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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혼으로 남편부터 바꾸겠습니다-4화 (4/210)

4화

그 뒤로 나는 거의 혼절할 정도로 울었다.

정확히는 그런 척을 했고.

결혼식 전날 드레스가 망가지고 그 때문에 신부가 혼절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델핀 공작저는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덕분에 결혼식이 아예 취소되거나 미뤄지면 좋을 테지만, 그렇게 운이 좋진 못했다.

루드비히가 어떤 수를 쓴 건지 꽤 그럴듯한 웨딩드레스를 구해 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좋아. 이걸로 내일 결혼식은 문제없이 치를 수 있겠어.”

“다행, 다행이에요. 정말…….”

나는 ‘젠X!’ 따위의 욕설을 삼키면서 안심한 듯 가련하게 웃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에반젤린이 딱딱한 표정으로 사라지고, 루드비히가 나를 대충 위로하다가 질렸는지 나간 뒤였다.

내 비밀스러운 명령을 받았던 하녀 애니가 차가운 수건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겨우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행여나 밖으로 소리가 샐까 싶어서 소리를 낮추어서 물었다.

“잘하고 왔어, 애니?”

“네. 시키신 대로 하고 왔어요!”

애니는 힘 있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회귀한 직후 오늘 밤 반드시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은 두 명이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바로 애니였다.

나는 아까 애니가 찾아오자 ‘어떤’ 일을 하나 시킨 뒤.

비명을 질러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이 상자를 에반젤린이 묵는 손님방에 두고 와.”

최대한 크게 소란을 피워서 애니가 하는 일의 성공률을 올리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루드비히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어 두었다.

‘내일 결혼을 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고 말이야.’

있는 그대로 말한 것뿐이다.

내일 결혼을 망치고 싶은 건 지금 여기 있는 나니까.

하지만 루드비히는 에반젤린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거다.

‘내연녀만큼 결혼식을 망치고 싶은 사람도 없을 테니.’

거기에 드레스와 면사포를 찢은 흔적이 여실히 남은 나이프가 에반젤린의 방에서 발견되면, 어떨까?

‘그래도 루드비히가 에반젤린을 의심하지 않고, 책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에 지금 애니가 잔뜩 부은 내 눈에 얹어 주는 찬 수건을 걸 수 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좋다.”

“내일이 결혼식이신데, 이렇게 부어 버려서 어떡해요. 아가씨.”

“괜찮아…….”

솔직한 마음으로는 결혼을 취소할 수 있다면 얼굴이라도 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딴 남자랑 도망가도 결국은 다시 잡아 와 결혼했었던 루드비히야. 이런 사소한 일로 취소될 거라는 기대는 안 해.’

애초에 루드비히는 내 친정인 델핀 공작가의 영지와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려는 것이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한이었다.

아니,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원망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결혼을 취소시킬 수 없다.

‘그럼 어지간하지 않은 일을 만들어야지.’

애니가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루스 후작 영애, 저 여자 이상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내가 비밀스러운 일을 맡긴 걸 보면 알겠지만, 애니는 믿을 수 있는 하녀다.

죽은 유모의 딸로 내 젖형제였고.

지난 세 번의 삶에서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 없는 단 둘뿐인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를 위하다가, 나를 구하려다 몇 번이나 죽었고 말이다.

애니는 통쾌하다는 듯이 속삭였다.

“지금이라도 아가씨가 의심하시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응. 늘 고마워. 애니.”

나는 차가운 수건이 올려진 눈 위로 애니의 손을 꼭 잡았다.

이번엔 절대 이 온기를 허망하게 잃지 않을 것이다.

* * *

시간을 가늠하다가 나는 애니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밤에 날 찾아올 두 번째 사람이 있으니까.’

아까 왔던 루드비히나 에반젤린은 내가 일부러 불러들이지 않는 한 안 온다.

하지만 단 두 명은 상황이 아무리 바뀌어도 꼭 내 방에 찾아왔다.

지금 돌려보낸 애니와 그리고…….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가씨.”

“…응. 들어와요.”

문이 열리고, 소리 없이 들어온 이는 건장한 체형을 가진 사내였다.

나는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벨테인 경.”

그는 델핀 공작가에서 유일하게 나를 배신하지 않은 기사였고.

또한 바로 직전 세 번째 생에서 나를 데리고 도망쳤던 당사자이기도 했다.

“루드비히는 작위를 노리고 나와 결혼하려는 거예요. 제발 나를 데리고 도망쳐 줘요, 벨테인 경!”

델핀 공작가에는 수십에 이르는 기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델핀 가문의 직계인 내가 아니라, 내 약혼자 루드비히에게 더 충성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내 후견인이 된 게 황제였고.

황제가 루드비히를 내 약혼자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황제는 조카에게 델핀 공작가를 넘긴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지난 3년간 루드비히를 주인으로 섬겼다.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나에 대한 충성을 잊지 않은 사람이 바로 벨테인 경이다.

그는 몇 번이나 내게 조언했었다.

“아가씨. 루드비히 대공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루스 후작 영애와 대공의 사이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전부 맞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나는 벨테인 경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나무라고 멀리하려 했다.

그럼에도 벨테인 경은 결혼식 전날 밤에까지 날 찾아와 설득하려 했다.

“루드비히 대공은 아가씨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델핀 공작가의 권력과 정통성을 원하는 것뿐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파혼을…….”

그는 애니와 함께 단 둘뿐인 내 편이었다.

‘진심으로 날 위한 말을 해 준 고마운 사람.’

벨테인 경은 이번에도 똑같았다.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심을 다해 충언했다.

“아가씨. 제 말을 듣기 싫어하실 줄은 압니다만, 그래도 아가씨를 위해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십시오.”

“…….”

“웨딩드레스가 저 꼴이 된 것도 심상치 않습니다. 게다가 루드비히 대공은 공개적으로 범인을 찾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아가씨를 얼마나 함부로 여기면…….”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루드비히가 웨딩드레스를 망친 범인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는 이유를.

‘아마 유력한 범인이 에반젤린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 테니까.’

에반젤린이 벌인 일이라는 게 알려지면, 본인의 치부도 공식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증거를 에반젤린의 방에 숨겨 두게 했지만, 그 일이 공론화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냥 루드비히와 에반젤린 사이에 불화만 더해 주려던 것뿐이니까.’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벨테인 경은 혼신의 힘을 다해 내게 청했다.

“누구보다 아가씨 본인을 위해서 생각을 다시 해 주십시오.”

“…….”

몇 번 회귀했어도 이 사람은 한결같이 올곧았다.

위기에 처한 연약한 여인, 그것도 전 주군의 딸을 구하기 위해 제 목숨을 내던지는…….

누구보다 기사다운 고결한 이.

그래서 너무나도 고맙고, 또 미안했다.

특히나… 바로 이전 세 번째 생에서는…….

나 때문에 그가 겪어야 했던 끔찍한 결말을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걸 벨테인 경은 본인의 충언에 대한 거절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아가씨!”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하는 부탁이나 명령은 뭐든 따를 것이다.

‘실제로 지난 생에는 날 데리고 도망쳐서 온갖 오명을 다 쓰고, 처참하게 죽었지. 그런데도 끝까지 날 원망하지 않았어.’

벨테인 경의 희생은 나를 루드비히로부터 구해 주지 못했다.

그저 의미 없이 그를 희생시켰을 뿐.

‘이번에는 부탁하지 않을 거야. 날 위해서도, 이 사람을 위해서도.’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미 늦었어요, 벨테인 경. 결혼식은 내일이고, 루드비히는 절대로 파혼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아가씨!”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자 벨테인 경은 뭔가 이상한 걸 깨달은 모양이다.

“왜 외출복을 입고 계신 겁니까?”

이곳은 침실이고,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외출복 차림이었다. 그것도 평민이나 입을 법한 소박한 옷차림.

나는 벨테인 경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에게 명령했다.

“벨테인 경. 델핀 공작가의 유일한 직계로서 델핀의 기사인 그대에게 명하겠어요. 오늘 밤, 나를 호위해 줘요.”

“…….”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벨테인 경은 바로 무릎을 꿇고 기사로서의 예를 올렸다.

“명에 따릅니다.”

네 번째 삶이지만, 벨테인 경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때 나는 벨테인 경에게 보호해야 하는 여자애였지, 주군이 아니었구나.’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 * *

벨테인 경은 델핀 공작가의 기사 중 최강자였다.

그 말인즉슨 나라는 혹을 하나 데리고도 주변의 시선을 피해 저택을 나갈 수 있다는 소리다.

이건 전생에 그가 나를 데리고 도망칠 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걸 아니까 호위해 달라고 한 거지만.’

아마 나 혼자 나가려 했다간 중간에 들킬 거다.

벨테인 경은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나를 데리고 움직였다.

정원을 가로지르다가 에반젤린의 침실 테라스 아래를 지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불쌍한 보석함 하나가 테라스 바닥에 부딪혀 박살 난 다음 정원으로 굴러떨어졌다.

푹!

덕분에 나는 발 앞에 박힌 페이퍼 나이프를 볼 수 있었다.

‘이건…!’

분명히 내가 웨딩드레스를 찢은 그 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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