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맛있다!”
「으음.」
우여곡절 끝에 닭 꼬치를 쟁취해 낸 테레지아는 입술에 빨간 소스를 묻힌 채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와 대조적으로, 발레리안은 테레지아의 권유에 못 이겨 닭 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신음을 흘렸다. 창백한 얼굴의 그가 아이의 입을 손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 주며 생각했다.
‘……이것보단 딸기 케이크가 낫지 않나?’
이렇게 맵고 짠 것보다는 차라리 단 게 더 맛있지 않나.
하지만 아까 테레지아가 흥미진진하게 연극을 관람하는 그를 보며 느꼈던 것처럼, 그 또한 아이라도 맛있다고 하니 되었다는 마음이었다.
테레지아가 닭 꼬치를 다 해치웠을 때쯤, 그들은 호숫가에 도착했다. 발레리안은 은화 몇 개를 지불하고 배를 빌렸다.
「조심해서 올라가렴, 테리.」
“네!”
무사히 배에 오른 후, 발레리안은 크게 힘들이지 않으며 노를 저었다. 배는 매끄럽게 호수 중앙을 향해 나아갔다.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테레지아는 호수를 동동 떠다니는 작은 배들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앗, 저게 그건가 보다. 그…… 조각배!’
같이 만들고 싶었는데 말이지. 이름 모를 소년을 따라갔던 걸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좀 아쉽네.
테레지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조각배를 빤히 응시했다. 잘 보니 하리엔의 이름이 적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손을 뻗었다.
“으엇.”
그런데 배 밖으로 상체를 내밀자마자 배가 크게 휘청거리며 기울었다.
테레지아가 당황하는 동시에 발레리안이 대경해 아이의 허리를 낚아챘다.
「테리!」
“가, 감사합니다.”
「물 위는 땅과 다르니까 조심해야 해.」
“네에.”
발레리안이 한숨을 푹 내쉬며 테레지아를 바로 앉혀 주었다. 멋쩍게 헤헤 웃은 아이는 이후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덕분에 그들이 탄 배는 그 후 큰 사고 없이 호수 중앙 부근에 멈춰 섰다. 발레리안이 노 젓던 것을 멈추자 테레지아가 기대감 서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시작하겠죠, 불꽃놀이? 기대된다.”
아이가 신난 모습을 보자 발레리안의 입가에 또다시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직후 그의 입가에 서려 있던 미소가 문득 흐려졌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다른 또래들에 비해 테레지아만이 유달리 많은 일에 휘말린다고 느껴지면 착각일까.
크게는 아리에타 백작의 일, 라이넬 남작의 일. 그리고 사소하게는 건국제에서 홀로 남겨질 뻔한 것이나, 직전에 물에 빠질 뻔한 것과 같은 일들.
어찌 보면 과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 하나 겪지 않고 자라는 아이가 어디 있냐며 다들 웃어넘기겠지.
하지만…….
「테리.」
“넹?”
발레리안은 수없는 망설임 끝에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돌아보는 아이의 눈은 티끌 하나 없이 맑았다.
조금은 치기 어린 소원일지 몰라도, 발레리안은 아이의 눈에 깃든 저 빛이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길 바랐다.
「넌 정말 똑똑한 아이지.」
“……어, 네?”
「너에겐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진심이란다. 그래도…….」
테레지아는 맥락 없이 받게 된 칭찬에 얼떨떨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러나 발레리안은 부연하지 않고 다만 진심을 담아 말을 맺었다.
「나는 네가 나를, 에버딘을 위해 위험에 뛰어들지는 않기를 바라.」
라이넬 남작을 붙잡고 급히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테레지아는 분명 방에 얌전히 잠들어 있었으나 저택에는 누군가 담을 타고 넘은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일에 대한 진실을 들추지 않겠다 결심한 것과 별개로. 또다시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그가 지금까지 지켜봐 온 테레지아라는 아이는 분명 뛰어들려 할 것이다.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발레리안은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 감각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할 수만 있다면 아이를 온실에 가두어두고 좋은 것만,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듣게 하며 그리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옳지 않으니까.’
발레리안은 이제 테레지아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제가 바람막이가 되겠다고 해서 그 뒤에 얌전히 머물기만 하지 않으리란 것도.
「그러니까 혹시, 만약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꼭 내게 말해 주거라.」
“…….”
「혼자서 다 짊어지려 하지 말고. 알았니?」
그래서 발레리안은, 적어도 테레지아를 혼자 두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제 그림자 안에만 둘 수 없다면. 아이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적어도 든든히 옆을 받쳐 주는 존재라도 되고 싶었다.
‘부모니까, 보호자니까’라는 이유 이전에, 그저 테레지아를 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이 그러했으므로.
“어…….”
테레지아는 마음이 묘하게 술렁이는 탓에 쉽사리 대답을 뱉지 못하고 눈만 깜박였다.
‘또 그때랑 비슷한 느낌.’
테레지아가 한 손으로 가슴께를 꾹 움켜쥐었다.
셀레나의 시신을 찾고 저택으로 돌아갔을 때. 공작이 진심으로 걱정했다 말해 줬던 그때처럼 마음이 찡하고 울렸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직은 당신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다. 적어도…….
‘저주를 풀 때까지만.’
내가 당신에게 떳떳하게, 모든 사실을 밝힐 수 있을 때까지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공작님.
“네, 그럴게요.”
테레지아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을 삼키며 해사하게 웃었다. 그 대답에 발레리안도 비로소 마주 웃음 지었다.
펑-!
때마침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우와.”
알록달록 하늘을 수놓는 불꽃의 향연에, 테레지아가 상기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만큼 가까운 곳에서, 이렇듯 성대한 불꽃놀이를 보는 건 처음이라며 아이는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발레리안도 테레지아를 따라 꽃이 피어난 밤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아름답네.’
어쩐지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불꽃놀이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가슴 속 한구석에 남은 불안을 조용히 잠재울 만큼.
* * *
다사다난했던 건국제 다음 날.
황실친위대 기사들은 에버딘 저택 앞에 세워진 휘황한 마차 앞뒤로 깍듯이 열을 맞추어 섰다.
황태자인 칼리오스가 수도로 귀환하는 길을 호위하기 위해서였다.
‘얌전하네? 그렇게 가기 싫다, 싫다 노래를 부르더니.’
나 또한 칼리오스를 배웅하기 위해 공작, 제르비스와 함께 정문 앞에 나와 있었다.
의외인 점은, 어제 낮까지만 해도 돌아가기 싫다며 투덜거리던 칼리오스가 더없이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평소답지 않게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조심히 가, 카오.”
뭐,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까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배웅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더니 자꾸만 하품이 나왔다. 하암 입을 벌렸다가 닫으며 대충 손을 휘저어 주었다.
내 주요 관심사는 칼리오스가 앞으로도 쭉 에버딘에 우호적인 입장으로 남느냐, 아니냐니까. 거기에 조금 더하자면 <투명 신사 이야기>의 열혈 팬이자 고객이니 잘해 주자는 것 정도?
내 곁에 서 있던 제르비스도 엷은 미소를 띤 채 상냥히 인사를 건넸다.
“살펴 가시길. 기왕 가시는 거, 영영 돌아오지 않으시면 더 좋겠고요.”
“제리…….”
네가 칼리오스를 안 좋아한다는 건 안다만, 쟤가 저래 보여도 나름 황태자란다? 그러니 네가 에버딘 가문의 손님으로 있는 지금은 조금만 자중해 주련?
그런 뜻을 담아 제르비스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눈을 데굴 굴리더니 입을 닫고 시선을 피했다.
사과할 생각은 없지만 더 말을 얹지도 않겠다는 뜻이구나. 그래, 그게 어디냐.
공작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자그맣게 한숨을 쉬며 검지와 엄지로 미간을 꾹 눌렀다.
어째 제르비스와 칼리오스가 오기 전보다 조금 늙어 보이는데, 착각이겠지? 물론 그래 봐야 여전히 물에 젖은 꽃처럼 청초하긴 하다.
곧 피곤한 기색을 추스른 공작이 칼리오스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폐하께도 전하께서 수도를 향해 출발하셨다 연통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무사히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아. 그간 고마웠습니다, 공작. 덕분에 편히 머무르다가 갑니다. 아바마마께도 잘 말씀드리죠.”
그제야 고민에서 빠져나온 것인지, 퍼뜩 표정을 바꾼 칼리오스가 마주 인사했다. 싱글 웃으며 공작과 악수를 나눈 그가 돌연 나를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테리.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뭔데?”
뭔가 궁금한 게 있었다면, 물어볼 기회는 많았을 텐데. 하필 떠나기 직전에?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러자 성큼 다가온 칼리오스가 고개를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혹시 어제 길 잃었을 때. 누구랑 같이 있지 않았어?”
“어?”
갑작스러운 물음에 순간 마음이 뜨끔했다. 혹시 내가 누굴 따라갔다는 걸 눈치챈 건가?
“……아니. 그냥 혼자 길 잃어버렸던 게 전부야.”
나는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제도 느꼈지만, 왠지 가면 쓴 소년과의 일은 누군가에게 말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연극에서도…… 요정의 존재를 누군가에게 알리는 순간, 요정은 사라져 버린다고 했으니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생각하기에도 상당히 근거 없는 믿음이었지만, 굳이 말해야 할 이유도 없지. 말하든 말든 내 맘이다.
“하긴, 그럴 리가 없나.”
다행히 칼리오스는 금세 수긍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며 뭔가를 중얼거렸는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의 주의를 돌릴 겸, 상당한 진심을 담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도 돌아가도 나 잊으면 안 돼. 잊으면 화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