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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돈 쓰는 게 일이랍니다 (145)화 (145/154)

145화 - 145화

“나한테 먹인 술에 뭔갈 탔어, 분명해! 그 틈에 공녀랑 무슨 작당을 한 거지!?”

달리아의 목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달리아는 아직은 여유로운지 시치미를 똑 떼었다.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큭, 모르겠는데요.”

목이 새빨개지다 못해 시퍼레져 놓고는 잘도 거짓말을 내뱉는 달리아의 모습에 율리시즈의 화는 더더욱 치솟았다.

“이 망할 년!”

짜악! 기어이 상스러운 욕설까지 입에 담으며 율리시즈가 커다란 손으로 달리아의 뺨을 내리쳤다.

“악!”

달리아는 거의 날아가다시피 바닥에 엎어지며 뺨이 아닌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허억, 윽…….”

솔직히 방금 타격으로 한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이명이 들리는 게 아무래도 어지간히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솔직히 일부러 화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달리아도 모르게 그를 자극해 버렸다.

‘하지만 저 잘난 얼굴이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걸 보니 통쾌했는걸.’

그랬기에 달리아는 이렇게 얻어맞았을지언정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기는 율리시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보다 훨씬 약한 달리아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율리시즈는 일말의 가책도 없이 달리아를 협박했다.

“바른 대로 말해. 모황을 어디로 데려갔지?”

“후우, 그러니까…… 저도, 모른다니까요……?”

“후, 그래. 더 맞고 싶다 이거지. 맞아야만 말을 듣는 종자도 있는 법이지.”

달리아는 웬만하면 율리시즈에게 가만히 맞아 주려 했다.

하지만 방금 그 말이 달리아의 이성을 잃게 했다.

‘더 맞아야만, 말을 듣는 종자도 있다고?’

내가 그런 종자라는 말이야?

‘……내가 정말 저 자식에게 어지간히 깔보이고 있었구나.’

아픔은 분노에 뒤덮여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달리아는 눈을 치켜들고 율리시즈에게 소리쳤다.

“그래, 더 패 봐! 날 폭행한 건 율리시즈 황태자라고, 즉위식 날 멍을 단 얼굴로 모두가 듣도록 아주 쩌렁쩌렁하게 소리쳐 줄 테니까!”

“뭐, 뭐라고?”

“아니면 죽이든가! 즉위식 전날 황태자비를 죽였다고 아주 그냥 소문이 나도록…… 악!”

“이게 진짜!”

율리시즈가 이번에는 달리아의 머리통을 후렸다.

달리아는 이번에는 정말로 한순간 의식을 잃었다.

“아…… 윽…….”

“어때, 정신이 좀 드나? 이제 모황을 어디로 빼돌렸는지 말할 생각이 들어?”

율리시즈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달리아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 물음에 달리아가 씨익 웃었다.

무슨 속셈이지? 라고 율리시즈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퉤. 주르륵.

허여멀건한 액체가 율리시즈의 뺨에 튀어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

율리시즈는 한순간 벙쪄 버리고 말았다. 차마 소매로도 닦기 싫은 감각이었다.

황태자의 얼굴에 침을 뱉어 놓고 달리아는 인자하게 웃으며 율리시즈에게 확실히 알려 주었다.

“입이 찢어져도 말 안 해.”

“이……!”

율리시즈의 인내심이 드디어 끊겨 버렸다.

‘웬만하면 이 수만큼은 안 쓰려 했는데, 이건 전부 달리아가 자초한 일이야.’

율리시즈는 손수건을 꺼내 뺨에 묻은 침을 벅벅 닦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내 말은 안 들어도 헤베 백작 말은 들을 테지.”

“……!”

평온했던 달리아의 안색이 굳어진 건 한순간이었다.

그 모습에 율리시즈는 짙은 만족감을 느끼며 밖에다 대고 소리쳤다.

“여봐라, 헤베 백작을 당장 불러와라!”

“아, 안 돼!”

달리아가 소리쳤다. 헤베 백작이 율리시즈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율리시즈와 똑같이 자신을 폭행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율리시즈에게 맞아서 죽는 건 무섭지 않다. 하지만 헤베 백작의 손에만큼은 죽어도 죽기 싫었다.

“치사하게 남자 두 명이서 여자 하나를 패겠다고?”

“뭐가 치사하지? 너는 마법사인데.”

“지금 내가 마법이고 나발이고 쓸 수 있는 것처럼…… 윽.”

달리아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시야도 어질거렸다.

“그러게 진작 배신하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우린 좋은 파트너가 됐을 텐데.”

“……웃기는 소리. 나한테만 더러운 일을 떠넘긴 주제에…….”

“아직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멀쩡한 모양이야, 달리아.”

율리시즈가 다시 손을 올렸다.

달리아는 어지러운 시야로 그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망할, 저기에 맞으면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이대로 여기서 죽겠구나, 하고 생각한 그때였다.

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하, 드디어 왔군.”

율리시즈는 손을 올리다 말고 성큼성큼 문까지 걸어가 달리아를 돌아보며 조소를 날렸다.

“네 아버지가 온 모양이야, 달리아.”

달리아는 입술을 물고 분해 할 힘도 없어 바들바들 떨리는 몸만 간신히 일으켰다.

‘차라리 방금 맞고 죽었으면 좋았을걸.’

그만큼 달리아에게 있어 헤베 백작은 율리시즈보다 더 끔찍하고, 혐오스럽고, 한심한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에게 맞아 죽는다는 건 달리아의 수치였다.

율리시즈가 문고리에 손을 갖다 댔다.

율리시즈가 문을 열자마자 헤베 백작이 튀어나와 당장이라도 달리아에게 손찌검을 할 것이다.

‘……그래, 어쩌면 이렇게 맞아 죽는 게, 내가 저지른 죄에 맞는 벌일지도 몰라.’

달리아가 자포자기한 그때였다.

“……뭐? 행방불명?”

율리시즈가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 달리아는 믿을 수가 없어 고개를 들었다. 시종이 굉장히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달리아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고, 율리시즈는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소곤소곤, 시종이 한 말을 되짚었다.

“고리대금업자들도 그 자식을 찾고 있다고?”

“……!”

달리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블린과 라파엘의 짓이다!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분해 하는 율리시즈를 향해 달리아는 비웃음을 보냈다.

“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폭행할 또 다른 인간이 사라져서 어쩌지?”

“……오베론을 불러와!”

율리시즈는 달리아가 기어오르는 것을 잡을 또 다른 인물을 떠올렸다.

오베론이, 사실은 유다가 변한 것이지만 아무튼 그가 오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부르셨…….”

“아악!”

유다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율리시즈는 거칠게 달리아의 머리채를 잡았다.

모근이 뽑힐 만큼의 고통에 달리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 모습에 유다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려 했다.

“전……!”

‘괜찮아요. 나서지 마세요.’

하지만 끝까지 소리칠 수 없었다. 달리아가 눈빛으로 저렇게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이 발칙한 년이 모황을 빼돌렸다. 그대의 마법으로 찾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좋아. 그리고 당장 이년을 가둬!”

유다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달리아를 구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이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며.

* *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라파엘이 가져온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달리아가 지하 감옥에 갇혔다고?”

“예. 황태자의 심기를 거스르자 폭력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다에게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듣기론 헤베 백작까지 불러서 폭력을 행하려 했다고…….”

“진짜 인간 말종이네, 그 자식.”

욕할 만큼 쓰레기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욕이 아까울 정도로 쓰레기 새끼다.

나는 얕은 후회를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달리아를 그냥 여기서 머물게 할 걸 그랬나 봐.”

달리아와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지만 같은 여자로서 걱정되는 마음은 존재하고,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구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나를 차근차근 덮기 시작했다.

“이블린.”

라파엘은 무릎을 꿇더니 침대에 앉아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블린 당신이 미리 헤베 백작을 처리하신 덕에 헤베 영애는 아직 무사한 겁니다.”

그의 말에 달리아와 손잡고 난 이후 벌였던 공작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머쓱해졌다.

“뭘. 나는 말만 하고 네가 다 해 준 건데.”

내가 한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말로는 뭘 못해’, 라는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려운 건 실행하는 거다.

그리고 라파엘은 내 어려운 바람을 실제로 들어주는 궂은일을 맡아 왔다.

나는 라파엘의 손을 잡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마워, 라파엘.”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게 제 기쁨인걸요.”

라파엘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대로 더 라파엘과 꽁냥대고 싶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즐기기엔 달리아가 걱정되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달리아가 과연 내일 즉위식에 나올 수 있을까.”

“방패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데리고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헤베 영애가 설마 자폭을 생각하고 저희와 손잡은 건 예상하지 못할 테니.”

하긴.

자폭하면서까지 남을 떨어뜨리고 싶어 한다는 건 율리시즈처럼 잃을 게 많은 인간은 생각도 못 할 발상이니까.

나는 문득 시계를 봤다. 어느새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만 집에 들어가 봐야겠다.”

“지금요?”

“응. 엄마 아빠도 걱정할 거고…… 보고 싶거든, 다들.”

모든 기억을 되찾은 후부터, 나는 그들이 보고 싶어졌다.

비록 그들이 이블린을 보내 주고 김금희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준 터라 내가 사실 진짜 이블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럼 내일 보자, 라파엘.”

“예, 내일 모시러 가겠습니다.”

라파엘은 나와 잠시라도 떨어지기 아쉬운지 나를 꼬옥 끌어안고는 뺨에 작게 입 맞췄다.

그러고는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는지, 내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그리고 결혼 얘기 말인데요.”

헉, 맞다.

나는 혹시라도 라파엘이 앞서 나갈까 봐 단단히 경고했다.

“어, 엄마 아빠한테는 내가 먼저 말할 거니까 절대 먼저 그 얘기 꺼내지 마, 알았지!”

“후후, 알겠습니다.”

라파엘은 내 말뜻을 알아듣고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가족 앞에서 그 얘기를 꺼냈다간 라파엘에게 프로포즈를 받기도 전에 그가 죽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신랑 없는 결혼식은 안 될 말이지.

부디 우리 가족이 라파엘을 좋게 봐 줘야 할 텐데, 라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바람을 품으며 나는 서둘러 저택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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