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몰락 보고서-16화 (17/47)

제 16화

순결의 몰락에 대한 보고서 (3)

귀도는 카인과 릴리를 본관으로 이끌었다. 보통 도시나 마을의 예배당처럼 뾰족한 건물은 아니었다. 훨씬 낮고 완만한 석재 건물이다.. 귀도는 커다란 문 앞에서 한숨을 크게 내쉬고 문을 열어젖혔다.

역겨운 냄새가 마중을 나왔다. 온몸으로 울부짖는 괴성이 뒤따랐다. 웅, 웅하는 소리. 울 기력조차 없는 사람이 몸을 진동시켜 우는 소리. 바깥에서, 바람 소리라고 생각했던 그런 울부짖음이다.

짓뭉개진 사람들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스케치에서 본 것보다도 훨씬 심했다. 거인이, 사람을 터지지 않을 정도로만 이리저리 굴린 것 같은 모양이었다.

카인과 릴리, 귀도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침대 하나당 간호 인력 두 명씩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두 명으로도 모자라 보였다. 침대에 드러누운 그들은 몸부림을 쳐댔다. 철컥. 철컥. 쇠사슬로 단단히 결박되었는데도 그것들은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다.

“온몸의 뼈가 부러졌는데, 어긋난 채로 붙었다오. 부러진 뼈가 근육과 살을 찔러 혈종이 생기는데,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해도 몸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니…”

우우욱.

왼쪽에서 두 번째 간호원이 입을 감싼 채 달려 나갔다. 귀도가 비어 있는 자리로 달려갔다. 철컥! 철컥! 쇠사슬이 팽팽해졌다. 짓뭉개진 사람이 몸부림을 쳤다. 팔과 다리에 부러진 뼈가 살갗 밖으로 튀어나온 채였다.

“먹어요! 먹어야 한다고요!”

간호원은 어떻게든 입에 미음을 부어 넣으려 했지만, 묶인 이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몸을 앞뒤로 요란하게 젖히며 침대에 제 몸을 부딪쳤다. 요란스럽게 부딪힌 등에서 피가 흘렀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간호원이 고함을 질렀다. 허사였다. 결국 그녀는 죽그릇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나무 그릇은 깨지는 대신 튕겨 나갔고 숟가락은 어디로 밀려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카인은 알 것 같았다. 저들은 죽고 싶어 한다.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려 한다. 고통이 안에서부터 몸을 찔러대니 미칠 것이고, 입 밖으로 꺼내어 표현할 수도 없으니 피 섞인 응어리만 져 간다.

제 몸을 치받던 이가 결국 혼절했다. 몸 밖으로 흐르던 피가 우뚝 멈춰 서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흘러나온 몸 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꾸물거리고, 흠칫거리면서도, 취객이 기어코 자기 집을 찾아 기어들어 가듯이. 피멍은 다시 가라앉았고, 찢어진 상처는 서서히 아물었다. 하지만 가학과 학대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적이오.”

웃음도 환희도 없다. 서글픔과 허무함 뿐이다.

카인은, 귀도가 저주를 잘못 말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하지만 귀도는 공허하게 되뇌었다.

“이걸 기적이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 부르겠소. 피는 되돌아가고 상처는 낫는다오. 이들은 죽으려고 해야 죽을 수조차 없는 이들이라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거부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지는 나도 모르겠소. 이들도 모르겠지. 다만 죽고 싶어 하는 것만큼은 확실하오. 자살이 씻을 수 없는 죄라는 것을 잘 아는 이들이 말이오.”

뭉개진 이의 눈가에서 고요히 눈물이 흘렀다. 귀도는 로브 자락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수도에서 오신 분들이여. 누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아시겠소?”

카인은 흩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달리 표현하지 못했다. 가까이, 쓰러진 사람의 곁으로 다가갔다.

“말은 전혀 못 합니까?”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하오. 목을 부수고 혀를 뽑아 버렸기에 그저 울부짖는 게 전부..”

”움직이는 것도…?”

“팔다리 힘줄이 뭉개지고 근육이 오그라들었소.” 귀도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낫지도 회복되지도 않소. 딱 한 번. 우리가, 이들의 어긋난 뼈를 다시 부러뜨리고 온전히 붙이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잘 안되었소. 이 상태로. 정확히 이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오더이다. 기절한 것이 자비라면 자비겠지.”

고통이다. 오로지 고통을 주려는 의도만으로 가득했다. 카인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사람의 정신을 제 육체에 가두고 끝없이 고문하는 것.

카인은 릴리를 바라보았다. 릴리는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카인과 달리 릴리는 스케치조차 보지 않았었다.

그우으아아아아아

빛이 번쩍거렸다. 예배당의 한 가운데에서 들렸다. 거창한 침대에 묶인 이가 온몸에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남자가 누운 곳은 천장이 원형으로 뚫려 있었는데, 색유리 사이로 형형색색의 빛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카인과 릴리, 귀도는 그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다른 사람과 달리 그 남자의 몸은 더 처참했다. 뒤집어진 갈비뼈가 새의 날개처럼 폐부를 찢고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다리와 팔은 녹아내린 쇠로 몸에 결박되어 있었다. 성기만이. 그 남자의 성기만이 오로지 온전했다.

“순결의 기사, 윌리엄 대주교요. 자비기사단 성기사였고, 영웅 중 한 명이며, 대주교직을 수행하고 있던 그 사람.”

대주교 역시 온몸을 앞뒤로 흔들었지만, 격렬하지는 않았다. 비참한 외형이 아니었다면, 카인은 그가 웃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다. 그는 정말로 웃고 있었다. 닫히지 않은 눈꺼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입가로는 침을 질질 흘리며 그는 세상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오. 대체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뭐로 이런 짓거리를…”

귀도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검집.”

백지장처럼 질린 릴리가 조용히 읊조렸다.

“뭐라고?” 카인이 되물었다. 귀도가 손을 내렸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검집. 검집으로 때린 겁니다.”

우우우, 우으으으.

대주교가 울음을 터트렸다. 언어라고는 없던 시절의 사람처럼, 하지만 온몸으로 슬픔과 아픔을 토해내고 싶어 하는 원시의 존재처럼, 대주교는 울었다.

옆에서 대주교의 몸을 닦아주던 이들도, 가만히 기도를 올리던 이들도, 침대에 묶인 채 아우성을 치던 짓눌린 이들도 함께 울었다.

이내 그것은 회랑을 격동시키는 진동이 되었다. 묘하게도 반주 없는 성가와 닮았다. 일주일 내내, 바쁜 일상에서 주일의 특별 송가를 연습하는 성가대의 그것처럼.

* * * * *

우물이 없는 건 단순히 암반 지대여서만은 아닌 듯했다. 이곳은 산꼭대기에 가깝고, 그러니 지하수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파는 것조차도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대신 돌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물은 많았다. 물든 작은 개울이 되어 바위와 바위 사이를 흘러갔는데, 얼마나 오래전부터 흐른 것인지 틈새가 깎여 고요히 흘렀다.

솜씨 좋은 조각가라도 있었던 것일까. 틈새에는 천사가 그려져 있었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천사였는데, 갈라진 틈을 교묘하게 감긴 눈처럼 그려 놓아서, 천사가 미소 지으며 우는 모양새였다.

평소 같으면 사람을 미소 짓게 할 만한 모양새건만. 지금은 아니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작은 개울 옆으로 수많은 이들이 그저 앉아만 있었다.

교대한 간호원들, 지쳐버린 기사단원들이었다. 이곳은 수도원에서 조금 외진 곳이고, 바람 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도 이곳에서만큼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휴식처라고 할 만한 곳은 이곳뿐이다.

누군가 소리 없이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흐느낌은 이내 전염이 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나지막하게 기도를 올리면, 다른 이들도 기도를 읊조렸다.

카인은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슨 말을 떠올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보안국 요원 생활을 하며 온갖 것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봐도 무감동하고 무감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바로 곁에서 릴리는 무릎을 감싼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안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예배당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얼굴을 감싸 쥐며 구석진 곳으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유령처럼 떠돌다가, 무의식적으로 이곳을 찾았고, 멍한 얼굴로 하늘만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처럼 바닥에 앉았다.

카인이 릴리의 팔을 가만히 감쌌다. 여전히 그녀는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카인은 고갯짓으로 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나무가 드문드문 자라 있어서, 완전히는 아니어도 몸과 말소리를 가리기에는 괜찮은 공터였다. 쓰러진 나무까지 있으니 걸터앉기에도 좋아 보였다.

“검집이라고?”

카인은 목소리를 낮췄다. 릴리 역시 듣는 귀가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그녀 역시 속삭였다.

“네. 확실합니다. 검집입니다. 멍의 자국과 간격이 제국검 표준 검집의 간격과 비슷합니다. 차마 직접 대어보지는 못했지만. 눈어림으로는…”

왜 검집일까. 카인은 거세게 머리를 내저었다. 그가 본 희생자들의 몸을 떠올렸다. 베이거나 뚫리거나 그을린 자국 같은 건 없었다. 릴리의 말대로, 그저 둔기로 내려친 자국뿐이다.

“어떻게 보자마자…”

릴리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제가 그걸로 많이 맞아봐서 압니다.”

릴리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카인은 더 묻지 않았다. 캠퍼스에서 고함을 질러댔다던 백혈기사단장의 표독스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악의. 대체 얼마만큼의 악의가 있어야 사람을 그렇게 때릴 수 있을까. 대체 얼마만큼의 악의가 있어야 사람들을 저렇게까지 짓뭉개버릴 수 있을까.

악의가 아니라면, 순전히 가학에의 기쁨 때문일까. 카인은 알 수 없었다. 손가락 뼈마디 하나하나조차 부러뜨리고 꺾어놓고 짓뭉개고 갈아버린 것을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거기에 기적.

기적은 보안국의 소관이 아니다. 저것은 교단의 일이다. 물론 카인은, 교단이 자체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제국에 요청도 하지 않았을 거라던 안나의 말을 기억한다.

“릴리.”

릴리가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분명 서로의 이름은 말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던가.

“네.”

“난 이 개새끼 잡아야겠어.”

카인은 지팡이를 힘있게 움켜쥐었다.

“어떤 새끼가 이런 짓거리를 했는지. 그 놈 면상 한번 봐야겠다고. 이건…이건 아니야. 인간쓰레기 같은 놈들, 자기 재미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 장난감처럼 다루는 놈들 많이 봤지만. 그 중 어느 놈도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섬세하게 악의로 가득 찬 놈은 없었어. 적어도 그런 놈들에겐 이유가 있었다고. 여기에 있는 건 그저 목적뿐이야.”

릴리는 더 떨지 않았다. 무딘 칼을 갈아내듯, 숨을 골라냈다. 그녀 역시 요원이고, 요원이기 이전에는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어떤 목적이라 보십니까?"

"경고." 카인은 지팡이를 힘있게 움켜쥐었다.

"릴리. 이건 경고이자, 도발이야. 죽는 것조차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을 거라는 완전한 무력감을 주려는 도발.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라는 식의 경고. 나는 이 정도의 힘이 있으니, 말릴테면 말려보라는 식이야. 자기 영역을 침범당한 맹수들이 하는 짓이지. 다시는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필요 이상으로 짓밟아버려. 놈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야. 벌써 두 명이 당했다면, 나머지 다섯도 당할 수 있어."

릴리가 격정 섞인 숨을 토해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카인이 지팡이로 대지를 두드렸다.

"대주교는 다른 곳에서 공격당했어. 기사단이 그를 데려왔지. 자비기사단은 현장 모습에 대해 알고 있을 거야. 일단 있는 대로 정보를 모아 보자. 대주교가 언제 어디에서 발견되었는지, 자비기사단이 환자들을 어떻게 데려왔는지, 그의 행적에 대해 교단이 알고 있는 건 뭔지. 시시콜콜한 거라도 좋아. 각자 조사하고, 비교해가며 검증해보자.”

“알겠습니다.”

“좋아. 일단 너는 기사단을 탐문해 봐. 나는 성당으로 간다.”

“성당 말입니까?”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주교가 어떤 식으로 당했는지 다시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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