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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돈 쓰는 게 일이랍니다 (112)화 (112/154)

112화 - 112화

드디어 율리시즈와 달리아의 결혼식이 되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화려하게 꾸몄다. 아마 달리아의 웨딩드레스도 이보다 화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괜찮네.”

사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아름다웠다. 거울 속 미녀는 도대체 누굴까. 나는 나와 사랑에 빠졌다.

민폐 하객룩을 입었는데도 어쩜 이렇게 우아해 보일까. 그건 아마도 내 미모와 품위 덕분이리라.

머리와 메이크업도 소피가 평소보다 한층 더 힘을 내서 해 준 덕분인지 나는 평소보다도 몇 배는 돋보였다.

“살다 살다 내가 민폐 하객짓을 다 해 보네.”

이렇게 열심히 꾸몄는데 가는 곳이 남의 결혼식이라니.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 현타가 온 사이, 바깥에서 집사가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후작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가시죠, 아가씨.”

홀로 이동하자, 홀에는 내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라파엘이 있었다.

“라파엘!”

너무 크게 말했나? 내 외침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실과 헨리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입을 틀어막고 주접을 떨었다.

“이블린, 너무 에뻐!”

“우리 딸 하얀 드레스도 너무 잘 받네! 세상에, 누굴 닮아서 저렇게 사랑스러울까!”

“타라 결혼식 때가 생각나는구만…….”

피에르의 중얼거림에 헨리가 흠칫했다. 다행히 오르페시아와 피에르는 나를 보며 추억에 눈을 적시느라 헨리를 노려볼 새는 없어 보였다.

나는 라파엘의 앞에 서서 빙그르르 돌아보았다.

“어때? 잘 어울리지?”

“완전 잘 어울려! 이 제국 흰색 드레스는 다 네 거야, 이블린!”

아실의 호들갑에 더글러스는 옆에서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답은 호적 메이트의 대답이 아니다.

정작 내 질문을 받은 라파엘은 말과 잃고 나를 바라보았다.

‘넋을 놓을 만큼 내가 아름다운 건 맞지만 감히 고용주의 질문을 무시해?’

놀려 줘야지. 그러려면 일단 가족들을 보내야 한다. 나는 홱 몸을 틀어 가족들에게 압박을 넣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늦지 않았어?”

“괜찮다.”

대답한 건 타라였다. 타라는 명실상부한 프라비체 가문의 대장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딸의 투정을 받아 주는 엄마였다. 나는 타라의 등을 떠밀었다.

“뭐가 괜찮아? 다 같이 늦으면 내가 받을 주목을 여기 있는 이 대가족들이랑 나눠야 하잖아. 얼른 가!”

“잠깐, 이블린. 알았으니까 밀지 좀 마렴.”

“얼른! 자자, 그럼 다들 식장에서 봐!”

“어? 자, 잠시만, 이블린!”

쾅! 내 연약한 팔 힘에 저항 하나 못하고 여섯 명의 대가족이 모두 집 밖으로 쫓겨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라파엘이 정신을 차리고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너 때문에 가족들 쫓아냈잖아.”

“예? 저 때문에요?”

“나 어떻냐는 말에 대답 안 했잖아? 가족들이 있어서 못 한 거 아냐?”

“제가 그랬습니까? 죄송합니다. 오늘 아름답습니다, 무척…….”

라파엘이 뒤늦게 대답하며 다시 넋을 놓았다.

같이 쇼핑해 봐서 아는데 라파엘의 심미안은 나만큼이나 상당히 높다. 라파엘이 저 정도니 오늘 결혼식을 망칠 확률은 100%다.

나는 손끝에 작게 입 맞춘 뒤 라파엘의 뺨에 착 붙여 주었다.

“잘했어. 상이야.”

화악, 라파엘의 얼굴이 붉어졌다. 처음에는 원작 때문에 마냥 싸이코패스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이 많았다.

사람이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면 큰일난 거라는데. 그 생각이 들자 어쩐지 내 뺨까지 붉어진 것 같아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샬럿 황녀는?”

“아. 조슈아에게 맡겼습니다.”

조슈아라면 믿음직하다.

오늘 결혼식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망쳐야 한다. 그래야 샬럿의 존재가 알려져 샬럿이 황녀로서의 지위를 되찾고 율리시즈와 달리아를 끌어내릴 수 있다.

‘달리아가 가진 힘도 되찾아 와야 해.’

쓸데없는 곳에 정신을 팔 시간은 아직 없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라파엘의 손을 잡았다.

“가자.”

* * *

황제가 의식 불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은 성대했다. 다들 달리아가 황태자비가 되는 것에 걱정을 하기보다는 빨리 황제의 부재가 채워지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은 그 무엇보다도 황태자의 결혼식이 빨리 이뤄지길 바라는 이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보다 프라비체 가문은 참 많이도 몰려 왔군.”

“그런데 정작 공녀님이 안 보이지 않아요?”

이블린이 이제 율리시즈에게서 모든 관심을 뗐음은 모두가 인정했다. 심지어 달리아에게는 누명이 씌워져 재판까지 당했다.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예비 비전하가 황후가 되어서 공녀님께 보복하면 어째요.”

“그럴 수가 있나. 아무리 그래도 뒷배 없는 황후가 감히 프라비체 공작가에게 대들 수는 없는 법이지.”

“그건 맞아요.”

킥킥. 작은 비웃음은 성대한 음악이 시작되며 사라졌다.

대신관이 주례석에 나타나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부터 율리시즈 에트왈 상드리움 황태자 전하와 달리아 헤베 예비 황태자비의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신랑 신부는 입장해 주십시오.”

파앗. 관객을 향한 조명석이 일제히 꺼지고 입구 하나만을 환하게 비추었다.

문이 활짝 열리고 신랑 신부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머…….”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달리아의 모습에 아까까지 달리아를 욕했던 사람들까지도 멍하니 달리아를 눈으로 좇았다.

달리아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채 율리시즈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단상까지 걸어갔다.

달리아가 떠는 것을 느끼고 율리시즈가 속삭였다.

“긴장되나, 달리아?”

“괜찮아요.”

괜찮다고 하면서도 달리아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아가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율리시즈였다.

그가 비릿한 웃음을 감추고 하객석을 힐끗 바라본 순간, 율리시즈는 당황하고 말았다.

‘……없어.’

그 남자가 없다. 그 남자가 없으면 안 된다. 달리아도 그걸 뒤늦게 알아채고 불안하게 율리시즈를 올려다본 순간이었다.

쿵. 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도대체 누가 결혼식에 늦은 것도 모자라 이렇게 시끄럽게 들어오나,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허억.”

“공녀와 후작이야.”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그들의 등장 때문이었지만 이윽고 그들의 옷차림을 눈에 담고 귀족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탄식했다.

“맙소사.”

“세상에…….”

뒤늦게 나타난 이블린과 라파엘은 신랑 신부보다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특히나 이블린의 드레스는 화려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렸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하마터면 이 예식의 주인공은 이블린이라고 순간 착각했을 정도였다.

“……!”

달리아와 율리시즈 역시 이블린과 라파엘의 차림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뭘 봐? 이블린은 달리아와 율리시즈를 향해 얄미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리에 착석했다.

‘또 날 비웃는 거야?’

달리아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달리아가 가장 눈에 띄어야 하는 이 자리에서 굳이 저런 하얀 드레스를 입고 오다니!

달리아의 숨이 거칠어지자 율리시즈가 달리아에게 작게 눈치를 주었다.

“진정해, 달리아.”

“……!”

율리시즈가 천천히 달리아의 손을 어루만졌다. 달리아는 황급히 제정신을 되찾았다.

그래, 어차피 이 식의 주인공은 자신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식을 망칠 수는 없다.

“신랑 신부, 앞으로.”

율리시즈와 달리아는 화를 삭이고 단상 위에 올라가 주례 앞에 섰다. 주례가 길고 긴 선서문을 읊으며 물었다.

“결혼식은 두 사람의 인생이 하나가 됨을 신께 알리는 성대한 의식입니다. 율리시즈 황태자 전하께서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달리아 헤베 영애와 함께 나누며 영원히 아껴 주고 보듬어 줄 것을 신께 맹세합니까?”

“맹세하오.”

“달리아 헤베 영애께서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율리시즈 황태자 전하와 함께 나누며 영원히 아껴 주고 보듬어 줄 것을 신께 맹세합니까?”

“신께 맹세합니다.”

“두 사람은 반지를 교환하고 서약의 키스를 나누십시오.”

달리아와 율리시즈가 서로를 바라보며 마주 섰다. 율리시즈는 달리아의 손을 잡고 왼손 약지에 망설임 없이 반지를 끼워 주었다. 이제 달리아의 차례였다. 달리아는 시종에게서 반지를 건네받았다.

달리아는 율리시즈에게 끼워 줄 반지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반지만 전하의 손에 끼우면…….’

달리아는 불안하게 율리시즈를 올려다보았다. 율리시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시즈의 약지에도 반지가 끼워졌다.

이제 서약의 키스를 나누고 신관이 선언을 마치면 율리시즈와 달리아는 예식장에서 퇴장해야 했다.

율리시즈는 최대한 느긋하게 달리아의 면사포를 뒤로 넘겼다. 율리시즈가 달리아의 턱 끝을 당겼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율리시즈가 속삭였다.

“키스가 끝나면 바로 시작해.”

달리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아와 율리시즈가 키스를 나누고 입술을 뗀 그 순간이었다.

쾅!

또다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지각을 해 대는 거야? 율리시즈와 달리아가 신경질적으로 문 쪽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그 순간, 율리시즈와 달리아는 얼어붙었다.

“어, 어떻게…….”

“동생 결혼식인데 늦어서 미안? 벌써 끝났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목소리로 샬럿이 인사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율리시즈가 뒷걸음질을 쳤다. 샬럿은 지금 감옥에 있을 텐데 어떻게 된 거지?

놀란 것은 율리시즈와 달리아뿐만이 아니었다.

“샬럿 황녀?”

“샬럿 황녀라고?”

“재판에 나타났다더니, 정말이었어?”

“갇혔다는 말이 있더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샬럿의 행색은 누가 봐도 갇혀 있다 온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식으로 초대 받았다고 착각할 만큼 격식에 맞으면서도 황족의 위엄을 챙겨 주는 옷이었다.

“보아하니 다 끝난 것 같네. 그럼 바로 본론 들어가도 되지?”

샬럿은 귀족들의 소란을 즐기며 버진로드를 걸었다. 율리시즈에게 다가올 속셈이었다.

“저, 전하. 전하!”

달리아가 다급하게 율리시즈를 불렀으나 율리시즈는 패닉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듯 아까부터 움직임이 없었다.

순간 달리아는 이블린과 눈이 마주쳤다. 이블린과 라파엘이 키득거리고 있었다.

‘또 저 인간들이……!’

어느샌가 샬럿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샬럿이 오페라 가수처럼 식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들 내가 돌아온 이유가 궁금하겠지. 오늘은 내가 돌아온 이유를 밝히려고 왔어.”

달리아는 지금 샬럿이 감옥에서의 ‘그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고 생각했다.

율리시즈는 지금 쓸모가 없고 믿을 건 자신뿐이었다. 저들이 이렇게 나온 이상 달리아도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내가 돌아온 이유는……? 어머?”

샬럿이 말을 하다 말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파스스, 샬럿의 머리 위로 돌가루가 떨어졌다.

쩌적, 쩌억.

천장에 생긴 미세한 금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처, 천장이!”

누군가가 천장을 가리키기 무섭게 쿠구궁 건물이 흔들렸다.

예식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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