 상태를 유지해 주셔야 해요. 이건 아주 중요한 조항이죠.”

스슥!

의뢰서에 쓰인 조항에 힐리아는 두 번 밑줄을 그었다.

이건 아주 중요하니까!

“결혼 상태 유지가 어려울 것처럼 말하는군?”

“당연하죠. 루드비히가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요.”

“하긴. 그대와의 결혼은 부황께서 루드비히 그 반편이를 내 대항마로 만들기 위한 밑 작업이었지.”

아르파드는 다리를 다른 방향으로 꼬았다.

맨다리가 거의 드러나 있는 상태라 힐리아는 눈을 어디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설마 가운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건 아니겠지!’

진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아서 그녀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애써 시선을 종이에만 집중하고 일부러 또박또박 읽는다.

“또 선금으로 의뢰인은 아그리피나의 눈물을 이미 치렀으며…….”

아르파드는 빤히 보이는 힐리아의 발버둥에 피식 웃었다.

가까이 다가가 일부러 그녀의 귓가에 숨을 훅 불어넣으며 정정한다.

“정확히는 아그리피나의 눈물 및 그와 관련된 정보로 치렀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

“히약! 그, 그, 그건 그렇네요!”

힐리아는 머리카락과 얼굴색 구분이 힘들어져 있었다.

비슷한 벚꽃색을 띤 귀를 손으로 막고서 버벅거리는 게 꽤 귀여웠다.

‘흠. 귀가 약하군.’

아마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안다면 더 난리를 쳤을 것이다.

온몸이 분홍색이 되어 버린 힐리아는 더더욱 열정적으로 의뢰서에 매달렸다.

그러자 아르파드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태클을 걸었다.

의뢰서 가장 상단에 있는 첫 번째 줄을.

“그나저나 이상하군. 왜 그대가 ‘갑’이고 내가 ‘을’인 거지?”

-이하 의뢰인 힐리아 델핀을 ‘갑’이라 하고, 용병 제랄드(아르파드 이스트리드)를 ‘을’이라 칭한다.

놀랍게도 이쪽 세계 말로도 한국어 ‘갑과 을’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었다.

힐리아는 그걸 의뢰서에 그대로 썼고.

‘을’이 된 아르파드에게 항의를 받은 것이다.

힐리아는 눈을 세모꼴로 떴다.

“원래 의뢰인이 갑인 건 상식 아니에요?”

“이건 그런 일반적인 의뢰가 아니지 않은가. 그대는 자꾸 내가 누군지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안 잊었거든요. 아르파드 이스트리드 황태자 전하!”

그녀는 종알거렸다.

“그리고 그런 기본적인 것부터 뭐라고 할 거면, 진작 의뢰서 작성 시작할 때부터 집중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허리에 손을 얹고, 다른 손은 검지를 쭉 펴서 코앞에 들이대는 자세가 제법 위엄 넘쳤다.

아르파드는 픽 웃고 말았다.

“알았어. 이건 그냥 넘어가 주기로 하지.”

“넘어가 주는 건 전하가 아니라 저거든요?”

그러면서도 힐리아는 열심히 의뢰서의 조항을 써 내려갔다.

계약의 ‘을’이자 유일한 방해꾼인 아르파드의 훼방을 헤쳐 나가며 이루어 낸 쾌거였다.

그런데 마지막 조항에 이르러서 아르파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을’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후 ‘갑’과 ‘을’ 중 한쪽이 이혼을 원해 요청할 경우, 그 즉시 이혼이 성립된다? 이건 뭐지? 그냥 둘 중 한 명만 원해도 이혼이 가능하단 소리 아닌가?”

힐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아요. 그야 그때쯤이면 대충 일이 다 끝났을 거고, 이혼해도 상관없으니까요.”

“내가 황제가 된 뒤라면 그대는 이미 황후가 된 상태 아닌가? 그때 이혼해 주겠다고?”

아르파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힐리아는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이건 무엇보다 확실한 제 순수함의 증명이에요!”

“순, 수함?”

처음으로 아르파드의 목소리에 동요가 일었다.

떨림이라기보단 기분 좋게 베어 문 사과 속에서 반만 남은 벌레를 본 듯한 떨떠름함이었지만.

“네! 제가 황후 자리나 권력을 원해서 이런 의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걸로 증명할 수 있어요!”

힐리아는 아주 열정적이었다.

마치 영업하는 상품의 가장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를 설명하는 사원처럼.

하지만 구매자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건 왜 증명하지?”

“…네?”

아니, 오히려… 꽤 부정적인 축이었다.

힐리아는 당황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뭐가 맘에 안 들었다는 건데!’

이건 어디까지나 힐리아의 호의로 넣은 조항이었다.

‘어차피 당신 애인 있거나 곧 생길 예정이잖아!’

그렇다.

힐리아는 회귀 전 아르파드에 대해 퍼진 소문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황태자가 미쳐 버린 건 연인을 잃어서라더라.”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고 완전히 미쳐 버렸다던데?”

등등.

그렇게 애절한 애인이 나타나면 알아서 없어져 주겠다는 거였다.

게다가 황후 자리라는 권력도 탐하지 않고 곱게 물러나 주겠다는데 왜 이러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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