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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2화 (12/210)

12화

“…고민 중이오. 일단 사라진 신부도, 끌고 간 당사자도 나타나질 않으니…….”

이자벨은 한숨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제 세간에서는 루드비히 대공의 혼인은 이미 파탄 났다고들 생각하더군요.”

“…….”

신부가 결혼식장에 들지도 못한 채 납치되었고, 사흘이 지났다.

만일 지금 신부가 돌아온다 해도 그녀의 명예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었다.

황제 역시 이미 루드비히의 결혼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 중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목격한 바가 있었다.

‘루드비히가 신부를 거칠게 대하는 듯했었지.’

언제 미쳐 버릴지 모르는 아들 대신 조카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번과 같은 일을 미리 알았다면 결혼을 추진시켰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더 깊이 이어지지 못했다.

방해꾼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황후가 말했다.

“정말 걱정입니다, 폐하. 아르파드 말입니다.”

“…….”

“정말로 광증에 완전히 잡아먹혀 버린 것이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면 이런 무도한 짓을 벌이는 것이 말도 안 됩니다.”

그건 황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기도 했다.

황후는 자연스럽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것만으로 길고 풍성하게 늘어져 있던 소매가 젖혀지며 맨팔이 드러났다.

거기에는 크고 선명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황제는 저것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잘 알았다.

‘‘그때’ 입은 상처의 흔적이지. 아르파드가 처음으로 광증의 기미를 보인 그때…….’

마음이 무거워졌다.

겨우 열 살 무렵의 아이가 벌인 난동의 결과가 저토록 컸다.

저 날의 일 때문에 황후는 오른쪽 팔을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했다.

황태자의 유모였던 데다 죽은 전 황후의 시녀 출신이라, 원래 이자벨과 아르파드는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저 사고 이후 둘 사이가 멀어진 것을 두고, 황제는 황후의 탓을 할 수 없었다.

그건 황제가 황후에게 진 빚의 상징이었으므로.

황제는 황후가 일부러 불편한 팔을 들어 흉터를 보여 준 의도를 알았다.

아르파드의 광증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 광증을 직접 경험한 황후가 아르파드를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황제 본인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황후는 연이어 황제의 가장 여린 약점을 찔렀다.

“역시 황태자는 선 황후 폐하의 광기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말을 조심하시오!”

쾅!

황제는 진노하여 팔걸이를 내려쳤다.

황후는 황공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다.

황제는 벌써 한 여인을 떠올려 버렸다. 그가 일생 동안 사랑한 유일한 여인이자, 아들의 모친이며.

제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광증으로 죽은 전처를.

황제는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아르파드는, 그녀를 너무 닮았어.’

이것이 그가 유일한 아들을 믿지 못하는 이유였다.

* * *

황후 이자벨이 황제의 응접실에서 빠져나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이는 두 명이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치던 루드비히 대공.

그리고 마치 아내처럼 그 곁을 지키던 에반젤린.

에반젤린은 화색을 띠며 황후에게 다가왔다.

“어머니. 폐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요?”

에반젤린은 황후가 황제와 결혼하기 전에 낳은 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황궁에서 황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자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완전한 황족이 될 수는 없었다.

황후는 고개를 저었다.

“별다른 말씀은 없으시구나. 지금은 아르파드도, 신부도 나타나지 않으니 어떤 처벌을 내릴지 결정을 못 하시는 모양이야.”

루드비히가 앓는 듯한 소리를 냈다.

“어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당사자가 있든 없든 죄는 명백하지 않습니까! 역시 폐하께선 친아들이라고 편을 드시는……!”

“입 다물게.”

황후는 싸늘하게 루드비히의 입을 막았다.

“아르파드를 제어할 수 있는 건 폐하뿐이야. 황제 폐하의 진노를 살 수 있는 말은 삼가도록.”

“…예, 황후 폐하.”

그는 열패감에 이를 악물었다.

옆에서 에반젤린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아르파드 오라버니가 왜 하필이면 그 여자를…….”

이자벨 황후는 초조해 보이는 딸을 책망하는 눈으로 보았다.

하지만 루드비히가 있는 중에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주의를 돌렸다.

“그보다는 세간의 평가나 소문이 중요해. 폐하께서도 이에 영향을 받으실 테니까.”

지난 사흘간, 황후는 온 힘을 다해 아르파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키우려 노력했다.

‘이번 일은 광증으로 인한 해프닝에 불과하다.’

‘그러니, 루드비히와 델핀 공녀의 결혼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등등.

루드비히의 두 눈이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절대 네놈에게는 순순히 안 빼앗길 것이다, 아르파드!’

이미 약탈당했다는 사실을 그는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고 있었다.

* * *

얼렁뚱땅 결혼식을 치르고 난 뒤에야 나는 구겨진 휴지 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거울에 비춰 보니 정말로 대단한 몰골이었다.

‘이 꼴인 나한테 키스하다니. 황태자도 대단해.’

결혼식을 집전해 준 사제도 대단하고.

‘그나저나 이런 꼴로 결혼식 올린 건 또 처음이네.’

지금까지 내 결혼식은 겉보기엔 웅장하고 화려하고 장엄하게 치러졌었기 때문이다.

신랑 신부 외에 사제뿐인 단출한 결혼식.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았다.

‘됐어. 드디어 그놈에게서 벗어날 첫발을 뗀 거야!’

게다가 드디어 사흘 만에 제대로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기쁨도 컸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 그대로 흐물흐물 녹아 버리는 듯했다.

겨우 서류상 결혼까지 일단락하자 걱정이 비눗방울처럼 피어올랐다.

‘아, 벨테인 경 괜찮으려나.’

일단 약탈혼 당하는 게 먼저다 보니, 벨테인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납치당해 끌려가는 신부가 자기 기사를 챙겨 가다니 말도 안 되지 않나.

‘상처까지 입었는데…….’

게다가 나를 엄청나게 걱정하고 있을 거다.

그는 내가 아르파드에게 진짜 납치된 줄 아니까.

그의 융통성 없는 성격을 생각하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을 베려 들지도 모른다.

‘설마, 아니겠지?’

이건 좀 최대한 빨리 손을 좀 써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서 애니에 대한 걱정 역시.

‘애니도 꼼짝없이 내가 약탈혼 당한 줄 알 텐데.’

엄청나게 걱정할 거다.

하지만 진실을 모르는 게 본인들의 신상에 나으니, 미리 말해 줄 수가 없었다.

시간도 없었고.

‘그나마 벨테인 경은 내가 카타콤에 다녀오는 걸 호위했고, 애니도 내가 뭔가를 꾸미는 건 봤으니까, 어느 정도 눈치를 채 주길 빌어야지.’

지금으로서는 이게 한계다.

이제 도장도 찍었겠다, 최대한 빨리 수도로 돌아가서 뒤처리하면 된다.

내가 두 사람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의 고민으로 머리가 바쁜 사이.

손끝이 야문 하녀들이 나를 뽀득뽀득 씻기고, 뽀송뽀송 말린 다음, 옷까지 갈아입혀 침실로 데려왔다.

“부디 행복한 밤이 되세요.”

“좋은 꿈 꾸시길.”

어쩐지 의미심장한 말들이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붉은 비단으로 장식된 침실에 덩그러니 배달되어 있었다.

방에는 아주 의미심장하게 커다란 침대 하나만 중심에 떡하니 놓여 있었는데.

거의 작은 방만한 사이즈라 10번쯤 굴러도 안 떨어질 것 같았다.

붉은 휘장이 침대를 사각형으로 두르고 있어 안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크기는 대충 봐도 아니까.

사방에서 은은하게 타오르며 향기를 내뿜는 향초도 그렇고, 저기 사이드 테이블의 화병에 꽂힌 장미꽃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매우 야릇한 분위기로군.’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홧홧해질 정도로 말이다.

아마 이 결혼이 평범한 정략결혼만 되었어도, 나는 큰 결심과 함께 침실에 들었으리라.

‘하지만, 아니잖아?’

나와 신랑은 (이번 생의) 첫 만남부터가 어두침침한 지하 묘지였고.

밀어를 나누기보다 내 협박과 아르파드의 칼날을 먼저 주고받은 사이였다.

전혀 그렇게 로맨틱한 관계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동맹에 가깝지.

‘하지만 별궁의 하녀들이 그걸 알 리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어쨌건 사흘에 걸친 강행군 끝에 나는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민망함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침대 휘장을 확 걷었다.

“푹신한 시트! 베개!”

오로지 중요한 건 그것뿐…이었는데?

침대 안쪽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게 대체 뭐야?”

그도 그럴 것이 새하얀 침대 시트 위에 지나치게 로맨틱해서 문제인 장미 꽃잎이 잔뜩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질문에 대답하듯 등 뒤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

연이어 뜨거운 수증기가 확 끼쳐 왔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소름 끼치는 말이 들렸다.

“역시 내 신부는 아주 적극적이군. 내가 오는 그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

“뭐라는 거예요, 지금?!”

바락 외치며 몸을 돌렸다가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도로 돌렸다.

열린 문 앞에는 왜인지 모르게 축축하게 젖은 아르파드 황태자가 빨간 가운을 걸친 헐벗은 상태로 서 있었다.

그는 그대로 나를 향해, 침대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가운 한 장 걸치고 왜 모델 워킹을 하고 계세요?

그것도 나를 향해서?

“왜, 왜, 왜 오셨어요?”

내 멍청한 질문에 아르파드는 눈매를 곱게 휘며 대답했다.

“오늘은 우리 첫날밤이잖아. 나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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