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존중과 넘어갈 수 없는 선 (11)
트론은 투덜거리는 가이를 무시하고 칵테일과 와인 잔이 놓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이곳에서 가장 연륜이 있는 자는…… 저쪽의 여성인가.’
트론이 주목한 여성은 이국풍의 금색 자수가 화려하게 들어간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 머리 위에는 값비싼 보석을 잔뜩 박은 티아라가 올라가 있었다.
저 정도 재력을 가진 이는 흔치 않을 것이고, 이곳의 단골손님이라면 저 여성의 정체를 모두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솔피시언 공작부인이 도박광이라는 소리는 사실이었나 보군.”
“어차피 공작이 경영하는 도박장이라 어떻게 놀다가 파산하든 상관없으니 내버려 두는 것이겠죠. 부부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하니까요.”
“슬하에 자식도 없던가.”
“네. 솔피시언 공에게 정부가 여럿 있긴 한데, 혼외자는 없는 모양입니다.”
턱을 괴고 무언가 생각하던 트론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바로 방금 화제로 삼은 공작부인의 것이었다.
‘……어느 쪽이 되었든 몸을 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트론은 가이의 소맷부리를 살짝 잡아당겨 자신이 혼자 움직일 것임을 알렸다. 그 후 망설임 없이 솔피시언 공작부인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리따운 숙녀님. 괜찮다면 잠시 옆자리를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머나. 멋진 신사분이 와 주시니 주변이 다 환해지는 것 같군요. 얼마든지 앉으세요.”
그녀는 과장되게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이곳에서는 처음 뵙는 분 같은데, 맞나요?”
“네. 이번에 형과 함께 치롤헷으로 일주일 정도 여름휴가를 왔습니다. 이곳의 소문만 듣고 호기심에 들어왔습니다만, 촌뜨기라 주변 분위기에 감탄하는 게 고작이네요.”
“그런 것치고는 아주 여유로워 보이시는데요? 후후, 하지만 저 같은 나이 든 여자를 상대하셔 봤자 즐겁지도 않을 거랍니다. 다른 아름다운 숙녀분들도 많은데, 굳이 제 테이블로 오신 이유는 뭘까요?”
트론은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잠시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빈틈이 없는 여성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서는 얼버무리는 것보다는 정직하게 답하는 것이 나았다.
“척 보기에도 회장 내에서 이곳을 가장 잘 아시는 분 같아서요. 사교계에서는 어디를 가든 가장 연륜 있는 분과 연을 트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어머나, 호호호! 아직 젊은 청년이 제법인걸요? 그래요, 이곳의 도박장을 나처럼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제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저야말로 재치 있는 청년과 알게 되어 기쁘군요. 어느 가문의 자제인지 알고 싶지만…… 이곳에서 그런 질문은 촌스러운 짓이네요.”
공작부인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이름쯤은 들을 수 있겠지요. 저는 라우라라고 한답니다.”
트론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솔피시언 공작부인의 이름 그대로였다.
“아직 촌뜨기라 두려움이 많아, 가명을 대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론델이라고 합니다.”
“솔직해서 좋군요. 흐음, 그럼 론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트론은 아주 잠깐 망설였다가 짧게 답했다.
“……편하신 대로.”
“좋아요, 론. 그럼 조금 후에 시작되는 레이스는 나와 함께 가도록 해요. 그 전에 여흥으로 다른 보드게임이라도 즐겨 볼까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트론은 바로 따라 일어나 나무랄 데 없는 포즈로 그녀를 에스코트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가이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하여간 왕자님은 본인이 즐겁지 않은 일도 지나치게 완벽하게 해내신다니까.’
트론이 가장 큰 물주를 잡아 정보를 캐낼 모양이니, 자신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가이는 왁자지껄한 청년 그룹으로 이동했다.
***
마그달리사 별저에서 지내는 엘피의 차림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화려했다.
아무래도 처음 방문했을 때 입었던 옷이나 화장 스타일이 그녀의 취향이라고 생각했는지, 하녀들의 몸단장이나 가져온 드레스가 모두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예쁘게 차려입어도 할 일이라고는 루베인과 수다를 떠는 것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외출했던 딜이 돌아왔다.
“쿠일로스 영애, 저희 루베인 돌보느라 힘드시죠? 철이 없는 녀석이라.”
“천만의 말씀을요. 루베인이야말로 저같이 재미없는 사람이랑 놀아 주느라 지루하지 않은지 걱정되어요.”
“전혀 안 그래! 그리고 오빠도 차암. 엘레나 앞에서 나 좀 그만 깎아내려.”
루베인이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다.
“그래그래, 우리 루베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아름답지요.”
“또 놀린다!”
엘피는 사이좋은 남매의 모습을 보고 후후 웃었다. 딜은 엘피를 보고 미안한 듯 말했다.
“영애께는 죄송합니다만, 내일 저와 루베인은 솔피시언 공작가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손님을 홀로 두는 무례, 모쪼록 용서해 주시길.”
“전혀 신경 쓰실 일 아니세요. 저야말로 불청객이 너무 뻔뻔하게 구는 것 아닌지 염려됩니다. 소공작님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별말씀을요. 영애같이 아름다운 손님을 맞이할 수 있어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엘피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이렇게 칭찬이 과한 인물로는 대표적으로 가이즈카 르터바이스가 있지만, 그의 경우에는 놀려 먹을 의도거나 아니면 그냥 순수한 칭찬이었다.
이렇게 무언가 은근한 뉘앙스를 담아 어필하는 상대를 만나 본 적이 없는 엘피는 매번 당황하게 되었다.
“그, 그건 그렇고. 내일 잘 다녀오세요. 솔피시언 공작님은 훌륭한 분이시라죠.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요.”
“네, 좋은 영주시죠. 저희 영지와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긴 합니다만…….”
딜이 드물게 말끝을 흐렸다. 루베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난 마음에 안 들어. 오락 시설이야 필요한 거지만, 도박장은 사람의 혼을 갉아먹는 것 같은걸.”
“루베인, 이 녀석! 또 경솔한 소리!”
솔피시언을 깎아내리는 듯한 루베인의 발언에 딜이 당황하여 그녀를 꾸짖었다.
“죄송합니다, 철이 없는 동생이라.”
“아뇨,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도박은 좋지 않은 이미지니까요. 관광 도시다 보니 향락을 제공하려는 측면이 있겠지만요.”
“……실은 솔피시언 공이 권하여서 저도 며칠 뒤에 시찰 겸 한번 그곳에 가 보긴 해야 합니다만.”
“어, 나도 갈래. 오라버니!”
“너 방금까지 도박장 욕하던 녀석 맞냐. 그리고 공식 일정 외에 외출 금지 풀 생각 없어. 각하께서 알면 난리 날 테니까. 은근슬쩍 묻어가지 마.”
“칫…….”
엘피는 루베인을 달래듯 등을 토닥거렸다.
딜은 무언가 생각하다가 엘피를 향해 은근하게 물었다.
“아무튼, 그곳에 루베인을 데려갈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그곳도 일종의 사교의 장이어서, 파트너가 필요한 모양입니다.”
“……?”
“혹시 괜찮으시다면, 쿠일로스 영애께서 제 파트너를 맡아 주시겠습니까? 가면무도회 형식이기 때문에, 얼굴이 알려질 것을 걱정하실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엘피는 평온을 가장하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도박장에 관한 것은 트론과 가이도 조사한다고 들었지만, 마그달리사 소공작과 함께 한다면 다른 귀중한 정보를 얻을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가하게 유한마담 같은 저택 생활을 즐기는 것보다야, 뭐라도 트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는 게 나았다.
그녀는 짧게 고민하고 바로 답했다.
“제 사정 때문에 자선 파티 건을 거절했던 것도 죄송하니, 실례만 아니라면 소공작님과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딜이 밝게 웃으며 엘피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루베인이 이전에 자신을 보고 새언니 운운하며 놀렸지만, 엄청난 미모의 여동생을 둔 딜이 자신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그런 종류의 어프로치를 받아 본 적도 없고 말이야. 자의식 과잉도 아니고, 괜한 생각 하지 말자.’
엘피는 지금껏 자신에게 남성들이 접근하지 못한 이유가 트론 때문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애매한 미소로 딜에게 답했다.
***
“10배로 종료.”
트론이 카드 패를 내며 게임을 끝냈다. 뒤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탄성을 올렸다.
아슬아슬하게 완성된 고배율의 덱은 실전 게임에서 직접 목격하기 힘든 형태였다.
“호호, 처음에는 게임 요령을 몰라서 뜯어 먹히는 것 같더니. 실속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군요?”
“과찬이십니다.”
“아니에요, 저는 머리 좋은 남자를 좋아한답니다.”
솔피시언 공작부인은 부채로 입을 가리며 연신 웃음을 쏟아 냈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보좌관으로 보이는 여성이 작게 소곤거렸다.
“부인, 곧 레이스가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그렇구나. 알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트론이 곧바로 에스코트했다. 공작부인은 만족한 듯 트론의 팔을 꽉 잡으며 말했다.
“저희가 갈 곳은 귀빈석이에요. 레이스를 가장 즐겁게 볼 수 있는 자리지요.”
두 사람이 이동하기 전에, 딜러가 트론이 쓸어 담은 칩의 양을 계산해 주었다.
그 칩은 도박장의 어디에서든 쓸 수 있는 재화로서, 환금도 자유로웠다.
칩의 양은 마법으로 환산하여 입장할 때 나눠 받은 기러기 모양 브로치에 자동으로 저장된다고 했다.
공작부인은 도박장의 체계를 설명하며 덧붙였다.
“보통은 촌스러우니까 환금하는 사람은 잘 없지만 말이에요. 다들 도박을 포함하여 유희로 즐기는 거죠. 칩으로는 이 도박장과 연계된 다른 유흥 시설들이나 호텔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과연, 그렇군요.”
귀족으로 구성된 손님들은 체면을 차리며 환금을 하지 않을 것이다. 칩을 쓰더라도 같은 계열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나 가게로 흡수되니 장사로서는 손해를 보기 힘든 황금 구조였다.
“꿈을 파는 거죠. 적은 금액으로 대박을 쳐서 그 돈으로 치롤헷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가 만든 석찬을 먹고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잠을 청하며, 넘치는 보석으로 몸을 장식하는 흥청망청한 꿈을요.”
“라우라 님도 꿈을 사러 이곳에 오시는 겁니까?”
트론의 질문에 그녀는 무언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채를 쥐었다. 그러고는 매혹적인 미소를 얼굴에 올렸다.
“……글쎄요, 매력적인 남성과 일탈할 수 있는 꿈이라면 사고 싶기도 하군요.”
“저 같은 촌뜨기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군요.”
트론이 은근슬쩍 자신의 유혹을 피해 가자, 그녀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야속하기도 하셔라. 후후, 우선은 레이스를 즐기러 갈까요?”
“네, 기대되는군요.”
솔피시언 공작부인은 귀빈석을 일컬어 ‘레이스를 가장 즐겁게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칭했으나, 실제로는 레이스장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주자가 될 오리를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자신을 과시하는 용도가 더 큰 듯했다.
“실망하셨죠? 레이스를 가장 즐겁게 볼 수 있다고 해 놓고, 레이스장과 멀리 떨어져서.”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한 발언에, 트론은 살짝 놀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무엇이 즐거운지 곧 알게 되실 거예요. 자, 그것보다 어서 배당을 걸어야죠.”
공작부인은 그에게 팸플릿을 건넸다. 최근 석 달간 있었던 레이스의 승패를 정리한 내용이었다.
오리의 외견적 특징과 이름, 번호, 배율이 표기되어 있었다.
“정말 경마 같군요.”
“그 점이 묘미지요. 오리 중에서도 확실히 영리한 녀석이 있거든요. 빨리 결승 지점에 도달하면 맛있는 먹이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은.”
“……흐음.”
모든 기록을 훑어본 트론은 뒤쪽에 대기하던 도박장의 딜러에게 브로치를 내밀며 말했다.
“오늘 딴 칩을 모두 걸지. 5번 얼룩무늬 오리, ‘로쉐’에게.”
“어머나.”
공작부인이 바쁘게 부채질을 했다. 레이스에 참가하는 여덟 마리 중 배율이 세 번째로 높은 오리였다.
“기록을 보면 최근에 계속 부진했던 아이인데, 무모하시군요.”
“도박에 영리한 패 따위는 없지요. 무모한 패가 있을 뿐.”
“그도 그렇군요.”
“……라우라 님께서는 어디에 거실 겁니까?”
그녀는 유쾌한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딜러에게 일렀다.
“나도 5번 얼룩무늬 오리에게. 방금 신사분이 건 칩의 양과 동일하게.”
“저의 무모함에 어울려 주시니 감사하군요.”
“이렇게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건 오랜만이거든요.”
배팅이 끝나고, 드디어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입구에서 대기하던 오리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칸막이가 위로 올라가고, 오리들이 뒤뚱뒤뚱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이카! 너한테 걸었다! 빨리 움직여!”
“으악! 저 새끼 트랙을 역주행하기 시작했어!”
응원과 탄식, 욕지거리와 환희가 번갈아 교차했다.
트론은 턱을 괸 채 무심하게 레이스장을 내려다보았다.
“……호호,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제가 뭔가 실례라도…….”
“아뇨. 도박장에서 이렇게나 감흥 없는 사람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서요. 심지어 휴양지에서 호기심에 처음 도박장에 오신 분이 말이죠.”
“…….”
트론은 어느샌가 자신이 지나치게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행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작부인의 페이스에 휘말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당황을 티 내지 않으며 답했다.
“저희 가문의 가르침이거든요. 가장 흥분했을 때 침착함을 가장하라.”
“그렇다면 지금 흥분하고 계신 건가요? 그건 무척 가슴 떨리네요.”
이윽고 엄청난 함성이 레이스장을 울렸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승부가 난 모양이었다.
5번 얼룩무늬 오리, 로쉐의 승리였다.
“……무모함의 승리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딜러가 두 사람의 브로치를 돌려주었다. 트론은 여상하게 대답했으나, 그가 승리로 거머쥔 금액은 치롤헷의 해안가에 있는 아담한 별장 정도는 쉽게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정말로, 운뿐인가요?”
“……네.”
트론은 석 달간의 승리와 패배 패턴에서, 1∼2위였던 오리가 때때로 ‘부진해지는’ 타이밍을 짧은 시간 안에 탐지했다.
트론의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원래 1∼2위였던 오리와 하위권의 오리의 외견 특징을 뒤바꿔서 판돈을 건 이들에게 물을 먹이는 타이밍이었다.
오늘이 바로 그 주기였고, 거기에 맞춰 칩을 걸어 보았다. 승산은 70% 정도였을까. 도박치고는 그럭저럭 높은 승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신은 이 도박장에서 가장 즐거운 광경마저 관심이 없어 보이는군요.”
“가장 즐거운 광경이라 하시면……?”
“도박꾼들의 얼굴이지요.”
그녀는 오페라글라스를 들어 관객석을 둘러보았다.
친구들에게 허세를 떠느라 예상 밖의 지출로 속이 쓰려 보이는 청년, 조용히 이를 가는 중년의 숙녀, 뜻밖의 횡재에 으스대는 초로의 신사.
“이곳만큼 그 즐거운 광경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장소도 없답니다.”
“…….”
“당신은 정말 멋져요. 어쩌면, ‘특별 도박장’에 들어갈 자격이 있을지도요.”
그가 가장 바랐던 핵심에 가까운 발언에, 트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금까지 취미에도 없는 도박판을 크게 벌였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도박장은 자신들이 크게 손해를 볼 정도로 칩을 긁어 간 이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을 테니까.
더 큰 판돈이 오가는 곳으로 유혹할 가능성이 컸다.
“……호호, 하지만 그곳을 향한 입구마저 제가 안내하는 건 너무 낭만이 없는 일이군요. 당신의 역량이라면 분명히 그곳으로 들어가는 암구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글쎄요, 그렇게 엄청난 도박판까지는 저 같은 겁쟁이가 발을 들일 곳은 못 될 것 같군요.”
“겸손하시기는. 모쪼록 그때 다시 뵙게 되면 저와 함께 뜨거운 밤을 생각해 봐 주시기예요?”
“……저에게는 너무 짐이 무겁습니다.”
“정말, 끝까지 야속하셔라!”
솔피시언 공작부인은 유쾌한 웃음을 남기며 귀빈석에서 먼저 퇴장했다. 보좌관들이 여름에도 덥지 않게 가공한 얇은 모피를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트론은 무표정하게 다시 레이스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입구를 안내해 주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이미 중요한 힌트를 흘렸다. ‘암구호’가 있으면 특별 도박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일주일 정도만 머무는 자신과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는 말은 조만간 그 특별 도박장이 열릴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 힌트를 흘린 것 역시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녀는 가이와 비슷한 쾌락주의자로 보이지만, 그 속을 읽기는 어려웠다.
얻어 낸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트론은 사람들의 꿈을 뜯어먹는 마굴에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