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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True or Die (90/120)


90화. True or Die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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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라가 강현에게 물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눈빛이었다.

이것도 게임의 일종인 걸까, 강현은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 숨은 속내를 꿰뚫을 듯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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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소리 하면 당장 이 방에서 쫓아낼 거야.”

동시에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은 나머지의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어차피 정체를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 긴장감을 이용하기 위해 조금의 시간 차를 두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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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슬며시 벌어진 입술 새로 무심할 만큼 툭, 그들이 예상치도 못했던 단어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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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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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어려운 질문에 답을 한 것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놀라? 변호사는 이런 곳에 오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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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변호사 주제에 우리랑 같이 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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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씨, 급 떨어지게. 아님, 아버지가 뭐 대법관이라도 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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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요즘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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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라 쟤도 어디에서 변호사 한 놈 데려오더니, 지 뒤나 닦아주는 집사로 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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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으면 사람 부리는 게 낫지. 남 밑에서 어떻게 일하나 몰라.”

변호사라는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튀어 올랐다.

그들의 조롱을 제치고 황유라가 다시 한번 강현을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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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변호사가 하나 있는데, 너랑은 느낌이 많이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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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변호사가 한둘도 아니고, 그런 놈도 있고 이런 놈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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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 들어온 목적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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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했잖아?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서운 법이지. 이것저것 하다 보니 죄다 금방 시시해져서, 교묘하게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놀이문화를 경험하고 싶어지더라고.”

흔들림 없는 눈동자는 이 자리에 모여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시했다.

검은 눈동자에 일렁이는 이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를 만큼 번들거렸다.

황유라는 눈살을 잔뜩 좁히고 강현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살폈다.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 눈은 묘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숱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본 그녀에겐 오래간만에 마주하는 긴장감이었다.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찌라시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터라,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온 지 모를 놈이 놀자고 덤비는데,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근사한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대충 술이나 마시고 놀다 호텔로 올라가 실컷 갖고 놀고 싶어 발바닥이 근질거렸다.

침대에선 어떨까, 저를 얼마나 충족시켜줄까, 하는. 함께 뒹굴며 자지러지는 꼴은 어떨지. 스멀스멀 황유라의 욕망에 불이 지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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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좋아. 변호사라고 못 낄 건 없지. 쟤는 강남의 성형외과 원장, 쟤는 IT 기업 대표, 쟤는 모 항공 사주 아들. 뭐 각자 다 자기 일이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말한 황유라가 제 옆에 놓인 파우치를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강현을 힐끔 보며 웃더니 딸깍, 소리와 함께 이음새를 열었다.

황유라가 파우치 속에서 꺼내 든 것은 담뱃갑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그 아래 붉은색 삼각형 조각들이 담겨 있는 작은 지퍼백을.

순간적으로 강현의 짙은 눈썹이 움찔, 미간 사이가 급격하게 좁혀 들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듣던 거와는 다르게 순진하게 놀고들 있다 했다.

뭔가를 탐색하듯 일부러 파우치를 닫지 않고 담뱃갑을 연 황유라는 얇고 긴 담배 두 개비를 꺼내 강현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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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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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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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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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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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풋, 비웃음이 터졌다.

황유라가 재밌다는 듯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볼이 쏙 패도록 연기를 들이마신 뒤 후-, 하고 강현의 얼굴에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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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거랑 다르게 노네. 왜. 만나는 여자가 담배 피우는 남자는 싫대? 이런 곳에 들락거리는 남자는 좋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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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들락거리는지는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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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여자한테 숨기는 게 많은 남자구나? 하긴 그런 남자가 매력 있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초에서 비롯된 빨간 불씨가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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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실게임이 아니야.”

강현이 계속 말해 보라는 듯 술잔을 까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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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속에 숨은 거짓을 찾는 거지. 빈 병을 돌려 주둥이가 가리킨 사람이 술래. 술래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흥미를 끌 만한 자신의 경험담을 말해 줘야 해.”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술래의 경험담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한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면 앞에 놓인 자신의 술을 원샷. 만약 거짓이라고 생각하면 술을 마시는 대신 ‘거짓’이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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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인지 거짓인지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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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라도 거짓이라고 지목하면 술래는 뒷이야기를 더 풀어서 진실을 증명해야 해. 그리고 다시 다수결로 판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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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의 경험담이 거짓이라 판결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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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가 인원수만큼 술을 마셔야 해. 진실이라고 판단되면, 거짓을 외친 사람들이 나눠마셔야 하고.”

황유라가 반 정도 태운 담배꽁초를 술이 담긴 잔에 던져넣어 끄더니, 스트레이트 잔 여섯 개를 제 앞으로 가져와 넘치도록 술을 따랐다.

그 모습이 익숙한 다른 이들은 그녀의 앞에서 술잔을 가져가며 키득키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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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기 싫으면 아주아주 연기 잘하는 거짓말쟁이가 돼서 모두를 믿게 하든가, 진실을 말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그러니까 진실인지 거짓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상대를 속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거짓말을 일삼는 놈들을 족치는 게 일상이었던 적도 있던 강현에게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게다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표정을 숨기는 것 또한 강현에겐 일도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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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실을 말하겠답시고 시시한 이야기를 하는 머저리는 페널티도 두 배. 인원수의 두 배만큼 마셔야 해. 간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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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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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작할까?”

그녀의 말에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끈 뒤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는 강현에게 황유라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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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달라붙은 거머리들이 워낙 많아야지. 각자 조심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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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대단하게 놀려고 그러는지, 기대되네.”

강현이 짧게 조소하며 전원을 끈 핸드폰을 내려놓자, 황유라는 새빨간 입꼬리를 한껏 끌어 올렸다.

곧이어 팔을 쭉 뻗어 테이블 위에 가로로 누워있는 병의 몸통을 잡고 손목을 꺾었다.

서로를 탐색하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빈 병이 팽그르르 테이블 위에서 돌아갔다.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병의 주둥이가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앞에 멈췄다.

성형외과 원장이라는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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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도 많아서 뭐부터 얘기해야 하지?”

콧등에 걸린 무테안경을 들썩이며 남자가 비릿하게 웃었다.

한 시간 남짓 계속된 진실게임에서 나온 경험담은 형사부 시절 사건조사서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수거가 안 된 쓰레기들이 죄다 여기에 모인 것인지. 깔깔대며 영웅담인 양 더러운 진실을 쏟아내는 주둥이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죄의식은 당연히 없었고,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 경험담들을 들으며 강현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들은 죄를 짓고도 그게 죄가 되는 줄 몰랐다.

왜냐면 다 똑같은 치들이 모여 있었으니까. 누구 한 사람도, 그것이 잘못이라 말하는 이가 없었다.

과감하면 과감할수록 박수를 받았고,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법은 멀어졌다.

비틀린 욕망을 채우는 게 꼭 불법일 필요는 없을 텐데,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남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의기양양하게 경험담을 지껄여대는 놈들의 이야기 속에서 거짓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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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외침이었다.

강현은 여섯 명 중 혼자만 거짓을 외쳤다.

거짓임을 들킨 술래의 입에서 탄식이 터졌다.

그가 뭐라 항변을 해보려 입을 열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껏 풀린 눈으로 강현을 노려보았다.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알코올에, 숨만 쉬어도 취할 판국이었다.

그런 그를 약이라도 올리려는지, 강현은 친히 빈 샷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남자는 오기로라도 버티려 제 앞에 모인 술잔을 하나씩 삼키다 욱, 하고 바로 앞에 있는 얼음 통에 여태껏 마셨던 술을 몽땅 게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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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어떻게 아는 거야? 이번엔 진짜 그럴싸하지 않았어?”

잔뜩 꼬인 혀로 다른 이에게 하소연해보았지만, 이미 진작에 취한 상대는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곤 ‘나도 모르지, 이 새끼야. 잘 좀 해봐’ 하고 웅얼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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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그냥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너무 조잡해서 차마 그럴 수 없더군.”

강현이 술에 취해 쓰러진 남자의 샷 잔을 가져와 제 입에 털어 넣었다.

알싸한 기운이 목구멍을 할퀴며 지나갔다.

이렇게라도 누르지 않으면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의미도 없고, 교훈은 더더욱 없는 허세 가득한 이야기 속에서 건질 만한 것은 없었다.

이럴 거라면 굳이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한마디로 시간 낭비.

차라리 다른 쪽을 파보는 게 나을 듯 보였다. 슬슬 지루한 기색을 보이며 자리를 떠야겠다 마음먹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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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네.”

빈 병의 주둥이가 황유라를 가리켰다.

턱을 괴고 있던 손으로 술병을 가져와 강현과 자신의 잔에 한가득 술을 따른 그녀가 눈꼬릴 샐쭉 접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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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 취했고, 우리 둘만 멀쩡한데. 각자 하나씩 비밀을 알려주기나 할까? 아무도 모르는.”

이 자리에서 제대로 취하지 않은 사람은 황유라와 류강현, 두 사람뿐이었다.

바라던 바였다.

어차피 무슨 이야기가 됐든 걸리면 대충 구색만 맞춰 말할 생각이었고, 다들 취기가 흥건히 오를 때쯤 강현은 황유라에게 먹이를 던질 계획이었다.

어떤 식의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며낼까, 잠시 머리를 굴리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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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여본 적 있어?”

넓은 방이 그녀의 한마디에 적막해졌다. 강현의 고개가 천천히 모로 기울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는 식의 표정을 지어 보인 남자를 향해 황유라는 교활한 미소를 머금은 채 붉은 혀를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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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칼로 찔러본 적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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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른하게 내리깔렸던 강현의 눈꺼풀이 열리며 그 위로 짙은 음영이 드리웠다.

남자의 고요한 눈동자 속에서 흥미로운 기색을 읽는 순간, 황유라는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게임을 하는 내내 무료함으로 점철됐던 흐릿한 눈이 처음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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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구미가 당겨?”

강현은 황유라를 향해 완전히 몸을 돌려 앉았다. 그리고 팔만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었다.

먼저 집어 든 잔을 황유라에게 건넨 뒤 나머지 한 잔을 들었다.

이렇다 할 대답 대신 강현이 먼저 잔을 부딪쳐왔다.

챙-.

맑고 경쾌한 울림이 두 사람 사이를 공명했다.

잔 안에서 찰랑거리는 술을 한 모금 삼킨 강현이 나른함이 가득한 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곧장 황유라의 귓가로 고개를 가까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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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술맛이 좀 도네.”

목덜미를 스치는 숨결에 묻어난 짙은 오크 향과 차갑기만 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근사한 중저음이 되어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한껏 가까워진 거리에서 울리는 낮은 웃음소리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근사했다.

그것이 독이 든 성배인지도 모르고 황유라는 기꺼이 받아 삼켰다.

온더록스 잔 한가득 담긴 액체를 싹 비운 그녀를 보며 강현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살짝 벌어진 그녀의 아랫입술에 맺힌 물방울을 엄지로 슬며시 닦아주며 더없이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눈빛만 보아도 안다. 제게 무엇을 원하는지.

애초에 여기 온 목적이 황유라를 자극해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었으니, 그녀가 저의 성적인 매력에 끌린다면 그것 또한 기꺼이 이용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살갗이 닿는다 한들 동하지 않을 테니. 황유라에겐 제 시선을 끄는 것이 무엇 하나 없었다.

강현은 이런 여자의 손아귀에 목줄이 잡혀 낑낑대는 채성민을 처음으로 불쌍하게 여겼다.

그러나 어쨌든, 생각했던 계획보다 수월하게 일이 풀려가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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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봐. 그 이야기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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