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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17화 (217/219)

외전 6

광산은 캄캄했다. 날카로운 파찰음이 연신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유현은 빛을 밝혀 주변을 살폈다. 작은 곡괭이가 장착된 수레가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솟구치는 광석들은 허공에서 붙들려 수레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은 없는 건가?"

유현은 뚫린 길을 따라 나아갔다. 운반도, 곡괭이질도 모두 자동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지만 이렇게 어둡다니.'

빛 하나 없는 캄캄한 광산.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만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유현은 고민했다.

이대로 광산의 바깥까지 나아갈지, 아니면 바로 시작할지.

꽈악.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냥 전부 때려 부숴도 상관없겠지."

광산은 중요한 장소다.

반란에 성공한 뒤에도 수정구는 계속 필요한 자원이다.

그 때문에 지나친 파괴는 피해야 한다. 하지만 제국의 이목을 확실하게 집중시키려면 어중간한 수준으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전력을 끌고 오느냐.'

계획이 성공했을 때 원상복구의 난도가 올라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종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미래의 귀찮음을 감수하는 수밖에.

쾅!

유현은 곧장 작업을 시작했다.

광산이 무너지고 땅이 뒤흔들렸다. 그 여파는 순식간에 바깥까지 도달했다.

"뭐, 뭐야!"

"광산 내부에 누군가 있습니다!"

광산에는 인간이 없지만, 광산의 관리는 인간이 도맡아 한다.

여유를 즐기고 있던 광산의 관리자들은 허둥지둥 마법 지도 앞에 모여들었다.

"한 명?"

"대체 어떻게 들어간 거야!?"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광산이 파괴되고 있어요!"

당황한 관리자들은 허둥거렸다.

애당초 광산 습격은 상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 그 누가 마도 제국 칼리안을 적으로 돌릴 생각을 하겠는가.

관리자들은 오합지졸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뒤늦게야 대응했다.

"벼, 병력을 호출하겠습니다!"

광산 주변에 주둔하며 광산을 지키던 마법 병기들이 포탈을 통해 광산으로 넘어왔다.

홀로 넘어온 군사 책임자는 광산 안으로 병기를 투입했다.

"적은 한 명뿐입니까?"

책임자의 물음에 관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혼자인 것 같습니다."

"그럼 금방 끝날 겁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혼자서는 제국의 마법 병기에 대항할 수 없으니까요."

누군지는 몰라도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수십의 병기를 투입했다.

적은 순식간에 죽을 테고, 적의 배후에 있던 이들은 확실하게 깨달을 것이다.

이곳이 누구의 땅이고, 제국이 어떤 곳인지를.

"관리소장님. 오랜만에 출동인데 축배 겸 한 잔 어떻습니까?"

"오! 좋지요!"

"먼저 가 있겠습니다. 지도에서 적이 사라지면 저희 쪽으로 오시죠."

책임자가 출입문 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 문을 박차고 다른 관리자가 뛰어 들어왔다. 그 입에서 나온 소식은 낭보가 아니었다.

"벼, 병기가 전부 파괴되었습니다!"

"뭐, 뭐라!?"

책임자의 시선이 지도로 향했다.

여전히 그곳에는 침입자의 표시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병기의 속도를 감안하면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설마 정말로 파괴되었단 말인가?

콰과광!

그때,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관리실까지 느껴지는 진동에 책임자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무언가 상황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게 뒤늦게야 느껴졌다.

"제, 제국에 지원을 요청해!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빠르게!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예! 알겠습니다!"

***

"지원 요청?"

"예. 광산에서의 요청이라 직접 확인을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광산에는 주둔군이 있지 않나. 병기의 숫자도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게... 모두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군사 장관의 말에 카프 17세는 입을 다물었다.

이어지는 침묵.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이 장관을 노려보았다. 장관은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침을 꿀꺽였다.

"적은 파악했나?"

"이, 일단은 한 명이라는 것만..."

카프 17세가 한숨을 쉬었다.

"그조차 파악하지 않고 지원을 요청하다니."

"시, 시정하겠습니다!"

"책임자를 죽이는 선에서 끝내라."

카프 17세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누군지는 몰라도 아주 단단히 작정하고 왔어. 수도의 방위군과 각 영지의 병력은 최소한으로만 남기고 파견해라. 제국의 위엄을 똑똑히 인지시켜줘라."

"명령 받들겠습니다!"

장관이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활짝 열린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홀로 남은 카프 17세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동대륙 놈인가?"

그쪽 인간이 아니라면 달리 적수가 없다. 몬스터가 병기를 이길 만큼 강할 리는 없고, 소렌을 주축으로 한 반란 세력에 이 정도 전력이 있다는 보고도 듣지 못했다.

"소렌도 놓친 마당에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카프 17세가 이를 갈았다.

이마에는 핏줄이 솟았고, 주먹에는 힘이 들어갔다.

"혼자 죽을 생각은 마라."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몰라도, 필히 그 국가를 멸망시키리라 다짐하는 카프 17세였다.

***

오징어와 비슷하게 생긴 쇳덩이가 끊임없이 동굴로 밀려 들어온다. 꼬불거리는 다리가 징그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이었지만, 그들은 정확히 유현을 발견하고 공격했다.

쾅!

투명한 방어막에 온갖 마법이 처박혔다.

유현은 다시 라이트 마법으로 시야를 밝혔다.

"기본적으로 야시경 기능이 붙어 있는 건가?"

자동으로 채굴하던 개체도 그렇고 눈앞의 오징어 로봇 같은 것들도 어둠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 유현은 제국의 마법력에 새삼스레 감탄하며 병기를 공격했다.

퍼펑!

그의 마법 한 번에 무참히 터지는 제국의 마법 병기들.

방호 마법이 탑재되어 있었으나 압도적인 공격력 앞에서는 부질없었다.

기이이이잉!

유현은 통로로 시선을 돌렸다.

똑같이 생긴 병기들이 벌 떼처럼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크기는 웬만한 성인 남자 크기.

작다고도 크다고도 할 수 없는 크기였다.

"얼마나 있는 거야?"

가능한 시간을 지체하며 제국의 마법 병기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게 광산 습격의 목적.

당장 광산을 파괴하고 황궁을 칠 수 있지만, 그래서야 작전의 의미가 없다.

"정확히 몇 대가 있는지라도 알았으면 좋을 텐데."

적당히 타이밍을 노리고 나가는 수밖에 없나.

-용사님!

불꽃의 기둥이 일직선의 통로를 가득 채우며 병기들을 녹인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유현이 홱 고개를 돌렸다.

"소렌?"

-예! 접니다! 목소리 전이 마법으로 목소리만 그 공간에 전달 중입니다! 현재 수도 병력의 80%가 이탈했습니다! 각 영지에서도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광산에 전력을 보내고 있는 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건 예상외의 희소식이군."

-광산을 습격한 게 황제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것 같습니다!

유현은 해일처럼 밀려드는 병기들을 파괴하며 여유롭게 물었다.

"언제쯤 황궁으로 가면 되지?"

-제가 포탈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바깥에서부터 출입하려면, 경계 마법을 돌파하셔야 하기 때문에...

그때였다.

들려오던 목소리 너머로 굉음이 스며들었다.

뚝 하고 끊긴 소렌과의 대화.

불길한 침묵이 잠시 이어지고, 연이은 폭음이 적막을 채웠다.

"소렌?"

-누구지?

소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유현은 대답 대신 침묵을 지켰다.

-수신지가... 광산이군. 하. 그쪽도 소렌의 짓이었나.

고통스러운 신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작은 소리였지만, 확실하게 들렸다.

"소렌."

-이놈은 곧 죽일 거다. 죄목은 반란. 네 목도 잘라 효수시켜 주지.

"황제냐?"

남자가 웃었다. 유현의 눈썹이 구부러졌다.

-네놈은 뭐지? 대체 뭔데 소렌에게 동조하여 광산을 공격한 거냐? 병기를 이길 정도라면, 소렌에게 붙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건 알 텐데.

"대답이나 해. 네가 황제냐고."

유현은 소렌이 사용한 마법을 분석했다. 그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고, 작동 방식은 어떤지.

마나를 활용해 순식간에 분석을 끝낸 뒤, 마법을 역추적했다. 그렇게 단 몇 초 만에 소렌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추적인가. 대단하군. 궁금하면 황궁으로 찾아와라.

남자는 곧장 유현의 추적을 눈치챘다. 유현은 재빨리 좌표를 지정하고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광산을 뒤덮은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태양이 시야를 물들였다.

절벽이었다.

저 아래로는 수도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벌써 사라졌나."

유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깨진 바위와 깊이 파인 땅.

대지에 불꽃이 떨어져 있는 등 기습의 흔적이 여실했다.

"소렌도 데려갔군."

소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남겨진 건 약간의 혈흔.

목숨에 이상이 있을 수준은 아니었다.

"황궁..."

저 멀리 황궁이 보였다.

소렌이 말하길, 광산에 제국의 모든 병력이 집중되고 있다고 했다. 수도는 물론이고 각 영지의 병력들까지 말이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예정대로 진척되었으니 다음 선택지는 고민할 것도 없다.

유현은 포탈을 열었다.

걸음을 내디뎌 나온 반대편은 광장. 밤과 달리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인간, 인간, 인간.

그리고 그런 인간 중 몇은 이종족에 목줄을 달고 끌고 다니고 있다.

유현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다른 사람들도 유현을 바라보았다.

"포탈?"

"동상에 머리랑 닮았는데?"

"광장이 포탈 허용 구역이었나?"

포탈을 통해 등장한 유현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유현은 끓어오르는 혐오감을 애써 참아내고는, 발을 튕겼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황궁.

유현의 눈이 푸른색 빛을 발하며 마법을 꿰뚫어 보았다.

'배리어가 몇 겹이야?'

황궁이라는 이름답게 무지막지한 두께의 방어막과 온갖 종류의 경계 겹쳐 있다.

병력의 복귀 시간, 소렌의 상태 등을 고려하면 하나하나 분석하고 해독할 시간은 없다.

'정면 돌파한다.'

유현은 허공을 짓밟고 하늘 위로 치솟았다.

구름이 발아래에 왔을 때, 유현은 몸을 뒤집어 발을 튕겼다.

[아공간 전이]

아래로 강하하며 아공간에서 꺼낸 기다란 창을 있는 힘껏 투척했다. 마법을 파괴하는 창, 퇴마(退魔). 모든 마법을 파괴할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에어]

유현은 몇 번이고 허공을 박차며 가속했다. 드높은 창공으로 치솟았던 그의 몸뚱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제국의 심장을 수호하는 결계에 가까워졌다.

쾅!

창이 보호막에 틀어박혔다.

한 번에 꿰뚫는 데는 실패.

하지만 다음 순간.

유현의 몸뚱이가 창 위로 처박혔다. 직후, 대지가 뒤흔들렸다. 거대한 폭탄이 터진 듯한 충격. 보호막에 겹쳐 있던 경계 마법들이 퇴마의 힘에 무너졌다.

황궁을 감싸던 보호막 역시 물리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유현은 황궁의 뒤뜰에 착지했다.

제 역할을 마친 퇴마는 부스러져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까워라."

이렇게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무기가 아닌데.

유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는 성채로 몸을 돌렸다.

어느새 뒤뜰에는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날카로운 창끝이 그를 향해 있다.

"정말 왔군."

병사들 사이에서 아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병사들이 갈라지며 카프 17세가 걸어 나왔다.

찰랑이는 금발, 상대를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

그와 눈을 마주한 순간, 유현의 입꼬리가 끝까지 올라갔다. 이빨까지 드러낸 웃음에 병사들이 움찔했다.

"아까 내가 누구냐 물었었지."

퍼져나온 살기에 황제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진짜 살의에 황제가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네 조상이 죽인 용사다."

"마, 막아라!"

명령과 동시에 새하얀 꽃밭 위로 선혈이 낭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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