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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공작의 딸이 되었다(6) (6/124)

<6화>

속으로 이 괴이쩍은 조합에 감탄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덧 공작의 집무실 앞에 서 있었다.

세바스찬이 더없이 정중하게 문을 두 번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공작님, 세바스찬입니다. 아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들여보내게.”

나직하면서도 낮은, 어딘지 기이한 힘이 있는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다.

세바스찬은 먼저 들어가 보라는 듯 문을 열어 주고는 옆으로 물러났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한 뒤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직후. 나도 모르게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와.’

잠시나마 아버지 역할을 할 사람에게 이런 표현이 적절한가 싶긴 했지만…….

‘진짜 예쁘게 생겼다.’

에버딘 공작, 발레리안 에버딘은 정말이지 굉장한 미인이었다.

비록 지금은 푸르스름하지만,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이마를 덮는, 단정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카락.

은테 안경 너머로 어딘지 아련한 분위기를 띠며 팔랑이는 긴 속눈썹까지.

내가 어머니를 제외하고 이처럼 아름답다고 감탄한 사람은 단연코 공작이 처음이었다.

‘아차.’

잠시간 공작의 얼굴을 보고 넋을 놓고 있다가, 어딘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의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여덟 살짜리 애가 지을 법한 표정. 여덟 살짜리 애가 지을 법한 표정.’

속으로 세뇌하듯 중얼거린 후 최선을 다해서 활짝 웃었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웠으나 배꼽 위에 양손을 모아 얹은 뒤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공작님! 테레지아 오블렌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일부러 헤헤 웃으며 공작을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반응이 없어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더니 뒤늦게 눈을 한번 깜박인 그가 깃펜을 들어 올렸다.

「반갑네, 오블렌 영애. 내 이름은 발레리안 에버딘이라고 해.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나는 굉장히 담백하고 둥그런 그의 글씨체에 한 번, 위압적이지 않으면서도 편안한 말투와 태도에 두 번 놀라 눈을 댕그랗게 떴다.

‘이런 어른은 또 처음 보네. 신기하다.’

그러나 곧 신기함을 갈무리하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최대한 세상 물정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그저 떼쓰는 것밖에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그런데요, 공작님.”

「말하게나.」

“아빠가 여기 가면 맛있는 것도 마않이 먹고, 예쁜 옷도 마음껏 입으면서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진짜예요? 오면서 봤는데 안 그래 보이던데!”

나는 무구한 어린아이의 웃음을 내보이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어떠냐, 어떠냐! 기분 나쁘지! 당장이라도 돌려보내고 싶지!

일부러 공작가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을 긁어서 내가 사치스러운 데다가 떼쟁이 먹보 어린애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어필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기대에 차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공작의 답을 기다리는데, 예상과 달리 그는 언짢은 기색이라고는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어라?’

무언가 이상했다. 그때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이 담담한 얼굴의 그가 깃펜을 들어 무어라 적더니 종이를 집어 들었다.

「영애가 원하는 만큼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이제는 내가 영애의 보호자니까.」

“어…….”

「그리고 괜찮다면, 영애를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데. 허락해 주겠나?」

지극히 담백한 얼굴로, 공작은 내게 이름을 불러도 되느냐 허락을 구했다.

나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그의 태도에 눌려 더듬더듬 대답해 버렸다.

“어, 네에. 테리라고 부르셔도, 되고…….”

넋을 놓고 웅얼거리자, 짧게나마 엷은 미소를 비춘 그가 새 종이를 들고는 내게 보여 주었다.

「그래, 테리.」

엄마가 죽고 나서는, 유령들을 제외하고 산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내 이름, 애칭.

물론 공작도 반쯤 유령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산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한마디가 유달리 눈에 새기듯 붙박이는 이유는 뭘까.

공작은 내가 멍하니 저를 바라보고 있자 의아한 듯 눈을 깜박이더니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괜찮은가? 며칠 내내 고생했으니 오늘은 이만 방으로 돌아가 쉬는 것이 좋겠어.」

“네…….”

“세바스찬.”

그는 흐린 대답을 듣자마자 목소리를 내어 세바스찬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테리가 많이 피곤한 듯하니 이만 방으로 안내해 주게. 자네도 고생 많았어.”

“제 기쁨입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그 이후, 나는 세바스찬이 조심스럽게 내민 손을 –정확히는 흰 장갑을– 잡고 집무실을 나서는 내내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여기는 정말, 이상한 곳이야…….

* * *

방을 안내받은 테레지아는 하녀의 도움을 받아 씻은 후 금세 잠이 들었다.

하녀, 미나는 행여 아이가 깰까 조심조심 뒷걸음질 쳐 방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바스찬은 문이 닫히자마자 조금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가씨는?”

“조금 전에 잠드신 걸 확인했어요.”

미나는 세바스찬 못지않게 심각한 얼굴로 그리 대답했다.

미나가 말을 마치는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수심 어린 눈빛으로 테레지아의 방문을 바라보던 세바스찬이 작게 중얼거렸다.

“대체 자작저에서 어떻게 지내셨길래…….”

그는 속에서 뭉근하게 들끓는 분노에 서늘한 목소리를 흘렸다.

‘자작저에서 아가씨를 이곳에 보내려 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텐데. 에버딘의 사정이 급한 나머지 상세히 알아보지 못하고 덜컥 받아들였군. ……내 실책이로다.’

인자한 인상의 그가 차갑게 표정을 굳히자 흉흉하다는 표정이 어울릴 정도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네 이놈-!’

처음에는, 참 씩씩하고 신기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제 또래의 아이답게 어른처럼 굴려고 하면서도 발갛게 달아오른 볼로 설렌 얼굴을 하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외투에 팔을 제대로 끼우지 못하고 어설프게 갈팡질팡하던 것도, 그저 옷의 품이 크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테레지아는 여느 귀족가에서 지낸 아이, 그것도 현재의 에버딘 공작가보다도 사정이 좋은 오블렌 자작가에서 지냈다는 아이답지 않았다.

방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던 것도.

명색이 어린아이를 둘이나 기르고 있는 자작저에서, 아이의 머리카락을 두피가 다 당겨 발개지도록 세게 묶어 놓은 것도.

몸에 지나치게 딱 맞는 옷 탓에 숨쉬기가 어려웠을 텐데도 별다른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것, 뻣뻣한 새 구두 탓에 벗겨지기 직전까지 간 발뒤꿈치까지.

아이는 ‘아이’답지 않았다.

“저는 아내가 죽자마자 숨겨 둔 정부를 저택에 들였다는 소문 들었을 때부터, 그 자작 새끼가 예사롭지 않게 쳐 죽여야 할 놈이라고 생각했어요…….”

미나는 세바스찬에 뒤지지 않을 만큼 담담하고도 서늘한 어투로 중얼거리며 이를 갈았다.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테레지아는 마냥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처럼 활짝 웃다가도 문득 경계심 어린 눈을 했다.

사소한 도움을 받는 것도 불편해하면서, 보란 듯 허리를 펴며 고개를 뻣뻣이 세우기 일쑤였다.

미나의 눈에는, 그것이 꼭 살기 위해 제 약점을 내보이지 않으려는 짐승의 발악처럼 보였다.

‘그리고…… 머리 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나는 불을 끄기 직전, 머뭇거림 끝에 그 말을 내뱉던 테레지아의 표정이 가장 진심에 가까우리라 반쯤 확신했다.

미나와 비슷하게 생각을 이어 간 세바스찬이 낮게 말했다.

“세간에는 새 부인이 두 아이를 정성으로 보살핀다더니……. 오블렌 자작가에 대해 다시 알아보아야겠군. 아가씨가 어떻게 지내셨는지 위주로.”

“네. 조사가 끝나면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꼭이요.”

“사람을 보내지. 그 전까지 자네는 최선을 다해 아가씨를 보필하게.”

“염려 마십시오.”

미나가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세바스찬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일을 발레리안에게 보고하기 위해 멀어졌다.

미나 또한 테레지아가 잠든 방문 너머에서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한 후 발소리를 죽이며 복도를 벗어났다.

그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린 것은, 달이 하늘 꼭대기에 걸렸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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