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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돈 쓰는 게 일이랍니다 (107)화 (107/154)

107화 - 107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샬럿은 지금 황궁 감옥에 있다며? 해명하라는 눈으로 라파엘을 바라보니, 라파엘은 샬럿을 향해 따가운 눈총을 쓰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황궁이 데려간 건 샬럿 황녀로 변한 유다입니다. 샬럿 황녀는…… 보시다시피 일단 이 집에 뒀고요.”

유다는 연봉 10배 일시불 수령을 위해 10년 치 일을 몰아서 하고 있었다. 어쩐지 라파엘의 보수는 몰라 유다의 보수를 떼어먹으면 언젠가 유다에게 저주받을 것 같다.

‘아니, 그런데 나를 좋아하면서 외간 여자를 이 집에 들였단 말야?’

셀레스티안 저택은 내게 있어 비밀기지 같은 곳이었다. 어쩐지 나만 보면 좋다고 꼬리 세우던 고양이가 다른 사람에게도 밥 달라고 애교 부리는 걸 목격한 기분이었다.

내 표정이 배신감에 물들자 샬럿이 라파엘을 나무랐다.

“라파엘 너 지금 이쁜이 울리니? 그렇게 안 봤는데.”

울지도 않았고 내가 지금 기분이 나쁜 건 샬럿 때문이다. 샬럿이 내 뾰족한 눈빛에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저 되바라진 눈빛은 여전하네. 아주 마음에 들어.”

샬럿이 마구잡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상에, 이렇게 이블린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흐트릴 사람이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벙쪄 있다가 뒤늦게 신경질을 내며 샬럿의 손을 뿌리쳤다.

“아, 치워요!”

“앙칼진 것 봐라?”

샬럿이 더더욱 내 머리를 산발로 만들어 놨다. 이거 뭐지? 새로운 또라이의 등장인가?

나는 달리아 하나만 상대하기도 벅찬 몸이었다. 뿌리쳐도 뿌리쳐도 샬럿의 손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라파엘이 샬럿을 향해 경고했다.

“그쯤 하십시오, 황녀님.”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샬럿이 흥, 콧방귀를 뀌며 손을 거두었다.

라파엘이 작작 하라는 눈으로 샬럿을 노려보았고 샬럿은 왜, 뭐, 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언뜻 보기엔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데, 이상하게 묘하게 친밀해 보였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난 이런 감정은 참지 못한다. 결국 나는 묻고 말았다.

“둘이 무슨 사이야?”

* * *

그 시각, 달리아는 오베론을 불렀다. 달리아는 다짜고짜 따졌다.

“오베론 님. 왜 거짓말을 하셨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오베론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말끔한 얼굴로 시치미를 똑 떼었다. 그 태도에 달리아는 열이 뻗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블린이 제게서 힘을 빼앗아 갔어요! 흑마법사가 분명하다구요. 그런데 왜 심판 땐 거짓말을 하셨냐구요!”

“돌이 변하지 않았던 걸 어찌합니까.”

“그래도 공녀는 흑마법사잖아요! 이 제국에서 흑마법사는…….”

“흑마법사는?”

화를 내다 말고 달리아가 흠칫했다. 흑마법사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달리아 역시 사라져야 마땅했다. 달리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베론은 픽 웃으며 차분히 물었다.

“그나저나 나비를 빼앗겼다고요.”

“……네.”

“힘이 그만큼 빠져나갔겠군요.”

설마 자신을 탓하려는 걸까? 오베론은 능력주의자다. 자신이 준 기회를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한다.

오베론의 발걸음이 제게로 향하자 달리아는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오베론은 달리아를 슥 지나쳐 커튼이 처진 벽으로 다가갔다.

뭘 하려는 거지? 달리아가 불안한 눈으로 오베론을 지켜보았다. 오베론은 벽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비었던 벽이 다시 나비로 뺴곡히 채워졌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달리아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힘을 빼앗긴 자신을 탓하긴커녕 보충하라고 나비를 주었다.

달리아에게는 완전한 편이라는 게 없다.

달리아는 재판장의 광경을 떠올렸다. 자신은 아버지가 방해하지 못하게 온갖 수를 다 써서 재판장에서 쫓아냈는데, 이블린은 3대 가족이 모두 재판에 참석했다.

참을 수 없이 부러웠고 미웠다.

달리아에게는 율리시즈가 있지만 달리아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오베론에게 물었다.

“……오베론 님은 제 편인 건가요?”

오베론의 태도는 애매하다. 이블린의 편이라기에는 그녀의 힘을 빼앗아 달리아에게 주었고, 달리아의 편이라기엔 이번 심판 때 도움을 주지 않았다.

달리아는 울 것 같은 얼굴로 희망을 구걸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애매한 비웃음이었다.

“완전한 편이란 건 없습니다, 예비 비전하.”

달리아의 희망이 부서졌다. 오베론은 달리아가 충격에 빠지든 말든 문고리를 잡고는 고개만 돌려 까딱 인사했다.

“그럼 저는 마탑의 일로 바빠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자, 잠깐!”

달리아가 멈춰 세웠음에도 오베론은 방을 쌩하니 나가 버렸다. 홀로 남은 달리아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금 나를 무시한 거야? 예비 황태자비인 나를?’

예비 황태자비가 되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변한 게 없다. 오베론이고 이블린이고 다들 자신을 무시하고 깔본다.

‘……왜 나만.’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하지? 어디서부터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한 걸까.

‘주제도 모르고 황태자비가 되려던 게 잘못이야?’

잘못일 리가. 신분 상승은 누구나가 꿈꾸는 일이다. 달리아라고 꾸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어려운 환경과 온갖 방해를 극복하고 예비 황태자비가 되었으니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

‘내가 재판에서 져서, 그래서 비웃음을 사서 다들 나를 외면하는 거야?’

하지만 그건 자신의 탓이 아니지 않은가. 오베론의 심판이 돌팔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도대체 어디부터 바로 잡아야 할까. 달리아는 문득 샬럿 황녀의 존재를 떠올렸다.

달리아가 지금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은 예비 황태자비라는 권력이었다.

하지만 그 권력은 샬럿과 이블린에 의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황제가 없는 지금이, 아직 샬럿 황녀의 존재가 세상에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지금이 기회였다.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의 권력을 좀 더 확실히 다져놔야 했다.

‘지하 감옥에 가야겠어.’

가서 샬럿 황녀를 일단 죽여 버리는 거다.

달리아의 눈에 안광이 사라졌다. 달리아는 성큼성큼 지하 감옥을 향했다. 하지만 달리아보다 먼저 찾아온 객이 있었다. 달리아는 혹시라도 들킬까 몸을 숨겼다.

“무슨 낯짝으로 황궁에 돌아왔지?”

“너 같으면 말해 주겠니? 그 멍청한 머리로 열심히 알아보지 그래?”

“닥쳐! 감히……!”

“감히? 못 본 사이에 누나한테 말버릇이 고약해졌네. 역시 제대로 훈육을 못 시키고 간 탓인가 봐.”

샬럿과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율리시즈였다.

혹시나 율리시즈가 먼저 샬럿을 제거하려고 온 건가? 달리아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잠자코 있었다.

“그보다 어마마마는? 위독하시다며?”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왜 내가 신경 쓸 게 아니야? 내가 친딸인데, 나 아니면 누가 신경을 쓴다고.”

‘친딸?’

달리아는 샬롯의 말을 되짚어 보았다. 샬럿이 황제의 친딸인 건 당연하지만 그녀의 어투는 마치…….

“어마마마도 참 불쌍하셔. 기껏 제 아들도 아닌 놈 먹이고 입히고 씻겨서 황태자 자리까지 줬더니 실상은 친모녀를 떨어뜨리려 하는 배은망덕한 놈일 줄 알았겠어?”

달리아는 숨을 죽이고 눈동자를 굴렸다.

‘……전하가, 폐하의 친자가 아니라고?’

달리아는 믿지 않았다. 샬럿은 딱 봐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았다. 자꾸 헛소리만 해 대니까 황제로부터 유폐를 당한 걸 거다. 달리아는 율리시즈를 믿어 보려 했건만.

“말조심해!”

율리시즈의 고함에 샬럿, 정확히 말하자면 유다는 살짝 놀랐다. 하마터면 10년간 연봉 일시불 수령의 꿈이 날아가 버릴 뻔했다.

유다는 샬럿이 지시한 대로 착실히 율리시즈를 도발했다.

“율리시즈, 불쌍한 머저리 동생아. 너는 절대로 황제가 될 수 없어.”

“닥쳐, 닥치라고!”

“분명 어마마마도 네 짓이겠지. 어마마마께서 깨어나셔서 네가 한 짓과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알면 어마마마는 옛날과는 다른 선택을 내리실 거야. 날 황태녀로 앉히고 널 유폐 보내겠지!”

“닥치라고 했어!”

쾅! 율리시즈가 샬럿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샬럿의 이마가 철창에 부딪히며 살짝 깨져 피가 흘렀다.

샬럿 안의 유다는 필사적으로 안 아픈 척을 해야 하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지만, 연봉 10년 치 일시불 수령을 꿈꾸며 독하게 버텨 내고 웃은 순간이었다.

딸꾹.

감옥으로 들어서는 모퉁이 뒤에서 누군가가 딸꾹질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율리시즈가 소리쳤고 달리아는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딸꾹질이 멎는 일은 없었다.

‘도망, 도망가자!’

타닥, 타닥. 발소리가 들리든 말든 달리아는 달렸다. 습하고 어두운 지하 통로를 달려, 돌바닥에 발이 아프고 계단을 뛰어오르느라 다리가 아파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달렸다.

쾅! 달리아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다.

‘안 들켰을 거야. 안 들켰어야만 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보다 율리시즈에게 들키는 것이 무서웠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만약 들켰다면 율리시즈가 진작 찾아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달리아가 안심하고 이불을 내린 순간이었다.

“달리아.”

율리시즈다. 율리시즈가 지금 밖에 서 있다!

달리아는 황급히 숨을 죽이고 자는 척 했다. 하지만 제 손바닥 위라는 듯한 율리시즈의 차가운 목소리가 달리아의 귀를 찔렀다.

“안 자는 거 다 안다, 달리아. 들어가지.”

벌컥. 허락도 없이 문이 열렸다. 달리아는 공포를 느꼈다.

저벅, 저벅. 율리시즈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율리시즈의 발소리는 아주 가까이서 멈췄고, 머리맡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일어나.”

“꺄악!”

율리시즈가 달리아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 일으켜 세웠다. 어둠 속에서 마주한 율리시즈는 섬찟한 눈을 하고 있었다. 율리시즈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물었다.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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