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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기세나 동생 기세훈 (87/120)


87화. 기세나 동생 기세훈
202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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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세나는 멎은 줄도 몰랐던 숨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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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그것도 최상급 여우.”

이렇게 가슴이 뛰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강현은 시도 때도 없이 세나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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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러다 부정맥 오겠네. 내가 저런 남자를 이겨 먹으려고 했다니.”

쿵, 옆통수를 벽에 기대고 손끝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쪽’ 소리와 함께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가벼운 접촉이 입술 끝에 눈꽃처럼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눈웃음.

몇 번이고 마주했던 그 미소에 또 넋을 잃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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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고. 내일 일어나면 전화해.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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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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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데이트해야지? 난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그러고는 일부러 고개를 귓가로 기울여 속닥거렸다.

뜨겁게 달아오른 귓불에 살짝살짝 스치는 강현의 입술과 촉촉한 숨결은 아찔하기까지 했다.

무차별적인 그의 융단폭격에 세나의 심장이 펑 하고 터져버렸다.

한참을 멈춰있었던 것 같은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은 집 현관문을 열 때쯤이었다.

세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이대로 주저앉고 싶은 것을 간신히 버티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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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거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발견한 세나가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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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몇 신데 이제 들어와? 어제도 안 들어온 것 같던데.”

뜻밖의 인물이 거실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세나를 맞이했다.

기세훈은 어딘가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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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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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왜 안 받아?!”

다짜고짜 화를 내는 동생의 반응에 세나가 어리둥절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동생이 저렇게 언성을 높이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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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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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했는데! 받지도 않을 거면 전화는 왜 들고 다녀?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그러고 보니 전화기를 어디에다 뒀더라.

가방에 넣어 둔 채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게 기억났다.

잠깐만, 하고 가방에서 꺼내 확인을 해보니 배터리 잔량이 2% 남짓인데다 꺼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부재중 전화가 몇십 통이나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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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집에 무슨 일 있었어? 넌 왜 이 시간에 내 집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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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은 누나가 있겠지! 누나 도대체 몇 살이야? 애도 아니고! 사람 속을 이렇게 뒤집어놔야 직성이 풀려?!”

세훈은 소파에서 벌떡 얼어나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참았던 화를 쏟아냈다.

도대체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 앞서 도통 영문을 알 길이 없는 세나는 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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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아, 왜 그래. 내가 지금 좀 이해가 안 가는데. 누나가 밖에서 자고 온 게 문제야, 아니면 전화를 안 받은 게 문제야? 그게 뭐든 네가 화를 낼 이유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진정을…….”

물가에 내놓은 세 살배기 애도 아니고, 서른두 살의 성인 여성이 하루쯤 집을 비운다고 해서 무슨 대수겠는가.

독립한 지는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갔다.

하물며 언제부터 동생 놈이 저의 귀가 소식에 관심을 두었다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앉지도 서지도 못한 상태로 어정쩡하게 기세훈을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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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나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까지 했는지 알면 누나는 나한테 그런 말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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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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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누나가…….”

제 성질머리를 못 이겨 어디 다리 위에서 뛰어내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세훈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다, 주먹을 꼭 쥔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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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울어? 기세훈 네가 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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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긴 누가 울어! 화가 너무 나니까 분해서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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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네 나이 같아 보이네. 꼭 조선 시대 양반님처럼 굴더니.”

어릴 때야 멋모르고 빽빽 울었지, 언젠가부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기세훈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철이 들어버린 건 아닌지…….

그의 의젓함이 안타까워 한 번씩 신경이 쓰였었다.

세나는 한참 어린 동생이 제게 쓴소리를 퍼붓던 것도 까마득하게 잊어먹고선 픽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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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제 마음도 모르고 태평한 얼굴을 한 세나 때문에 기세훈은 나이답지 않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덕에 본연의 차분함을 되찾은 그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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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어디 있다가 오는 건데?”

세나는 ‘네가 형님이라 부르는 류강현 집에 있다 왔다.’라는 말을 삼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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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하고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어차피 관심도 없었다, 무심하게 대꾸할 줄 알았는데.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기세훈의 낯빛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어쩐지 심각해 보여 세나는 소파로 다가가 기세훈의 옆에 앉았다.

한참을 말이 없던 세훈이 세나의 얼굴을 한 번 일별한 뒤 힘겹게 말문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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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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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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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다면 절대 하지 않겠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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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느닷없이 찾아와 제가 누나의 동생이 맞냐는 물음과 함께 이유를 밝히지도 않고 무작정 약속을 받아냈던 일이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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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속 지키라고 말하러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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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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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싫어. 안 돼. 하지 마.”

단호한 어투 하며, 표정 하며. 심지가 어찌나 굳건한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번복할 수 없다, 결의에 찬 눈빛이었다.

그제야 기세훈이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한 세나의 얼굴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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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았어?”

세나의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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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 여자가 너한테까지 찾아간 거야?”

기세훈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대체 왜 그 일이 제 동생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건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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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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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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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화내지 않을 테니까 말해 봐.”

사실 지금 당장 이연화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가 욕을 한 사발 퍼부어주고 싶었다.

패륜이니 뭐니 손가락질하더라도, 제 소중한 가족까지 건드리는 건 차마 눈뜨고 참아 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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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어. 우연히. 엄마랑 아버지가 나누시는 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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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세훈아.”

세나는 아연실색한 제 얼굴을 가리려 손을 들었다.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는데 기세훈이 세나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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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피는 물보다 진한 거 아는데. 나도 잘 아는데……. 내가 이런 말 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아는데. 나는 싫어. 정말 싫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말하는 세훈의 목소리엔 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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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누나를 찾아오는 것도. 누나가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내어줘야 하는 것도 정말 너무 싫어. 그러니까 하지 마. 어리광 부린다고 생각해도 좋고, 생떼를 부린다고 생각해도 좋아. 그런데 누나 몸에 칼 대는 거 나 못 견디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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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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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그러고 싶다면, 차라리 내가 줄게. 다 검색해봤어. 간 이식은 혈액형만 맞으면 상관없다더라. 누나랑 혈액형도 같고, 나는 젊으니까 회복도 훨씬 빠를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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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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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 사람은 누나 어머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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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훈!!”

놀란 세나가 세훈의 손을 덥석 잡으며 비명에 가깝게 그의 이름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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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고, 누나보다 훨씬 건장하니까. 차라리 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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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아! 제발!”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끔찍했다.

천지가 두 쪽으로 갈라져도 제 동생의 배를 갈라 간을 꺼내야 하는 상황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딴 여자 때문에.

머릿속에 그려지는 끔찍한 상상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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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절대 그럴 일은 없어!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입 밖으로도 꺼내지 마! 두 번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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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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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하지만이고 자시고! 안 돼! 절대!”

어느새 세훈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세나와 똑 닮은 밤갈색 눈동자엔 혼란이 엿보였다.

도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말도 못 하고 속에 꾹 담아놓은 채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러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겠지.

세나는 세훈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어른인 척 굴어도 애는 애였다. 고작 17살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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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말 잘 들어. 첫 번째로. 그 여자는 내 엄마 아니야. 물보다 피가 더 진하다고? 너는 내 핏줄 아니야? 나한테는 기세훈 네가 더 소중해. 알아들어?”

세나의 품에 가만히 안긴 채로 세훈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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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여자에게 간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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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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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몰라? 누나가 그렇게 ‘효녀’ 이미지는 아니잖아? 간을 뺏으면 뺏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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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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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게 네 것이라면 차라리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서라도 그 여자를 없애버릴 거야. 이해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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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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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은 고맙지만, 이건 어른들의 문제야. 거기다 네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쓸 만한 일도 아니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넌 누가 뭐라고 하든 내 하나뿐인 동생이야. 넌 똑똑하니까 누나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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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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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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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세나는 몇 번이고 똑같은 물음을 던졌고, 기세훈에게서 ‘알았으니까, 누나 제발 그만해.’ 하는 확답을 듣고서야 그를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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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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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한테 전화부터 해. 아마 걱정하고 계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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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았어.”

세훈은 기특하다는 듯 저를 바라보는 세나의 눈빛에 겸연쩍어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다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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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까지 어디 있다 온 거야? 누나 집에 왔는데, 텅 비어 있어서 얼마나 불안해한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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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 근데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들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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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집 비밀번호야 뻔하지. 1818 218이거나, 2918 3618이겠지. 세상에 누가 비밀번호를 그런 걸로 설정하는 거야. 비번이 좀 길면 다 된다고 생각해?”

그럴 수도 있지. 2580이 아닌 게 어디냐며 잔소리 그만하라 하고 싶었지만, 일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비밀번호를 바꿔야겠다.

제 동생에게 놀림감이 되지 않으려면 조금 더 어려운 여덟 자리 숫자로. 아니, 열한 자리 숫자라면 절대 모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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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디 있다가 온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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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잘해보라고 하던 그 형님 집에서 잤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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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잘생긴 형님?? 그 형님이랑 사귀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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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놀라? 잘해보라 할 때는 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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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나 이제부터 형님을 인생의 멘토로 삼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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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네 인생의 멘토는 누나로 삼아야지. 생판 남을 왜 멘토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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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모르는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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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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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자신의 양심에 손을 얹고 자아 성찰을 해보심이 어떨까,”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나의 손이 소파에 놓인 쿠션을 집어 들었고, 그것을 그대로 기세훈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미처 머리통에 닿기도 전에 기세훈의 재빠른 방어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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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이 이렇게 폭력적이니 소인이 하는 말 아닙니까. 그 형님은 누님의 이런 성질머리는 다 알고 계시는지요?”

좀 전까지 품에 안겨 푸드덕거리던 귀여운 동생은 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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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주 잘 아신다! 너무 잘 알아서 쪽팔려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도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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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소인이 형님을 멘토로 삼는다는 건데, 이래도 이해가 안 가십니까,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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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일로 안 와?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야심한 시각. 서로를 향한 걱정에 눈물을 삼켰던 두 사람은 다시 현실 남매 사이로 돌아와 쫓고 쫓기는 난투극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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