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10화 (10/210)

10화

살려 주긴 하겠다는 소리구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런 거로 해 두죠.”

그러자, 아르파드는 다시 조금 전의 미묘한 표정을 다시 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쾌해 보이는 표정.

꼭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 같아 보였다.

‘뭐지? 왜 저런데?’

역시 미친 황태자의 속내를 읽는 건 무리다.

정상인이 미친 사람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이해하겠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아르파드와 벨테인 경의 갈등에 이어, 나와 대화를 나누느라 생각보다 시간을 지체했다.

이러다가 루드비히가 소식을 듣고 달려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나는 아르파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리고 놀라서 동그래진 눈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빨리 가요! 안 할 거예요, 약탈혼?”

“아니. 해야지.”

다행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울먹거리며 사방에 다 들리도록 외쳤다.

“왜 이러시나요? 제발 놔주세요, 전하! 저는 오늘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에요!”

아르파드가 ‘허’ 하고 헛웃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확실하게 악당 역인 거로군.”

“당연하죠. 애초에 그런 의뢰였잖아요?”

결혼식을 앞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치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너무 잘 아니까.

‘굳이 약탈혼이라는 방식을 취한 건 그것 때문이고.’

전생에 결혼을 피하기 위해 벨테인 경과 도망치고 붙잡혔을 때 다른 남자와 도망친 여자가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이미 겪었다.

굳이 약탈혼이라는 방식을 택한 건 그 때문이다.

‘실패할 경우, 혹은 성공하더라도 이후 내 평판을 지켜야 하니까.’

냉정하게 보자면 내 평판을 지키겠다고 아르파드의 평판을 희생시킨 셈이긴 하지만,

‘그건 목숨 구해 주고 황위에 올려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게다가 이미 아르파드는 지금도 미친 황태자로 유명했다.

나와 달리 굳이 지켜야 할 평판이라는 게 없는 것이다.

“빨리 가자니까요?”

내 재촉에 아르파드는 픽 웃었다.

그러더니 주변을 과시하듯 둘러보더니 소리 높여 외쳤다.

조금 전 내가 놓아 달라 애원할 때와 비슷한 연기였다.

“흠, 내 신부께선 몸이 다셨군.”

미쳤냐!

‘설마 여기서 내가 약탈혼을 사주했다고 까발리는 건 아니겠지?’

내 의심은 다행히도 곧 부정되었다.

기사단장의 비명과 같은 질문이 있은 뒤였다.

“전하의 신부라니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르파드는 더없이 오만하게 대꾸했다.

“루드비히 같은 녀석에겐 아까운 여자다.”

암, 암. 옳은 말이야. 저 미친 황태자가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제대로 한단 말이지.

나는 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내가 데려가지. 베일을 벗긴 모욕에 대한 대가는, 내가 신랑이 되는 것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겠나?”

그야말로 미친 개소리였다.

“안 됩니다!”

“막아라!”

“어서 대공 전하께 알려!”

기사들이 뒤늦게 아르파드를 막으려는 찰나, 미친 황태자는 다시 석궁으로 그들의 발악에 대한 답을 주었다.

퍽! 퍼벅!

거친 소리를 울리며 날아간 볼트가 갑옷 틈새로 파고들었다.

으악! 아악! 등등 다채로운 비명이 울렸다.

순식간에 기사 넷을 더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뒤 아르파드는 여유 넘치는 말투로 선언했다.

“루드비히에게 전해. 더는 신전에서 기다릴 이유가 없어졌으니, 알아서 돌아가라고.”

“저, 전하!”

그대로 아르파드는 나를 안은 채 말을 몰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까지 약탈당하는 중인 신부 역할에 충실했다.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연기에 말이다.

“제발 놓아주세요, 전하! 아아아!”

당연한 일이지만, 아르파드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다.

‘아싸! 성공이다!’

* * *

다그닥! 다그닥!

아이러니하게도 경쾌한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그 앞을 막아서려던 이들은 하나같이 사나운 말의 발차기와 황태자의 석궁 세례에 나가떨어졌다.

“꺄아악!!!”

가녀린 여인의 비명이 길게 꼬리를 끌며 멀어진다.

“전하! 안 됩니다!”

“멈추십시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결국 루드비히의 기사들은 오늘의 새신부가 황태자에게 납치당하는 걸 뜬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사단장이 일그러진 얼굴로 절규했다.

“신부가, 신부가 납치당했다!”

이것이 약 300년 만에 행해진 약탈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 * *

제국 역사상 약탈혼이 벌어지고 또 인정된 것은 약 300년 전.

제국이 세워진 시기와 일치했다.

제국이 세워지게 된 계기가 바로, 광폭한 드래곤이 결혼 행렬에서 공주를 약탈혼한 사건이었으니 당연했다.

그 결혼의 결과로 태어난 드래곤의 혈통이 바로 지금까지 제국에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당대에 드래곤의 혈통을 가장 강하게 물려받았다 알려진 황태자가 결혼식 날 신부를 약탈했다.

‘그야말로, 초대 황제의 탄생 설화와 일치하는 사건의 재현!’

제국 황실이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정통성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꼴이다.

‘절대 부정 못 할걸.’

자신의 정통성 문제 때문에라도 이 약탈혼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노린 것이었다.

사실 나 혼자 이걸 떠올린 건 아니었다.

이미 회귀 전에 비슷한 사례를 본 적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루드비히와 에반젤린의 결혼이 그렇게 이루어졌지.’

내가 불륜과 살인미수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되어 이혼당한 뒤의 일이다.

그때 이미 아르파드는 죽은 뒤였고, 당연하다는 듯 루드비히가 황태자 자리를 차지했다.

나를 쫓아낸 둘은 희대의 연극을 펼쳤는데 그게 바로 약탈혼이었다.

루드비히의 부족한 정통성을 메우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결혼식을 세기의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초대 황제의 설화를 이용한 것이다.

그렇게 염병 천병을 떤 끝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고.

대중 사이에서 이번 사건은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인지도와 인기를 올려 주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지.’

이번엔 내가 그걸 역이용해 주려는 것뿐이다.

나는 아르파드의 품속에서 히죽 웃었다.

‘아, 루드비히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졌을지 직접 못 보는 건 진짜 아쉽다!’

* * *

쾅!!

신전의 제단을 장식하던 천사 조각상이 산산조각이 났다.

사제들이 경악하여 외친다.

“대공 전하!”

“이 무슨 무도한 행동이십니까?!”

“이런 모독을!”

평소라면 루드비히는 절대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이 늦어지는 신부를 기다리던 그에게 도달했기 때문이다.

“신부를 빼앗겨? 약탈혼?! 지금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루드비히 대공의 비명과 같은 절규에 하객들까지 지금 사태를 알게 되어 버렸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지금 신부가 약탈당했다는 거야?”

“하지만 대체 어떤 간 큰 인간이 그런 짓을 하지?”

“대공 전하가 신랑이고, 중매를 서신 건 황제 폐하신데…….”

경악이 술렁거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퍽!

신부를 지키지 못하고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 기사는 주군에게 얻어맞고 버진 로드 위를 굴렀다.

“컥! 죄송, 합……!”

루드비히 대공의 추태에 경악하던 자들조차 눈살을 찌푸렸다.

신부를 빼앗긴 건 분노해 마땅한 일이긴 하나, 그걸 이유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신을 폭행하는 게 좋게 보일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객 중 한 명으로 참석했던 에반젤린은 그런 주변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했다.

그리고 바로 루드비히에게 달려갔다.

“오라버니! 진정하세요!”

가까이 다가와 루드비히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말했다.

“그만해! 지금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정신 차리라고.”

“아…….”

그제야 루드비히는 이성을 간신히 붙잡았다.

‘안 그래도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부드럽게 진행되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특히나 오늘 아침, 힐리아의 히스테리 때문에 황제에게 경고를 들은 스트레스가 컸다.

그 와중에 신부가 약탈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성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는 대충 상황을 수습했다.

“…미안하네. 내가 너무 흥분했어.”

“죽여주십시오. 전하.”

여전히 납작 엎드린 기사는 루드비히의 본래 성격을 잘 알았다.

대공저에서부터 그의 곁을 지킨 기사이기 때문이다.

지금 루드비히가 사과하는 것이 절대 본심이 아니라는 걸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대공저로 돌아가면 나는 끝이야!’

하지만 그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신부를 약탈해 간 ‘그자’를 대체 누가 막는단 말인가!

기사는 하소연하듯 외쳤다.

“하오나 대공 전하. 델핀 공녀님을 약탈해 간 자는 바로 황태자 전하이십니다! 저희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루드비히는 분노가 뒤엉킨 경악을 내뱉었다.

“뭐라고?!”

그의 옆에서 에반젤린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휘청거렸다.

“오, 오라버니가?”

방금 ‘오라버니’라는 호칭은 그녀가 루드비히를 칭할 때와는 어감이 미묘하게 달랐다.

하지만 이것까지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