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화
검으로 바치는 경애 (1)
『…사례들을 쭉 살펴보니까 어때요? 국가와 군대의 관계가 조금은 달리 보이지 않나요?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실망인데.
자. 정리해봅시다. 국가는 외부의 적을 막아낼 군대가 꼭 필요해요. 하지만 군대의 힘이 세지면, 반란의 위험도 따라서 커집니다.
따라서 군대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그리고 군대를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인가는 지배자라면 당연히 생각해야 하는 문제랍니다.
제국처럼 ‘직업군인’, 즉 정규군 제도 중에서도 ‘상비군’ 체제를 택하는 국가라면 더더욱.
설령 반란의 위험이 없다고 해도, 정규군 체계의 문제는 또 있어요. 군인이 종종 공사에 투입된다고는 하지만, 농업이나 상업만큼의 생산성을 내지는 못하죠. 군인은 훈련을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지만 농부와 상인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군인을 많이 뽑는다는 건 그 지역의 생산량을 줄이고, 지역의 발전 속도를 늦추는 것과 같아요.
생산량을 줄인다는 저 짧은 말이 얼마나 무서운 뜻인지 아셔야 해요. 올해 밀 수확량이 좋았다고 해서 내년도 좋으리라는 법은 없답니다.
하지만 내년에 갑작스럽게 한파가 불어와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땐, 이미 모든 게 늦어버리죠.
생산은 단기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 특히 농업과 목축은 생존의 문제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자. 이렇게 문제 많은 정규군 제도 말고, 다른 군사 제도는 없을까요? 물론 있죠. 정식 군대가 없는 국가도 있었습니다.
잠깐. 잠깐만. 이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는데. ‘정식 군대가 없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면, ‘군인과 군인이 아닌 사람이 구별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어제까지는 양을 치던 사람이 오늘 저녁에 갑자기 군인이 되기도 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양치기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무슨 국가가 그래’라고 생각하겠지요?
사실은 정치 체계가 발전되기 전, 모든 국가가 다 그랬습니다. 심지어 도시라는 것을 겨우 이루고 살았을 무렵에도, 사람들은 먹을 것이 떨어지면 옆 공동체를 ‘약탈’하는 걸 아주 당연하게 여겼었어요.
하지만 이 강의에서는 주로 북부와 서부의 이교도들이 운영하는 비정규군 체계, 그중에서도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 특별한 일이 생길 때만 군인 신분을 부여받는 민병대에 관해 살펴볼 겁니다.
민병대라.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평소에는 자기 해야 할 일을 하니 반란의 위험이 없죠.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그때야 군대로 변모하기에 나라를 잃어버릴 위험도 적어요.
질문. 왜 제국은 비정규군이 아니라 정규군을 운용할까요? 더 나아가서, 제국 직할령뿐만 아니라 선제후와 공작 심지어 백작에 이르기까지 크건 작건 상비군을 모으는 이유는 뭘까요? 자, 자유로이 대답해 보세요. 짧게만 말해도 가산점을 드립니다.
(…) 다들 수업을 열심히 들었나 보네요. 이러면 내가 잘난 척을 마음껏 할 수는 없겠는데. 그래도 저는 기쁩니다. 여러분에게 적어도 한 가지는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이교도 국가는 사막과 초원이 대부분이지요. 땅이 지나치게 방대한 데 반해 사람들은 모여 살지 않고 다들 흩어져 삽니다.
그러다 보니, 이교도 국가의 군대는 기병 위주로 구성됩니다. 그것도 점령과 상주보다는 약탈을 위주로 하죠. 빠르게 공격해 방어군의 전투 의욕을 와해시키고, 물자를 노획한 다음 빠르게 이탈하는 것이 그들의 장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병’이 국가가 운영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거죠. 평소에는 유목 생활을 하다가, 먹을 것이 떨어지면 이들은 말에 올라탄 다음 옆 부족의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유목과 약탈 행위를 반반씩하고 있었다고 할까요.
그랬기에, 북부와 서부에는 통일된 국가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부족끼리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만으로도 바빴으니까요. 우리가 이교라 부르는 ‘돌불’ 신앙이 큰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돌불 신앙은 모든 유목민을 하나로 묶어주었지요. 돌불의 창시자이자, 성인이라고도 불리는 ‘황야에서 목놓아 우는 자’는 모든 족장에게 찾아갔다고 하죠. ‘다투지 맙시다. 서로 화해합시다. 세상 어디인가에는 사막도 초원도 아닌 땅이 있습니다.’
아직도 북부와 서부는 '통일 왕조'라 할 만한 것이 없어요. 대신 종교 지도자가 있죠. 돌불 신앙의 지도자를 뜻하는 '칼리파', 이를테면 돌불교의 교황인 셈인데, 칼리파의 지휘 아래 부족들은 느슨한 협조 체계를 구축합니다. 종교가 저들을 하나로 묶어주기에, 종교는 정치보다도 위에 있습니다.
제국 입장에서 북부와 서부는 매력이 없어요. 더 많은 모래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거든요. 더구나 제국의 말은 사막의 말과는 종이 달라서,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사막 기후와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답니다.
하지만, 이교도들은 제국을 침략했었죠. 약탈이라고 해야 더 맞겠군요. 이것이 제국에는 정규군이 있고, 이교도들의 국가에는 정규군이 없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제국은 가진 것을 지켜야 했고, 이교도는 없는 것을 빼앗아야만 했거든요.
음. 특히 성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은데, 지금 우리는 국가와 군대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 있으니 이쯤 하도록 하죠. 봐야 할 곳이 더 있거든요.
동부 연합 공화국은…이 부분은 다음 수업 시간에 다루도록 할게요. 니콜로 단돌로의 실패로 돌아간 개혁안과 베네루치아 공화국의 쇠락에 대해 말하려면 공화국에 대한 이해가 조금 있어야 하는데, 지금 수업은 군사 조직에 대한 거니까요.
그러니 오늘 수업의 본 주제인, 백혈기사단국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백혈기사단국은 제국과 황제에게 충성을 보내요. 선제후처럼 황제를 뽑을 권한도, 황제가 될 수 있는 권리도 없지만, 반대로 누가 황제가 되어도 존중하는 편입니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죠? 제국군이 엄연히 있는데, 기사단국이 별도로 있다니? 심지어 이들은 용병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죠. 그저 기사들이며, 전사들이에요. 하지만 제국군 또한 아니죠.
그런데 제국군은 백혈기사단국과 싸우지 않아요. 어째서일까요? 백혈기사단국이라는 군사 집단은 어떻게 용인받게 된 걸까요?
이 점을 이해하려면, 야만 부족에 가까웠던 백혈족이 이들이 어떻게 ‘기사단’이 되었고,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백혈족은 본래 서부 산악 지대를 주축으로 활동하던 산적이었어요. 굉장히 난폭하고 호전적인 광전사들로 유명했었죠.
이들은 서부 이교도의 침입도, 초창기 제국조차도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저 자신들은 이 땅에서 살았고, 이 땅에서 싸우다 죽을 것이니 누구 말도 안 듣겠다는 게 논리였습니다.
서부 산악 지대는 고산 지대이며, 숲이 우거져 있죠. 그중 유명한 숲인 토이토부르크 숲에 대해서는 들어본 분들도 있을 겁니다. 바루스 참사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백혈족의 ‘으르릉거리는 이빨’ 시구르드의 지휘하에 제국 사령관 푸블리우스 바루스의 3개 군단이 파멸한 사건입니다.
제국은 결국 이들의 자치권을 인정했어요. 대신 약탈하는 것만은 엄금했고, 대신 주기적으로 식량과 의약품을 주었지요. 굴욕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뜻밖의 결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이후로 세상에 3년 동안 대기근이 닥쳤거든요.
어지간한 군소 귀족도 죽어가는 와중에, 백혈족은 살아남았습니다. 족장 시구르드는 제 몸을 밧줄로 묶은 다음 수도로 와서,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말이 좋아서 충성이지 당시로서는 놀린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겠지만, 아무튼 백혈족은 정말로 제국에 충성했어요. 적게나마 공물도 이것저것 보냈고, 가끔 황제가 요청하면 최선봉에 나가 싸웠습니다.
고문서를 보면 ‘하얀 피의 짐승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진짜 뜻은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만년설로 덮인 서부 산악 지대에서 내려온 저것들은 사람 모양을 하였으나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붉은 피가 흐르는데, 저들은 하얀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설마 백혈족이 진짜 하얀 피를 흘렸다는 생각은 안 하겠죠? 하얀 피는, 서부 산악의 만년설에 대한 은유입니다. 산의 눈이 녹으면 산이 무너지는 재난이 일어난다는 전승은 대대로 전해졌고, 그들은 그걸 ‘하얀 피’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아무튼, 하얀 피라는 말은 사람 같지도 않은 야만스러운 놈들, 이라는 의미였지만. 백혈족은 그 호칭을 되레 좋아했다고 하네요. 자신들의 용맹함이 탈인간의 경지라는 칭찬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백혈족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그들의 문화와 풍습에 호기심을 품은 이들도 생겨났어요.
이유를 불문하고 자칭 ‘전사’라면 무조건 백혈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만, 전쟁터나 결투에서 도망치면 그 즉시 제명하는 제도.
후계자가 마땅히 지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족장이 죽으면, 족장이 되고자 하는 이들끼리 겨루어 족장을 선발하는 제도 등.
하지만 그때만 해도 백혈족은 그저 부족이었어요. 제국의 확장기, 정복 전쟁의 시기가 도래하자,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들을 ‘기사단’으로 임명했어요. 정식으로 이들을 제국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신호이자, 백혈족이 ‘길들여진 짐승들’로 불린 이유입니다.
그렇게 백혈족은 백혈기사단이 되었지만, 풍습은 그대로 이어졌어요. ‘싸울 줄 안다.’라고 주장하는 이가 오면 기사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죠.
그러다 보니, 백혈기사단 가입 희망자가 제국군 자원자보다 많아지는 일도 생겨났어요. 제국군은 잘 짜인 군사 조직이고, 거대한 피라미드 꼴이어서 승진이 갈수록 어려워지지만, 백혈기사단은 그저 남보다 더 잘 싸우면 승급이 되니까요.
물론 백혈기사단에게 ‘싸움만 잘하는 무식한 야만인들’이라는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지식은 짧을지언정 명예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지혜로운 이들이었습니다.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문명국가에서는 회초리로 때리지만 여기서는 머리를 반으로 쪼개버리니까요. 누구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성전이 발발했어요.
공식적으로는 네 번, 비공식적으로는 다섯 번. 북부와 서부의 이교도에 맞서 일어난 1차, 2차, 3차 십자군.
원래 이교도를 노려야 했으나 동부 연합군에게 돈을 받고 용병으로 전락해 제국의 국토를 침탈한, 그래서 4차 십자군이라는 이름마저 박탈당한 ‘저주받은 군대.’
그리고 마왕에 맞서 일어난 5차 십자군.
백혈기사단은 십자군의 첨병으로 싸웠습니다. 사막에서도 그들의 호전성은 유감없이 발휘되었어요. 교황의 기사단과 선의의 경쟁을 벌일 정도로.
결과적으로, 그들은 무수한 부를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좀 복잡해졌는데. 백혈기사단은 어디까지나 제국의 소속이죠. 교황의 기사단이 이교도의 재산을 가져갔다면, 그건 어찌 되었든 교단의 재산이 됩니다.
그런데 백혈기사단이 상당한 전리품을 가져버렸기에, 교황 입장에서는 성전은 자기가 일으켰는데 제국 황제에게 많은 이윤을 내줘야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인노켄티우스 교황은 이건 ‘성스러운 전쟁’의 부산물이니 교단에 ‘바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고, 제국은 ‘백혈기사단의 믿음과 헌신에 대한 대가’라고 대응했습니다.
쓸데없는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이가 바로 알렉시오스 1세입니다. 가장 위대한 황제이자, 가장 잘생긴 황제이기도 했죠. 제 아버지라 하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튼 알렉시오스 1세는, 백혈기사단의 근간인 서부 산악 지대에 ‘성물을 보관할 것’을 명령했고, ‘성물이 있으니 당연히 지켜야 하는 기사도 필요하다’라며 그 영토 전체를 백혈기사단에게 내어주었어요. 그러면서도 성물을 ‘공정한 가치의 정성’, 그러니까 돈 받고 파는 것 자체도 허용했고요.
결과적으로 백혈기사단은 막대한 부에, 영토까지 부여받았습니다. 군신 마르스의 헌신이라 할 수 있는 존엄한 황제 알렉시오스 1세의 영도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죠.
백혈기사단은 그렇게 백혈기사단국이 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 특히 싸움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지만 제국군 말단부터 시작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이들이 선망하는 국가가 되었어요.
백혈기사단국에는 수많은 인재가 모여들고 있어요. 백혈기사단 출신이다, 라고 하면 출세가 보장되니까요. 어딘가의 교관으로 암암리에 일하는 것은 물론, 저 이교도들까지 거금을 주고 몰래 고용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기사단국의 기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들이 제시하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이 이곳에 있고, 기사들이 얼마나 무예를 닦는지 알고 있기에, 기사단국에서 나가는 순간 도태되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세계의 무술을 모으고, 익히고, 배웁니다. 오히려 기사단국에서 거금을 들여 외국의 전투 전문가를 모셔가는 상황이죠.
남자와 여자 모두 가입을 받는데, 호칭은 여전히 고어를 사용합니다. 그것만큼은 제국 표준어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한때 제국 재무국에서, 다른 곳은 다 제국 표준어를 쓰는데 백혈기사단국 혼자만 고유어를 쓰는 게 통일의 미학을 해친다며 제국 표준어를 쓸 것을 강요한 적이 있었어요. 공문서에 고어가 나오면 보기가 싫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기사단국은 어느 정도까지는 받아들였지만, 직위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가장 문제가 된 호칭이 정식 기사 서임을 받은 여성을 뜻하는 호칭인 스캴드메르skjaldm 입니다. 제국 표준어로는 ‘방패의 처녀’ 라는 뜻이죠.
그러면 정식 기사 서임을 받은 남성은 '방패의 총각'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어감이 영 이상하다는 게 기사단국 항의의 주 내용이었습니다.
전사에게 어감은 중요합니다. 호칭은 위엄, 두려움, 공포를 뜻하기도 해요. 황제. 교황. 마왕. 단순하게 들리지 않죠.
더구나 백혈기사단에게는, 이러한 관직명이 단순히 어감이 좋다 나쁘다 혹은 제 국어다 아니다 말고도 더 큰 의미가 있어요.
이것은 백혈족의 영예로운 호칭이었습니다. 관직명을 유지한다는 건, 여전히 야만스럽고 용맹하며, 자기가 선택한 주군 이외에는 머리를 숙이지 않겠다는 백혈족의 자유분방함이 그대로 녹아 있거든요.
그들은 가족으로 이어진, 혈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백혈족의 혈연은, 오로지 전쟁터에서 무기에 맞아 흩뿌려진 피의 인연이라는 의미입니다. 서부 산악 지대의 만년설이 피처럼 하얗게 녹아내릴 때를 뜻하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비할 데 없이 가장 우수한 전사 12명에게 붙여지는 호칭도 고어를 씁니다. 일반적으로 이 12명은, 후계자가 없이 백혈기사단장이 사망할 경우, 차기 기사단장을 선발하는 토너먼트 출전권을 부여받습니다. 남자 전사는 베르세르키르berserkr, 여자 전사는 발퀴리아Valkyrja 라고 부르죠.
만약에 누구와 시비가 붙었는데, 자기를 베르세르키르나 발퀴리아라고 소개한다면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무술가 중에서 가장 뛰어난 12인 중 한 명과 시비가 붙은 셈이니까요.
아. 그래서 재무국은 어떻게 했냐고요? 직원을 별도로 고용했습니다. 백혈기사단국에서 보내오는 서류를 제국 표준어로 번역하는 게 업무죠.
그래서 재무국 서류에는 ‘방패의 총각’과 ‘방패의 처녀’, ‘곰 가죽을 뒤집어쓴 남자’와 ‘평소에는 놀고먹다 최후의 날에 신 옆에 싸울 사람 데려가는 날개 달린 여자’라는 기다란 호칭이 적혀 있습니다. 재무국 입사 희망하시는 분들은 미리 알아두세요.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과제 잊지 마시고, 잉크나 펜 혹은 종이가 부족한 분은 제 연구실 앞에 여분을 둘 테니 가져가도록 해요. 내 도서관을 쓰고 싶은 학생은 언제든 메모를 남겨 주면, 가능한 시간을 알려 주도록 하죠.
- 제국 수도 아카데미, 안나 콤모두스 교수의 ‘제국 역사 개론’ 수업 4강 ‘국가와 군대의 관계’ 강의록 일부. 』
* * * * *
“그래서. 저하고 대련은 언제 하실 겁니까?”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릴리는 카인에게 씩 웃음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모전 예선에 보내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