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령 공작의 딸이 되었다(66) (66/124)

<66화>

* * *

“저기! 저기 가 보자!”

한쪽에서 색색의 풍선을 발견한 리벨이 흥분해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가 우리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한 경품 뽑기 노점이었다.

“아이고, 어서들 오세요! 풍선 다트에 흥미가 있으신가요?”

가판대 뒤로 살가운 웃음을 띤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소한 단어가 들려 고개를 갸웃했다.

“풍선 다트?”

“이런 건 처음이신가요?”

“네에.”

“그렇군요. 그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주인이 화살 깃 비슷한 것이 붙어 있는, 뾰족한 핀을 가판대 위에 우르르 늘어 두었다.

“제 뒤의 풍선들이 보이시나요?”

주인은 한 손으로 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그의 등 뒤, 천막의 안쪽 벽에는 정사각형 칸으로 빼곡한 책장이 서 있었는데, 한 칸마다 색색의 풍선이 붙어 있었다.

주인이 모든 손가락을 쫙 펴 보이더니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이 핀은 ‘다트’라는 겁니다. 룰은 간단해요. 제가 다트 10개를 드리면 여러분은 그걸 던져 풍선을 최대한 많이 터트리면 됩니다. 6개 이상부터 상품을 드리고 있죠.”

“상품은 뭐가 있어요?”

“이쪽에 놓인 막대 사탕부터 시작해서 인형, 오르골…….”

가판대 한쪽에 ‘상품’이라고 적힌 것들을 보여 주던 주인이 들뜬 어조로 제 손목을 척 치켜들었다.

“마지막으로 풍선 10개를 전부 터트리시면, 이 다이아몬드 팔찌를 드립니다!”

주인의 손목에는 보석을 줄줄이 엮어 만든 팔찌가 걸려 있었다. 그가 손목을 살짝 뒤틀자 팔찌가 햇빛에 오색찬란하게 반짝였다.

나는 보석보다는 금화를 더 좋아하지만, 한순간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다이아몬드?”

“진짜 다이아예요?”

“이런 허접한 경품 뽑기 가게에서 다이아……?”

하지만 리벨, 하리엔, 멀린은 뭔가 찝찝하다는 듯한 기색이었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어설프게나마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저런 빛깔을 내는 보석이 한두 푼 할 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 귀한 걸 이런 단순하다 못해 쉬워 보이는 게임의 상품으로 내걸었다고?

그러니 상식적으로는 저 팔찌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주인은 당당했다. 그가 자세히 봐도 좋다며 몸을 기울여 우리 쪽으로 손목을 늘어트려 주었다.

“놀랍게도 진짜 다이아몬드랍니다. 보십시오, 이 찬란한 광채를!”

우리는 사양하지 않고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며 팔찌를 구경했다.

“……흠.”

“가짜는 아닌 것 같은데?”

“무슨 근거로?”

황태자 수업 중에는 보석 감별도 있나? 그런 생각에 의아하게 묻자, 칼리오스가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대꾸했다.

“이렇게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드는 기술이 생겼다면 내가 못 들었을 리가 없으니까.”

“…….”

오…… 완전 재수 없는데…….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속으로 감탄하는데, 표정에 드러난 건지 칼리오스가 움찔하며 제 발 저렸다.

“뭐, 뭐야. 왜 그렇게 보는 건데!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네에네에. 고오귀하신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믿어야죠.”

“놀리지 말라니까! 그리고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으면서 왜 갑자기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건데?!”

칼리오스가 볼을 붉게 물들이며 펄쩍 뛰었다.

그 모습이 웃겨서 우리끼리 그를 놀리고 있자니, 주인이 제 존재를 알리듯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아무튼…… 이게 실제로 해 보면 은근 다 맞히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통 큰 상품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아차, 설명 듣는 중이었지. 주인의 목소리에 뒤늦게 뭘 하고 있었는지 상기해 내고 얌전히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 경청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설명은 이쯤이면 됐다 싶었는지 그가 일행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래서, 누가 먼저 도전하시겠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오래 설명해 줬는데 한 사람도 참가하지 않는다면 재미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까지 않아도, 아이들의 눈에는 이미 의욕이 가득했다. 일행이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저요!”

“저도요.”

“흠, 나도 해 볼까.”

“순서부터 정하자, 얘들아.”

하리엔의 말에 따라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했다. 나는 마지막이었다.

“좋습니다, 좋아요. 어린이 손님들은 여기 발판 위로 올라가서 던지시는 게 더 쉬울 거예요.”

여섯 명이 전부 참가하겠다고 하니 신이 났는지, 주인은 다시 사람 좋은 인상으로 돌아와 발판까지 내어주었다.

첫 도전자는 리벨이었다.

“거리가 조금 있긴 하지만, 6개 정도야 쉽지. 간다!”

리벨은 팔을 빙빙 돌리더니 망설임 없이 다트를 던지기 시작했다.

펑-! 펑-! 펑-!

어려울 거라던 주인의 말과 달리, 그녀는 처음 세 번을 연달아 풍선 맞히기에 성공했다.

“뭐야, 쉽잖아?”

리벨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앞선 세 번의 성공은 초심자의 운이었던 듯, 네 번째 시도부터는 명중률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살랑-

“아! 아깝다!”

다트의 촉이 풍선에 닿기 직전. 미풍이 불었는지 풍선이 살짝 흔들렸다. 그 바람에 다트는 풍선이 아닌 칸막이에 명중해 버렸다.

“풍선은 워낙 가벼우니까요.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죠.”

주인은 그러니까 의외로 어렵다고 하지 않았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리벨은 이후로 어찌어찌 두 번을 더 성공시키긴 했으나, 그래도 그녀가 터트린 풍선은 다섯 개에 그쳤다.

그녀는 텅 비어 버린 손을 아쉽게 내려다보며 주인에게 물었다.

“에이……. 그래도 5개 맞췄는데, 상품은 없어요?”

“5개까지는 실패로 간주해서…… 미안합니다, 손님. 다음 분 올라오시죠.”

리벨이 시무룩하게 발판을 내려왔다. 그녀의 다음 차례인 멀린이 낄낄거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쉽다고 그러더니.”

“야, 네가 해 봐! 풍선이 은근히 잘 흔들린단 말이야!”

“아! 아야! 머리 잡아당기지 말라니까, 리벨!”

“후후, 오늘도 두 사람은 사이가 참 좋구나.”

“하리 네 눈엔 이게 좋아 보이냐?!”

……쟤네 약혼자라고 그러지 않았나?

‘사랑의 매……?’

사랑싸움이라기엔 다소 살벌한 광경을 구경 중이었는데, 옆에서 불쑥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테리.>

“앗, 셀레나. 어디 갔다 왔어요?”

<다른 데는 뭐 재밌는 거 없나 눈으로 훑고 왔지. 그런데 말이야…….>

셀레나는 굉장히 찝찝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왜 저러지?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눈을 깜박이는데, 볼을 한번 긁적인 그녀가 손가락으로 주인을 가리켰다.

<저 사람…… 아까부터 테이블 밑에 달린 줄을 슬쩍슬쩍 잡아당기는데, 뭔가 수상해.>

“엥?”

* * *

‘처음부터 이런 애들이 여섯이나. 오늘 뭔가 느낌이 좋군.’

풍선 다트 노점의 주인은 속으로 한껏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은 여전히 선량했다.

휙-!

제리라 불리던 아이가 아이답지 않게 신중한 손길로 다트를 던졌다. 다트가 빠르게 공기를 가르고 나아가며 풍선을 노렸다.

주인은 그것을 지켜보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가판대 안쪽에 달린 줄을 살짝 잡아당겼다.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풍선을 빗겨 나가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가 줄을 당기는 것에 맞춰 풍선 몇 개가 불규칙적으로 살랑 흔들렸다. 그 바람에 아이의 다트는 또다시 칸막이를 맞췄다.

“아…….”

제리라는 저 소년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무척 조용하고 의젓한 편이었다. 그래도 아이인지라 감정을 숨기는 게 미숙한지, 그가 살짝 입술을 깨물며 분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주인이건만, 그는 시침을 뚝 떼고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누그러트렸다.

“저런, 안타깝군요. 그래도 7개라니. 일행분 중에서는 최고 기록이네요. 상품으로 인형을 드리겠습니다.”

상품이 아깝긴 하지만, 도전자들이 모조리 6개 이상 풍선을 맞추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의심받을 테니까 적당한 조작이 중요했다.

주인은 그리 생각하며 인자한 미소를 띤 채 제르비스에게 인형을 건넸다. 곁에서 뚱한 얼굴로 지켜보던 금색 고수머리의 소년이 빈정댔다.

“최고 기록이라……. 사실 아프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던 거 아닌가?”

“본인의 부족함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시죠. 테리, 이거 선물.”

그러거나 말거나. 제르비스는 칼리오스를 철저히 무시하고는 일행 중 마지막 순서로 참가하기로 한 소녀에게 인형을 건넸다.

그의 입가에는 수줍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목소리도 조금 전 소년을 상대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그러나 테레지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냐. 나한테 인형은 곰돌이로도 충분해.”

“그렇다는데? 제리, 그거 나 주라.”

“……버릴래.”

“뭐라고? 이 미친…….”

“리벨, 욕하면 안 돼.”

제르비스는 리벨이 말을 붙이자마자 싸늘하게 돌변해 중얼거렸다. 그 어마어마한 태도 전환에 목뒤를 잡고 쓰러지는 리벨을 하리엔이 다독였다.

주인은 그 우스운 상황을 관전하다가 시선을 떼어 냈다. 그가 테레지아를 향해 손짓했다.

“자, 이제 마지막 분이네요. 올라오시겠습니까?”

이 소녀는 몇 개를 맞추게 해야 자연스러워 보일까. 아무래도 다른 애들보다 확연히 왜소한 체구이니, 4개쯤 맞추게 해도 괜찮겠지.

주인이 속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그를 빤히 응시하던 테레지아가 돌연 씨익 미소 지었다.

“좋아요. 도전할게요.”

그 미소에 찰나 등줄기를 타고 오싹함이 돋아나는 듯했다면,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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