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에이. 이런 어린아이를 두고 무슨.’
기분이 조금 미묘하긴 했지만, 주인은 이내 고개를 내저어 상념을 지워 냈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트를 내어주었다.
“규칙은 같습니다. 바로 시작하셔도 되고, 거리감을 익힐 겸 연습용 다트 하나를 요청하셔도…….”
“아뇨, 어깨너머로 다 파악해 뒀어요. 바로 도전하겠습니다!”
주인은 나름 테레지아가 일행 중 제일 허약해 보이기에 일말의 친절을 베풀려던 것이었으나, 소녀는 단호히 거절하고는 야무지게 다트를 손에 쥐었다.
입술을 앙다물고 눈을 반짝이는 귀여운 모습에서 어린아이 특유의 치기가 엿보였다. ‘나는 연습 같은 거 안 해도 전부 맞힐 수 있어!’, 뭐 이런 거.
‘뭐, 그럼 나야 좋지.’
연습조차 하지 않고 도전하겠다면 4개 이하를 맞춰도 자연스럽게 보일 테니까. 주인은 표정 관리를 하며 줄 끝을 손가락에 단단히 감았다.
휙-!
테레지아는 호쾌한 동작으로 다트를 던졌다. 날아가는 모양새와 궤적을 보아하니 이변이 없다면 풍선을 맞출 듯싶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이변이 없다면, 말이다.
‘지금이다.’
주인은 다트가 풍선에 근접하는 타이밍에 맞춰 줄을 슬쩍 잡아당겼다. 그러나.
펑-!
“와, 테리가 맞췄네!”
“시작이 좋아. 이대로 10개 다 터트려 버리자!”
뜻밖에도 경쾌한 소리와 함께 풍선이 터져나갔다.
아이들이 박수를 짝짝 치자 테레지아는 의기양양하게 손가락으로 코 밑을 훑고는 어깨를 들썩였다.
‘무슨……!’
분명 줄을 당겼는데!
주인은 당황한 나머지 찰나 흐트러진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줄은 여전히 손끝에 단단히 감겨 있었다.
‘……우연이겠지. 아니면 줄이 좀 헐거워졌거나. 다음에는 좀 더 세게 당겨야겠어.’
그는 애써 불안감을 무시하며 다짐했다.
하지만 그러한 다짐이 무색하게도, 테레지아의 손에 들린 다트는 던지는 족족 정확히 풍선 한가운데 꽂혔다.
펑-!
“셋!”
퍼엉-!
“넷, 다섯……. 와! 벌써 여덟 개째야!”
아이들과 대조적으로, 주인은 이제 식은땀마저 흘리고 있었다.
‘이, 이상해! 왜 다 맞는 건데!’
그는 제 동작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조차 잊고 가판대 뒤에서 미친 듯 줄을 잡아당겼으나 이상하게 풍선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줄이 끊어졌나 싶어 잠시 핑계를 대고 책장 뒤를 살폈으나 줄은 멀쩡했다. 주인은 혼란에 빠졌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주인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테레지아를 쳐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소녀는 보란 듯 순진무구하게 생글 웃었다.
그러나 청록색 눈만은 음흉한 빛을 띠고 있었다.
‘이게 바로 역지사지라는 거다, 이 사기꾼 자식아.’
이에는 이, 사기에는 사기.
지금부터 제가 당신께 특별히, 그것도 무료로 유령 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유령을 못 보신다고요?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이 멋진 광경을 못 본다니. 아쉽게 됐구먼, 총각.’
(셀레나가) 나비처럼 날아서…….
<테리, 지금!>
(셀레나가) 벌처럼 쏜다!
* * *
펑-!
열 번째 다트가 풍선에 명중하며 커다란 소리를 퍼트렸다.
“휴우.”
치열한 전투였다. 숨을 고르며 손을 탁탁 털어 보이자 곁으로 돌아오던 셀레나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트 쥐고 왔다 갔다 날아다닌 건 난데, 왜 네가 힘들어하니.>
어허, 모르는 소리. 나도 타이밍 맞춰서 자연스럽게 팔을 휘두르는 척하느라 꽤 고생했답니다.
아무튼 사기꾼 퇴치 성공이다! 등 뒤로 환호성이 쏟아졌다.
“진짜 열 개 다 터트렸네!”
“다이아몬드 팔찌 받겠다!”
“잘했어, 테리!”
앗. 그러고 보니, 사기꾼을 응징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까먹고 있었다.
풍선 10개 다 맞히면 상품으로 다이아몬드 팔찌 준다고 했는데!
‘저건 얼마일까? 보석인데, 설마 하리엔이 줬던 목걸이만큼은 비싸겠지?’
눈이 절로 초롱초롱해졌다. 주인의 손목에 걸린 다이아몬드 팔찌를 빤히 응시하자 그가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 양손을 등 뒤로 감췄다. 그리고 외쳤다.
“이, 이건 사기야!”
사기꾼이 사기당했다고 억울해하네. 거참 희한한 광경일세.
사기는 네가 먼저 치지 않았냐고 대꾸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디까지 우기나 구경해 보자는 마음이 컸다.
“사기요?”
나는 순진하다, 나는 순진한 여덟 살 어린애다. 속으로 세뇌하듯 되뇌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눈을 깜박였다. 앙증맞은 목소리는 덤이었다.
잠시 움찔한 주인이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호오, 물러설 생각은 없나 보지?
“그, 그래! 어떻게 이런 어린애가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열 개를 연달아 맞힐 수가 있어!”
“우웅, 테리는 그냥 다트가 있길래 던졌을 뿐인데……. 제가 너무 잘해서 화나신 거예요?”
“어디서 되지도 않는 핑계를!”
순진한 척 속을 긁었더니 곧장 펄펄 뛰며 반응하는 것이 웃겼다.
더 골려 줄까, 말까 고민하던 중. 험악한 얼굴로 무어라 소리치려던 주인이 별안간 주춤 뒤로 물러났다.
“헉……!”
그가 두려움에 절은 얼굴로 다급히 숨을 들이켰다.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라.’
갑자기 왜 저래?
의아함에 뒤를 돌아보자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공작님이 붙여 둔다고 했던 호위들이 사람들의 어깨 너머에서 드러내 놓고 살기를 뿌리고 있었으니까.
멀린이 슬쩍 고개를 기울이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와, 너희 가문 기사들 짱이다. 이 거리에서 살기가 다 느껴지네.”
“으응.”
저 사람들이 한때는 다그닥거리면서 연무장을 말처럼 기어 다녔다고 해도 안 믿겠지……. 그냥 조용히 있자.
“드, 드리겠습니다…… 흐윽.”
아무튼 호위들 덕분에 주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울먹이며 팔찌를 내놓았다.
가장 큰 상품을 잃었으니 앞으로 손님이 좀 줄겠지. 지금까지 사기 친 벌은 그걸로 대신 받길 바란다.
주인이 건넨 팔찌를 손목에 차고 손을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무지갯빛이 산란하는 것이 다시 봐도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나중에 보석상 가서 얼마냐고 물어봐야지.’
나는 희희낙락하며 일행과 함께 다트 노점을 벗어났다. 거기가 아니더라도 볼거리와 놀 거리는 차고 넘쳤다.
“이게 뭐야?”
“설탕물을 입혀 만든 과일 꼬치. 먹어 볼래?”
“응!”
멀린, 하리엔, 리벨이 귀족치고 굉장히 스스럼없는 성격인 데다가 평소 셋이서 여기저기 쏘다니길 좋아해서 그런지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거리를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시간은 금세 흘렀다.
고깔모자 모양을 본뜬 과자를 손가락 끝에 끼우고 하나씩 먹으며 걸어가는데, 저편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자자, 어린이 이인삼각 경기 시작까지 10분! 우승팀에게는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에서의 단체 식사권을 드립니다! 참가 신청 마감까지는 5분 남았습니다!”
다섯 손가락에 끼워 둔 과자를 한입에 몽땅 흡입하던 멀린이 우뚝 멈춰 섰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침묵하던 멀린이 고개를 홱 돌리며 물었다.
“……우리 저녁 저거로 먹을까?”
“응.”
“가자.”
“뭘 망설여? 빨리 이름 써서 내고 팀 나누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다. 망설임은 필요 없었다. 멀린, 하리엔, 리벨은 곧장 접수처로 달려갔다.
세 사람이나 갔는데 나까지 저기 합류하면 정신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제자리에 남아 있었는데, 제르비스가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입술을 뗐다.
“테리.”
“응?”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싶은 거면, 그냥 돈을 내고 가는 편이 수고도 안 들고 확실하지 않아?”
“동의하기는 싫지만, 이번만큼은 저 말이 타당하다고 보는데.”
칼리오스도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동의했다. 정작 두둔 받은 제르비스는 기분 나쁘다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지만…….
아무튼, 저 저 축제의 낭만이라곤 모르는 부우우자들 같으니.
나는 한숨을 푹 내쉰 후,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단호히 대답했다.
“원래 이런 게 축제의 묘미잖아! 하여간 이래서 부잣집 도련님들이란…….”
<최근 수익 따져 보면 네가 쟤들보다 부자일지도.>
그때 셀레나가 곁에서 중얼거렸다.
앗, 그런가? 그렇지만 난 자수성가니까 예외로 칩시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접수하러 갔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손목에 종이 띠로 만든 참가증을 걸어 주며 설명했다.
“말 그대로 두 사람이 한 팀을 이뤄서, 한쪽 발목을 묶은 채 결승점까지 빨리 뛰어가면 이기는 경기야.”
“참가자는 12세 이하 어린이들뿐이래. 아슬아슬하게 다 같이 참가할 수 있었어. 아무래도 많이 참가하는 편이 우승할 확률도 높아질 테니까!”
“그럼 이제 팀을 나눠야 하는데, 어떻게 할래?”
하리엔의 말이 끝나자 제르비스와 칼리오스가 곧장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서로를 한번 바라보고, 다시 이쪽을 쳐다보았다.
왜 저런담.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직후. 제르비스와 칼리오스가 오만상을 쓰며 눈을 질끈 감았다. 칼리오스가 차라리 죽고 싶다는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을 뱉었다.
“아메트리스 영식과 내가…… 짝을 하겠어.”
“……엥?”
뭐, 뭐야. 너희 사이 안 좋지 않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