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가로등 불빛 아래서의 고백 (79/120)


79화. 가로등 불빛 아래서의 고백
20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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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지. 뭐…….”

이렇게 구질구질하고 지질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달랐을까.

어차피 끝낼 거면 그 전에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게 시간 좀 내주지.

제대로 된 변명도 사과도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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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짜 질린다…….”

자신의 헛된 이기심이 어디서 왔겠는가.

모성애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한 여자에게서 온 것임이 분명했다.

이 와중에도 류강현을 원망하고 싶은 걸 보니.

멈추었던 눈물이 또다시 차올랐다.

고장 난 수도꼭지도 아니고. 틀지도 않았는데 물이 줄줄 샌다. 이젠 닦아낼 힘도 없었다.

이곳엔 더는 보는 눈도 없을 테니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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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바닥 위로 또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묵직한 돌덩이를 이고 있는 사람처럼 목이 뻣뻣해졌다.

그녀의 앞에 마주 보고 선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속내를 알 수 없어 세나 역시 고집스레 입을 다물었다.

수 분의 시간이 지나도록 둘 사이에는 숨소리만 오고 갔다.

뭘 어쩌라고 왜 저렇게 벽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처절하게 울부짖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쏟을 대로 쏟아져 버린 감정은 주워 담아낼 방법이 없었고, 이미 벌어진 일 또한 없던 일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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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울었어?”

달래 주길 바란 적도 없지만, 고작 한다는 말이 저 말이라니.

아무리 저가 미워도 그렇지 여기까지 쫓아와서 두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까?

지독히 이기적이고 편협한 본성은 주제도 모르고 그의 말 한마디에 서운함까지 쥐어짰다.

정말 주제도 모르고…….

그래. 당신이 바라는 게 내 눈물이라면, 더 질질 짜 줄 테니까. 그만 좀 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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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계속 울 거니까 신경 끄고 갈 길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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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럼.”

그의 구둣발이 시야에서 한 발짝 벗어났다.

가란다고 진짜 가냐.

나쁜 놈. 우는 거 봐 달라는 말은 아니지만, 진짜 너무하네.

아무리 있는 정, 없는 정 다 털렸다지만, 길 가다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처연한 몰골로 울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라도 들지 않나?

진짜 재수 없어. 류강현 정말 재수 없어.

콧방울이 시큼하고 눈시울이 따끔거렸다.

눈물을 흘리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면 저는 자격 미달이었다.

그러나 다시금 터진 울음은 소리도 없이 흐느낌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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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별안간 머리 위로 떨어진 그의 낮은 탄식에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설움이 더욱 북받쳐 올랐다.

자신을 향한 실망을 직접 대면한 세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엉엉 아이처럼 소리를 내 울고 말았다.

아, 나는 어쩌자고 이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걸까.

벌써 그의 말 한마디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그가 좋아져 버렸는데, 이 마음은 이렇게도 빨리 갈 곳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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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제 나 안 좋아하잖아! 내가 싫고 미워졌잖아! 그럼 모른 척하고 갈 길 가지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내 꼴을 보고 있어. 그렇게 미워요? 그렇게 내가 잘못했어? 뭐 어떻게 무릎이라도 꿇어?”

그 서러움에 또 이렇게 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분풀이를 하고 만다.

더럽게 못나 빠진 모양새로.

아니다. 이게 아니다. 지금이라도 그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데. 흐릿한 시야만큼 정신도 오락가락했다.

세나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흉측한 제 표정을 그가 볼 리도 없지만, 죽을 만큼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젠 정말 모르겠다.

그가 아무 말 안 해도 좋으니 곁에 있어 줬으면 하면서도, 제 입에서 못된 말들이 튀어나오기 전에 빨리 떠나줬으면 좋겠다는 모순된 마음에 허우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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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양한 방법으로 나쁜 놈 만드네.”

강현이 돌연 세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몸을 숙였다. 곧이어 화단 아래 대롱 매달린 발목이 약한 악력에 의해 들려졌다.

강현은 세나의 맨발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두고, 커다란 손으로 자잘하게 달라붙어 있는 모래를 툭툭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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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흣,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행동에 눈물이 뚝 멎었다. 발바닥을 감싸는 온기가 낯설어 간지럽기까지 했다.

그녀가 발을 빼려 힘을 주자 강현은 쉽게 놓아주었다. 그리고 반대편 발을 잡아 다시 무릎 위에 올려두고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세나는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어느새 잃어버렸던 신발까지 신고 있는 제 두 발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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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고백은 더럽게 못 해.”

고요한 음성이 습기가 머문 저녁 공기를 가르고 귓바퀴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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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거 너 좀 봐달라고 고백하는 거 아냐?”

이게 어딜 봐서 고백이라는 말인지. 세나의 입술이 허망하게 벌어졌다.

이 남자의 사고방식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았다.

그보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대화가 튀어나오는 게 맞는 건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기억이 싹둑 잘려 나간 것처럼 공백이 컸다.

세나의 발에 신발을 신겨준 강현이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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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제 하나는 바뀌겠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 그저 나긋한 목소리로나마, 그가 화가 난 상태가 아니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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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나의 흑역사. 눈물 콧물 쏟아내며 했던 그 고백의 주인공이 채성민 그 새끼가 아니라 나일 테니까.”

그가 세나의 턱을 살며시 잡아 저를 향하도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짓물러 빨갛게 익어버린 그녀의 눈가를 엄지로 살살 매만졌다.

내일이면 퉁퉁 붓겠지. 오늘같이 눈물을 펑펑 흘릴 줄 알았다면 손수건이라도 들고 다니는 건데.

손으로 훔치다 그녀의 말간 뺨이 부르틀까 봐 그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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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 눈엔 너무 예뻐 보여서 흑역사는 안 되겠다.”

화내는 모습도, 우는 모습도 이렇게 예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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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나. 그러니까 똑바로 말해. 내가 뭘 해줘야 하는지.”

앞으로는 제 앞에서만 이러도록 제대로 인지시켜줘야 할 텐데. 뭐부터 해야 할까. 그전에 서러운 그녀의 마음을 먼저 달래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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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기에 건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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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내기? 그래. 내기. 선배가 네가 이긴 거로 하자며 끝낸 그 내기. 그 내기에 뭘 걸었더라.

세나는 젖은 눈을 또르르, 굴리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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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기. 네가 이기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말했어?”

저를 피하기 바빴던 남자가 이제는 제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대답을 재촉했다.

까만 눈동자는 그 어떤 미움도, 원망도 없이 깨끗하기만 해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새하얗게 질려버린 기억을 뒤적여 그 당시 상황을 더듬더듬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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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가 시키는 건 뭐든 하겠다고. 그게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더듬더듬 답을 내놓자, 커다란 손바닥이 눈물로 까슬해진 두 뺨을 감쌌다. 생긴 건 차갑기 짝이 없어 냉기만 풀풀 풍기는 주제에 안정감이 느껴지는 이 손은 언제나 따스했다.

그 온기에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이 날 만큼. 그리고 그의 체온은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물기에 촉촉이 젖은 속눈썹을 깜빡거리자 또렷해진 시야 안으로 그의 얼굴이 그제야 보였다. 입가에 미소를 은은하게 띠고 있는 류강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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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부터 해줄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둥글게 솟았던 눈썹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이윽고 축 처진 눈썹 아래 기다란 속눈썹에 물기가 송골송골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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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

세나가 강현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의아한 행동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옅게 흩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허리를 낮췄다.

허공에 떠오른 세나의 두 팔이 강현의 목덜미에 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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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게 겨우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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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단, 나 좀 안아줘요.”

강현은 자신의 팔뚝을 그녀의 허리 위로 두르고, 넓게 편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단단히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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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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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도 토닥거려줘.”

화단에 엉거주춤 기대고 앉은 세나를 가볍게 안아서 바로 옆 벤치로 이동했다.

무릎 위에 앉힌 모양새로 그녀를 끌어안은 채 등을 가만가만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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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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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흑,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해서 선배한테 상처 준 거 정말 잘못했어요. 못된 말만 해서 흣, 미안해.”

강현의 목덜미에 얼굴은 묻은 세나의 흐느낌이 짙어졌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녀는 울음을 참아보려 하는 것 같았지만, 쉬이 되지 않는지 몸을 크게 들썩거렸다.

강현은 그럴 때마다 괜찮다는 듯 긴 숨을 흘리며 그녀를 달래 주었다.

무엇이, 뭐가, 왜 이렇게 서러운지 모르겠다.

서른두 살. 누군가의 품에 안겨 이토록 울어본 적이 있었나.

아니 서른두 살 이전에도, 별거 아닌 일에 속상해하던 어린 날에도, 눈물을 참아야 했던 순간들만 스쳐 지날 뿐.

이렇게 포근히 안겨서 마음껏 울어본 기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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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흐윽! 나 미워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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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굴 미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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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나 미워하면, 이제 못 견딜 것 같아. 내가 선배를 너무 좋아하게 돼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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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

서러운 마음을 삭여주는 그의 잔잔한 음성이, 떨어질까 단단히 받쳐주는 팔이, 등 위로 닿았다 떨어지는 온기가, 이 모든 게 저를 향하고 있음이 고맙고 서글퍼서.

그래서 더 어린아이처럼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토닥토닥.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리듬이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약손처럼 한없이 다정해, 불안했던 마음이 일순간에 사그라들었다.

한참 만에야 울음을 그친 그녀가 강현의 품에 안겨서 두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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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래, 이렇게 막 아무 데서나 울고 그런 여자 아닌데…….”

화장기가 다 지워진 말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세나는 그제야 부끄러워졌는지, 귓불을 빨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강현은 동그란 눈매에 촘촘히 박힌 속눈썹에 아직 남아있는 물기를 바라보다 그녀의 눈가로 입술을 내렸다.

짭조름한 눈물방울이 입안에서 톡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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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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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이 울었어도 소금기가 남아있나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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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선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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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이제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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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화난 거 아니었어요? 그래서 말도 안 섞고, 무시한 거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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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가 낮게 탄식하더니 세나를 제 품으로 더욱 끌어당겨 안았다.

그녀의 옆통수에 볼을 기대고 몇 번인가 들숨과 날숨을 뱉다 혀를 쯧, 하고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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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이라도 화가 나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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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어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선배가 화 풀릴 때까지 내가 더 잘할게요……. 그러니까…….”

이다음 말을 해도 되는지. 내기에 이겼으니 원하는 걸 뭐든 말하라고는 했지만, 정말 해도 되는지 잠시 고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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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심장 언저리에 자리한 양심이 콕콕 쑤셔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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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계속 좋아해……주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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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강현은 대답 대신 길게 목을 울렸다. 세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채성민의 문자를 받았던 그 날. 강현은 몹시도 화가 났다.

그러나 그 분노의 원인은 채성민이 보내온 계약서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계약서에 담긴 내용도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별거 아닌 내용이었다.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건, 그저 그런 놈에게 세나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지, 다분히 예상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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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기만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그땐 내가 선배를 잘 몰랐고, 앙숙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선배가, 날 좋아할 리도 없으니까. 그래서, 서로 전략적으로 윈윈할 수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다시금 들이차는 불안감에 미처 정리도 못 한 말들을 쏟아내는 그녀의 목소리를 강현이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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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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