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화
사람과 사자와 황소와 독수리 (3)
마리아가 노인 보라는 듯 대추야자 하나를 더 꺼냈다. 노인의 얼굴이 점점 구겨지는 걸 보면서도 우물거렸다.
“대추야자 하나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하지만 신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 분명 서부 사막과 오아시스, 대추야자 나무도 만드셨을 거란 말이죠? 이걸 먹는 게 왜 신을 모독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데요.”
“악마에게 넘어간 것도 모자라 예의까지 없는 못된 것이로구나! 단 것에 영혼까지 내다 버릴 우매한 것아, 귀를 파고 잘 들어라!
신께서 빚어낸 고귀한 땅은 마그데부르크까지였고, 그 왼쪽 지역은 본디 악마가 빚어낸 땅이었다! 이곳 마사다 역시 악마가 만든 거란 말이다!”
카인마저도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당연히 헛소리다. 제국과 서부 왕국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도 있었던 땅이다. 마사다라는 이름만 안 붙었을 뿐이지.
마리아는 혀를 살짝 날름거리면서도 정중하게 되물었다.
“그러면…저희는 지금 악마의 창조물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셈입니까, 어르신?”
누가 봐도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데 말입니다.’라는 투였다. 노인의 분노가 훈계조로 바뀐 것도 그 때문인 듯했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지! 그러니까 여기서 알렉시오스 황제 폐하와 위대한 선지자 인노켄티우스 교황님의 지혜를 찬양해야 하는 거라고!
그분들이야말로, 악마의 땅은 이교도와 이단자의 시체를 묻은 다음 그 가족의 피와 눈물을 뿌리면 정화될 수 있음을 알려주셨으니까! 마사다뿐만이 아니지! 다메섹, 헤브론 저 멀리는 엠마오까지!”
“정화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듣긴 했는데,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에서 가장 과격한 말이로군요. 어르신. 대체 어디서 들은 말씀이십니까?”
마리아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어처구니도 없는 나머지 따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 새대가리만 한 머리와 유리구슬만 한 눈알로 세상을 재단하지 말아라, 그 말이다! 상식이잖나, 상식!
무슨 심오한 지혜가 아니라 내가 너희들만 했을 때는 온 제국 사람들이 다 알았던 상식이란 말이다!"
"그 때가 어떠했길래요?"
"위대한 정복의 시대!" 노인이 고함질렀다. "위대한 알렉시오스 1세께서 마사다 성채의 주춧돌 하나조차 남기지 말고 멸하라 하셨을 때, 나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나 뿐만이랴! 지금이야 털 뽑힌 닭 신세지만, 그래도 한때는 휘황찬란한 독수리였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 말이야!”
노인은 흥분한 나머지 너무나 많은 부분을 생략했고, 그래서 카인은 하나하나 천천히 되짚어야 했다.
“혹시 십자군이셨습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노인이 카인에게 소리 질렀다.
역시나, 이 눈앞의 노인은 마왕에 맞선 5차 십자군보다 훨씬 이전, 그러니까 30년도 더 전에 있었던 2차 십자군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마그데부르크가 제국 최남단 요새 도시였고, 마사다는 서부 이교도의 땅이었다.
노인은 이제야 이 ‘멍청한 젊은이들’이 자기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지 비난의 강도를 한껏 올렸다.
“그때는! 황제 폐하 말씀 앞에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던 시절이야! 저 더러운 귀족 새끼들, 자기들 배만 불리던 놈들?
알렉시오스 1세께서는 그 돼지 새끼들을 도살한 다음 배에 양초 심지를 박아 넣으셨었지! 수도에서는 일 년 열 두 달 동안 인간 기름 양초가 꺼지지를 않았다니까!
그런데 지금은…허어…! 젊은 놈들은 어디를 밟고 있는지도 모르고 저 악마의 씨앗 열매나 좋다고 처먹고 있고, 현 황제께서는 유약하신 나머지 귀족 놈들이 다시 활갯짓하는 걸 내버려 두고 계시니!
역시 안나 공주님께서 제위에 오르셨어야 했어! 그 분이었다면, 황실의 권위에 대드는 놈들을 무릎부터 잘라버리셨을 것이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을 테니까!”
“그 말씀은 좀…불충하지 않습니까?”
깜짝 놀란 카인이 목소리를 낮추라는 듯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지만,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난 이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거적때기 같은 놈에 불과한데, 뭐가 두려운가? 옳은 말, 진실을 말한 죄로 죽어야 할 만큼 제국은 그렇게도 타락했단 말인가?
황실이 올바른 일을 하려고 해도, 저 귀족 새끼들이 말을 안 들어 먹어서 제국이 이 모양이 된다는 진실도 말을 못 한단 말인가?”
아무리 마사다가 제국 직할 도시고 눈치 볼 귀족이 없다고는 해도 이런 발언은 좀 과한 데가 있었다.
오히려 이런 정도의 분노는 강도 기사들에게 괴로움을 겪던 막시부르크에서나 접하던 종류의 것이었다.
대체 높으신 분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기에 우리가 이런 괴로움을 겪어야 하느냐는 원한 섞인 표현 말이다.
“알겠습니다.” 카인은 노인에게 부드럽게 미소까지 지어주었다. “그렇다면 어르신, 더 나은 제국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노인은 못마땅한 듯 카인을 노려보았지만, 이내 끙, 하며 허리를 죽 폈다.
“똑똑한 젊은이는 못 되는군! 하지만 이 늙은 까마귀의 말이라도 듣고 싶다면, 기꺼이 알려주겠네. 미욱한 이를 일깨우는 것은 노인의 당연한 의무이니까!
이단자는 모조리 불태우고, 이교도는 목을 잘라 피로 땅을 적시고, 지엄한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귀족 놈들은 사지를 잘라버려야지!
정의로운 황제의 뜻이 널리 퍼지지 못하는 건 다 귀족은 해 처먹고 있어서 아닌가!
황제께서 이 땅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스리시고, 온 제국민이 하나가 되어 발맞추어 나간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며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교황께서도! 이단자, 이교도, 사람들을 속이고 타락시키는 저 사막 것들을 모조리 불사르시라고 엄명을 내리셔야 하고! 이단심문소는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참!”
카인은 고개를 한 번, 그리고 두어 번 끄덕거렸다. “이해했습니다.”
환하게 미소까지 지어주며, 그럴 수 있다면 노인의 팔이라도 잡고 싶다는 동작까지 취했다.
“어르신의 그 뜻, 미처 몰랐습니다.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군요.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어깨에 그런 큰 상처까지 입으셨는데…”
카인은 노인 어깨의 그림을 가리켰다. 노인은 가슴을 두드리며 웃었다.
“상처는 무슨! 이교도 놈들은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어! 이건 상처가 아니네. 늙은 나보다도 눈이 어둡군, 그래! 이건 약속의 징표라네. 젊은이. 약속 말이야.”
“어떤 약속입니까?”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약속. 모든 것이 올바르게 돌아갈 거라는 약속! 암. 언젠가는 우리 같이 죽지 못해 사는 놈들에게도 좋은 날이 올 거야.
우리 늙은이들이 어떻게 살았는데. 피칠갑을 한 채로 돌아다녔고, 동료의 시체로 벽을 쌓아 길을 가로막았다네…”
노인의 눈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그는 눈꺼풀을 꽉 내리 닫았다. 대신 친근한 듯한 몸짓으로 카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건장한 몸이로군 그래. 제국군에 입대할 생각은 없나?”
“아직 동생들이 어려서요. 하지만 다 커서 돌보지 않아도 되면, 그때는 정식으로 입대할 생각입니다.”
카인은 대충 둘러대었다. 노인의 눈에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가장 정도로 보였으리라.
“그래. 그래. 사내라면 말이야, 쌍두독수리의 깃발 한 번은 들어 보아야 하는 법이야…
그래야 나처럼 깃털 다 빠진 새들도 안심하고 무덤에 들어갈 것 아닌가. 늙은이들끼리 만나면, 그저 깍깍거리기만 할 뿐이니…이 말은 흘려들으시게나. 젊은이.”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해지는군요. 혹시 십자군 소속이셨던 분들과 특별한 모임이나 교류 같은 것을 자주 하시는지요?”
“말하지 않았나. 늙은 놈들이 모여 봤자 지저분한 깃털이나 날릴 뿐이라고!” 노인은 군데군데 빠진 이를 훤히 보여주며 웃었다.
“그래도 요즘은 꽤 재미있지. 뜻이 있는 젊은이들도 자주 찾으러 오고, 좋은 말도 들려주거든.
얼마나 좋은가 말이야! 때가 임박하였으니, 죄지은 자는 벌을 받을 것이고 억울한 이는 보상을 받을 것이며, 그림자가 가렸던 것을 빛이 드러낼 것이라고…
아무튼 자네들 말이야. 나 정도 되니까 이렇게 곱게 넘어가는 거지, 이런 그림 있는 늙은이들은 피해 다니라고. 알아들었나? 괴팍한 놈들이 많아!”
“감사합니다.”
카인은 마지막까지 정중하게 인사했다. 늙은 사내는 몸을 돌려 저편으로 걸어갔다. 그제야 카인은 마리아와 릴리에게로 몸을 돌렸다.
“대추야자 좀.”
“다 먹었는데.”
마리아가 빈 주머니를 펄럭거렸다. 릴리가 손에 쥔 것 하나를 내어주었다. “혹시 몰라서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인은 고맙게 받아들였다.
세 사람은 수도원 쪽으로 걸었다. 이윽고 마리아가 콧김을 내뿜었다.
“좋아. 너부터 말해.”
“왜지?”
“어째서긴. 네 미래의 아내께서 다 속삭여주셨다고.” 마리아는 사레가 들린 릴리를 모르는 척했다.
“너 그렇게 눈 반짝거리면서 실실 웃으면 뭔가 단서를 잡았다는 뜻이라던데?”
“내가 그런 표정을 지었다고?”
“원래 자기 표정은 자기가 모르니까. 아무튼, 릴리 요원님께서 그렇게 말해주셔서 꾹꾹 눌러 참은 거야. 내 성질대로였다면 당장 거기서 들이받았을 거거든. 그러니까 말해 봐. 뭘 알아냈어?”
“누군가가 노인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 어깨에 그림을 그려준 놈들이겠지.
복수. 그림자. 귀족보다는 황제와 백성을 더 강조하는 말투를 보면, 하스펠 신부님이 괴이하게 여겼다는 검은 불사조 신앙 아니었나 싶은데.”
마리아가 걸음을 멈췄다. 한숨을 푹 쉬며 이마를 쓸어올렸다.
“…카인. 너 말이야. 화 안 났어?”
“기분 좋았을 리가 있나. 하지만 어깨에 검은 불 그림이 확실히 보였으니, 저게 뭔지 정확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에만 집중했지. 그리고 그 부분은 너도 할 말 없을 텐데.”
“하?”
“일부러 저분을 화나게 했잖나.”
마리아는 헛소리를 다 한다는 듯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놀란 눈만큼은 어찌하지 못했다. 결국 마리아는 한쪽 입가를 찡그렸다.
“좋아. 내가 졌어. 어떻게 알았어?”
“노인분 싫어하는 일을 골라서 하고, 교묘하게 증언을 끌어내던데.”
“흥분한 사람은 쓸데없는 말을 더 하기 마련이니까.” 마리아는 순순히 인정했다.
“은근히 잘 먹혀. 은근슬쩍 살짝 무시하면, 너 따위가 뭔데 하면서 발끈하거든. 그리고 조사관은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지 말을 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거든.”
“저. 저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릴리가 불안한 듯 노인이 사라진 쪽을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되긴.” 마리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일 없어. 좀 많이 무례하고 짜증스럽기는 하지만, 뭐라 탓할 생각은 없어.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아마 마지막도 아닐 거야. 그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붙들면서 이해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하지만…”
마리아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영토를 침범당한 사자가 적을 주시하는 것처럼, 경계와 분노의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을 부추기는 놈. 그런 놈은 가만히 못 놔두겠어.”
* * * * *
마사다 수도원에서는 고깃덩어리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나이 든 수사부터 나이 어린 수습까지 입이 귀에 걸린 것이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청빈의 수도원에서는 아무리 가진 돈이 많아도 먹는 것부터 생활 습관까지 전반에 엄격한 제약이 가해진다고 했다.
“그렇지만 손님들의 선물까지 거부하는 건 또 다른 결례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기껏 받은 고기를 썩게 두는 것 역시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이른 시일 내에 굽거나 삶거나 끓이거나 해서 먹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중년의 수도사 바르나바가 껄껄거렸다. 마리아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두 사람은 꽤 반갑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세 사람의 사정을 들은 수도자는 4인실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방은 널찍하고 또 깨끗했다.
배도 고프고 쉬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다. 바르나바는 세 사람을 기꺼이 식당으로 안내해주었다.
식사 시간은 아니었지만, 뜻밖의 고기 선물을 받은 수사들은 기꺼이 창고에서 치즈와 빵 덩어리, 그리고 으깬 병아리콩과 올리브유 섞은 것을 내어주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이 감칠맛을 더했다.
“그런데. 바르나바 수사님. 혹시 저 머리 벗겨진 할아버지에 대해 아시나요? 대뜸 욕부터 하시던데…”
마리아는 노인의 인상착의와 행동에 대해 들려주었다. 바르나바 수사는 난처한 듯 옆머리를 긁적거렸다.
“바올로 할아버님 말씀이시군요. 3차 십자군에 소속되었던 것도 맞고…고향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점령군으로 이곳에 오셨다가 다른 분들처럼 자리를 잡고 사신 것도 맞습니다.”
“원래 그렇게 좀 과격하셨나요?”
“그런 성향은 분명히 있었죠. 급하셨고,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셨지만, 그래도 이내 사과할 줄도 아셨고 유쾌하고 술 즐기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호인이라고 해야 할까요…다만 급격히 어두워진 건 10년도 더 전에 아들을 잃고 나서입니다. 장남 아래로 두 자녀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장남마저도…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죠.”
바르나바는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카인은 정말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이어받았다.
“어깨에 거무스름한 상처 같은 게 나 있으시던데요. 그냥 둬도 괜찮은 걸까요?”
“그런 게 있었다고요?” 바르나바가 깜짝 놀랐다. “특이하네요. 누가 몸에 손만 대도 질색하시는 분인데. 어디 부딪히셨나…아니면 다른 십자군 어르신들과 다투기라도 했던 모양이군요. 그분들은 늘 그렇습니다.”
카인과 마리아의 눈이 마주쳤다. 바르나바는 검은 불이니 바람잡이에 대한 건 하나도 모르는 눈치였다.
“어르신들과 딱히 교류가 없으신가요?”
“글쎄요…” 바르나바가 서글픈 듯한 웃음을 지었다.
“교류가 없다기보다는, 소원해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뿐만이 아니죠. 마을 사람들 전부가 그렇습니다. 마그데부르크가 부유해지고 나서는 더더욱 그렇죠.”
“마그데부르크가요?”
“아시겠지만, 이 도시가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곳은 아니잖습니까.” 바르나바 수사가 두 팔을 벌렸다.
“그렇지만 부유하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들렀다가 가죠. 참새들 노는 곳에 화려한 공작이 잠깐 앉았다가 가버리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중에는 이교의 옷과 언어를 쓰며, 정말 귀빈 대접하며 모셔 오는 사람들도 있고. 죽고 피 흘리며 싸운 어르신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해버린 걸, 어찌하겠습니까?
여전히 주일 미사는 나오시지만…예전 같은 그런 열의는 없습니다. 바올로 할아버님뿐만이 아니라 마사다 사람들 전부가 그렇죠.
어떤 어르신들은, 고생을 할 거였으면 마그데부르크에서 할 걸 그랬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답니다. 여기서 뼈 빠지게 일해봤자 생기는 건 질투뿐이라고요.”
바르나바 수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음을 터트렸지만, 카인과 릴리, 마리아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사악한 자가 자기 뜻을 펼치러 사람들 사이로 파고드는 지금은 더더군다나.
“혹시 마을 어르신들이 잘 모이는 곳이 있나요? 기회가 되면, 마그데부르크에 말씀 전하겠습니다. 대주교님들 혹은 학식 높으신 수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마리아가 은근슬쩍 던진 제안을 바르나바 수사는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복된 일이로군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딱히 모이는 장소는, 글쎄요? 어르신들이야 그냥 만나는 게 일이니…다만 시장 옆 공원 쪽이 저녁마다 꽤 시끄럽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르신들 떠드는 소리에 저녁 식사를 방해받는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더군요. 요즘에는 거의 늘 그러는 모양입니다.”
“그렇단 말이죠…”
마리아가 먹잇감의 뒤를 잡은 암사자처럼 자세를 슬쩍 낮추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한 시간 후, 세 사람은 장비를 챙겼다.
릴리는 제국검 한 자루만 들었지만, 카인은 거기에 지팡이를 더했다. 마리아는 평소 하던 무장을 챙겼다. 수도원에서 빌린, 후드 달린 로브를 깊게 덮어쓴 채, 세 사람은 어둠이 깔리는 시내로 은밀히 움직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분량을 어떻게 조절해볼까 했는데...더 늦는 것도 염치 없는 일이라 조금 길게 넣었습니다. 본 에피소드는 아마 내일 정도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연표 제작중입니다! 제국력 1972년 같은 건 아니고 언제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언제 태어났으며 이 때 몇 살이었는가 정도, 그리고 그 때 주요 사건이 뭔가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