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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공작의 딸이 되었다(17) (17/124)

<17화>

“히, 히이익!”

“유, 유, 유령…….”

시민들은 활기찬 얼굴로 곧잘 돌아다니다가도 미나와 미하일, 레딘의 모습을 발견하면 너나 할 것 없이 희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중간에 마주친 아이들과 몇몇 어른은 울음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아니…….’

나는 솔직히 조금 화가 났다.

보통 사람들이 유령을 무서워하는 건 기실 당연한 일이다.

산 사람들에게 죽음 너머의 것은 생소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게 공작가의 잘못은 아니지 않나.

부당한 명령을 내린 장본인인 황제도 아니고, 정작 목숨을 걸고 지켜 낸 영지민들이 공작가의 사람들을 이렇게 괴물 보듯이 바라보는데…….

‘상처받는 게 당연하잖아.’

나는 속상한 마음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세 사람을 재촉해서 한시라도 빨리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뜨려는데, 문득 가판대에 놓여 있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저거 좀…… 괜찮으려나?

눈이 저절로 동그랗게 떠졌다. 홀린 듯 가판대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들었다.

해괴한 것을 보듯 나를 보고 있는 주인을 향해 물었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헉. 그, 뭐라고……?”

“이거, 이거, 이거. 다 합쳐서 얼마냐고요.”

주인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미간이 설핏 일그러졌다.

그는 한발 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물건들을 계산해 주었다.

“3, 3실버입니다…….”

“미나, 미나! 저 주머니 주세요!”

미나의 옷소매를 쥐고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공작이 아침 식사 자리에서 챙겨 주었던, 약간의 돈이 담긴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하나, 둘, 셋. 나는 은화를 세 개 골라 주인에게 내밀었다. 그는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굽히며 양손으로 동전을 받았다.

값을 모두 치른 후 주머니를 다시 미나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미나와 미하일, 레딘 세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세 사람 다 고개 좀 숙여 봐요.”

“……?”

“얼른!”

미나와 두 기사는 어리둥절하게 시선을 교환하다가 차례로 몸을 숙여 주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그들의 얼굴에 내가 산 것들을 씌우고, 달아 주었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세 사람의 모습을 살펴본 나는 감탄했다.

‘좋아, 좋아. 저거면 충분해.’

「……아가씨? 이게 무슨…….」

나와는 달리 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미나가 종이에 의아함의 점점점을 가득 채워 내게 내밀었다.

나는 보란 듯 활짝 웃었다.

“선물이요! 이렇게 하니까 별로 안 무서워 보이네요, 헤헤.”

미나에게는 깃털과 싸구려 반짝이 가루로 장식된 나비 모양의 흰색 가면을,

미하일에게는 칠면조 통구이의 목 부분을 잘라 거꾸로 씌워 놓은 듯한 모자를,

마지막으로 레딘에게는 수탉의 머리통 같은 복면을 씌워 주고 그 모습을 감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음, 좋아. 이제 좀 알아보기 쉽겠군. 얼마나 귀여워들?

<아, 아하하하하학! 저게 뭐야!>

<참…… 당신다운 발상이군요.>

셀레나가 허공에서 몸을 뒤집고는 깔깔대고, 릭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놈이? 나는 릭을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는 것으로 응징을 대신했다.

그사이, 새로이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미나와 두 기사의 모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극단인가……?”

“헉,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 하지 말고 똑바로 보게! 공작가 사람들이라고!”

“그, 그랬나? 그런데 저렇게 꾸며 놓아서 그런지 딱히 무섭지는 않구먼.”

“나도…….”

몇몇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며 표정을 풀자, 나머지 사람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가?’ 하며 미나와 기사들을 힐긋대기 시작했다.

시선이 모이는 것은 여전했지만, 사람들의 눈에서 공포의 기색은 한결 가셔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몇몇은 설핏 웃음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그것은 조롱이나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웃음에 가까웠기에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뿌듯하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미나에게 손을 척 내밀었다.

“가요, 미나!”

「……네, 아가씨!」

미나는 비로소 평소의 미소를 되찾고는 환히 웃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비록 장갑으로 한 겹 가로막혀 있었으나, 맞닿은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따스했다.

* * *

그 상태로 광장을 한 바퀴 돈 우리는 반대쪽 거리로 이동했다.

시장처럼 북적였던 조금 전의 거리와 달리, 이곳은 조금 더 정적이고 깔끔했다.

신기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내게 미나가 설명했다.

「이곳은 주로 옷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랍니다. 특히나 ‘문 아틀리에’라는 곳에서 만드는 드레스는 수도 귀족들도 탐낼 정도로 품질이 좋죠.」

호오, 그렇단 말이지.

나는 그 말에 눈을 반짝 빛내고는 독촉하듯 발을 굴렀다.

“그러면 거기 가 볼래요!”

「좋아요.」

미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아틀리에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종종종 걸음을 옮기자 곧 보기 좋은 규모의 가게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 어머나.”

갈색 머리카락을 깔끔히 틀어 올리고, 따뜻한 녹색 눈을 가진 여자가 종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의외라는 듯한 눈빛이었고, 두려움이나 경멸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안녕하세요!”

여자를 향해 활기차게 인사했다. 그녀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는 정중히 화답했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나요?”

대답은 미나가 대신했다. 종이에 할 말을 적은 그녀가 그것을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조심스레 내밀었다.

「에버딘 공작가에서 일하는 미나라고 합니다. 지금은 아가씨의 전담 하녀를 맡고 있어요. 아가씨께서 이곳을 둘러보고 싶다 하시어 들렀는데, 혹 실례가 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 아니에요. 자유롭게 둘러보시고, 혹 입어 보고 싶은 옷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입어 보셔도 괜찮답니다. 저는 이곳의 주인인 베스라고 해요.”

베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 미나, 두 기사와 차례로 시선을 마주하며 웃었다.

그녀의 배려 덕에 나는 속으로 사악하게 웃었다.

후후, 이렇게 되면 생각보다 더 빠르게 계획을 진행할 수 있겠어.

릭을 품에 안은 채 가게 안을 돌아다니다가, 유난히 시선을 끄는 드레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게 마음에 듭니까?>

“실제로 살 건 아니지만, 뭐……. 그런데 왜? 이상해?”

<아뇨, 그냥 당신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예쁘겠네요.>

릭은 담백한 어조로 말을 맺었다. 정말로 순수하게 그리 생각한다는 태도였다.

그 말에, 순간 움찔해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희고 동그란 정수리가 보였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나는 당황을 감추기 위해 괜스레 릭을 구박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너 혹시 나 몰래 뭐 사고 쳤니?”

<……무슨 그런 억측을?>

“그래, 됐다.”

릭은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답했고, 찰나 스쳐 갔던 당황도 곧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게 마음에 드시나요, 아가씨?”

그때 베스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작전은 지금부터다. 탈의실로 보이는 쪽 허공에 떠 있던 셀레나와 눈짓을 주고받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네! 혹시 입어 봐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헉, 안 돼!

나는 곧장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탈의실 쪽으로 발을 옮겼다.

“아뇨, 괜찮아요! 혼자 할게요!”

“네? 하지만…….”

베스는 하염없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따라왔다.

나는 탈의실의 커튼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의연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정말 괜찮아요. 저는 스스로 단추도 채울 줄 모르는 어린이가 아니니까요.”

“푸큽.”

내가 말을 맺는 순간 베스와 미나, 미하일과 레딘의 입에서 동시에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 네. 그러면…….”

베스는 왜인지 조금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미하일과 레딘이 장갑 낀 손으로 엄지를 추켜세우며 고개를 붕붕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왠지 놀리는 것 같은데. 나는 그들을 짧게 노려보고는 틈 없이 커튼을 치고 탈의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셀레나가 커튼을 뚫고 고개만 쑤욱 내밀었다.

<준비는 됐어? 직원 한 명이 곧 지나갈 거야. 셋 세고 시작한다?>

“좋아!”

셀레나는 내 대답에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다시 사라졌다.

나는 들고 온 드레스를 탈의실 벽에 걸어 놓고 바닥에 엎드려 커튼 아래로 바깥을 살폈다.

가까운 곳에서 드르륵, 하고 행거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헉, 주, 주인님! 저기 옷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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