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세간에는 모르티아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인 수장이 죽어 가는 순간에 남겼다는 저주의 내용이 암암리에 떠돌았다.
에버딘, 너희를 저주한다!
너희는 하늘이 내린 신성한 임무를 방해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핏빛으로 드높은 명예는 땅에 처박힐 것이고,
사방에 가득하던 황금빛 재물은 모조리 부스러질 것이며,
종국에는 동경 가득하던 시선에 공포와 경멸만이 가득하게 될지니.
너희 죄인들은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영원히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리라!
물론, 공작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그런 수장의 목을 잘랐다고 한다.
금빛 눈을 형형히 번득이며 검을 휘두르는 모양새가 꼭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령 같았다지.
거기까지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황제야 배앓이를 조금 했겠지만, 제국민들은 익숙하게 에버딘을 찬양했고 공작과 기사단은 환대 속에 제국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날 이후, 공작을 포함한 에버딘 저택 내의 모든 이들은 유령이 되어 버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죽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스우리만치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을 지닌 채로 모습이 지워졌을 뿐.
유령이 된 이들끼리는 서로를 볼 수 있었고, 물건을 집어 들거나 옷을 걸치는 것 또한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거울에 비치지 않았다. 서로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꼭 그들이 사는 세계와 보통의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등만을 맞대고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텅 빈 허공에 옷가지와 물건들만이 소리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령들의 모습은 절로 공포심을 자아냈다.
저주로 인해 대외적인 활동이 어려워진 탓에, 공작은 외부에서 대리인을 고용해 보려고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공포에 질려 에버딘 저택에서 도망쳐 나왔다.
‘저주받았어요! 거긴 저주받았다고요!’
에버딘 공작가에 대한 소문은 나날이 험악해졌다.
사람들은 언제 에버딘을 찬양했냐는 듯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손쉽게 그들을 헐뜯었다.
‘밤마다 파티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지?’
‘물건들의 자리가 제멋대로 바뀌어 있는 것도 예삿일이래요.’
‘유령이 등을 떠민 건지 계단에서 굴러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야말로 유령 공작가구먼.’
자연히 에버딘 공작가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고,
정상적으로 영지를 돌보지 못하니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던 금화는 바닥을 드러냈으며,
사람들의 시선에는 존경이 아닌 공포와 경멸만이 가득했다.
에버딘 저택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 있는 죽음이 되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황제는 체통조차 잊고 홀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전혀 티를 안 냈다더라. 황궁 출신이라는 유령이 혀를 내두르던데?>
공작의 불행에 세상 모든 행복을 가진 것처럼 웃어 대던 황제는, 짐짓 자비로운 얼굴로 10년간 이어 가던 전쟁을 그만두겠노라 선포했다.
겉으로는 에버딘 공작가의 비극을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길어지는 전쟁에 조금씩 흔들리는 민심에 기인한 결정이었으리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속내야 어떻든, 그 후 공작은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한다는 서신을 작성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는 칩거하기 전, 혹 귀족가의 아이 중 에버딘 공작가의 후계자로 입양 보낼 아이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공작가에 대한 소문이 워낙 흉흉했기에 사생아라 할지라도 선뜻 자식을 보내겠다고 나서는 부모는 없었다.
혹 사생아가 죽어 유령이 되기라도 하면 가문에 화가 미치리라는, 다소 섬뜩한 소문 때문이었다.
그 이후 벌써 5년째였다…… 라는 것이 토미가 꼬박 하루 동안 내게 설명해 준 내용이었다.
* * *
‘입양이라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나는 단지 그들의 소문이나 악명 때문에 굳어진 것이 아니었다.
공작가의 후계자로 입양된다는 것.
그것은 곧, 엄마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 오블렌 저택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그것을 깨달은 손에 쥔 종이를 팽개치듯 놓으며 왈칵 목소리를 높였다.
“싫어요, 싫다고! 절대 안 가!”
“아니, 이년이……!”
“쫓아내겠다고 해도 절대로 안 가요! 죽어도 안 갈 거야!”
“……말로 해서는 안 들을 모양이군.”
음산한 중얼거림을 흘린 자작이 성큼 거리를 좁혔다. 내 2배쯤 되는 커다란 그의 그림자가 머리 위를 위협하듯 덮었다.
나는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때리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그까짓 손찌검, 잠깐 아프고 말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자작은 손을 올리지 않았다.
“……후. 네가 그렇게까지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구나.”
자작은 불현듯 더없이 난처한 미소를 띠며 입꼬리를 누그러트렸다.
‘어?’
뜻밖의 말에 당황해 잠시 말을 잃은 사이, 돌연 상체를 숙인 그가 귓가에 대고 뱀 같은 속살거림을 흘렸다.
“네 어미의 묘를 뒤엎어 들판에 내다 버릴 수밖에.”
그 말을 듣는 순간 본능적인 공포로 온몸이 뻣뻣이 굳어졌다.
“더해서 초상화실에 걸려 있는 그림도 치워야겠고. 이유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은 사람의 그림이라니, 불길하게, 쯧.”
자작은 정말로 더럽고 불길한 것을 만진 사람처럼 손끝을 털며 혀를 찼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단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던지라, 한발 늦게 그의 말이 이해됐다.
충격으로 인해 멍하니 정지했던 머리가 가까스로 굴러갔다.
나는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씹어 대며 이를 아드득 갈았다.
“……내가 그렇게 둘 것 같아?”
“하. 그럼 네가 뭘 어쩔 수 있단 말이지? 네까짓 게 발악한다고 해서 자작저에서 기르는 사냥개 하나라도 이길 수 있겠느냐?”
“…….”
분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 작자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내비치기 아깝다는 생각으로 눈을 홉떴다.
‘……분하다.’
너무, 너무, 분하다.
하지만 자작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유령들을 시켜서 자작을 감시하고 막는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유령도 유령 나름이다. 인간에게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유령은 그리 많지 않다.
더불어, 유령들은 대부분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멀리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자칫하다가는 이동하는 도중에 기력을 모두 잃고 소멸할 수도 있었기에 토미 또한 자작가에서 섣불리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자작이 사람을 보내어 어머니의 무덤을 헤집는다 한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이제야 좀 말귀를 알아들은 모양이군.”
자작은 내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만족스럽게 상체를 바로 했다.
그가 싸늘한 눈으로 내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출발은 내일 아침이다.”
“…….”
“방으로 돌아가면 하녀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 험한 꼴 보기 싫다면 잔말 말고 따르는 게 좋을 거야.”
자작은 그 말만 남기고는 몸을 돌려 응접실을 나섰다.
나는 그 후로도 주먹을 말아쥔 채 한참을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엄마와의 추억, 흔적, 초상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 주는 오블렌 저택의 유령들.
“…….”
돌이라도 된 것처럼 묵묵히 응접실에 서 있던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는 창밖으로 노을이 새어 들어올 무렵 입술을 앙다물며 사납게 고개를 쳐들었다.
“……좋아. 입양, 그까짓 거 가 주면 되지.”
아마도 토미가 보았다면 ‘쟤 또 이상한 생각 하네’라고 말했을 법한 얼굴로, 나는 웃었다.
“입양 가라는 말만 했지, 파양당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했잖아?”
이렇게 된 이상 제국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파양당한 아이라고 이름을 남겨 주마.
* * *
에버딘 공작, 발레리안 에버딘은 제 앞으로 올라온 서류에 적힌 이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테레지아 오블렌.
오블렌 자작가의 장녀.
그리고…….
‘……여덟 살.’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어린아이.
‘어리다.’
어려도 너무 어렸다.
잠시간 망설이던 그는 이내 발걸음을 떼어 방 한구석 긴 천으로 가려진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발레리안은 느리게 숨을 들이켜고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흰 장갑을 낀 손끝으로 천을 끌어 내린 그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거울을 확인했다.
“…….”
거울 속에는,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옷가지들만이 사람의 형태를 갖춘 채 허공에 고요히 떠 있었다.
흰 셔츠의 목깃 위로 자리한 안경만이 머리와 눈의 위치를 짐작게 했다.
‘보고 울음이나 터트리지 않으면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