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얼굴이에요, 몸이에요? (98/120)


98화. 얼굴이에요, 몸이에요?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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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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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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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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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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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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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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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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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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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뭐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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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얼굴 하나로 개망나니 황유라의 높은 가이드라인을 넘어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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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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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미남계. 저 양반이 그런 양반입니다. 필요하다면 그게 얼굴이든 몸이든, 이용할 건 죄다 이용하는 게 저 양반의 수사방식이죠. 아주 치가 떨려요.”

장철호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두 사람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의 이미지가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치든 일말의 관심도 없는 강현이지만, 세나마저 그 말을 믿는 눈치라 혀끝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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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설명하고. 일단, 이 증거물부터 검사기관에 넘기죠. 이 삼각형 조각의 성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머리카락에 뭐가 묻어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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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류 변호사님, 이것과 연루되어 있는 건 아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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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다면 제 머리카락도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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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거 믿습니다. 그럼 일단 이것부터 NFS(국립과학수사기관)에 넘기고, 검사 결과가 나오면 대호 그룹 황유라를 소환조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영재는 증거물들을 챙겨 재킷 안쪽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함께하겠다는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박영재는 열의에 찬 눈빛으로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음을 알렸다.

강현은 상체를 뒤로 물려 좌식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지금은 여기까지만 알려줄 계획이었다. 그러나 다음 수를 진행할 때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꽤 만족스러운 팀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려면, 그가 강현의 수사방식을 잘 따라와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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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는 이 사건은 기소조차 되지 않을 겁니다. 황유라를 소환도 하지 못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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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박영재와 달리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 강현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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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밑밥부터 깔죠. 다른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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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은 여기에 연루된 다른 사람들을 더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강현의 눈을 보며 박영재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스치는 이채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화살촉보다 날카로웠다.

괜스레 기가 눌려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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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보여드릴 게 있는데-.”

말을 하다 만 장철호는 두툼한 노란 봉투를 꺼냈다.

봉투 속에서 사진 뭉텅이를 꺼내 들고는 가장 핵심적인 몇 장을 골라내며 상 위로 늘어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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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굴비처럼 엮여있어서, 이 건 제대로 해결하면 한동안 뉴스 기사에 대문짝만 하게 실릴지도 모르겠네요. 박 검사님, 피부 관리받아야겠다.”

장철호는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 몇 장을 박영재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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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당연히 알 테고.”

사진에 찍힌 몇몇의 인물들은 눈에 익었다.

그중 가장 눈에 익은 인물은 몇 개월 전 불법 약물 투약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남자 연예인이었다.

박영재가 사진 한 장을 들고 하단에 찍힌 날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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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사이가 막역해 보이지 않나요?”

누군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차 안에서 무언가를 주고받는 사진이었다.

장철호가 사진을 한 장 더 내밀었다.

줌으로 당겨 찍은 사진 속에는 상 위에 놓인 빨간 삼각형 조각들과 비슷한 모양의 알약들이 담긴 지퍼백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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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이것도. 난리가 났어요.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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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투약이 아니라, 유통 혹은 판매책으로 의심되는 상황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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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어떻게 연예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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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돈 쓰던 가닥은 있고, 찾는 곳은 없고. 한물간 연예인의 뻔한 말로인 거죠. 뭐.”

강현과 장철호가 박영재에게 건네준 사진은 김병진 기자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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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증거들을 토대로 황유라가 불법 약물 판매에 가담했단 사실을 밝히는 게 중요합니다.”

강현의 검지가 남자 연예인이 단독으로 찍힌 사진을 콕 찍어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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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이 약쟁이부터 조져놓고 시작하는 게 일이 수월할 겁니다. 죄명은 불법 약물 유통 및 상습 투약. 아마 이런 일로 경찰서를 몇 번 들락날락한 짬이 있으니 당연히 임의제출은 거부하겠죠.”

혐의가 있는 피의자에겐 수사기관이 스스로 모발 제출을 하도록 권한다.

그러나 피의자에겐 임의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인권 보호라는 이름 아래에 있는 뭣 같은 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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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제출할 거란 희망은 꿈도 꾸지 말고, 집행유예 기간이니 구속 수사하세요. 원칙적으로.”

강현은 수사의 방향성 제시뿐 아니라 혹시나 있을 미연의 사태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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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장 신청은 되도록 새벽에 하도록. 뒤에서 수 쓸 시간 없게.”

박영재는 류강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소문의 실체를 눈앞에서 확인하고 있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체 언제 이런 증거들을, 어떤 경로로, 어떻게 입수했을까.

마약수사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잠복근무해도 찾지 못했던 ‘레드 릴리’까지 증거로 들이밀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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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가 검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은 어떤 모습으로 진행됐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검찰은 정말 아까운 인재를 스스로 내친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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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석에 앉은 강현이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는 세나를 향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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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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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요. 아까 장 실장님이 말했던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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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실장님이 말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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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니 궁금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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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강현은 좌회전 신호에 맞춰 핸들을 천천히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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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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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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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몸. 둘 중 뭘 이용했는데요?”

대뜸 던지는 말에 강현은 순간 경로를 이탈할 뻔했다.

아니다. 그런 적 없다. 장 실장이 농담한 거다, 라고 말을 하기엔 알량한 양심이 콕콕 쑤셨다.

그 또한 필요하다면 이용할 용의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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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 더 선처가 가능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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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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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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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냥 달고 다니는 거니까. 죄라고 하긴 뭣하잖아요.”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말하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는 것이 토라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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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황유라 그 여자 본 적 있는데,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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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궁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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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증거물들을 손에 넣으려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머리카락은 또 어떻게 채취했는지. 진짜 몸으로 유혹한 건지. 예를 들어 단추를 세 개 이상 풀고, 가슴 근육 보여준 건가?”

그가 먼저 말해주기 전까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멍석을 깔아주니 물어라도 봐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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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그만 머리통에 그런 질문이 가득해서 말이 없었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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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그랬다는 거 아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선배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복잡한 기분이에요.”

그녀의 질문에 콕 찍어서 얘기하자면, 직접 단추는 푼 적 없고, 상대가 푸는 걸 막지 않았을 뿐이다.

어떻게 대답해도 이상한 대답임은 분명했다.

차라리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부터 상황을 설명해주는 게 오해도 없고 깔끔할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강현은 그녀의 오피스텔 앞 거리에 비상등 깜빡이를 켜고 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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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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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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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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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세나의 입술이 맥없이 툭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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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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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이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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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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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계가 뭔지.”

강현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도대체 뭔 소리인지, 표정으로 설명을 요구하자 세나가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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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미남계를 썼는데, 얼굴이 아니라 몸을 썼고, 지금 저한테 한 것처럼 했다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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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그렇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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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금 저도 깜빡 넘어갈 뻔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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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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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면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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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는 생각이 드네.”

강현이 옅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브레이크에 올려두었던 발을 뗐다.

그게 어떤 의미를 내포한지 눈치챈 세나가 시트벨트를 꼭 쥐며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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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넘어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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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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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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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버틸지 두고 보면 알겠지.”

검은색 세단이 건물을 돌아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세나는 하얀 선으로 그려진 주차 박스에 차가 반듯하게 자리 잡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다시피 걸었다.

다리 길이가 남다른 그는 어느새 따라붙어 있었다.

세나가 뒤를 휙 돌아보자 둥근 미소를 입가에 걸친 강현이 생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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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따라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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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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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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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좀 꼬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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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안 넘어간다고 했어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내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기어이 현관 앞까지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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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말하지만, 이거 질투 아니고, 나 삐친 거 아니에요. 일 때문이니까 그랬다는 거 이해했고,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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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너 질투 아니고 삐친 거 아닌 거. 이해심이 아주 넓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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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표정은 전혀 아닌데? 지금 나 막 되게 이상한 여자로 보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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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되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애인을 바라보는 표정인데?”

생글생글. 눈가에 눈웃음이 만연한데, 자꾸만 말장난을 치는 그가 몹시도 얄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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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해. 유치해. 류강현은 진짜 유치 뽕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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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일찍 의뢰인 상담도 있으니까, 오늘은 이만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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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일 오전에 재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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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집에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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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들어가는 거 보고.”

더는 버텨봤자 말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잘 알기에 도어 록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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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열린 현관문을 붙들고 세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어차피 또 고집부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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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고.”

그런데 강현은 의외로 깔끔하게 물러났다.

이게 아닌데. 그러나 여기서 ‘정말 안 들어올 거예요?’라고 묻는 건 바보 같은 짓이란 걸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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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도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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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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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봐요.”

문이 닫힐 때까지 너머의 강현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쉬운 기분을 애써 지우며 현관문을 닫았다.

띠리릭-

도어 록이 잠기고,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혹시나 해서.

그러나 노크도, 초인종도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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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냥 갔나……?”

현관 센서 등이 꺼질 때까지 신발을 신은 채 기다렸지만, 문 너머는 고요하기만 했다.

집 앞까지 왔는데,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할 걸 그랬나?

이제 와 후회해 봤지만, 그래 봤자 강현은 벌써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세나는 풀썩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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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지. 이 못된 호랑 말코! 상여우!”

왜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는 것인지. 저조차도 제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솔직히 이해한다고 말은 했지만, 이해와 기분은 매번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다.

일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육탄공세를 하더라도 수사에 꼭 필요한 증거를 획득할 수 있다면, 저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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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른 여자가 선배의 털끝 하나라도 만지는 게 싫은걸…….”

강현만 유치해진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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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래 이렇게 질투가 많은 여자였나.”

세나는 고개를 숙이느라 앞으로 쏠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아무런 기척도 없는 현관문을 쳐다보았다.

가란다고 그냥 가냐. 류강현 천하의, 천하의, 천하의…….

마음속으로나마 그를 욕하고 싶은데 마땅히 어울리는 욕도 없다.

그때였다.

띠띠띠띠, 띠띠띠띠.

정확히 여덟 번의 기계음이 스타카토처럼 울리더니 잠금이 해제됐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류강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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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뭐 해?”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수선했던 마음이 되레 착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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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지금 제집 현관문 비번 따고 들어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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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비밀번호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세나보다 더 침착한 사람은 단언컨대 강현이었다.

어찌나 당당하게 집 안으로 들어오는지. 세나는 순간, 여기가 제집이 아니라 그의 집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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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거 주거침입인 거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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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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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당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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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야지.”

그런 고소쯤이야 애들 장난이라는 듯 강현이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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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 법률대리인이 기세나라는 사실은 잊으면 안 되지.”

여전히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세나에게 강현이 가까이 다가왔다.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그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세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무뚝뚝한 얼굴의 남자가 선사하는 달콤함은 이상하게 몇 배는 더 달게 느껴졌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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