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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무조건적인 내 편 (96/120)


96화. 무조건적인 내 편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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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제멋대로 들어와 머릿속을 휘젓는 강현을 애써 몰아낸 세나는 다시 미팅에 집중했다.

이효원은 거의 이 주 내내 이 일에 매달려있었다.

가사 전담팀에서 그녀가 맡은 주된 역할은 정보 수집과 자료 정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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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디까지 파악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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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명의로 된 재산을 전부 파악했는데, 의뢰인이 결혼 후 소유권을 이전해준 건물 말고는 없었습니다. 개인 재산이라고 해봐야 퇴직 후 수령할 연금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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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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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로 오늘 자 퀸스 홀딩스 주가로 계산하면 40억 조금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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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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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요. 이렇게 깨끗할 수 있나 할 정도로. 아, 하나 있다. 남편분이 동생한테 차를 사준 게 있는데……. 보자, 여기 있네요. 국산 SUV였어요. 가격은 육천오백만 원 조금 넘네요.”

이효원의 손동작을 따라 태블릿 PC 페이지를 넘기자, 하얀색 SUV 차량과 함께 찍힌 배가 제법 부른 젊은 여자의 사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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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축하 선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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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에 장가를 갔는데, 동생 임신 선물로 고작 오천만 원 정도의 차가 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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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결제 내역을 확인해본 결과 남편이 아니라 의뢰인이 사준 거였어요.”

이효원의 대답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만큼 자신이 조사한 자료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거였다.

경력만 조금 더 쌓인다면 장철호 실장 저리 가라 할 만큼 실력이 일취월장이었다.

세나는 이효원이 ‘조사원’이 아니라 ‘변호사’라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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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분할 명목으로 제시한 조건이 뭐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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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있는 별장 하나와 결혼 선물로 준 0.03%의 주식은 분할 대상에서 제외고, 거기에 우호 지분으로 확약서만 쓴다면 0.12%를 지급할 의향이 있다고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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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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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측에서 거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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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퀸스 홀딩스의 주식 0.15%면 재산 분할 명목으로 지급하는 액수만 해도 200억 가량인데, 그걸 거절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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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별장까지 더하면 훌쩍 넘죠.”

세나는 골치가 아파와 끙, 앓는 소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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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측에서 다른 걸 요구했나요?”

한여진도 이효원도 모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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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케이스를 수임한 지 꽤 지난 것 같은데, 아직까지 상대측 요구조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니. 고서 갈등이라고 하지만 유책 사유라고 하기엔 미흡하고. 정말 재산의 절반을 원한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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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상대측 로펌에다 서면으로 다른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회신이 없었어요.”

몇 번이나 회신을 이유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효원은 요 며칠 동안 하도 전화를 많이 걸어, 상대측 사무실의 번호란 번호는 죄다 외워버릴 지경이었다.

그녀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꽉 옥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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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소송으로 가면 안 되나요? 소송으로 가면 재산 분할이 이것보다 훨씬 줄어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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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세나의 단호한 대답에 이효원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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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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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소송을 원치 않아요. 이유는 아마도, 가진 게 많을수록 잃을 게 많기 때문이겠죠. 돈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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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권 친권까지 합의가 끝난 케이스라 이렇게 질질 끌 이유가 없는데 왜 그러는 걸까요? 절반의 재산 분할은 그쪽도 불가능하단 걸 알 텐데…….”

이효원이 답답함이 가득한 어조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세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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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에서 가장 많이 쟁점이 되는 게 양육권과 양육비고, 두 번째가 위자료. 그다음이 재산 분할인 건 맞는데…….’

재산 분할의 경우 요즘 같은 시대엔 대부분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기여도에 따라 법적으로 몇 대 몇의 분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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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권과 친권을 무기로 과한 재산 분할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세나는 턱을 괸 채 손가락으로 제 볼을 톡톡 두드리며 지난 합의 과정을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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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떠보기 위해 법정 위자료 기준에 맞춰 제시한 5천만 원에도 별다른 말도 없었고……. 하, 도대체 뭐지?’

욕심이 과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조사 결과 남편은 물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상대측이 재산 분할을 핑계 삼아 합의를 고사하는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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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석연치 않은 행동을 할 땐 분명 뭔가 있을텐데…….”

세나는 혹시나 자신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자료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지만, 문제 될 부분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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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상대측 변호인을 직접 만나봐야겠네요.”

정면 돌파를 선언한 세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팅 종료를 알렸다.

팀원들은 각각 한 손에 자신의 태블릿 PC를 들고 미팅룸을 나섰다.

세나 또한 자신의 물건을 챙겨 룸을 나서려는데, 한여진이 문을 떡하니 막고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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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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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큼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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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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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강현 변호사랑 그렇고 그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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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그런 사이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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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뭐야? 우리 나이에 입술이 오갔으면, 몸도 오가는 거. 그게 뭘 뜻하는지 몰라서 말장난하는 거야?”

세나는 ‘어휴, 이 밉상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 뒤 한여진의 팔뚝을 잡아 문 옆으로 비켜 세웠다.

딸깍,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은 후 세나는 한여진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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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봐놓고 대놓고 묻는 게 참 너답다. 보면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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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정말이야? 파트너 아니고 진짜 사귀어?!”

파트너 앞에 들어갈 단어가 무엇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지라 세나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한여진이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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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ps-, Sorry.”

그녀는 자신의 실언을 인정하면서도 궁금증은 또 못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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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2층에 방이 붙어 있으니 눈도 맞고, 몸도 맞고, 아주 경사 났네. 언제부터야? 설마 워크숍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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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 떨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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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호들갑을 안 떨어?! 대박 사건! 그 강철 심장을 어떻게 뚫은 거야? 곰탱인 줄 알았더니 부뚜막 고양이였잖아, 기세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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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사에 관심 좀 끊어주라. 정말 부탁할게.”

이 스피커를 꺼버릴 수만 있다면 두 손을 싹싹 빌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고, 그곳에서 누군가 유유히 걸어 나오는 모세의 기적 같은 일이나 다름없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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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귄 지는 얼마나 됐는데? 언제, 어떻게 만났는데? 고백은 누가 먼저 했어? 너야? 류 변호사님이야?”

따지자면 맨 처음은 류강현이 먼저 했지만, 멋도 모르고 튕겨대다 정확하게 사귀자고 고백을 한 건 지난주 금요일이고.

사귀자고는 누가 했지? 내가 질질 짜면서 했던가?

아니. 애초에 그 남자가 고백한 것도 아니고 내가 떠봤던 거였지 않나?

폭풍 같은 질문 세례에 저도 모르게 기억을 더듬던 세나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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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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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 대답이나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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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입조심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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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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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에 도는 류 변호사님 소문, 다 네 입에서 나온 거 그 사람도 알아. 그리고 너도 변호사니까 그걸로 허위 사실 유포에 명예훼손으로 고소 가능하단 것도 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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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해.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끼리.”

악의적으로 소문을 내려고 한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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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또 왜 그렇게 매섭게 뜨고 그래. 무섭게.”

그저 휴게실에서 만난 변호사끼리 직장동료에 대한 담소를 나눈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따질 필요가 있냐며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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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알아둬.”

세나는 더는 보고 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K 법무법인을 위해서도. 언제 누가 될지 모르는 소문의 또 다른 희생양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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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류강현 변호사의 법정대리인이라는 거.”

한여진은 세나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낯을 찌푸렸다. 그러나 상대의 단호한 모습에 그녀가 농담하는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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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자기 소문에 아무 관심 없는 듯 보이지만, 난 달라. 만에 하나 네 입이 류강현 변호사님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면, 동료고 뭐고 바로 네 방으로 고소장이 피융- 날아들 거야.”

입에서 나는 소리와 동시에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아래위로 교차하며 허공을 갈랐다.

마치 미사일이 날아와 꽂히듯 세나는 한여진의 가슴 정중앙에 제 손가락을 살포시 꽂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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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궁금하면 오늘도 열심히 입을 놀리러 가봐도 되고. 아, 사실 오늘 일은 소문내도 돼. 어차피 곧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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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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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한여진 변호사. 변호사면 변호사답게. 품위는 지키면서 살아야지?”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면서 자신은 여유만만한 태도. 세나가 강현에게 배운 것 중 하나였다.

바짝 조여드는 순간, 슬며시 숨통을 풀어 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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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얼굴 붉힐 일 없는 게 좋잖아?”

한여진을 향했던 총구를 거두며 세나가 해사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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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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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확연히 달라진 기세에 한여진이 침을 꼴깍 삼켰다. 얼떨결에 고개도 함께 끄덕거렸다.

미팅룸을 나와 복도를 걷는 동안 한여진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계단 앞에서 각자의 방으로 향하는 길. 그녀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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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변. 어째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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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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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유했던 것 같은데……. 뭐라 설명하긴 그런데. 암튼 좀 달라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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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냥 그 자체로 예뻐. 굳이 나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하지 마. 울고, 떼쓰고, 투정 부리는 거까지도 내 눈엔 다 예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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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 이런 거구나. 사랑을 한다는 게. 무조건적인 내 편이 있다는 거.

마음 한편이 든든해진다.

예전엔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 하고,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 되뇌기만 했는데.

남들 눈에 우아한 척, 고상한 척,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 발 구름질만 열심히 했었다.

그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본인이 얼마나 공허해졌는지는 눈치채지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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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감투 썼다고, 사람 바뀌고 그러는 거 되게 별로던데. 그런 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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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그런 쪽은 전혀 아니야.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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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그래도 한 변은 친구이자 동료니까, 혹시라도 내가 그러면 꼭 알려줘.”

세나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싱긋 웃으며 부탁하자, 한여진은 떨떠름함을 애써 감추며 그러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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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다음 상담이 있어서 먼저 올라갈게.”

한여진은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는 세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묘하게 느껴졌던 위압감이 낯설어 고개를 갸웃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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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검. 여기!”

식당 입구까지 마중 나온 세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세상 모든 풍파를 피하지도 못하고 직격으로 맞은 사람처럼 비척비척 다가온 박영재 검사가 목만 겨우 가누어 까딱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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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본 사이 얼굴은 왜 이렇게 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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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것 같아. 오늘 시간 내려고 한 이틀은 죽어라 서류만 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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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그렇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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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마. 요즘 정말 범죄와의 전쟁이 따로 없다.”

그가 목덜미를 주무르며 고개를 좌우로 스트레칭하자 섬뜩한 뼈 소리가 뚜둑, 뚜둑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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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근데 기세 변. 누굴 소개해주겠다는 거야? 여기 비싼 곳 아냐? 행여나 나한테 사건 청탁 같은 거 할 거 아니지? 김영란법 알지? 여기 밥값은 무조건 N분의 1이야.”

긴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꽉 닫힌 미닫이문을 보며 박영재가 단호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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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면 박 검. 되게 청렴결백한 정의로운 검사인 줄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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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잉. 왜 이러실까? 내가 청렴까진 아니어도 결백은 하지. 깨끗해. 몸이. 너무 깨끗해서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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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박 검도 결혼할 때가 됐지.”

세나가 위로차 가볍게 등을 두드리자, 박영재가 허, 콧방귀를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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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은 만날 사람을 소개해주고 해야 하는 말……. 어?! 혹시?! 비싼 데로 불러낸 거 보니 오늘 이거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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