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심화(心火)2022.01.08.
채성민은 어제 새벽 강남 경찰서에 잡혀있는 황유라를 빼내 강원도 별장에 처박아두고 오느라 한잠도 자지 못했다. 클럽에서 파티를 즐기던 황유라가 술에 취해 난동을 피웠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녀를 체포했다. 체포하는 동안에도 어찌나 악다구니를 썼는지, 공무집행방해죄까지 추가로 받았다. 업무방해. 기물파손. 그 정도야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경찰서에 잡혀 와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를 수상하게 여긴 한 형사가 소지품 검사를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미친X. 진작에 정신병원에 처넣었어야 했어.’
그 미친X이 기어이 수습하기 힘든 범주의 사고까지 쳤다. 불법 약물 소지 혐의는 근본이 달랐다. 현행법상 재범률이 높은 범죄이기에 초범이더라도 처벌 수위가 상당히 높았다. 단순 투여냐, 소지냐, 밀반입이냐에 따라 처벌이 달라진다지만, 일단 5년 이상의 중형에 처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오 년이고 십 년이고 감방에 처넣어 제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현재 대호 그룹 법무팀 소속인 이상 황유라가 싼 똥을 치워야 하는 처지였다.
“관심을 받으려고 짖어대는 네 꼴이나, 필요한 걸 얻기 위해 꼬리를 흔드는 내 꼴이나 개 같기는 똑같구나.”
채성민은 분기가 치밀어 올라 터질 것 같은 속을 삭이며 마른세수를 했다. 이윽고 그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디서 이야기가 새어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냄새를 맡은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받지도 않는 전화를 수십 통 할 리가 없을 테니.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이걸로 너랑 나랑 더럽고 불쾌한 악연을 끝내자. 황유라.”
***
“그러니까 사실무근이다?”
짙은 갈색 액체가 가득 담긴 샷 잔을 손에 쥔 남자가 눈썹을 확 들썩였다.
“경찰서에 갔던 거는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대차고 활달한 성격이라 종종 친구들과 말다툼이 있죠.”
“아하.”
“그날도 친한 사이에서 충분히 있을법한 다툼이었고, 자리를 피하려던 와중 넘어지면서 소란이 좀 커졌는데. 상황을 모르던 사람이 놀라 경찰에 신고하면서 일어난 단순 해프닝이었습니다.”
남자는 채성민이 정중하게 따라준 술을 한 번에 들이켜더니 딱, 소리가 나게 테이블 위로 내렸다. 잔이 비자 채성민은 다시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자신을 대하는 남자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기사 쓸 거리도 없습니다. 저 아시잖아요.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뭔가 있었으면 그렇게 빨리 경찰서에서 나올 수도 없었을 거고.”
“그거야, 채성민 팀장님이 워낙 실력이 좋아서 그러는 거겠지. 도대체 무슨 수로 쉽게 빠져나왔는지 그게 참 궁금하단 말이야.”
“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정말 별일 아니었습니다.”
“우리 같은 기자들 사이에서 황유라가 대호 그룹 개망나니인 거 모르는 사람 있을까? 어쩜 그렇게 요리조리 피해 가는지. 어떨 때 보면 그 망나니 똥 치워주느라 고생하는 채 팀장이 불쌍할 지경이라니까.”
기자는 무슨. 제대로 된 기사 한 줄 쓴 적이 있을까. 하는 일이라고는 다른 기사들을 복사해서 붙여넣거나, 연예인들 SNS를 뒤적이거나, 뭐 하나 떨어지는 거 없을까 하고 스토커처럼 뒤를 캐고 다니는 거밖에 없는 주제에. 그런데도 꼴에 기자라고 목에 뻣뻣하게 힘을 주고 펜대로 갑질을 해댔다. 채성민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짖는 꼴에 속으로 자조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거랑은 좀 많이 다르네.”
남자의 능글능글한 빛을 띤 눈이 쭉 찢어지더니,
“내가 채 팀장님 속 끓을까 봐 모른 척해주려고 했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
뱀처럼 교활한 혓바닥이 입술을 훑다 비린내 풀풀 나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거 언론에 공개되면 꽤 곤란하지 않겠어?”
남자가 가방에서 꺼내 내려놓는 봉투가 꽤 묵직해 보였다.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도 하기 전에 채성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가십지 기자 중 악랄하기로 유명한 자였다. 치명적인 약점을 잡아 돈을 뽑아내는 것은 기본이고, 비위를 맞추기도 여간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몇 달 동안 집요하게 한 사람을 파내는 취재 방식이라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다. 그가 올려둔 봉투 속에 무엇이 담겨 있을지 다분히 예상이 가기에 차마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가 제 앞의 술잔을 멀찌감치 치우더니, 스스로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담긴 자신의 취재 결과물들을 테이블 위로 한 장 한 장 내려놓았다. 초점이 흐릿한 사진부터, 황유라임이 확실한 클로즈업 사진까지. 스무 장이 넘는 사진은 가관이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와 여자가 차 안에서 무언가를 주고받고 있는 사진.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주변을 둘러보며 트렁크를 확인하는 모습. 얼굴을 가린 모자를 벗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날카롭게 눈을 치켜뜬 황유라. 뒤를 돌아보며 어딘가로 들어가는 황유라. 뭔가에 취한 듯 눈이 풀려 사물을 인식 못 하고 널브러져 있는 황유라. 남부끄러운지 모르고 질척한 성적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는 황유라.
“이거 참, 난감하네.”
남자가 혀를 끌끌 차더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싸구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볼이 움푹 팰 정도로 깊게 빨아 마신 연기를 ‘후-’ 하고 채성민의 얼굴에다 뿜었다. 그의 번들번들한 눈동자는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와 닮아있었다.
“뭐, 재벌 2, 3세들이 약물로 문제가 있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차피 재판 가면 집행유예에 벌금이나 나오겠지. 그런데 에이. 이건 아니지. 좀 문제가 다르잖아?”
매캐한 연기가 제 숨구멍을 조여오는 동안 채성민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굴러갔다. 이 사진이 언론에 풀린다면, 대호 그룹의 주가는 한동안 폭락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주가 폭락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영향이었지만, 지난달 겨우 투자유치가 성사된 계약조항에 적힌 조항이 문제였다. 투자금 환수 조치뿐만 아니라, 계약 불이행으로 물어내야 할 위약금이 천억 단위였다. 채성민이 테이블 위에 나열된 사진 중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단순 투약이라고 생각했는데, 파다 보니까 판매에도 가담한 것 같던데. 어떻게 생각해?”
천진난만한 얼굴로 누군가에게 물건을 건네는 황유라가 찍힌 사진이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봤더니, 이미 수차례 같은 혐의로 감옥까지 다녀온 전적이 있는, 나락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한 연예인이었다.
“설마 채 팀장. 몰랐다고 발뺌할 건 아니지?”
“…….”
몰랐다. 일이 이 지경까지였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언론의 노출을 최대한 막고, 혹시나 일이 틀어지면 돈을 주고 죄를 뒤집어 써줄 누군가를 섭외해, ‘모르고 당한 것이다.’ 내지는 ‘철없는 호기심에 잠깐 손을 댄 것일 뿐. 그러나 법의 심판을 달게 받아 자숙하겠다.’ 둘 중 하나로 마무리를 지을 셈이었다.
“……바라시는 게 뭡니까?”
“나 같은 기자가 바라는 게 뭐가 있겠어, 다 이거지.”
남자의 입술이 귀신같이 쭉 찢어지고 누런 치아가 번들거렸다. 그가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 둥글게 만들고는 채성민의 눈앞에 흔들어댔다. 만국 공통 손짓인 오케이 싸인, 혹은 ‘돈’.
“사안이 워낙 큰 건이니까. 일단 삼 억. 현찰로. 원본 파일은 돈 받을 때 줄게.”
“…….”
“아 맞다. 나 얼마 전에 검찰에 기소당한 건 하나 있는데, 그것도 해결해 주고. 기자라는 게 워낙 고소 고발당하는 일이 많아서 피곤해 죽겠어.”
테이블 아래 감춰둔 채성민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금니가 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간 턱은 그가 느끼는 모멸감을 가득 담고 있었다. 황유라 하나로도 모자라, 별것도 아닌 것들의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한심했다. 그러나 벗어날 때 벗어나더라도, 제 커리어에 오점이 남아있으면 안 되기에 이 말 같지도 않은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나야 땡큐지.”
꽁초가 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한 손엔 꼬질꼬질한 카메라 가방을 챙겨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아직 자리에 앉아있는 채성민의 어깨를 꾹 눌렀다.
“그럼 채 팀장만 믿을게.”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는 채성민을 자기가 부리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돈이나 밝히는 버러지 새끼가. 남의 스캔들을 팔아먹고 사는 주제에 감히. 채성민이 손을 뻗어 눈앞의 두툼한 유리병 목을 쥐었다. 문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의 뒤통수가 유달리 선명하게 보인다.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통수를 이 병으로 후려치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었다. 문 앞까지 걸어간 남자가 할 말이 남았는지 돌연 뒤를 돌아보았다.
“아. 맞다. 황유라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나?”
“무슨 말씀이신지…….”
“뭐, 아니면 말고. 하여튼 건강 좀 챙겨. 전보다 얼굴이 더 핼쑥해졌다.”
남자는 이 일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채성민을 수초 간 바라본 뒤 가볍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채성민은 홀로 남은 방 안에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의 마지막 말이 유달리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XX. 뭐야. 뭐를 알고 저러는 거 아니야?”
그는 뭔가를 알고 있다면 순순히 물러날 자가 아니었다. 저런 식으로 흘린다는 건 아직 이렇다 할 물증이 없기 때문이겠지.
“젠장! 지나던 차에 치여 콱 뒤져버려라.”
채성민은 손에 든 병을 벽을 향해 힘껏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고 아직 남아있던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후련해질 줄 알았던 심화는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처럼 진득한 자국을 남겼다.
클라이언트와의 상담을 마친 세나는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방문 앞으로 나왔다. 그러다 마침 류강현의 집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오는 장철호 실장과 눈이 마주쳤다. 지난번 부탁했던 자료들 덕분에 일이 잘 풀리고 있던 터라 한달음에 다가섰다.
“장 실장님. 지난번 자료 고마웠어요.”
“별말씀을. 제가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솔직히 긴가민가했는데, 장 실장님 자료 덕분에 사건 해결의 윤곽이 잡혔잖아요. 식사 대접이라도 해야 하는데,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요즘 바쁘죠?”
“아마 이번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좀 바쁠 것 같네요.”
이번 재판이란, 류강현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건으로, 이 재판에서 이기면 세나와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던 그 재판이었다.
“어때요? 이길 가능성이 보이나요?”
“글쎄요. 워낙 양측 주장이 팽팽하고, 제출한 증거들이 채택 거부되고 있는지라 쉽지 않습니다.”
“만약에 지게 되면 류 변호사님의 첫 패배네요.”
“이기면 확실히 K 법무법인 명성이 확 뛰겠죠.”
그가 복도를 지나는 이의 눈치를 살피다 세나의 귀에 속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