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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사냥꾼과 사냥개 (74/120)

74화. 사냥꾼과 사냥개2022.03.15.

장철호를 보는 강현은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허, 하고 탄식했다. 어째 웃으면 생김새가 부드러워져야 하는데, 그가 웃으니 땅땅한 덩치와 맞물려 도리어 흉흉하기까지 했다. 광대에 칼자국 하나만 있으면 어느 동네를 주름잡는 건달이 아닐까 오해할 만했다. 뭐, 그 덕에 가끔 수사 지원을 나갔을 때 용이하기도 했고. 강현은 본래의 대화로 돌아와 말을 덧붙였다.

16551864574216.jpg“장 실장님은 서당 개가 아니라 사냥개 아닙니까?”

풍월을 읊는 서당 개라니 가당치도 않다. 마을에 내려오는 멧돼지를 잡는 사냥개겠지. 장철호는 ‘그런가요?’ 하고 흉흉한 얼굴로 껄껄 웃더니, 강현에게 은근한 눈길을 쏘았다. 검지로 자신과 류강현을 번갈아 가리키며, 윙크까지 했다. 그의 아내는 저 얼굴에 반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게 아니면 수 년이 지났음에도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아 환상 속에 살아가거나.

16551864574223.jpg“그나저나 이제 류 변호사님이나 저나 철밥통 걷어찼으니 ‘개’ 말고 ‘꾼’으로 통일하죠.”

왜 거기에 저를 걸고 넘어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냥꾼이라는 단어는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사냥당하는 것보다 사냥을 하는 것이 체질이고, 가장 즐거웠으니까.

16551864574216.jpg“사냥개보다야 사냥꾼이, 확실히 어감이 낫군요.”

강현은 테이블에 드리웠던 상체를 소파 등받이에 물리며 턱 끝을 쓸어내렸다. 묘한 기색을 담은 눈동자와 입가에 걸린 나른한 웃음이 사냥꾼의 그것이었다.

16551864574223.jpg“그럼 사냥하러 가 보실까요?”

테이블에 흩어진 서류들과 태블릿 PC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장철호 역시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16551864574223.jpg“큰돈을 얻었는데, 쓰는 꼴이 조잡하기 짝이 없어서 그 인간의 낯짝을 한번 보고 싶네요. 그렇게 쓸 거면 저한테 기부 좀 하지. 우리 마누라 명품 가방 하나 사 주게.”

16551864574216.jpg“이 일이 잘 처리되면 그 명품 가방,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16551864574223.jpg“아……. 곤란한데……. 김영란법에 걸리는 거 아닌지 몰라. 이젠 공무원이 아니니 상관없나요? 류 변호사님이 자꾸 이런 식으로 저를 꼬시니 이상하게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지네.”

주거니 받거니. 쿵 하면 짝. 합이 잘 맞는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의 사회 구현? 그런 건 모른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다 해결한 사건들로 정의 사회가 구현된다면, 그건 그저 하나의 옵션일 뿐이었다. 장철호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실은 강현은 차창 너머로 불야성 거리를 눈에 담았다. 어지러이 얽혀있는 네온사인 가운데에서 유독 번쩍이는 불빛이 눈에 띄었다. 꼭 누구처럼. 아무리 많은 사람 속에서 있어도, 단언컨대 제 눈에 띄는 한 여자. 강현이 옅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6551864574223.jpg“왜 그러십니까?”

운전에 집중하고 있던 장철호가 시선을 정면에 둔 채 물었다.

16551864574216.jpg“아, 고양이나 한 마리를 키울까 해서요.”

16551864574223.jpg“갑자기 고양이를요? 털 때문에 키우기 쉽지 않을 텐데. 저도 아들놈이 개를 키우자고 졸라대는 통에 어찌해야 하나 고민 중이긴 합니다.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건…… 그만큼 손도 많이 가고 책임감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의 말을 들은 강현이 눈썹 끄트머리를 중지로 긁적거리며 다시 한번 잘게 웃음을 흘렸다.

16551864574216.jpg“도도해 보이지만 수다스러운 샴 고양이가 괜찮을 것 같군요.”

전화를 받지 않은 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가 뭐를 하고 있을지 뻔히 눈에 보여서.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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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 침대에서 뒤척이던 세나가 겨우 잠이 들었다. 옆으로 웅크린 자세로 미간 사이를 잔뜩 찌푸린 채였다. 한숨을 닮은 신음이 그녀의 입술 새로 터진다.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연화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세나가 10살이 됐을 무렵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익숙한 차를 발견한 세나는 그 차 안에서 제 엄마와 젊은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목격했다. 어린 세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이상한 분위기는 감지할 수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엔 어른들만이 가지는 욕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연화의 외도는 세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어딘가에 몸을 숨긴 채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제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을 누군가에게 말 못 할 비밀로 간직한 채,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시간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됐을 무렵, 그것을 ‘불륜’이라는 단어로 지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간통죄가 뻐젓이 존재하고 있을 때였다. 이연화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당당하게 젊은 남자를 만나고 다녔다. 차마 그녀에게도 제 아버지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린아이는 힘이 없었다. 저로 인해 가정이 깨질까 봐 두려웠고, 사실을 알게 된 저를 버릴까 봐 두려웠고, 매일 새벽이 다 되어서야 귀가하는 아버지를 더욱 힘들게 할까 두려웠다. 사실은 이미 혼자가 돼 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것을 피부로 깨닫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은 한 울타리에 모여 있었으니까. 부모의 치부를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란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불안 불안한 외줄 타기가 이어지는 사이 세나가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학교에 가기가 싫었던 어느 날, 아프다는 세나를 꾀병 취급하며 이연화는 짜증을 냈다.

16551864594261.jpg“얘가 왜 이래? 이깟 열 정도로 결석을 하겠다는 거야? 정 아프면 약이라도 먹고 학교 가.”

16551864594261.jpg“아니야. 나 진짜…… 너무 어지럽고 속도 메스꺼워. 엄마, 나 차라리 병원에 가면 안 돼?”

오한을 느끼는 몸은 부들부들 떨렸고, 열이 잔뜩 오른 눈가가 젖어 들었다. 그러나 연화는 단호했다.

16551864594261.jpg“별걸로 유난이다. 정말.”

그녀는 성마른 손길로 서랍을 뒤적였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난 알약 두 정을 세나의 손에 쥐여 주고 혀를 찼다. 세나는 어쩔 수 없이 약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이연화의 등쌀에 못 이겨 아픈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가 있었다. 이틀 전 베란다에서 통화하던 이연화의 전화를 몰래 엿들었기 때문이었다. 교태가 가득한 목소리로 아양을 떨며 며칠 후가 기대된다고 말하는 이연화는 엄마가 아니라 불순한 사랑에 폭 빠진 여자였다. 젊은 남자와 밀월여행이라도 갈 요량이었는지, 드레스룸 구석에 잘 꾸려진 짐가방도 발견했다. 아픈 것을 핑계 삼아 종일 엄마를 감시하면 그 여행을 못 가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품어봤지만, 이미 사랑에 눈이 먼 여자의 눈엔 제 자식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당장 저의 사랑에 대한 방해물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을지도.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급식실도 가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린 채 끙끙 앓던 세나가 교실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 급성 뇌수막염이었다. 그리고 그날 외간 남자와 행복한 여행길에 오른 이연화는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 느닷없이 들이닥친 두 사람 덕분에 아리따운 여성분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한 남자의 눈살이 크게 찌푸려졌다.

16551864594261.jpg“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막 그렇게 함부로 문을 여시면……!”

16551864574223.jpg“아이참, 일행이 있다니까 그러네.”

열린 방문 너머에서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다. 들어가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물론 장철호 실장의 덩치에 왜소한 체격의 젊은 사내가 울먹이다시피 매달렸지만.

16551864574223.jpg“괜찮대도 그러네. 한일전 축구 경기도 아니고 뭐 이렇게 철벽수비야. 저리 좀 가쇼.”

장철호는 우락부락한 팔뚝에서 웨이터를 가볍게 떼어내 훠이훠이, 문까지 닫아버렸다. 더 이상 방해하면 가만 안 둔다는 경고의 눈빛도 쏴붙였다.

16551864574223.jpg“그러게 그냥 이거 보여주자니까. 번거롭게.”

장철호가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손을 펼치자, 그의 두툼한 손바닥 위엔 검찰 마크가 찍힌 공무원증이 들려있었다.

16551864574223.jpg“이거 하나면 꽉 닫힌 철창도 스르륵 열리는데, 괜히 힘만 뺐잖아요?”

16551864574216.jpg“그만둔 지가 언젠데. 공무원 사칭하고 다니다가 옛 동료들 만나고 싶으신가 봅니다.”

16551864574223.jpg“직권 남용도 아니라 경범죄에 해당도 안 되는 거 잘 아시면서.”

16551864574216.jpg“그건 왜 아직 가지고 있습니까? 퇴사할 때 반납 안 했습니까?”

16551864574223.jpg“새로 발급한 건 반납했죠. 이건 기념 삼아서 가지고 있던 거. 가끔 유용하게 써먹기도 하고.”

훤칠한 키에 냉랭한 얼굴의 남자와 땅땅한 체격에 험상궂은 얼굴의 남자가 문 앞에 서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여유만만한 작태를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던 또 다른 남자가 ‘당신들 뭐야?’ 하고 소리쳤다. 류강현과 장철호는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신경도 안 쓰고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허락도 없이 각각 좌우 소파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이로써 가운데 앉은 이 방 손님의 퇴로를 차단한 셈이었다. 강현이 가운데 앉은 남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남자의 팔뚝에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가 불안한 시선을 보내왔다.

16551864574216.jpg"일단 여성분은 나가주시고."

불편한 눈초리로 상황을 살피는 여자에게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래도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여자는 군말 없이 일어나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갔다.

16551864574216.jpg“이름 김병진. 나이 45세. 전직 신선 일보 사회부 팀장. 그러나 지금은 하도급 일간지 찌라시나 쓰는 기자님이시네요.”

자신의 이력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읊조리는 사내의 얼굴이 낯익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다 이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더욱 의아해졌다.

16551864594261.jpg“아니, 중앙지검 검사님이 왜 나를 찾아오셨는지…….”

특수부 출신 검사가 연예인 찌라시나 써재끼는 기자를 뭣 때문에 찾아온 것일까. 말꼬리를 흐리며 눈치를 살피는데, 강현이 먼저 김병진의 말을 정정했다.

16551864574216.jpg“이젠 검사 아니고 변호사입니다.”

그럼 더더욱,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김병진은 할 말을 찾지 못해 눈동자만 옆으로 도르륵 굴렸다. 그러자 우측에 앉아 있던 장철호가 김병진 곁으로 바짝 다가와 옆자리를 꿰찼다.

16551864574223.jpg“우리가 찾고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요. 김병진 기자님.”

16551864594261.jpg“자료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16551864574223.jpg“에이. 왜 이러실까. 다 알고 왔는데.”

16551864594261.jpg“다짜고짜 그렇게 말을 하면 제가 더 모를 수밖에 없지요…….”

고개까지 갸웃대며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자, 장철호는 얼음통에 손을 집어넣어 얼음 몇 조각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과자 조각을 던져 넣듯 하나씩 입속으로 투척하더니 와그작와그작 물 대신 씹어 삼켰다.

16551864574223.jpg“대호 그룹 황유라 사진으로 돈 받아먹은 게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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