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헌터가 하고 싶다-215화 (215/219)

외전 4

포탈을 통과하여 도착한 아퀼리타스의 본부 회의실.

원형의 탁상이 놓여 있고, 그 주위를 빙 둘러 좌석이 있다.

유현은 회의실을 돌아보며 모인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인간부터 시작하여 엘프나 드워프를 비롯한 여러 이종족이 앉아 있었다.

"간부들입니다."

소렌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유현은 간부들을 뽑는 기준이 단순히 힘만은 아니라는 걸 파악했다.

"소렌? 그자는 누구인가?"

"용사님과 꽤 비슷하게 생겼구만."

"인상적인 외모네요."

그들은 하나 같이 유현을 보며 용사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소렌이 말했던 것처럼 여전히 용사를 가슴에 품고 사는 자들 다웠다.

"용사님입니다."

소렌은 태연하게 답하고는 비어 있던 자리로 향했다. 순간 얼어붙은 듯 방 안에 침묵이 흐른다.

소렌이 의자를 끄는 소리가 울리고, 그가 자리에 앉자 뒤늦게야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농담이라도 하는 겁니까?"

"닮은 꼴까지 섭외하다니. 대단한 노력이군."

"이런 짓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텐데. 결사대는 성공했나?"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유현은 등에 업힌 세오를 흘끗 보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한눈에 자신을 알아본 세오가 이상했다.

고맙긴 하지만, 역시 처음에는 의심하는 게 타당하다.

"결사대는 성공했습니다. 용사님의 등에 세오가 업혀 있잖습니까."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유현의 등 뒤로 향했다.

"이런. 망토에 가려져 있었군."

"아, 이제야 보이는구만."

"다른 이들은? 모두 죽은 건가?"

소렌은 고개를 저었다.

"모두 살아 있습니다. 슬슬 돌아올 겁니다."

간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주요 전력을 잃지는 않았네요."

"그러니까. 솔직히 전멸까지 각오했었는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다니. 대단하네요."

소렌은 그들을 보며 옅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유현을 향했다.

"모두 용사님의 덕분입니다."

기뻐하던 이종족들의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또 그 소리냐며 따지는 듯한 눈빛. 하나 같이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소렌. 뭘 잘못 먹었냐?"

"거짓말쟁이 버섯을 먹은 게 분명해."

"아냐. 요정이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다. 너, 소렌이 아니지?"

이종족들의 불신에 소렌은 의뭉스레 웃었다.

"용사님. 아이젠에게 보여주었던 무기를 보여주시죠. 그거라면 충분한 설명이 될 겁니다."

소렌이 끝까지 진지하게 대응하자 이종족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유현을 돌아보았다.

"헥톨의 검을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소렌의 대답에 먼저 반응한 건 척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드워프였다.

"그쯤 하게나, 소렌. 모조품까지 꺼내어 용사님을 모독하는 건 자네답지 않아."

"속일 생각도 용사님을 모독할 생각도 없습니다."

소렌의 당당함에 드워프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어디 한 번 꺼내 볼 거면 꺼내 보라는 태도였다.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을 걸세."

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의심을 받으니 마땅히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용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니 마냥 기분이 나쁘지만도 않았다.

"지금 웃을 상황인가?"

"헥톨의 검이 있으면 어서 꺼내 봐!"

"소렌. 아무리 너라도 이런 식의 우롱은..."

소란스러워진 회의실. 유현은 아랑곳 않고 [아공간 전이] 마법을 사용했다.

허공이 갈라지며 헥톨의 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온다. 유현은 손을 뻗어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만나서 반갑다. 유현이라고 한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선언하듯 말하는 유현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

드워프 간부가 헥톨의 검이 진짜임을 확인하고 난 뒤.

그가 과거에 사라졌던 진짜 용사라는 게 확실해지자 회의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누군가는 울었으며, 또 누군가는 혼절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진정될 때까지, 유현은 잠자코 기다렸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가라앉자 소렌이 입을 열었다.

"다들 진정된 것 같으니, 모두가 궁금해하고 저 역시도 궁금한 것을 묻겠습니다. 용사님.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판대륙으로 넘어와 아직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은 이야기.

유현은 간부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기대감에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려나..."

"처, 처음부터 전부 듣고 싶습니다!"

"마, 맞아요! 처음부터 해주십쇼!"

"용사님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은..."

유현은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제지했다.

"그래. 처음부터 해주지. 지금으로부터-"

판대륙으로 따지자면 1600년 전의 과거.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유현은 기억 나는 사건들만 빠르게 요약했고, 그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마왕 토벌을 넘어 지구로의 귀환까지 이어졌다.

"서, 설마 용사님이 다른 차원의 사람이셨을 줄은..."

"역시 용사님이십니다!"

유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실망스럽지 않나? 용사라는 자가 결국에는 평범한 인간이었잖아."

"전혀! 아닙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딴 몹쓸 생각을 가진 놈은 나와라! 직접 죽여주마!"

즉각 날아든 광기에 가까운 반박들. 소렌도 나긋나긋하게 말을 덧붙였다.

"용사님께서는 새끼줄처럼 질긴, 집념에 가까운 끈기를 가지고 계십니다. 누구도 그런 끈기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수련하고, 하나의 적을 쫓아오신 것만으로도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소렌! 말 잘했다, 인마!"

"저도 동의합니다, 용사님!"

그들의 반응을 보며 유현은 처음으로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달라진 대륙의 모습과 조작된 역사를 보며 얻은 피로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지구에서는 어떤 일이 있으셨습니까?"

소렌의 질문에 유현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족을 다시 만나고, 친구를 만들고.

용사라는 책임에서 벗어나 누린 평범한 일상 등.

드래곤이나 다른 용사들 같은 이야기는 제외했지만, 페데리코에 관해서는 숨기지 않았다.

그가 행했던 계획과 되살아 난 마왕. 자칫했으면 멸망했을 뻔한 두 세계의 이야기.

유현이 모든 이야기를 끝냈을 때,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용사님은 저희를 다시 한번 구해주셨군요."

"그게 그렇게 되나?"

"설령 그런 생각은 없으셨다고 해도, 판대륙이 구원받은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소렌이 고개를 숙이자 이종족 간부들이 따라서 예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용사님."

"만약 용사님이 없으셨다면 대륙은 정말로 끝이었을 겁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유현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용사로 활동했던 과거에도 찬양에 가까운 칭찬을 수없이 들었지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구의 생활에 익숙해진 탓인지 상당히 낯간지러웠다.

"그나저나 지구라는 곳은 무척 신기한 곳이군요."

소렌이 이야기의 화제를 돌렸다.

"그러게 말이야. 마나도 없이 마법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니."

"한 번 가보고 싶구만."

지구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지구라는 곳에 관해서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설명을 듣고는 다들 지구를 궁금해했다.

"그래도 대륙과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것 같아. 거리에 수레가 달리고, 비공정도 있으니까."

"엄연히 다르지! 지구에는 도로가 있고 체계가 있어서 모두 그 규칙을 따라 움직인다고 말씀하셨잖나? 제국처럼 중구난방이 아니라고."

"용사님. 혹시 그 비행기란 것은 대체 어떻게 생겼습니까?"

모두의 관심은 자신들이 모르는 다른 차원으로 옮겨갔다.

유현 역시 그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마계와는 다른 개념의 이세계.

완전히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곳이니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다.

유현은 그들의 요구에 정성스레 응했다. 비행기나 여러 건축물을 그려주거나, 도시의 시스템을 설명하는 등. 이런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편이니 그 정도 번거로움은 감수할 수 있었다.

"길드 시스템은 이쪽의 길드와는 큰 차이가 있군요."

"훨씬 더 체계적이고 사냥꾼에게 친화적인 느낌이야."

"헌터라고 했나? 그런 축복 받은 환경에서 몬스터를 잡고 돈까지 벌다니. 아주 좋은 직업이군."

다들 헌터에 관해서도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지구에 나타난 게이트와 몬스터들은 결국 판대륙의 산물이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구라는 차원에 민폐를 끼친 걸지도 모르겠군요."

"몬스터와 게이트 덕에 지구도 많이 발전했어. 나쁜 영향만 있었던 건 아니야."

유현의 말에 소렌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꾸했다.

"하지만 이제 게이트가 사라진 것 아닙니까. 처음부터 없었다면 모를까, 있었다가 사라지는 건..."

소렌이 말을 흐렸고,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의 상황이 어떨지는 몰라. 하지만 여러 문제가 생겼을 건 분명해."

"심각한 일 입니까?"

"뭐, 헌터들은 일자리를 잃고, 길드는 망했겠지. 하지만 그게 인류에게 영향을 끼칠 수준의 문제는 아니야."

인간은 결국 답을 찾아낸다.

오랜 역사를 보면 언제나 그랬다. 헌터들은 어떻게든 먹고 살 길을 찾아 살아 남았을 것이다.

"그건 다행이군요."

"그렇다고 아예 문제가 아니란 건 아니지만."

유현은 소렌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다른 간부들과 한 번씩 눈을 맞추었다.

그들은 모두 유현에게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약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겸사겸사 두 세계에 도움이 될 제안을 하려고 해."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대륙에서 행할 두 번째 계획.

그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이었다.

"판대륙과 지구를 연결할 거야."

***

여러 반론이 있었다.

시기상조라느니, 용사님은 믿어도 또 다른 인간들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느니. 전쟁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고, 두 세계의 문명이 반목할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모두 염두에 둔 부분이었기에 유현은 조목조목 그들의 반론에 대답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모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애초에 두 세계의 연결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손해를 보지 않는 일이다.

또한, 차원의 연결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조건들이 이종족 지도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현 왕조의 붕괴, 노예 제도의 철폐, 각 종족의 주권 부여 등.

특히 새로운 제안을 제의한 자가 용사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믿음이 있었기에 누구도 그의 목적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다들 설명은 됐나?"

유현이 장내를 돌아보았다.

이종족 간부들은 흡족한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없습니다!"

"용사님께 영원한 충성을!"

"제 목숨을 바쳐서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그간 해답이 보이지 않던 종족의 미래. 그런데 그걸 과거의 영웅이 돌아와 해결해준다는데 흥분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유현은 싱긋 미소 짓고는 소렌에게 시선을 돌렸다.

"더 질문이 없으면, 이번에는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시죠."

"너희의 계획이란 게 대체 뭐지?"

0