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나 홀로 자란 소년
(83/120)
83화. 나 홀로 자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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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나 홀로 자란 소년
2022.04.16.
땀에 젖은 머리칼을 이마 위로 쓸어넘기는 손길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세나는 강현의 기분 좋은 쓰다듬음에 눈꺼풀을 찬찬히 감았다 떴다.
나른하고 몽롱했다.
온몸 곳곳에 채워진 열기도, 소중한 것을 매만지는 듯한 상대의 손길도.
달콤한 후희처럼,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팔랑거리는 세나의 속눈썹 위로 장난스럽게 입술을 달싹이던 강현이 팔꿈치를 세워 기울어진 자신의 머리를 받쳤다.
“내가 열다섯 살 때쯤이었나.”
잔뜩 잠긴 낮은 음성이 귀속을 잔잔하게 울렸다. 오랜 기억을 반추하는 듯한 시선은 세나의 어깨 너머에 닿아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늦은 여름이었음에도 매미가 목청을 드높이는 무더운 날이었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울어대는 통에 골목길이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그 소란스러움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잊히지 않는다.
좁은 골목길 안쪽 두 번째에 있는 파란색 철문.
마당이라 부르기엔 수돗가가 전부인 이 층짜리 작은 주택은 강현과 그의 어머니가 세 들어 사는 집이었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는 초입이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인지.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빨갛고 파란 불을 깜박이는 경찰차 한 대와 119 구조대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강현을 발견한 사람들의 시선이 저에게 닿았다가 금세 흩어졌다.
의아함도 잠시,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연민의 기색으로 그 이유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감이 나지 않은 건지, 아니면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던 건지. 나는 하얀 천에 덮여 들것에 실려 나오는 존재가 내 어머니라는 것을 직감했어.”
햇볕을 받아 더욱 쨍한 파란 대문이.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오는 들것이.
그 안에 담긴 무언가를 가리려 덮어놓은 새하얀 천이.
그 위로 불룩 솟은 형태가.
마치 일부러 늘어트린 영상처럼 눈에 박혔다.
때마침 무더위를 삭여주려 바람이 불었다.
강현의 눈앞을 가려주던 앞머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하얀 천 끝자락이 펄럭거렸다.
그 사이로 삐져나온 손이 축 늘어져, 바닥을 향해 툭 떨어졌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손목.
말라비틀어진 손가락.
오랜 시간 습관이 되어 엉망으로 물어뜯은 손톱.
눈을 깜빡일 틈도 없이 모든 것이 콱콱 박혔다. 뇌라는 저장공간에 지워지지 않을 만큼 깊게.
멀뚱히 서 있던 강현의 두 눈을 가려준 사람은 구급대 요원을 뒤따라 나온 주인집 여자, 이순옥이었다.
“내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도시로 상경한 순진한 시골 처녀였어.”
그런 그녀가 허름한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 그녀의 인생을 나락으로 처박는 일이 터졌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를 사내아이를 낳아야만 했거든.”
그날 이후로 그녀의 삶은 지옥이 되었다.
지독한 우울증에 정신은 점점 피폐해졌고, 몸은 삶의 의지를 잃고 쇠약해졌다.
아이를 낳은 후 밤낮없이 지속되는 악몽에 시달리던 그녀는 지우고 싶은 과거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다 결국엔 섬망증이라는 병을 얻었다.
몇 살 때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자신이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무뎌졌고, 담담해졌다.
아이는 그렇게 어른도, 아이도 되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세상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방치되었다.
“웃는 게 맑은 하늘처럼 예뻤고, 울 때는 새끼 잃은 짐승보다 더 처절한 사람이었어.”
강현은 마치 어린아이가 잠이 들기 직전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세나는 생각지도 못한 불우한 그의 이야기에 뭐라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강현의 어투가 한없이 가벼워 더 서글펐다. 그 속에 깃든 감정은 그렇지 못한 것을 알기에.
어떤 감정으로 그를 마주 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시선이 흔들렸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옅은 웃음기까지 띠고 있었다.
“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면 내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했고, 집안일을 하기도 했어. 그때마다 나는 오히려 불안했지. 그 움직임이 너무 하늘하늘해서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았거든.”
장례는 치르지 않았다. 조문객이 있을 리가 없었기에.
강현이 제대로 된 상복을 입을 새도 없이 그녀를 화장했다.
봉안당에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강현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단칸방의 보증금을 빼야 했다.
열다섯 살. 어리다면 어리고 철이 들었다면 조금은 일찍 철이 드는 나이.
강현은 집도 절도 없는 천애 고아가 되었다.
“이젠 정말 혼자 남아버렸으니까, 막연하게 보육원을 가게 되겠지 했어.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혼자서 생활했던 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었지. 나랑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있는 곳이니까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뜻밖에도 주인집 여자였던 이순옥이 강현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 당시 사십 대 중반이었던 여자는 자식도 하나 없이,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였다.
이순옥은 식당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를 대신해 남은 반찬을 건네주곤 하던 사람이었다.
한창 성장기의 배고픔과 허한 속을 라면으로 달래야 했던 강현의 끼니를 유일하게 챙겨준 사람이기도 했다.
“단순히 주인집 아줌마였던 사람이 같이 살자고 했을 때 고민도 없이 받아들였던 건, 나보다 그 사람이 더 간절해 보였기 때문이었어.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내 볼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자기와 같이 살아주겠냐고 부탁까지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처음엔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다.
열다섯 인생에 존재한 적도 없던 어른의 부재는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어머니가 죽은 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이 되면 학교에 가고,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늦은 저녁엔 아파트를 돌며 전단을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용돈을 벌었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함께 지내던 어느 날. 펑펑 울어버렸어.”
강현이 잠시 숨을 고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교복이 말이야. 일주일에 한 번씩 손빨래하는데, 언제 묻었는지도 모르는 볼펜 자국이 안 지워지는 거야. 뜨거운 물에 불려서 박박 비볐는데도 지워지지 않아서 무척 속상했어. 철은 빨리 들었어도 고작 열다섯 살이니까. 없어 보이는 건 또 싫었나 봐.”
버석거리는 웃음 끝에 그의 눈매가 오묘하게 가라앉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는데 어딘가 이상한 거야. 내 것 같지도 않고.”
단추를 하나하나 끼울수록 몸에 딱 맞게 떨어진 교복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졸업생 교복을 물려받았기에 세월의 흔적을 따라 목깃이 낡고 소매가 해진 것이 제 것이 분명한데, 태가 달랐다.
정갈한 다림질 솜씨가 듬뿍 담긴 교복 셔츠는 빳빳하게 느껴질 정도로 주름 하나 없이 곱게 펴져 있었다.
더군다나 파랗게 잉크가 번진 볼펜 자국도 온데간데없었다.
“뭐든 혼자서 다 알아서 했는데, 고작 다림질 하나, 얼룩 하나 지우지 못하는 나이였다는 걸 새삼 실감했지. 그래서 눈물이 터졌어.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손길을 간절히 바라왔다는 걸 깨달아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세나의 가슴속은 견디기 버거운 슬픔으로 가득 찼다.
아직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더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그녀의 눈시울은 시큰거릴 정도로 붉어져 있었다.
이제 서른다섯 살이 되어버린 사내는 키가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덩치도 배로 더 컸다.
그러나 그를 안아주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선배…….”
“응?”
“나 선배를 안아주고 싶어요.”
세나의 두 팔이 허공에 드리우자 그가 입술을 꾹 다물고 바람이 새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얼른요.’ 하고 그녀가 보채자, 괴고 있던 팔을 치우고 고개를 떨구었다.
포근한 가슴 위로 강현의 머리가 두 팔에 둘러싸여 폭 안겼다.
그녀의 품속은 아늑하고 부드러웠다.
고요하게 리듬을 타는 심장 소리가 자장가처럼 귓가를 간지럽혔다.
여린 몸체로 저를 안은 여인의 사랑스러움에 입가엔 절로 미소가 드리웠다.
“따뜻하다.”
맞닿은 피부 사이로 스며든 그녀의 온기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도톰한 담요에 둘러싸인 기분이기도 했고, 온수가 가득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오랫동안 텅 비어 공허함조차 느끼지 못했던 마음 한곳이 기세나, 그녀로 가득 찼다.
“가만히 있지 말고, 나도 안아줘요. 선배가 원하는 만큼 힘껏이요.”
“응.”
잘록한 허리에 팔을 둘러 그녀의 등을 단단히 받치고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슴에 얼굴이 파묻혀 숨이 막혀 죽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힘껏 안았다.
그녀의 향기에, 그녀의 체온에 강현의 마음이 몽글몽글 녹아내렸다.
“선배는 대단해요. 어떻게 그걸 견디고 살았지? 나라면 못 버텼을 거야. 잔뜩 삐뚤어져서 아마 사람 구실도 못 하고 살고 있을 거예요. 세상을 혐오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았을 거야.”
“이 여사가 대단한 거지. 생판 남인 사내아이를 데려다 키워줬으니까.”
이순옥을 친근히 ‘이 여사’라 부르는 그의 말씨엔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진짜 어르신도 대단하고, 선배도 대견스러워요. 잘 커 줘서 내가 다 고마워요.”
“어릴 때는 키가 크는 게 싫었는데.”
“왜요?”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키가 훌쩍 커버려서, 교복이 맞지 않았거든. 셔츠는 어깨가 맞지 않아 단추를 잠글 수도 없었고, 재킷은 소매가 너무 짧아져서 입을 수 없었어. 바지 기장도 발목 위에서 대롱대롱거렸고.”
맞지도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강현을 상상하자, 세나의 마음이 미어졌다.
“학교 기증품 중 남은 교복을 뒤졌는데 맞는 게 없어서 체육복만 입고 다녀야 했지. 1년만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고 대충 아무렇게나 입고 다녔는데 한날은 이 여사가 내 손을 잡고 맞춤 교복 집으로 데려간 거야.”
남이 입던 옷이 아니라 처음으로 가져본 제 교복이었다.
훌쩍 자라버린 키에 맞춰 바지 기장을 잡고, 새것의 냄새가 나는 새하얀 교복 셔츠에 팔을 꿰는 순간, 보푸라기가 없는 셔츠가 그렇게 부드럽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비쌌어. 생각보다 훨씬. 그런데 벗을 수가 없었어.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고 말하는데, 이 여사가 날 보고 활짝 웃더라. 너무 잘 어울린다고, 귀한 집 자식 같다면서 나를 안아줬어. 지금 네 품처럼 따뜻했어.”
강현은 어머니가 죽었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고, 그저 그날이 왔다고만 여겼다.
그러나 교복만큼은 이상하게도 강현의 단단한 감정선을 쉽게 무너트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우지 못했던 볼펜 자국이 흔적도 없이 지워진 날에도.
고작 1년도 입지 못할 새 교복을 선물 받았을 때도.
그제서야 알았다.
그녀가 저를 필요로 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그녀가 필요했다는 것을.
그것을 알아본 이순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그 모든 것이 보호자라는 존재가 주는 안식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엉엉,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려야 했다.
“나에겐 이 여사가 하나뿐인 가족이자, 보호자이고, 어머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