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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돈 쓰는 게 일이랍니다 (129)화 (129/154)

129화 - 129화

“유다!”

방해 받았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오베론을 잡으러 보낸 유다가 저렇게 다쳐 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나는 아연실색하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달리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제, 제가, 응급 처치만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마, 마법이 전혀 듣, 듣지 않아서…….”

달리아가 불안하게 말끝을 흐렸다. 덩달아 나까지 불안한 예감에 물었다.

“설마, 유다 죽었어?”

그러나 대답한 건 달리아가 아니었다.

“쿨럭…… 너무하네요.”

“유, 유다?”

설마 피투성이가 된 반송장 꼴로 대답할 수 있을 줄은 몰랐기에 나는 그만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너, 너 살아 있었어?”

그러자 유다가 상처 받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게 10년 치 연봉 쏘기 싫으셨습니까……?”

“그게 아니라! 보통 이 상태로 살아 있는 게 이상한 거지!”

“10년 치 연봉 일시불 수령 받기 전까진 절대 못 죽죠…….”

다 죽어 가는 꼴로 유다는 독하게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파그라시움 최고의 흑마법사라는 게 뻥은 아닌 모양인지 저런 헛소리 내뱉을 정신까지는 있는 모양이었다.

“이리 주십시오, 헤베 영애. 제가 부축하지요.”

“……!”

결벽쟁이 라파엘이 웬일로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유다를 빼앗다시피 넘겨받았다. 그만큼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리라.

유다를 부축하며 라파엘이 말했다.

“일단 당장 치료실로 옮기지.”

“감사합니…….”

“유다!”

그런데 유다가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사태가 심각했다. 그 순간 나와 라파엘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블린,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난 됐으니까 빨리 가! 쟤 진짜로 죽기 전에!”

나는 라파엘의 등을 떠밀다시피 쫓아냈다.

라파엘은 더는 토 달지 않고 유다를 부축한 채 파그라시움의 치료실로 걸음을 서둘렀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

아무리 그래도 내 스승인데 이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지 않은가.

불안해하던 내 귀에 달리아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나, 나 때문에…….”

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달리아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언제 주저앉아서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달리아 때문에?’

설마 유다가 달리아 때문에 다쳤다는 거야? 오베론을 잡으러 간 유다가 달리아와 마주칠 일이 뭐가 있지?

혼자서 골머리를 썩혀 봤자 뭣도 되지 않는다. 나는 달리아의 앞에 마주 앉아 그녀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달리아, 유다가 왜 저 꼴이 된 거야? 유다가 너 때문에 다쳤다는 건 또 뭐고!”

“그, 그게…….”

달리아는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손톱만 갉아 댔다.

지금 제 엄지 손가락에서 피가 나오는 것도 모를 만큼 눈은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확실히 유다의 몰골은 처참했다. 달리아가 아무리 사람을 해칠 마음을 먹었던 사람일지라도 실제로 죽기 직전의 사람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을 생각하면 제대로 된 사정을 듣는 건 불가능해 보였지만 어떻게 해서든 들어야 했다.

나는 달리아가 물어뜯던 손을 낚아채 강하게 말했다.

“정신 차려, 달리아. 지금 네 손톱이나 물어뜯을 때가 아니야.”

“……!”

달리아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굳어 버렸다.

나는 달리아의 눈을 잡아먹을 듯 바라보며, 혹시나 하고 물었다.

“유다를 저렇게 만든 거, 오베론이야?”

이 이상 커다래질 수 없을 만큼 달리아의 눈이 커다래졌고, 숨을 들이켠 흉부가 터질 듯 팽창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놀람도 잠시, 달리아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실토했다.

“……네. 그자가 그랬어요.”

망할, 진짜 그랬구나.

그렇다면 유다가 다치게 된 데에는 내 책임이 크다.

오베론이 마탑주라면 유다는 파그라시움 최고 흑마법사다.

그랬기에 유다가 오베론에게 밀리더라도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도망칠 틈도 없이 저렇게 당할 줄 알았다면 보내지 않았을 거다.

‘이제 알겠어. 내 일을 남한테 떠맡긴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나는 달리아의 손을 붙잡은 채,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다.”

* * *

달리아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나는 그녀를 돌려보내고 치료실을 찾았다.

입원실처럼 생긴 치료실에서 유다는 시체처럼 누워 있었고, 라파엘은 심각한 모습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라파엘에게 다가가 물었다.

“라파엘, 유다 상태는 어때?”

“아, 이블린.”

라파엘이 뒤늦게 내 존재에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라파엘의 안색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아졌다.

나는 라파엘의 옆에 서서 말했다.

“달리아 말로는 자기 힘으로 어떻게 치료할 수 없었다던데.”

“……예. 보통 상처가 아니라 전문 치료사에게 보였는데도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더군요. 그래서 응급 처치만 간신히 한 정도입니다.”

라파엘이 평소 유다를 노예 부리듯 부려도 그는 자기 부하 하나는 살뜰히 잘 챙기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능한 부하가 이 꼴이 되어 왔으니 그 기분이 어떠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라파엘의 잘생긴 얼굴에 수심이 깊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폭 기대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달리아가 그러더라고. 오베론 그 자식, 내 힘을 완전 지 힘처럼 쓰고 있었다고.”

“오베론 그자가 오지 않는 한 낫지 않는다는 이야기군요.”

꾸욱.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유다를 저렇게 만든 건 오베론이 훔친 이블린의 힘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내 명령 탓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유다가 오베론에게 당하지 않을 걸 몰랐을까?’

아니, 알았을 거다. 그런데도 유다를 내보냈다.

내가 아픈 건 싫으니까. 돈으로 뭐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언제 어느 때나 존재하는데도.

나는 어렵게 운을 떼었다.

“라파엘, 할 말이 있어.”

“설마 오베론을 직접 치러 간다는 건 아니겠죠.”

“당연한 거 아냐? 우리가 아는 흑마법사 중 제일 믿음직한 애가 저 꼴이 돼서 왔는데.”

그렇게 말하며 나는 라파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라파엘이 유다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짧은 고민을 마친 라파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어차피 내가 해야 될 일이었어.”

“……차라리 같이 가요!”

“그러다 너도 다치면? 유다는 다행히 달리아 덕에 돌아왔지만, 난 이동 마법 못 써. 네가 저런 꼴이 되는 건 원치 않아.”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라파엘이 애원하듯 소리친 그 순간이었다.

촤악!

“……!”

살을 가르는 소리가 바로 내 귓가를 스쳤다. 이윽고 투둑, 하고 핏방울이 바닥을 적시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다친 건 아니었다. 고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라파엘!”

시선을 내리니 라파엘의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 역시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혹스러워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일단 응급 처치를……!”

마침 치료실이고, 유다가 누워 있는 침대 협탁에는 붕대도 소독약도 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오려고 몸을 튼 그때, 나는 어느샌가 몸을 일으킨 유다와 눈이 마주쳤다.

“유다?”

유다가 어떻게 일어나 있을 수 있지?

분명 아까까지 자고 있었는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유다의 초점 없는 눈보다 그의 오른손을 주목했다. 그의 손에는 피가 묻은 단도가 들려져 있었다.

틀림없이 라파엘의 팔을 그은 단도였다.

나는 경악에 차 소리쳤다.

“유다 너 미쳤……!”

“잠시만요, 이블린. 물러나세요.”

라파엘이 다급한 손길로 날 뒤로 숨겼다. 지금 다친 건 자기면서 누가 누굴 걱정해? 라고 생각한 그 순간, 라파엘이 유다를 향해 사납게 물었다.

“오베론 매그너스인가?”

“뭐?”

지금 저거, 유다 보고 한 질문인가?

나는 뒤늦게 지금 이 상황의 위화감을 눈치챘다.

유다의 눈이 붉었다. 저 붉은 눈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진짜로 오베론이라고?”

“응. 안녕, 이블린.”

“……!”

심지어 목소리부터 표정까지, 전부 다 오베론이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기도 잠시, 나는 이 자식이 감히 라파엘의 팔에 상처를 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너 뭐야.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나선 라파엘한테 무슨 짓이야.”

“내가 가만히 듣고 있으려 했는데 안 될 것 같아서 손을 좀 썼어.”

“손을 쓰긴 지랄!”

저절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 내 반응조차 귀엽다는 얼굴로 오베론은 키득거리며 물었다.

“이블린. 네 부하가 보통 치료법으로는 나을 수 없는 거 알고 있지?”

이 새끼가? 불난 집에 기름 부어?

마음 같아선 멱살이라도 잡고 뺨이라도 때리고 싶은데 하필 또 유다의 몸이라 그러지도 못하는 게 한이었다.

하다 못해 쌍욕이라도 퍼부으려 내가 앞으로 척척 나선 그때였다.

“방금 네 연인에게도 똑같은 저주를 걸었어.”

“……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휘발될 뻔했다. 간신히 나가려던 정신을 붙잡고 라파엘을 돌아보았다. 라파엘 역시 제가 지금 뭘 들은 건지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우리를 위해, 오베론은 더 정확한 설명을 끼얹었다.

“네 부하와 마찬가지로 그냥 두면 죽게 될걸.”

“이 개새끼가! 감히 누굴 건드려!”

나는 더 볼 것도 없이 오베론의 멱을 잡았다.

구겨질 대로 구겨진 내 얼굴과 달리 오베론은 아주 여유롭게 내게 말했다.

“황태자의 즉위식을 망치기 전에 나랑 해결해야 할 일이 있잖아. 그렇지?”

해결해야 할 일. 그치, 아주 많다.

내 나비를 훔친 것부터 시작해 지금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 이유에 대해서까지 들어야 할 게 산더미였다.

고작 흑마법사끼리의 자존심 싸움이라기엔, 더는 납득이 가지 않으니까.

‘분명 나와 오베론의 과거의 접점 때문이겠지.’

나는 비겁하게 유다의 뒤에 숨은 오베론을 노려보다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담판 짓자는 거지, 이번에야말로? 네가 날 그렇게 괴롭히는 이유 어디 한번 좀 들어 보자.”

“이블린!”

라파엘이 정말 갈 거냐는 듯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내 고집이 어디 보통 고집인가. 나는 단호한 얼굴로 라파엘에게 말했다.

“라파엘. 이건 네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야.”

그러자 라파엘은 지독하게 상처 받은 얼굴을 했다.

마치 악역이 된 기분이었다.

“왜 그런 말씀을…….”

왜긴 왜겠어. 네가 소중하니까지,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들어갔다.

라파엘이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내게 닥친 모든 귀찮은 일을 해결해 주려 했고, 그로써 기쁨과 내 사랑을 얻었다. 그런데 방금 그 특원을 잃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유다를 가장한 오베론에게 경고했다.

“너, 목 닦고 기다려. 도둑놈 주제에 왜 그렇게 날 괴롭혀 대는지 낱낱이 파헤쳐 줄 테니까.”

“좋아. 그럼 조금 있다가 그 나무 아래에서 봐, 이블린.”

그 말을 남기고 오베론은 유다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유다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침대에 다시 풀썩 쓰러진 게 그 증거였다.

오베론이 가고 나서 라파엘은 거의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충격 받은 얼굴로 내게 소리쳤다.

“가지 마세요! 그자가 당신까지도 해치면 어쩌려고요!”

“쟤는 나 못 죽일걸.”

“뭐요?”

라파엘은 마치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듣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가 저러는 것도 당연했다.

오베론이 날 죽이지 못할 거라는 말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 오히려 사냥 대회 때 날 증오스러운 눈으로 봤던 것처럼 날 죽일 거라는 것에 대한 근거는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날 죽일 수 없을 거다.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살풋 웃으며 팔을 뻗어 라파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갔다 올게, 라파엘. 기다리고 있어.”

그 말에 라파엘은 마치 버려지는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는 눈을 했다.

그의 불쌍한 눈이 내 등을 좇는 것이 느껴졌지만 마음에 얹힐 일은 없었다. 난 반드시 돌아올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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