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 139화
카밀라와 달리아는 황궁의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기 전, 달리아는 카밀라를 막아서며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댔다.
“쉿.”
“여기구나.”
카밀라가 똑같이 속닥대며 힐끗 모퉁이 너머를 바라보았다.
창을 든 두 명의 문지기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카밀라는 망설임 없이 성냥에 불을 붙이더니 수면초를 꺼내 태우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이게 무슨 소리지?”
무언가 불타는 소리를 감지한 문지기들이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카밀라와 달리아를 발견하는 속도보다 하얀 연기를 들이마시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게 무슨 연기…….”
“이봐! 갑자기 왜…….”
털썩. 두 명의 문지기는 영문도 모른 채 바닥에 쓰러졌다.
“쉽네.”
카밀라는 손가락으로 수면초에 붙은 불을 비벼 끄고는 모퉁이 밖으로 나왔다.
달리아도 따라 나오더니 문지기들의 허리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대담한 모습에 카밀라가 감탄했다.
“어머, 망측해라! 기절한 사람을 데리고 뭘 하려는 거예요?”
“아, 아니에요! 열쇠를 찾으려는 것뿐이거든요? 당신이야말로 무슨 생각을……! 그것보다 전하의 얼굴로 그런 말투 좀 쓰지 마세요!”
역겹다는 듯 달리아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깔깔거리는 카밀라를 뒤로하고 열쇠를 찾은 달리아는 침실의 문을 열었다.
“얼른 들어오기나 해요!”
“네에, 네~”
얄미운 목소리에 달리아는 열이 올랐다. 한편으로는 저런 장난스러운 태도가 황제 납치쯤은 별것 아닌 일로 느껴지게 해 안심이 되었다.
익숙한 걸음걸이로 황제의 침대까지 다다른 달리아는 휘장을 조심스레 젖혔다.
카밀라는 오랜만에 황제의 얼굴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이야…… 폐하 많이 늙으셨네.”
쯧쯧, 카밀라는 황제가 불쌍하다는 얼굴을 아끼지 않고 혀까지 차 주었다. 그에 달리아가 죄책감 어린 얼굴로 손가락을 꼼질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약을 쓴 것도 모자라 제가 저주까지 걸어 놨으니까요.”
카밀라는 딱히 달리아를 위로해줄 생각은 없었다. 어쨌건 잘못한 일은 잘못한 일이니까.
그러나 자책하게 둘 시간 역시 없었다.
카밀라는 달리아가 땅을 더 파기 전에 번쩍 황제를 안아 들고 말했다.
“그나저나 마주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에요. 혹시나 해서 모습까지 바꿨는데, 괜한 걱정이었네. 돌아가죠.”
“아, 네. 준비할게요.”
이럴 때가 아니라며 달리아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동 마법을 펼치려던 그 순간이었다.
“앗……!”
이동 마법 대신 카밀라에게 걸린 변신 마법이 풀렸다.
소리 소문 없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달리아가 알기로 한 명뿐이었다.
“어딜 간다고?”
오베론이 허공에서 나타나 살벌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 마탑주…….”
달리아가 뒷걸음질 쳤고 카밀라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황녀 전하께서 폐하를 좀 뵙고 싶어 하셔서 말이야.”
“그렇게 대답하면 내가 순순히 보낼 거라고 생각했나?”
둘에게 구속 마법을 걸려던 순간, 오베론이 멈칫했다.
마법이 듣질 않았다.
‘뭐지?’
여기에는 자신을 방해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그때였다.
여기에 있을 리 없는 목소리가 오베론에게 경고했다.
“방해 하지 않는 게 좋을걸, 오베론.”
“……이블린?”
오베론의 앞에 이블린이 나타났다.
이블린은 사냥 직전의 맹수처럼 눈을 똑바로 뜨며 오베론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음침한 스토커 새끼야.”
* * *
“아, 신호다.”
율리시즈는 멍청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오베론이 황제를 데려오는 중 방해할 건 예상했다. 그랬기에 나는 달리아가 신호를 하면 황궁에 나타나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나, 오베론이 방해하러 나타났는지 달리아로부터 소환 신호가 왔다.
나는 대기 상태에서 벗어나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라파엘의 뺨에 작게 입맞추며 인사했다.
“그럼 다녀올게, 라파엘.”
“조심히 다녀오세요.”
이제 내가 강한 걸 아는데도 라파엘은 걱정을 지우지 못하고 비 맞은 대형견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여튼 귀여운 남자.
치사량의 귀여움에 나는 나도 모르게 라파엘의 머리를 헤집듯이 마구잡이로 쓰다듬었다.
“진짜로 다녀올게.”
그리고 라파엘에게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인 뒤 바로 황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동하자마자 면전에 있는 얼굴값 못하는 놈을 보자마자 기분이 확 나빠져 험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음침한 스토커 새끼야.”
“이블린.”
오베론이 할 말 많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피해의식은 아직도 못 고쳤구만.
‘피해의식 가진 남자들끼리 뭉쳐 둥기둥기하고 있으니 고쳐질 리가 없지만서도.’
내가 한숨을 푹 쉰 그때, 오베론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황제를 데려가서 뭐하려고?”
“뭘 하긴. 깨워서 샬럿 황녀와 대면하게 둘 생각이지.”
“……제정신이야?”
“적어도 나한테 가진 악감정 풀겠다고 황태자랑 손잡은 너보다는 제정신이지 않을까?”
나는 오베론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달리아에게 걸린 제약 마법을 풀어 버렸다.
하지만 달리아는 내가 걱정되는지 가지 않고 나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보았다.
참 괜한 걱정을 다 한다 싶어 나는 휙휙 손을 저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먼저 가도 돼, 달리아.”
“그렇지만……!”
“가라니까?”
내가 재촉한 그때, 오베론이 끼어들어 살벌하게 읊조렸다.
“가면 죽여 버릴 줄 알아.”
“……!”
얼른 가라는 내 재촉과, 가면 죽여 버리겠다는 오베론의 협박 사이에서 달리아는 갈팡질팡했다.
이 새끼가 진짜. 나는 오베론을 뾰족하게 째려보며 성질을 냈다.
“네가 뭔데 내 부하들을 죽여? 너 뭐 돼?”
“이블린. 사람이 얼마나 허무하게 죽을 수 있는지 너도 알잖아? 쟤네가 이동마법으로 떠나는 속도보다 내가 쟤네를 죽이는 속도가 더 빠를걸.”
사람 빨리 죽일 수 있는 게 자랑이야?
뭐, 대회 나가서 우승이라도 하게?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아는 사람은 이래서 싫다. 오만상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나는 조금 강경책을 쓰기로 했다.
“오베론. 내가 전에 왜 유다를 너한테 보낸 줄 알아?”
“……내가 널 방해해서?”
“맞아. 네가 너무 방해만 해대니까 짜증나서 납치 감금 좀 해 두려고 했어.”
내 당당한 대답에 오베론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내가 그딴 놈한테 쉽게 당할 줄 알았나 보지?”
“물론 아니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오베론이 불쌍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그가 잊고 있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젠 내가 너보다 강한데?”
이제 먹이사슬의 최강자는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는지 오베론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아, 강자의 기분. 너무 짜릿하네.’
내가 강자의 기분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오베론의 발밑이 빛나기 시작했다. 튈 준비를 하는 거다.
“어림도 없지, 어딜 튀어?”
나는 곧바로 오베론의 발밑에 떠오른 이동 마법을 지워 버리고 제약 마법을 걸어 버렸다.
오베론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단기간에 원래의 너보다 더 마법에 능해진 거야?”
“네 알 바야? 전부터 진짜 참견 심하다, 너.”
나는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오베론을 마음껏 약 올렸다. 그리고 속으로 유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유다한테 유용한 마법 속성 강의를 들은 보람이 있네.’
파그라시움 직원들은 참 돈값을 잘한단 말이야. 라파엘도 그렇고 유다도 그렇고 돈 주고 고용한 보람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도 저도 못하게 독에 갇힌 쥐새끼 신세가 된 오베론은 마지막 발악인지 되도 않는 협박을 시작했다.
“이블린.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무슨 실수?”
“마탑주를 건드리고서도 무사할 줄 알아?”
“그럼 넌 프라비체의 보물인 날 건드리고서 무사할 줄 아니?”
우리 집안은 전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한 인간들은 아니다.
그나마 내가 나섰으니 안 죽이고 있는 거지, 다른 가족들이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베론을 죽였을 거다.
내 도발에 오베론은 치욕스럽다는 얼굴을 했고, 나는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굴욕스러워? 그러게 왜 먼저 내 성질을 긁어?”
“이블린!”
그가 내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든 말든, 나는 손가락을 튕겨 오베론에게 수면 마법을 걸었다.
보통 저주는 피부끼리 맞닿아야 하는데 오베론이 고맙게도 내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바람에 난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좀 자고 일어나. 그러면 아마 죄수로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거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유언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오베론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나는 오베론의 머리를 구두코로 콕콕 건드리며 확실하게 기절했음을 확인했다.
내 등 뒤에서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본 달리아는 한참의 침묵 끝에 말도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공녀님, 정말 대단한 흑마법사셨군요…….”
“말했잖아. 나 꽤 대단하다고.”
나는 고개만 돌려 어깨를 거만하게 으쓱였다. 달리아는 그 모습에 재수 없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호기심만큼은 누르지 못하겠는지 물었다.
“재판 때는 어떻게 안 걸린 거예요?”
나는 헨리가 선물해 준 실반지가 끼워져 있는 왼손 새끼손가락을 보이며 후훗 웃었다.
“돈으로는 안 되는 게 없지.”
습관적으로 나오는 돈자랑에 달리아가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아차 하며 모르는 척 괜히 오베론을 몇 번 더 발로 찼다.
“아무튼 이 정도면 수확이 괜찮네.”
확실하게 황제를 납치했고 오베론을 제압했다.
이제 오베론을 가두고 샬럿과 황제를 만나게 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게 제일 고비겠지만.’
샬럿의 반응으로 유추하건대 둘의 대화가 쉽지는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은 그때 가서 할 일이고, 목적은 달성했으니 얼른 튀어야지.
나는 카밀라와 달리아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네, 공녀님.”
기다려, 우리 강아지 라파엘.
사랑둥이 이블린이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선물 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