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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16화 (216/219)

외전 5

"용사님의 이야기가 너무나 흡입력 있어 말씀드리는 걸 잊었습니다."

소렌이 품속에 손을 넣어 주먹 크기의 수정 구슬을 꺼냈다.

"이게 바로 아퀼리타스의 계획입니다."

유현이 눈가를 좁혔다. 마나도 느껴지지 않고, 외형도 평범한 수정구. 이걸로 뭘 어쩐단 말이지?

"용사님은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르시겠군요. 혹 룬석이라고 아십니까?"

"알다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수정구는 텅 비었지만, 원본 상태의 수정구는 중급 룬석에 맞먹는 마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급 룬석은 최상급 마석 수십 개 분량의 마나를 가졌다.

말이 중급이지 결코 우스운 수준이 아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건 암흑 석영으로 만든 수정구입니다. 암흑 석영은 마계에서 대륙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위치한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로 두 세계의 에너지가 혼합되어 막대한 양의 마나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걸 내가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광산이 발견되고 가공할 수 있게 된 게 고작 몇백년 전입니다. 용사님이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유현은 소렌에게서 구슬을 받아 이리저리 살폈다.

암흑 석영으로 만들었다는 것 치고는 유리처럼 투명했다.

"암흑 석영이 원래 이런 색인가?"

"특이하게도 암흑 석영은 마나가 빠져나갈수록 어둠을 잃습니다. 본래는 칠흑처럼 새까맣습니다."

"호오."

유현은 신기한 듯 수정구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소렌에게 돌려주었다.

"이게 계획이라는 건 광산을 치겠다는 건가?"

소렌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이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눈치채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수정구의 공급을 차단한다고 뭔가 바뀔 것 같진 않은데?"

유현이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마나 결정체의 공급을 차단한다고 제국이 몰락의 길을 걸을까?

애초에 그런 요지를 제국이 순순히 뺏겨줄 리도 없거니와, 빼앗는다고 해도 엄청난 기세로 반격할 게 분명했다.

제국과 맞먹는 전력을 가진 국가라면 모를까. 고작 이종족 연합으로는 턱도 없다.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광산을 파괴해도 곧장 제국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수도는 물론 각 영지의 창고에 여분의 수정구가 잔뜩 쌓여있기도 하고, 광산을 되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테니까요. 아퀼리타스의 전력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유현이 눈썹을 구부렸다.

그걸 다 알면서 광산을 치겠다는 건, 알몸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겠다는 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단순한 광산의 붕괴가 아닙니다."

"그러면?"

"제국의 관심을 끄는 게 목적입니다. 수정구는 무척 중요한 자원이기에 제국에서도 즉각 반응할 겁니다."

"관심을 끌기 위해 광산을 빼앗는다고?"

"그냥 빼앗는 게 아닙니다. 아주 철저하게 박살을 내야 제국에서도 대량의 병력을 보낼 테니까요."

유현의 눈빛에 불신이 깊어졌다.

"이유가 뭐냐? 광산을 빼앗을 거라면, 차라리 조용히 침투하는 게 나을 텐데."

"전쟁을 일으킬 겁니다."

전쟁이라는 말에 유현이 눈을 깜빡였다.

본부로 이동하기 전, 소렌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했었다.

이종족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무턱대고 쳐들어가는 건 피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계획은 아무리 봐도 위험하다. 모두를 사지로 내모는 계획이다.

"이종족들이 직접 참전하나?"

"예, 그렇습니다."

"내게 했던 말과 다르군. 이 계획의 어디가 안전하지?"

유현은 장내의 간부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이 계획에 찬성한 거냐?"

그들은 시선을 피함으로 그 답을 대신했다.

유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자신을 기다려 준 유일한 이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설명해봐. 이런 계획을 생각한 이유를."

"그 전에, 계획 설명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소렌이 품속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대륙의 지도였는데, 주요 영지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전쟁은 제국의 모든 영지에서 시작됩니다. 그와 동시에 용사님은 황궁을 습격합니다. 그게 우리의 계획입니다."

"광산도 내가 가고, 황궁도 내가 가고. 내가 없으면 사실상 실패인 계획이군?"

소렌이 멋쩍게 웃었다.

"애초에 아퀼리타스에 희망 따위는 없었으니까요."

성공 가능성이 0에 가까운 계획.

하지만 용사라는 새로운 카드가 등장함으로써 그 성공률이 높아졌다. 한 줌의 불씨가 아니라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빈집털이라는 말인데…. 나는 솔직히 이 계획에 왜 전쟁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반드시 필요합니다."

소렌은 옆에 앉은 엘프의 앞에 놓여 있던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반란의 핵심은 전쟁 그 자체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라, 지배당하며 흐려진 종족의 민족성과 이종족들의 계몽에 있습니다."

"......일리가 있군. 다들 동의한 건가?"

"예. 이미 준비가 완료되어 다들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간부들이 저마다 한 마디를 보탰다.

"지금 당장이라도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고!"

"과거의 영광을 다시금 드높이기 위하여!"

소렌이 그들을 돌아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사실 전쟁이라기에도 애매한 수준이긴 합니다. 민중의 봉기 정도가 적당하겠군요."

"광산을 치는 건 제국의 병력 분산을 유도하기 위해서군."

"맞습니다. 유혈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작습니다만, 그래도 혹시나 할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차라리 그게 낫겠어. 무기도 없는 노예들을 무참하게 죽이진 않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는 일이니."

유현은 더 이상 계획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무모하게만 들렸던 계획이었으나 그 근거를 알게 되니 더는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실패의 여부를 따지는 건, 자신을 불신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시작은 언제지?"

"준비는 다 되어있습니..."

그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무릎을 짚으며 숨을 헐떡이는 남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소렌의 얼굴이 굳었다.

"용사님."

"엉?"

"제국군이 아지트에 쳐들어왔습니다."

"뭐? 갑자기 어떻게?"

소렌이 자신의 소매를 걷었다.

그의 팔목에 그려진 문양이 푸른 빛을 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의심을 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기랄. 완전히 겉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쿵!

천장이 흔들렸다.

비상 상황이었지만, 이종족 간부들은 침착했다.

"소렌. 어서 포탈을."

"우선 용사님부터 보내겠습니다."

"보낸다고? 광산에?"

쾅!

가까운 곳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이전보다 더 강한 진동이 회의실을 뒤흔들었다. 금방이라도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예!"

소렌이 대답과 동시에 손을 휘둘렀다. 허공에 포탈이 열렸다.

"용사님! 광산에 노동자는 없습니다! 제국의 병기와 병사들 뿐이니 전부 파괴해주십쇼! 자동으로 제국에 연락이 갈 겁니다!"

"그다음은 어쩌고?"

또다시 큰 충격이 회의실을 덮쳤다. 다음 순간, 천장의 일부가 무너지며 잔해가 유현과 소렌 사이에 떨어졌다.

"뭐, 제국으로 가면 되겠지."

계획은 모두 들었고, 할 일은 명확했다.

광산을 파괴하고, 황궁에 쳐들어가는 것. 황궁의 위치는 대강 알고 있으니, 광장으로 이동해 황궁으로 직행하면 된다.

'실패할 가능성은 없어.'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자신은 다르다.

'용사'의 자격으로 마왕을 죽인 그때를 아득히 초월하는 힘.

가히 신에 가깝다고 스스로의 입으로 말할 수 있었다.

***

황궁의 대전.

높은 계단의 꼭대기에 자리 잡은 화려한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날카로운 눈매와 금발.

얼굴에는 약간의 주름이 져 있었다. 그는 겨울의 서릿발처럼 차가운 시선이 썰렁한 대전을 내려다보았다.

카프 17세.

카프 소렌의 맏형이자 마도 제국의 황제.

그 직위에 걸맞지 않게 수수한 복장이다. 왕관은 커녕 반짝이는 장신구 따위도 보이지 않았다.

"소렌."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이 얼마나 우스운 짓인가."

그가 실소했다. 옅은 비웃음은 서서히 커졌고, 적막한 대전을 가득 채웠다.

그러기도 잠시.

칼로 끊어내듯 웃음이 끊겼다.

"형으로서 네놈의 멍청한 짓거리를 봐주는 것도 이제 끝이다."

카프 17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모두에게는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거야. 3세 깨서 영웅이셨고, 용사가 시궁창에 처박힐 놈이었던 것처럼. 이종족은 노예를 벗어나선 안 돼."

계단을 내려온 카프 17세는 포탈을 열었다.

이내 그의 모습이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

땅 아래 세워진 아퀼리타스의 본부는 붕괴했다.

소렌은 간신히 포탈을 열어 간부들과 함께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크아아악!"

소렌은 단검을 사용해 팔의 살갗을 도려내고 있었다.

날 선 단검은 고기를 파고 들어가듯 살을 헤집었다.

"소렌..."

이종족들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팔에 새겨진 건 황족의 상징이자 황궁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게 하는 마법 문양.

하지만 소렌이 몰랐던 기능이 더 있었으니, 당사자의 위치를 알아내는 추적 마법이었다.

"소렌! 대체 어디까지 파낼 셈인가!"

소렌의 팔뚝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뼈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분노에 가득 차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렌!"

"말리지 마십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몸에 남은 마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렌의 고성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소렌은 격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팔뚝의 뼈 전체가 훤히 드러나고 나서야, 칼질이 멈췄다.

"허억, 허억."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에서는 거친 숨이 빠져나왔다.

고통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고, 이를 악문 탓에 입가에는 피가 칠갑 되었다. 어금니가 져려 턱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

"소렌... 괜찮은가?"

나이 든 드워프가 그에게 다가갔다. 소렌은 그를 바라보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모두 죄송합니다."

"아니네. 사과하지 말게."

"우린 괜찮다. 네 팔이 더 문제 같은데!"

소렌은 자신의 팔을 보며 피식 웃었다.

"줄곧 도려내고 싶었지만, 그게 설마 오늘이 될 줄은 몰랐네요."

그 모습에 다들 질린 눈이 되었다.

"응급 처치라도 해두는 게 좋을 듯 한데."

"이미 해두었습니다."

한참 전에 출혈 방지 마법과 고통 경감 마법을 사용한 상태였다.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건 정신력 덕도 있었지만, 마법의 덕이 컸다.

"이제 어쩔 건가?"

소렌의 상처가 심각하나, 언제까지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놈들이 본거지를 쳤으니 계획을 알아내는 건 시간 문제.

원활한 전개를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포탈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다들 작전 장소로 이동하시지요."

소렌의 손짓 아래 순식간에 수십 개의 포탈이 나타났다.

다들 소렌을 한 번씩 돌아보고는 포탈 너머로 사라졌다.

"......"

홀로 남은 소렌.

쌀쌀한 바람이 적막을 채운다.

"엘렌."

카프 17세이자 맏형의 이름.

소렌은 그 이름을 짓씹었다.

분노에 가득찬 눈동자가 제국이 있는 방향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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