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미꾸라지와 망둥이2021.11.09.
전에 없는 행동들을 자꾸만 하는 류강현의 저의는 확고했다. 채성민은 자신이 세운 계획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초조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어떻게 해서든 둘 사이를 벌려놔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그곳에서 뭐 하고 있는지 전화라도 걸어볼까 하던 찰나, 채성민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가 법무팀으로 일하고 있는 대호 그룹의 황 회장이었다. 주말 저녁 이 시간에 전화를 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황 회장의 아픈 손가락인 황유라였다. 그녀를 단순히 말괄량이, 사고뭉치라 말하는 것은 너무 귀여운 표현이었다. 삼십 대 초반의 그녀는 재벌계에서 알아주는 망나니, 안하무인의 극치였다. 그러면서도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셀러브리티. 하루가 멀다하고 SNS에 사치를 자랑하는 건 덤이었다. 오죽하면 그녀가 음주운전을 해도 기자들이 이 정도는 평범한 사건이라며 시시해할까. 전화를 받기 전, 채성민은 지긋지긋한 염오감을 느꼈다. 잔뜩 좁혀진 미간 사이 깊게 팬 주름은 펴질 줄 몰랐다. 바닥에서부터 끌어 올린 숨으로 심호흡을 한 뒤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통화가 연결되기 무섭게 노기가 잔뜩 실린 고성이 고막을 강타했다. 예상대로의 소음에 성민은 팔을 뻗어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 떼어냈다. 한 기업을 아우르는 남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믿기 힘든 천박한 욕지기가 쉴새 없이 쏟아졌다. 스피커 폰도 아닌데 거실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채성민은 군말 없이 그의 욕받이가 되었다. 당장의 제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기에. 황유라. 그녀와의 인연은 채성민이 미국에 머물렀던 유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왜 그가 그토록 개천을 벗어난 용이 되고 싶었는지. 이 불온한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 계기. 모든 걸 내줄 것 같았던 여자는 유학 생활 3년 차, 채성민이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따기 직전 그를 버렸다. 집안에서 주선한 정략결혼 상대를 만난 직후였다. 사랑만으로 결혼하기에는 채성민은 반반한 얼굴과 똑똑한 머리 빼고는 볼 것도 없는 가난한 남자였다. 그의 집안 역시 보잘것없었다. 낡은 아파트의 경비를 서는 아버지와 시장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 노는 물이 달라서. 재벌은 재벌끼리. 집안의 격차는 몇백 평짜리 펜트하우스와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 수준이었다. 물론 채성민이 재벌 집 그녀와 아름다운 미래를 그릴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지만, 하필이면 중요한 순간 찾아온 날벼락이었다. 제아무리 성공을 위해 발버둥을 쳐봐도, 늘 제자리걸음인 이유. 태생이 흙수저이기에. 차라리 고아였다면 나았을까. 어차피 남부럽지 않은 배경이 되어줄 수 없다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그랬다면 나라에서 장학생 지원이라도 받았을 텐데. 성공의 출발점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기로 앞에, 채성민은 좌절감과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리고 그 걸림돌의 존재가 자기 가족이란 사실이 억울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여태껏 쌓아왔던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려는 그때, 그에게 새로운 동아줄이 되어준 사람은 황유라였다. 썩은 동아줄이란 걸 알면서도 붙잡을 수밖에 없었고, 독약인 줄 알면서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황유라는 한국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미국으로 유배를 온 상태였고, 졸지에 닭 쫓던 개가 된 채성민과는 슬럼가 클럽에서 만났다. 서로의 밑바닥을 알아본 두 사람은, 득과 실을 따져 손을 잡았다. 황유라는 넘치는 돈으로 자신의 뒤치다꺼리를 해 줄 똑똑한 개 한 마리를 얻었다.
-“지금 당장 유라 어딨는지 찾아내서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수습해!”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를 손에 쥔 채로 채성민이 제 입술을 짓씹었다. 그래 요즘 한동안 얌전했지. 채성민은 사태를 파악하기에 앞서, 일단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제대로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아든 비서실장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고, 어투도 어눌했다. 황 회장은 채성민에게 전화하기 전 이미 비서실장의 뺨을 후려쳤을 것이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에게 비서실장이나 채성민은 자신들이 먹이를 주고 키우는 개새끼쯤 되려나.
“어떻게 된 겁니까?”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유라 아가씨 관련 글이었습니다. 급한 대로 글을 내리긴 했는데……. 이미 퍼 나른 기자가 있어서.”
“그러니까 무슨 글인데 이 난리인 겁니까?”
-“갑질 글인데.”
“황유라가 갑질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게 무슨 논란거리라고.”
-“상대가 유흥업소 선수인 게 문제입니다.”
“…….”
-“발가벗겨 술을 들이붓고, 사진을 찍-.”
“거기까지. 됐습니다. 제가 해결하죠.”
채성민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 부서트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이 손바닥만 한 기계라도 있어야, 지금 당장 황유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니. 뭣 같은 세상. 어떻게든 살아보려 아등바등하는 게 불쌍해서 그런가. 이렇게 분기마다 빅엿을 먹여주시니 아무리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이라도 물고 싶은 게 개새끼의 마음이었다. 거친 손길로 제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던 채성민은 황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망나니가 괜히 망나니일까. 혹시라도 채성민이 제 위치를 추적할까,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음만 흘러나왔다. 본인이 어떤 사고를 쳤는지 자각이라도 할까. 아니, 아마도 신경도 안 쓰겠지. 사람들이 피곤하면 짜증을 내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듯 그녀는 응당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어딘가에서 처박혀 술을 퍼마시고 있거나, 남자를 끼고 놀고 있겠지. 채성민은 재킷과 차 키만 챙겨 집을 나섰다. 겉만 번지르르한 비단잉어들은 껍데기를 벗겨보면 추잡하게 날뛰는 망둥이들이었다. 그들이 뛰어노는 개울물은 고이다 못해 썩어 시궁창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더럽고 구역질 나는 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기세나가 더욱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 퇴실을 준비하는 펜션은 밀린 설거지부터 널브러진 잡동사니들을 치우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여러 가지 술을 섞어 마신 팀원들은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아이고 머리야.’ 허리를 숙일 때마다 ‘아이고 죽겠다.’ 앓는 소리를 냈다. 일곱 명의 사람 중 유일하게 멀쩡한 사람은 단언컨대 류강현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펜션 주위를 조깅 후, 샤워까지 깔끔하게 끝마친 상태였다. 세나는 재활용 봉투에 쓰레기를 쓸어 담으며 속으로 그의 철두철미함에 혀를 내둘렀다. 저 역시 나름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가벼운 화장까지 한 상태였지만, 숙취만큼은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끙끙, 겨우 맨정신을 유지하는 중인데 저보다 더한 인간이 있을 줄이야.
“이래서는 내일 출근이나 제대로 할지 모르겠군.”
“아닌데? 완전 멀쩡한데요?”
세나는 일부러 더 쌩쌩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는 강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변호사가 아니라 유치장에서나 볼 수 있는 주취자 같은데?”
“무슨 소리예요, 보세요.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눈도 뜨지 못하고 설거지 중인 하정수는 방이 아니라 밖에서 잤나, 노숙자 같은 꼴이었다. 한여진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변기통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바깥을 정리하던 박종찬은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아예 빈백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옆에 네발로 엎드려 곡소리를 내는 최성훈까지. 그나마 거동에 불편함이 없는 사람은 젊은 피 이효원이었으나, 그녀의 상태도 영. 야구모자를 푹 눌러써 퉁퉁 부은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워크숍을 두 번 했다간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으면서 하겠어.”
좀비처럼 어기적대는 팀원들을 보고 있자니, 꼭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 어깨를 털었다. 이러다간 날 새겠다 싶었던 세나가 손뼉을 마주쳐 팀원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일단, 해장부터 할까요? 라면 괜찮죠?”
겨우 손만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팀원들을 뒤로하고 세나 대신 강현이 냄비에 물을 올렸다.
“라면 끓일 줄 알아요? 인원수 많으면 물양 맞추기 힘들던데.”
“지금 먹으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을 테니. 대충 끓이면 돼.”
“그럼 제가 할게요.”
“기세나. 넌 저기 가서 광합성이라도 하고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힘들기는, 고작 이 정도로.”
세나가 자존심을 부리며 멀쩡한 척, 자세를 바로 했다. 강현은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픽 웃으며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제발, 말 좀 듣지? 비틀거리지 말고.”
“…….”
딱 걸렸다. 사실 세나는 조금 전부터 바닥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팽글팽글 돌고 있는 걸 겨우 참고 있었다. 류강현만 없었다면 당장에라도 다른 이들처럼 드러눕고 싶었는데. 자신을 배려해주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한편, 괜히 가사전담팀 워크숍에 불러내 뒤처리를 맡긴 것만 같아 껄끄러웠다. 그러나 더는 버틸 재간이 없어 그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류강현이 끓여낸 라면은 의외로 맛있었다. 보통의 라면이 아니라, 달걀을 한가득 푼 해장하기에 완벽한, 매콤한 라면 계란국이었다.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는데, 국물을 한 수저 한 수저 뜰수록 속이 확 풀리고, 흐릿했던 정신이 제자리를 찾았다. 팀원들은 허겁지겁 자신 몫의 그릇을 비우며 맛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요리까지 잘하시네요. 류 변호사님은.”
차마 얼굴을 보여줄 수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인 이효원의 두 뺨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뭐지. 이 기시감은……?’
이효원은 로스쿨 시절 K 로펌에서 법률 보조 인턴을 한 경력이 있는 친구였다. 다른 건 몰라도 남들이 놓치고 지나가는 증거들을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나, 신입 변호사 채용 때 그녀를 일 순위로 뽑은 사람이 바로 저, 기세나였다. 언제부터 그녀가 거슬렸지? 세나는 구멍 난 기억을 메우려 머릿속을 헤매어봤지만, 당최 이 불쾌한 기분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눈싸움이라도 하자는 요량인지 깜빡임도 없었다. ‘왜요?’ 하고 입 모양으로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을 뱉더니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왜? 뭔데?!!’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강현이 다시 저를 쳐다보길 기다렸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 체크 아웃을 하고 팀원 모두가 주차장에 모였다. 끌고 온 차는 네 대.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근교에 있는 수목원에서 힐링을 해야 했지만,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되어 각자 집으로 해산하기로 했다. 각자 찢어져 차에 올라타려는데, 가만히 있던 강현이 세나를 불렀다.
“기세나 변호사, 괜찮으면 서울까지 내 차 타고 갑시다.”
“네? 왜요?”
“할 말이 있어서.”
“그럼 제 차는요?”
세나에게서 키를 낚아채듯 받아든 강현이 박종찬의 차 옆에 서 있는 하정수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키를 건넸다.
“하정수 변호사.”
“네?”
“이력서 보니까 운전병 출신이던데, 기 변호사 차 좀 부탁해도 됩니까?”
내리쬐는 햇살 아래 반들반들 빛나는 빨간 스포츠카의 키를 받아든 하정수의 눈에 광채가 돌았다. 평소 드림 카라 여기던 독일산 유명 마크의 차량이었다. 시니어 변호사가 돼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꼭 저 차를 사겠다고, 그녀의 차를 보며 투지를 불태우던 남자가 바로 하정수였다. 물론 류강현이 그런 거까지 신경 써서 그에게 차를 맡긴 건 아니었지만.
“제가! 누구보다 빠르게! 회사 주차장까지! 이 차를 모시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