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령 공작의 딸이 되었다(119) (119/124)

<119화>

걱정 반, 심통 반인 마음으로 유령들을 부르며 돌아다녔으나 그들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많던 유령이 한순간에 증발한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왜 안 보이는 거야!

“아오, 힘들어.”

처음에는 무리하다가 쓰러지면 어떡하냐, 무슨 일이냐며 사색이 되어 내 뒤를 쫓던 사용인들도 내가 저택을 다섯 바퀴쯤 돌고 나자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일을 하러 사라졌다.

그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넓은 저택을 다섯 바퀴나 돌아서 그런 건지. 숨이 차서 제자리에 멈춰선 채 헉헉대는데 멀리서 비틀비틀 걸어가는 유령 하나가 보였다.

“앗, 거기 아저씨!”

한 유령이라도 발견한 게 반가워서 후다닥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가까이서 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빈 병의 목을 쥔 채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던 거지 유령의 소매를 잡아채고 흔들었다.

“아저씨, 아저씨. 혹시 다른 유령들 어디 있는지 본 적 없어요?”

<으잉?>

“다른 유령들 어딨냐고요!”

재차 목소리를 높여 물었으나 거지 유령은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느릿느릿 눈을 끔벅이며 나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동작도 물에 잠긴 천처럼 느렸다.

아이고, 속 터져. 답답함에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쳤다.

내가 알기로 유령들은 뭔가를 먹고 마실 수 없어 취하지도 않을 텐데. 이 아저씨는 왜 맨날 거나하게 취한 사람처럼 구는 걸까.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역시 살아 있을 때의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빈 술병을 들고 술에 취한 척을 해서라도 잊고 싶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괜스레 아련해져 측은한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내내 넋이 나가 있는 듯한 표정을 짓던 거지 유령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런데 숨기 좋은 곳이라면 네가 더 잘 알지 않으냐?>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의아함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그. 눈그늘이 턱까지 내려와 있던 놈이 머물던 곳 말이다.>

“눈그늘…… 아!”

알쏭달쏭한 말을 곱씹다가 ‘눈그늘’ 하니까 퍼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장소가 있었다. 그 길로 거지 유령의 소매를 팽개치고 후다닥 동쪽 별채의 구석 창고로 향했다.

쾅!

“…….”

일부러 쾅 소리 나게 문을 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창고 안을 스윽 훑어보다가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역시.’

헤이튼 아저씨가 맨날 죽은 듯 누워 있던 관! 분명 아저씨가 떠난 뒤로 열린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오늘은 닫혀 있더라니!

도망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척척 걸음을 옮겨 관 뚜껑을 벌컥 열어젖혔다. 예상한 대로 관 속에서 익숙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 꺄아악!>

<흐아아악!>

“다들 대체 여기 숨어서 뭐 하는 거예요! 얼른 나오…… 어?”

반쯤은 심통이 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눈을 치뜨고 으름장을 놓다가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테리.>

<마, 많이 화났냐, 꼬맹아?>

분명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익숙한데, 눈앞에 비치는 유령들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본래 에버딘 저택의 유령들은 절반 정도가 인간형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유령들은 대부분이 자루 모양이었고, 셀레나를 비롯해 몇몇 기운 넘치던 유령들은 작은 땅 요정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관 속에 옹기종기 모여 내 눈치를 보는 광경에 숨이 턱 막혔다.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으음.>

셀레나는 우물쭈물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마음속에서 작게 일렁이던 불안감이 한층 커다랗게 몸집을 키웠다.

설마…….

‘그런데 그러면…… 악령은 어떻게 된 거지?’

‘악령?’

‘앗, 네에. 왕자인지 뭔지 하는 악령이 에버딘 사람들에 이어서 공작님까지 해치려 해서 막아선 거였거든요. 중간에 공격받고 쓰러졌는데…… 어디로 간 걸까요? 핫, 설마 제가 너무 위대해 보여서 도망갔다거나!’

‘아, 그게 악령이었나 보군. 그거라면 내가 벤 것 같은데.’

‘……넹? 뭘 베어요?’

‘소름 끼치도록 짙은 살기가 느껴지던데, 그 왕자였다면 이해가 가는군. 살기가 가장 짙게 모인 부분을 베었더니 더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더구나. 그게 악령이 아니었을까?’

‘아, 아니. 맞긴 맞는 것 같은데…….’

아직 침대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공작이 직접 약을 먹여 주고 곁을 지키는 동안 든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 나눈 대화.

당시에는 ‘아무리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지만, 감도 예사롭지 않다지만. 인간이 유령을 베었다고? 그것도 악령을?’ 하고 공작의 인간답지 않은 무력에 황당해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만약 그게…… 셀레나를 비롯한 유령들이 제 존재를 희생해 가며 이뤄 준 결과라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눈에 띄게 줄어든 유령의 숫자, 며칠 새에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존재감만을 갖게 된 그들의 모습을 보니 부정할 수도 없게 되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서 호흡을 고르는 사이. 망설이던 셀레나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미안해, 테리.>

“…….”

<공작의 검에 힘을 실어 준 건 후회하지 않지만, 나는 이제…… 너한테 크게 도움이 안 되니까.>

“…….”

<그게 좀 슬퍼서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어. 그렇다고 해도 아픈 너를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건 미안…….>

셀레나의 말을 듣다가 견딜 수 없어져서 팔을 뻗어 그녀와 관 속의 유령들을 꼭 껴안았다. 이제는 내 짤막한 양팔로도 한꺼번에 그들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또 울컥했지만,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셀레나는, 여러분은 강하지 않아도 여전히 내 친구고, 가족 같은 존재인데.”

예전의 나는 오블렌 자작령을 사들이겠다는 목적을 위해 셀레나와의 계약을 받아들이고 유령들을 직시하기로 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그들이 ‘내게 줄 수 있는 것’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더 중요했다. 불평불만 많지만, 결국 내가 하는 일이라면 늘 제 존재를 아끼지 않고 나서서 도와주려던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이렇게 숨지 마요.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무서웠단 말이에요.”

<테리…….>

<꼬맹아…….>

셀레나와 유령들이 먹먹한 음성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다가 결국 심약한 유령 몇이 울음을 터트린 것을 시작으로 모든 유령이 눈물 한 방울씩을 흘리는 소란이 있었다.

가까스로 그들을 달래고, 남아 있는 유령들에게 하나 하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물었다.

“그런데 릭은요? 여기 없어요?”

셀레나와 유령 일부나마 찾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아직도 릭은 찾지 못했다. 불안감이 늪처럼 서서히 마음을 잠식했다.

<응? 릭이라면…… 너랑 내내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셀레나와 유령들이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릭이 당연히 내 침대 옆을 지키고 있을 줄 알았다며 술렁였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눈가가 시큰거려 입술을 꾹 말아 물고 눈물을 참았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 바보 곰돌이가.’

그때 엄마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원하는 걸 찾지 못했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다.’

“…….”

그 말을 곱씹다가 일단 내 방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릭을 봤던 게 이불로 그를 칭칭 동여맬 때였으니까.

공작과 미나는 자리를 비운 건지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창쪽부터 시작해서 방을 다시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발코니, 커튼 뒤, 협탁 서랍, 옷장, 침대 밑…….

“어!”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침대 아래를 들여다보는 순간, 절로 탄성이 터지며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먼지가 쌓인 침대 아래에 릭이 엎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여기 있었네! 그런데 먼지를 그렇게 싫어하는 녀석이 왜 저기 있냐.

“릭, 릭. 너 그러다가 또 빨래 당한다?”

좀 괴상한 자세와 장소이긴 하지만……. 이따금 생각할 게 있거나 토라진 게 있으면 릭이 저런 식으로 부름을 무시하고 꼼짝도 안 하던 때가 없던 건 아니었다.

몇 번 말을 걸어도 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길래 결국 손을 뻗어 억지로 끌어냈다.

붉은 리본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어 내고 릭을 침대에 앉히며 말을 붙였다.

“릭, 말 좀 해 보라니까. 네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두고 가서 화난…….”

툭.

릭을 앉혀 두고 손을 떼는 순간, 그의 머리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작은 소리와 함께 침대 위로 엎어진 릭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릭?”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을 떼던 자세 그대로 굳어 있다가, 가까스로 손을 움직여 그를 다시 바로 세웠다.

“릭,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네가 말리는데 멋대로 안 뛰어나갈게. 뭐라고 말 좀 해 봐. 응?”

하지만 숫제 애원하며 릭을 바로 앉히려 해도, 그는 자꾸만 힘없이 침대 위로 고꾸라졌다.

마치, 평범한 곰 인형이 되어 버린 것처럼.

릭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손끝이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유령인 그에게서 심장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형의 배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그제야 릭의 몸에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릭!”

<테리!>

나는 그 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저택을 다시 한번 모조리 뒤졌다.

악령의 기운 때문에 곰 인형 속에서 튕겨 나간 걸 수도 있잖아. 아직 저택 안에 있을 거야.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 리가 없어. 분명 그럴 거야.

속으로 두서없이 중얼거리며 불안을 없애기 위해 릭을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렇게 끌어안을 때마다 놓으라며 버둥대던 움직임도, 목소리도 느껴지지 않아 외려 숨이 더 막혔다.

“……릭.”

릭은 어디에도 없었다.

* * *

<그러고 있다가는 감기 걸릴 텐데. 사람들이 시끄럽게 하기 전에 들어가지, 왜 그러고 있느냐?>

거지 유령, 하데스는 노을이 뉘엿뉘엿 내려앉는 에버딘 저택의 문 앞 계단에 앉은 테레지아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계단에 웅크려 앉은 채 난간에 머리를 기댄 아이가 멍하니,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친구가 없어져서요.”

테레지아는 멍한 얼굴로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자그마한 입술 새로 흰 입김이 신기루처럼 흘러나오다가 사라졌다.

반쯤은 넋을 놓은 채로 곰 인형을 고쳐 안는 모양새가 하데스의 눈에조차 썩 안쓰러웠다. 그가 속으로 혀를 쯧 찼다.

‘이럴 것 같아서 인사하지 않을 거냐고 물어본 건데. 독한 녀석.’

그는 시선을 힐긋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테레지아가 아플까 봐 안달복달하지만 차마 다가오지 못하는 유령들, 에버딘 사람들이 보였다.

테레지아는 릭이 자신의 목숨을 내기의 대가로 내밀면서까지 살리려 했던 아이였다. 대가를 받기로 했으니 어느 정도는 계약자의 본분을 다해야겠지.

하데스는 그리 생각하며 한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너랑 매일 한 몸인 양 붙어 다녔으니 좀 쉬고 싶어졌을 수도 있잖느냐.>

그 말에 내내 꼼짝하지 않던 테레지아가 고개를 움직여 그를 바라보았다. 하데스는 어쩐지 아이의 눈을 마주보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며 비스듬히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그 인형 가지고 기다려 보든가.>

“…….”

<혹시 아냐? 언젠가 충분히 쉬고 나면 다시 네 곁으로 돌아올지.>

결국 하데스는 말을 끝내자마자 저만치로 사라져 버렸다.

가만히 그의 말을 곱씹던 테레지아의 눈에 서서히 빛이 돌아왔다.

‘……그래. 릭이 나한테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릴 리가 없으니까.’

거지 유령의 말대로 잠시 쉬러 간 걸 수도 있고, 혹은 ‘살아 있는’ 몸으로 돌아간 걸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릭은 그녀에게 인사 하나 남기지 않고 영영 떠나 버릴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언젠가는, 인사를 위해서라도 저를 찾아오리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믿자.

테레지아는 오렌지색으로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곰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아이의 체온이 조금은 스산하게 생긴 곰 인형을 따스하게 물들였다.

* * *

“다 모였단다, 테리.”

“감사합니다!”

공작의 말에 씩씩하게 대답한 후, 숨을 깊이 들이쉬고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그러자 1층 홀에 질서정연하게 모인 채, 따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에버딘 저택의 사용인들, 기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공작을 통한 내 부탁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긴장하지 않으려 애쓰며 또박또박 말했다.

“모두들, 처음 뵙겠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꽤 멀리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이제라도 다시, 제대로 인사하고 싶어서.

“제 이름은 테레지아 에버딘이고, 얼마 전에 아홉 살이 됐어요. 공작님의 후계자로 이 저택에 왔고, 그리고…….”

“…….”

“저는 유령을 볼 수 있어요. 듣고, 만질 수도 있고요.”

“…….”

“그래도 괜찮다면……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주먹을 불끈 쥐며 선언하는 것으로 어설픈 인사를 끝마쳤다. 잘한 건가 싶어 잠깐 불안해졌지만, 공작과 사용인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에 곧 편안해졌다.

“저도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아가씨. 미나예요.”

“제 이름은…….”

내 말이 끝난 후, 사람들이 화답하듯 한 명 한 명 내 앞으로 다가와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나를 꼭 끌어안았다.

솔직히 잠깐 눈물이 날 뻔도 했는데 참았다. 나는 멋있고 어른스러운 후계자…… 가 아니라.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나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웃는 얼굴을 좋아하니까.

“공작님. 제 생일 선물 말인데요.”

그렇게 마지막 사용인과의 인사까지 끝마치고 공작을 돌아보았다. 일부러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오블렌 자작령을 사 달라고 하려 했는데, 자작이 선수 치는 바람에 그러지 못하게 됐으니까. 다른 걸로 받아도 돼요?”

“그럼. 뭘 받고 싶니?”

공작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은 어린이가 영지 하나를 사 달라고 하려 했다고 고백한 거니 나름 놀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그저 태연한 태도였다. 에이, 재미없어.

하지만! 이 말에도 태연할 수 있을까?

“아빠라고 부르고 싶어요.”

“…….”

“그래도 돼요?”

씩 웃으며 뱉은 말에, 마침내 공작의 평정이 깨어졌다.

그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져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붉어진 눈시울을 하고 웃었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이었다.

“……당연하지.”

공작이 물기 어린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답을 돌려주었다. 예상한 답이긴 한데 그래도 좋아서 헤헤 웃었다.

“주군, 우십니까?”

“진짜 우세요?”

이 틈을 타서 놀리려던 기사들은 공작이 대번에 표정을 바꾸고 노려보자 재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실랑이를 키득거리며 지켜보다가, 공작을…… 아니, 아빠를 향해 양팔을 활짝 벌렸다.

“진짜 가족 된 기념으로 안아 주세요!”

그에 아빠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기꺼이 나를 안아 올렸다.

당연하다는 듯 나를 감싸는 온기, 그 어깨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웃음.

아주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을 광경 중 하나였다.

-1부 完

1부 외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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