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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고작 그런 여자 (88/120)


88화. 고작 그런 여자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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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강현이 서재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거실을 돌아보았다.

고작 하루였다. 기세나가 이 집에 머물렀던 시간은.

그런데 왜 이렇게 텅 빈 것처럼 휑하게 느껴지는지.

본래 가구가 많이 채워져 있던 공간이 아니었다.

벽에 걸린 TV와 기다란 소파 하나. 그리고 작은 테이블.

모던을 넘어 미니멀 라이프 그 자체인 공간이었는데, 갑자기 허허벌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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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났네. 벌써부터 이러면.”

혼자인 게 익숙한 삶이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삶에 깊게 뿌리를 내린 그녀가 그리워 헛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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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죄다 생략하고 제집에 들어 앉혀 매일 함께 살기를 바랐지만, 일단 허례허식이라도 격식은 갖춰야 했다.

게다가 세나가 아무렇지 않아 했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기장수 대표는 다르다.

지금이야 저에 대해 잘 모르고 결혼할 상대네 뭐니 운운한다지만, 다 알게 된 후에도 같은 마음일까?

금지옥엽 어여쁘게 키운 딸을 아비가 누군지 모를 사내에게 선뜻 맡길 부모는 없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사인도 병환이나 사고가 아니었다.

그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반대하리라.

그렇다고 이제 와 기세나를 포기할 것인가 하면,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하나의 목표를 이뤘으니, 또 다른 목표를 향한 전진만 있을 뿐.

절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모름지기 사랑이란 누군가의 반대에 부딪힐 때 더 거세지는 법이다.

기장수가 더욱 저를 필요로 하도록, 그래서 그까짓 이유론 자신을 반대하지 못하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지이이잉-.

손안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했다. 마침 기다리던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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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어차피 안 자고 있을 줄 뻔히 알았음에도 장철호는 예의상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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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보시다시피.”

강현이 마른 웃음을 흘리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열한 시가 넘은 시각.

주말 밤 장철호에게서 온 전화는 강현이 다분히 예상 가능한 용건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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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네요.”

주어는 없었지만, 누굴 말하는지는 뻔했다.

대호 그룹의 망나니 황유라.

얼마 전 모종의 사고를 치고 잠시 칩거 생활을 하던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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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모 클럽에서 컴백 환영 파티를 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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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디 국위 선양이라도 하고 왔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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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달았을 만하죠. 강원도 별장에 처박혀서 정신수양 좀 했다고 하던데.”

장철호의 어투엔 조롱기가 가득 묻어났다.

속된 말로 개가 똥을 끊겠냐고 하던데. 황유라가 정신수양을 뭐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사람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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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한 자료를 다시 살펴봤는데요. 채성민 팀장이 왜 그렇게 날이 갈수록 마르나 했는데, 파면 팔수록 불쌍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던데요? 모르긴 몰라도 스트레스성 위염 정도는 달고 살 듯 보이네요.”

그것 또한 채성민의 선택이고, 복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본인의 욕심이 한도 끝도 없어 분수에 넘치는 걸 가지려 발버둥을 친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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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까지 제가 신경 쓸 필요는 없죠. 암튼 수고하셨습니다. 위치 전송해주시고, 오늘은 그만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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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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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그렇게 붙어있었는데, 주말까지 저랑 함께 보내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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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쭈뼛대는 목소리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선뜻 와닿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한 상태가 아니기에 저를 걱정하는 것인지, 할 말이 있는 것인지. 강현은 말없이 통화 상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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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도 한 번 그런 곳에 가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물이 어떤지 구경도 하고.”

멋쩍은 듯, 침을 한번 삼키고선 우물쭈물 내뱉은 말에 강현의 눈썹이 삐뚤어졌다.

거실의 넓은 창을 통해 야경을 바라보던 강현이 나직한 음성으로 장철호의 직함을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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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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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씀하세요.”

기대에 찬 목소리엔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늦은 주말 밤. 근무시간도 아니고 가정이 있는 남자를 그런 소굴로 끌고 들어갈 정도로 양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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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멱살 잡히기 싫습니다.”

물론 장철호 실장이 아닌 그의 와이프 분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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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변호사님은 그런 데 가본 적 없어서 헤맬 텐데요. 뭘 입고 가야 할지도 모르잖습니까? 답답하게 또 넥타이 목 끝까지 메고 가실 거 아니죠? 막 각 잡은 슈트 입고. 요즘 클럽에 그렇게 가면 입밴 당해요. 되도록 세련되고 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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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밴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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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거부요. 이봐, 이봐. 이런 말도 모르니 제가 걱정이 된단 말입니다. 이젠 검사도 아니시니 공무차 방문 허용도 안 될 거고, 또 가서 어디 밭에서 뽑아온 허수아비처럼 멀뚱멀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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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실장님, 저도 드라마 보고 삽니다. 드라마 보면 다 나와요.”

강현은 지치지도 않고 자신이 필요할 거라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어필을 하는 장철호의 말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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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신다고요? 의외네요. 최근 보신 드라마가 뭡니까?”

그러고 보니 뭘 봤더라. 보긴 본 것 같은데. 퍼뜩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법률들을 지우고, 뉴스 사건들을 지우고.

강현은 이런저런 것들을 헤집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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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외계인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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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은 다 별에서 오죠. 그리고 외계인이 아니라 별에서 온 그대요, 그! 대! 아니, 몇 년 전 드라마인데, 고작 그거 하나 봤다고 다 아는 척을 하시는 겁니까? 이거 봐요. 변호사님한테는 제가 필요하다니까요! 저 어차피 차 타고 가면 변호사님 오피스텔까지 삼십 분입니다. 같이 가시죠.”

누가 들어도 제사보다는 제삿밥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이는 과장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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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이 가득한 항변 잘 들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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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한테는 제가 잘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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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제가 다른 건 다 모르겠는데 하나는 알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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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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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실장님은 클럽 입구에서부터 ‘입밴’ 당할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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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류 변호사님 배운 걸 또 이렇게 바로 써먹으시나요? 가차 없는 사람인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저한테까지 그러실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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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끊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뵙죠.”

강현은 볼멘 어조로 저를 붙드는 장철호의 통화를 냉정하게 끊어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그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장철호와 동행을 하더라도 함께 진행할 법한 일이 아니었다.

까맣게 암전된 핸드폰 화면을 보던 강현이 고개를 들어 거울 대신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확인했다.

얇은 여름 니트에 트랙팬츠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무리겠지. 귀찮은 걸음을 떼어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일할 때나 입는 정장들 사이에서 그나마 조금 가벼워 보이는 디자인의 정장 팬츠를 꺼내 입었다.

넥타이를 고르려다, 장철호 실장의 말을 상기하고 그냥 검은색 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 풀었다.

위아래로 온통 검은색이라 자신이 보기에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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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다른 셔츠로 갈아입을까 하다, 한 사람의 눈에만 들면 된다는 생각에 소맷귀를 깔끔하게 접은 뒤, 검은색 메탈 시계로 손목을 장식했다.

너무 가볍지도, 또 너무 무거워 보이지도 않게.

마지막으로 머리칼을 넘기는 대신 앞으로 살짝 늘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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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치고 방을 나오자 때마침 핸드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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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니 세훈이가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내일 본가에 가봐야 해서 데이트는 또 미뤄야겠어요. 대신 월요일 날 제가 밥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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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동생이랑 이야기 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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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도 잘 자요. 뭐 원한다면 내 꿈 꿔요. 허락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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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까지 다 해주고 마음이 참 너그럽네. 내가 무슨 꿈을 꿀 줄 알고.”

하루의 끝을 알리는 그녀의 문자가 기꺼웠다. 최근 누군가에게 들어보지 못한 잘 자라는 흔한 인사마저.

예민하게 치솟았던 신경들을 한순간에 누그러트릴 수 있을 법한 신기한 감정이었었다.

살면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감정이라 생각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기세나 그녀가 있었다.

클럽으로 향하는 길, 강현은 지난날 채성민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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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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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전화해서 뭔 개소리를 짖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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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나 말이야. 네가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건지, 이유도 모를 만큼. 순진한 건지, 풋.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나더러 도와주겠다던데, 같잖은 수준의 동정심이라 우습기 짝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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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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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해. 난 또 네가 좋다고 하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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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그딴 말 하려고 전화를 건 거는 아닐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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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딴 말 하려고 전화한 거. 하도 우스워서. 네가 선택한 사람이 고작 그런 여자라는 게. 너도 별거 없구나, 하는 감상평. 잘해봐. 네 수준 잘 알았으니까, 더는 미련 없어.”

 
그는 일부러 신경에 거슬리는 말들을 잔뜩 지껄여댔다.

채성민다운 행동이었기에 강현은 그와 통화하는 내내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단지 몹시 거슬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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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그런 여자라.”

제 인생을 시궁창 속에 말아먹고 있는 놈에겐 기세나는 고작 그런 여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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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보는 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손에 힘을 줘 핸들을 바짝 그러쥐었다. 그것이 마치 채성민의 숨통이라도 되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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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그런 여자 때문에 내가 너를 어떻게 밟아줄지, 이번 기회에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경고를 무시하고 농간질을 부린 것으로도 모자라 이렇게 친히 감상평까지 남겨주시는데, 그럼 이쪽에서도 대접 한번 거하게 해드려야지.

누구와는 다르게, 건드리면 무조건 두 배, 세 배로 물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강현의 한쪽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섰다.

강현이 도착한 곳은 신사동 사거리 유명 호텔의 지하 클럽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어두운 계단에서부터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귓전을 쾅쾅 울렸다.

강현은 불쾌한 소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바지춤에 손을 찔러넣었다.

사위를 둘러싼 사운드와 온갖 말소리가 섞인 소란스러움에 골까지 울렸다.

계단을 다 내려서 코너를 돌자, 눈앞에 들어온 장면들은 생소한 것들이었다.

3층 높이의 천장,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남녀 할 거 없이 한곳에 몰려 살을 부대끼며 펄떡거리는 꼴이, 뭐랄까……. 그물에 갓 건져 올려진 생선들 같았다.

발 디딜 곳도 없는 스테이지를 일별하고서야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황유라는 2층 VIP실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문 앞을 지키고 선 가드에게 대야 하는 코드명은 ‘레드 릴리(Red lily)’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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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지 하는군.”

강현은 짧게 혀를 찼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신종 약물이었다.

아마도 있는 집 자식들이 해외에서 암암리에 들여오는 것으로 파악, 현재 관할 검찰청의 지검장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몇 개월째 묵히고 있는 사건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가 철제 계단에 올라서자, 자욱한 연기 사이로 스며드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시큰하게 만들었다.

강현은 한 손으로 앞을 휘휘 저으며 시야를 가리는 연기를 흩트렸다.

다른 데를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새까만 정장을 입고 이 어둠 속에서 굳이 선글라스를 낀 덩치들이 있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저래서야 앞도 안 보이는데 사람 얼굴이나 구분할까 싶지만, 어차피 다른 이에게 위압감이나 주려 세워둔 이름뿐인 경호원들이었다.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문 앞으로 다가가자, 강현의 기척을 느낀 한 사내가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팍을 저지하며 막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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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초대받으신 손님이라면 코드명을 말해 주십시오.”

뭐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 모여있는 장소라고.

잠깐이나마 이 유치한 행위에 동참하는 것에조차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지만, 굳이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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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릴리.”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은 음성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강현을 막아섰던 남자는 움찔, 손을 뒤로 물리고 문 앞에서 비켜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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