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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돈 쓰는 게 일이랍니다 (135)화 (135/154)

135화 - 135화

율리시즈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물었다.

“내 편이 되어 준다고?”

“예.”

오베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데없이 찾아와서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지? 율리시즈가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경계했다.

“그대는 내 편이 되어 줄 이유가 없을 텐데?”

사나운 기세에도 오베론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샬럿 황녀와 프라비체 공녀가 전하의 대관식을 노리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실 테지요.”

“그래. 알고 있다.”

“설마 그들의 방해를 황태자비 전하 하나만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뭐라고?”

“아. 황태자비 전하께서 아직 말을 안 하셨군요.”

오베론은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비릿하게 웃더니, 율리시즈만 모르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친히 알려 주었다.

“그분은 이제 쓸모없습니다. 프라비체 공녀에게 흑마법을 빼앗겼으니까요.”

그 말을 들은 율리시즈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말도 안 돼! 도대체 언제!”

“제 추론으로는 아마 비 전하께서 샬럿 황녀를 초대했을 때로 생각됩니다.”

율리시즈는 혼란에 빠졌다.

웃기는 소리다.

달리아는 그 이후로도 계속 황제에게 저주를 걸었다.

그런데 흑마법을 잃은 상태로 어떻게 저주를…….

율리시즈는 아주 간단하게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 달리아가 또 내게 거짓말을 했다고?”

“그렇게 되겠군요.”

허탈한 중얼거림에 오베론이 담백하게 긍정하자 오베론의 눈이 뒤집혔다.

“이……! 이 망할 것이!”

율리시즈가 당장이라도 달리아를 죽일 기세로 방을 박차고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오베론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서십시오, 전하. 비 전하를 아직 버려서는 안 되니까요.”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지? 지금 내게 명령하는 거냐?”

“명령이 아니라 조언입니다. 비 전하께선 도구로서의 쓸모는 다했지만 아직 인질로서의 쓸모는 남아 있으니까요.”

“인질이라니?”

허! 그것을 누가 쓸모 있어 한다고? 율리시즈가 별 웃긴 이야기를 다 듣겠다는 듯 얼굴 근육을 모두 사용해 비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베론은 그의 새하얀 두뇌에 남몰래 경의를 표하며, 한숨을 감추고 하나하나 알려 주었다.

“공녀와 비 전하께서 무언가 거래를 한 듯하군요.”

“거래? 무슨?”

“글쎄요. 뭐, 보나마나 공녀의 편에 붙는 대신 대관식 날 비 전하만큼은 살려 주겠다는 거래겠…….”

쾅! 오베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율리시즈는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율리시즈는 흡사 미친 사람처럼 쾅쾅 책상을 주먹으로 쳐 대기 시작했다.

“이 발칙한 것들끼리 작당을 하고 나를 우롱해? 특히 달리아 그것,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감히 나를 배신할 생각을 해?! 아아악!”

율리시즈는 이윽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펜부터 시작하여 잉크, 모래시계까지 하나하나 집어 던지다가 그는 팔로 책상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 버렸다.

와장창!

“이 망할 것들! 결코 가만두지 않겠어!”

혈압이 올라 얼굴이 벌게진 율리시즈가 씩씩대며 이를 갈았다.

문득 율리시즈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달리아 그것이 분명 공녀에게 내 비밀을 다 떠벌렸을 거야.’

사아악 하고 순식간에 머리에서 피가 빠지는 기분이었다.

달리아는 여태 자신이 벌인 일들을 모두 알고 있다.

‘만약 그것이 입을 잘못 놀리기라도 한다면……!’

율리시즈는 서둘러 고개를 들어 희번덕 뜬 눈으로 오베론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베론 마탑주. 내 편이 되겠다고 했지.”

“예.”

“그럼 당장 달리아를 불러오도록.”

율리시즈의 명령에 오베론은 한숨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지?

그렇지만 오베론은 인내심을 갖고 다시 한번 차근차근 율리시즈에게 일러 주었다.

“전하, 말씀드렸잖습니까. 비 전하께는 아직…….”

“내 말에 토 달지 마! 그딴 의도가 아니라고!”

“…….”

얕보였다는 생각이 든 율리시즈가 또다시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소리쳤다.

하지만 오베론의 싸늘한 얼굴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시선을 회피하며 변명을 했다.

“공녀에게서 되찾아야 할 게 있어. 그걸 위해 달리아를 이용하려는 거야.”

“그렇군요. 그럼 감시 저주를 걸어 두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그거야.”

율리시즈가 화색이 되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재수는 없지만 과연 어마마마께서 아끼실 만해. 일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는군.’

왜 진작 이 사람을 제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율리시즈는 후회스러웠다.

사랑해 주고 지위까지 안겨 준 자신을 배신하고 튈 생각을 하는 달리아보다 훨씬 나은데!

만족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율리시즈를 똑같이 흡족하게 바라보며, 오베론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장 비 전하를 불러오도록 하죠.”

* * *

갑작스레 호출을 받은 달리아는 부랴부랴 파그라시움에서 황궁으로 복귀했다.

웬일로 황제의 침실이 아닌 응접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율리시즈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달리아는 침착하게 미소를 띤 채 사과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전하. 조금 단장을 하느라…… 어?”

그러나 여유는 얼마 가지 못했다. 율리시즈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오베론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마탑주님이 여기에…….”

“안녕하세요, 비 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달리아가 겁에 질린 모습을 즐기듯 오베론은 기분 나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달리아는 뒤늦게 깨달았다. 저 둘은 이미 편을 먹었고, 자신을 잡아먹으러 왔다고 말이다.

“뭐하나, 달리아? 오베론의 팔이 무거워 보이는데.”

“…….”

율리시즈의 재촉에 달리아는 떨떠름하게 오베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엉거주춤 율리시즈와 오베론 사이에 앉자마자 오베론이 매섭게 질문했다.

“그나저나 비 전하. 소독약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데, 어디 다치셨습니까?”

이, 이런!

달리아가 방금까지 있다 온 곳은 소독약 냄새가 한가득 풍기는 파그라시움의 치료실이었다.

당황하기도 잠시, 오베론이 감히 저런 걸 뻔뻔하게 묻는 게 화가 나기도 해서 달리아는 오히려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뇨. 기분 탓 아닐까요?”

그러자 오베론이 의뭉스럽게 웃더니 율리시즈에게로 질문을 돌렸다.

“그런가요? 황태자 전하께선 어떠신지요.”

“남의 아내에게 못 하는 말이 없군.”

“이런, 실례했습니다.”

하하. 오베론과 율리시즈는 친분을 과시하듯 별 같잖은 이야기로 웃었다.

달리아는 위기감을 느꼈지만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기는 죽어도 싫어 그 사이에 껴서 물었다.

“그나저나 마탑주님께선 여기 어쩐 일이시죠?”

“아. 잠깐 차 한잔했네. 오베론, 자네는 이만 가 보게.”

“예, 전하. 영광이었습니다.”

오베론은 마지막까지 달리아를 흘기며 응접실을 나갔다.

드디어 율리시즈와 달리아, 단둘만이 남았다.

그나마 율리시즈는 상대하기 편해 마음이 놓인 달리아가 몸에 힘을 풀고 물었다.

“그나저나 전하. 저는 왜 부르신 거죠?”

“아무래도 걸리는 게 하나 있어서 말이야.”

“걸리는, 거요?”

히끅. 딸꾹질이 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고 달리아는 물었다.

율리시즈는 다행히 달리아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지 못한 듯 턱을 괴고 푸념했다.

“우리가 이제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라고 하지만, 역시 그대에게 그 보석을 선물하지 못한 게 좀 걸려서 말이야.”

“그 보석…… 이요.”

“그래, 그 보석. 공녀가 가로채 간 거 말이야.”

아, 겨우 그것 때문에. 하마터면 헛웃음까지 나올 뻔했다.

달리아는 애써 표정을 정돈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꼭 그 보석을 되찾아야 하나요? 저는 굳이 그 보석이 없더라도…….”

“그게 문제가 아니야, 달리아. 그 보석은 내게 있어 꽤 중요한 물건이거든.”

중요하다는 말에 달리아의 관심이 쏠렸다. 달리아가 심드렁하던 눈빛을 바꾸고 사냥감을 캐치한 듯한 눈으로 물었다.

“중요하다뇨?”

내가 저런 것한테 뒤통수를 맞다니.

그 모습이 우스워서 율리시즈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을 가려야 했다. 눈만 내보인 채 율리시즈는 감질나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사실은?”

웃음을 참는 것도 꽤 고역이군. 율리시즈는 새삼 깨달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냐. 아무튼 그대가 공녀에게서 빼앗아 와 주면 좋겠는데.”

“하, 하지만…….”

달리아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달리아 주제에 어디 감히 자신에게 대들 생각을 하겠는가.

심지어 공녀와 손잡은 걸 들킬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결국 달리아는 더 캐묻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노력해 볼게요.”

그대로 쪼르르 이블린에게로 달려가 그 보석에 대해 일러바칠 달리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율리시즈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율리시즈와 오베론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 역시 일러바치고 보석은 금고에라도 숨기려 한 번쯤은 꺼내게 될 테지.

그동안 오베론이 걸어 둔 감시 저주로 지켜보고 있다가 현장을 습격만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곧 그 망할 보석도, 망할 배신자도, 망할 공녀도 다 끝이다.

“믿고 있어, 달리아.”

율리시즈가 달리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씨익 웃었고, 곧 잡아 먹힐 사냥개를 보내듯 달리아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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